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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젊을 때 겪은 경기침체는 평생을 늪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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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7일 11:53 프린트하기

경제불황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연합뉴스 제공
경제불황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연합뉴스 제공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가난하다는 것’이라는 말처럼 빈곤한 환경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예컨데 가난한 환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게 한다. 사적으로나 비지니스 상황에서나 리스크가 높은 일은 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돈 문제 등 생존에 관한 걱정이 심할 때는 그 걱정이 뇌의 리소스를 많이 잡아먹어 인지 능력이 알콜중독 수준으로 크게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Mani et al., 2013).

장기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고 진취적으로 도전하지 않고 어리석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객관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더 큰 핸디캡을 갖게 되고, 그 핸디캡으로 인해 다시 삶이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에머리대의의 에밀리 비언치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경기 침체’ 역시 비슷하게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이제 막 어른이 되어 독립적인 삶을 꾸리기 시작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경기가 어떠한지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Bianchi, 2014).

연구자들은 1500명과 3만1000명의 대규모 조사를 통해 18~25세일 때 경기 침체를 겪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존감이 다소 낮은 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에서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진로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기에 높은 실업률을 겪었던 세대인 1960년과 1980년대생이 호황기에 20대 초반을 맞이했던 세대인 1940년대와 1970년대생에 비해 자신은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나이, 성별, 교육수준과 상관 없이 유효했다.

이러한 현상은 고위직을 차지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났다. 2095명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젊었을 때 경기침체를 겪었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나이, 성별, 회사의 소득 및 자산 규모와 상관 없이 같은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은 더 높은 연봉과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자신감이 높은 CEO들이 그렇지 않은 CEO들에 비해 더 높은 연봉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20대 초반 경기 침체를 겪은 CEO들은 비교적 자신감이 낮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가 이미 오래 일해 온 사람들에 비해 사회 초년생들에게 더 큰 악영향을 미치는 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경기가 나빠졌을 때 사회초년생들은,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 비해 전문성이 없고 인맥도 없어서 일자리를 찾기가 더 힘들고 일자리를 찾아도 안정성과 급여 수준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일자리 질은 낮으면서 경쟁은 높은 이중고를 겪기도 한다. 또한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경기 침체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호황기에 처음부터 안정적이고 급여수준도 괜찮은 직장을 잡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지나도 안정성과 급여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주관, 주체성, 자존감이 높아지고 가족이나 소속 집단의 욕구 말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자아실현을 도모할 수 있게 됨을 시사하는 연구들이 있었다고 한다. 경기라는 큰 환경적 요소가 돈 문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사고방식과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젊은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거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들 하지만 일찍이 경제 불황을 겪는 등 이러한 심적 여유와 용기가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로 살아가는 용기는 마음에 달린 것이라고들 하지만 희망이 있어야 희망을 가지고 미래가 있어야 미래를 갈망할 수 있는 것처럼 환경이 개선되어야 나아지는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다만 환경이 나아져도 과거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사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Bianchi, E. C. (2014). Entering adulthood in a recession tempers later narcissism. Psychological Science, 25, 1429-1437. Mani, A., Mullainathan, S., Shafir, E., & Zhao, J. (2013). Poverty impedes cognitive function. Science, 341, 976-98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 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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