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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살며 사랑하며 늙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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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왜 이럴까?] 살며 사랑하며 늙어가며

2019.04.14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레고 조각을 만지막거리는 조카가 정말 간단한 것을 만드는데도 쩔쩔 맵니다. 몇 번을 가르쳐주어도 ‘아이. 아무리 해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투정까지 부립니다. 누구를 닮아 이런지참다못해 레고 조각을 빼앗아 척척 만들어 나갑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가면 되는데 말이죠. 조카가 울음을 터트립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대신 만들어주면 편하고 좋은 것 아닙니까? 누나가 조카를 안아올리며 뭐라고 쏘아붙입니다. 도대체 언제 취직할 것이냐며 정신 좀 차리라고 합니다. 


누구는 취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나요?  아무리 해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쩌란 말인지 답답합니다. 누나가 그냥 매형 공장에 들어와서 일이나 배우라고 합니다. 2년 동안 기술도 배우고 자격증을 따며 하나하나 만들어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팍 상합니다.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은 편하고 좋아도 싫습니다. 성질을 버럭 내고 방에 들어옵니다. 


책꽂이에 꽂힌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꺼내봅니다. 개발새발 연필로 쓴 일기장입니다. 누가 빨간 볼펜으로 맞춤법을 교정해주었네요. 어머니가 아마 해주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이런 시절도 있었는데, 누나는 아무래도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근데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세금을 내달라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납부하는 것인데 어렵다고 하시네요. 공인인증서를 깔고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등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맞춤법보다도 쉬운 일이죠. 어느새 공수가 바뀐 격입니다. 지난 30년 사이에 어머니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러고보니 어머니도 부쩍 늙으신 것 같습니다. 말수도 적어지고 통 외출도 안 하시네요. 괜히 내 마음도 울적해집니다. 얼른 장가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주말에 만날 이성 친구 하나 없습니다. 세상에 왜 이렇게 남자가 많은지 모릅니다. 남자는 자기밖에 없고 여자만 있는 세상이었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을텐데 말이죠. 그러니 저출산이 심해지고, 경제가 어려워지고, 고령화 사회가 되고 뭔가 전혀 앞뒤도 안 맞는 상상을 합니다. 내일부터 매형 공장이라고 나가봐야겠습니다.

성장하는 인간

 

우리는 모두 성장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린 아이의 생각을 하고, 어른이 되면 어른의 생각을 합니다. 비록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어 버리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는 그때의 경험이 남아 지금의 우리를 만듭니다. 아이는 노는 것이 일이지만 그래도 잘 놀아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노는 것을 일하듯이 열심히 하는 아이가 나중에는 일하는 것을 마치 놀 듯이 즐기면서 잘 해내게 됩니다. 


원래 놀이와 학습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과업입니다. 책상에 앉아 바른 자세로 책을 읽으면 학습이고 아무렇게나 앉아 알록달록 장난감을 만지면 놀이라고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돌을 만지작 거리며 놀던 아이가 주먹도끼도 만들고, 나무조각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창과 활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놀이는 학습이 되고, 학습은 다시 일이 되고, 일은 다시 교육이 됩니다. 전통적으로 놀이와 학습, 일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바로 가정입니다. 부모와 형에게 일을 배우고, 동생과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네모난 건물에서 선생님에게 배우는 학습 방식은 불과 백 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인간은 긴 유년기를 가지도록 진화했다. 픽사베이
우리는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논다. 인간은 긴 유년기를 가지도록 진화했다. 픽사베이

가정은 의무인가


아무튼 그렇게 실컷 놀다보면 사춘기가 찾아옵니다. 세상은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민이 깊어집니다. 남자와 여자의 숫자는 동일하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남자 입장에서는 남자가 너무 많은 것 같고, 여자 입장에서는 여자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짝을 찾기 어려울 리 없습니다. 도무지 괜찮은 사람을 찾기 어렵고, 괜찮은 사람은 이미 다 짝이 있습니다. 이렇게 짝을 찾기 어려우니 다들 아기도 적게 낳는 것이 아닙니까? 복지국가라면 국민에게 짝도 찾아주어야 하는 게 아닌지.  ‘이게 나라냐’라며 죄없는 국가에 말도 안되는 심통을 부립니다.


구석기 시대는 어땠을까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서 짝을 만나 서넛의 자식을 낳고 키웁니다. 오십 살이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됩니다. 그러니 이모도, 고모도 많고 사촌도 많습니다. 운이 좋으면 증손주도 봅니다. 그렇게 가족이 커지고 친족이 만들어집니다. 전통적인 가족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니까 바뀐다는 식의 당위론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조상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것을 찾아 흩어지고 기아와 질병으로 죽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부모없는 자식은 항상 있었고, 고향을 떠나 핵가족으로 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인간의 조건은 생태학적 환경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점점 늦어지는 혼인도, 점점 낮아지는 출산율도 어떤 면에서는 환경에 따른 결과인지 모릅니다. 인류의 존재 이유를 ‘인구의 무한한 증가’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자식을 낳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선택할 일입니다.
   

사춘기를 지나 이성을 만나고 가정을 가지는 것은 보편적인 삶의 과업이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사춘기를 지나 이성을 만나고 가정을 가지는 것은 보편적인 삶의 과업이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점점 나이들면서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아깝다고 합니다. 열정은 넘치지만 신중함은 없습니다. 끊임없이 뜨거워지기만 합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젊은 세상도 있습니다. 아마 사회라는 것이 처음 생긴 이후로 세상은 늘 젊었는지도 모릅니다. 평균 연령은 늘 이십대였죠. 역사책을 가득 채운 투쟁과 싸움의 기록을 보면, 정말 인간이라는 종은 너무 열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 갑과 을로 나뉘어 싸우고 미워하고 경쟁합니다. 서로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의 주장을 배척합니다. 그 열정만은 인정합니다만. 전세계적인 고령화 시대에 거는 한 가지 막연한 희망이 있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패기파보다 관록파가 더 많아진 세상은 ‘예상과 달리’ 더 바람직하게 바뀔 수도 있을까요? 

 

마냥 성장만 할 것 같은 삶은 이제 중년에 접어듭니다. 나이가 들고 안정을 찾게 됩니다. 성격도 바뀌고 관심사도 바뀝니다. 젊음과 패기를 강조하는 세상이지만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전통입니다. 역사적으로 원숙한 경륜은 불 같은 패기보다 늘 앞선 가치였습니다. 관록을 붙으면 세상을 좀더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려깊은 태도와 오랜 경험은 이제 정말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강력한 자양분이 됩니다.

 

젊음은 가고 모든 사람은 중년 그리고 노년을 맞는다. 나이듦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모든 사람이 겪는 숙명이자 진화적 형질이다.pxhere
젊음은 가고 모든 사람은 중년 그리고 노년을 맞는다. 나이듦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모든 사람이 겪는 숙명이자 진화적 형질이다.pxhere

그렇게 빛나는 황금기를 겪은 후에는 황혼에 접어듭니다. 아직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고,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지만, 인류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백세 시대입니다.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태입니다. 비록 수렵채집사회에서도 제법 많은 사람이 60~70세를 넘도록 살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균형’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노인이라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아직 아무도 예단할 수 없습니다. 경험많고 지혜로운 노인이 많은 세상일 테니 어떻게든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때문이야》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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