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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헌에도 기록된 독한 강풍 '양간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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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헌에도 기록된 독한 강풍 '양간지풍'

2019.04.05 11:29

 

동해안 산불을 키운 원인으로 꼽히는 ′양간지풍′의 원리도. 연합뉴스 제공
동해안 산불을 키운 원인으로 꼽히는 '양간지풍'의 원리도. 연합뉴스 제공

4일 저녁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밤새 강풍을 타고 속초를 덮치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산불을 키운 강풍은 양양과 간성, 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국지적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과 ‘양강지풍’(襄江之風)이다. 영동지역의 강풍은 봄철 남쪽은 고기압, 북쪽은 저기압의 기압배치가 발생하면서 서풍이 형성되면 발생한다. 봄철은 또한 고도가 높아지면 온도가 떨어지는 것과 달리 고도가 높아져도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인 역전층을 이동성 고기압이 강하게 형성하게 될 때가 있다. 이때 역전층 아래의 대기는 불안정해지고 이로 인해 강풍이 발생한다.


이런 강풍의 기록은 조선시대에도 있다. 양간지풍은 1633년 이식의 ‘수성지’에 양양과 간성에는 바람이 많다는 의미로 실렸다. 양강지풍은 1751년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 처음 등장했다. 이로 인해 영동지역에 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한 것도 과거 문헌에 기록돼 있다. 2017년 한국화재소방학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에 실린 ‘양간지풍에 의한 영동지역 대형산불의 역사적 사례연구’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2월에서 4월 사이 영동지역 대형 산불은 12건이 기록됐다. 1489년 성종 20년에는 양양에서 민가 205채와 낙산사 관음전이 불타고, 간성에선 향교와 민가 200채가 전소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낙산사는 1643년에도 전소된 기록이 있다.

 

같은 연도에 대형 산불이 여러 차례 난 경우도 있었다. 1524년은 강릉지역에서만 3월 19일과 4월 4일 두 차례 불이 나 각각 민가 244채와 240여 채가 전소된 것으로 기록됐다. 1643년에도 두 차례, 1660년에는 강릉, 양양, 간성, 삼척 등에 세 차례나 산불이 난 것으로 기록됐다. 가장 크게 불이 난 것은 1672년 민가 1900채가 불타고 65명이 숨진 산불과 1804년 민가 2600채가 불타고 61명이 숨진 산불이다.

 

이 중 발생한 산불 중 강풍이 직접적으로 기술된 것은 7건이나 화재의 규모로 보아 대부분 바람이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에는 ‘산화폭발(山火爆發)’, ‘대풍졸기(大風捽氣’, ‘화괴비무(火塊飛舞)’등 폭발적인 산불이나 강한 바람, 불씨가 도깨비처럼 날아다녔다는 표현이 들어있다.

 

1990년 이후 발생한 3대 대형 산불 모두 영동지역에서 4월 중 최대풍속이 23m를 넘을 때 발생했다. 피해액 순으로 보면 2000년 4월 7일부터 15일까지 고성 등 5개 지역에서 발생한 동해안산불은 2만 3794헥타르(ha)를 태우고 피해액은 360억원이었다. 당시 최대풍속은 초속 23.7m였다. 2005년 4월 4일 발생해 양양 낙산사를 전소시키고 276억 원의 재산피해를 낸 산불 당시에도 최대풍속이 초속 32m였다. 1996년 4월 23일 발생해 230억 원의 재산피해를 낸 고성산불 당시 최대풍속은 초속 27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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