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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낙태 반대론'의 또 다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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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낙태 반대론'의 또 다른 얼굴

2019.04.13 06:00
지난 4월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그동안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간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논쟁이 제기돼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월 11일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그동안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간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논쟁이 제기돼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낙태를 반대하는 이유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권’이다. 하지만 의문은 한국에선 성감별 낙태가 흔했는데 이에 대해 반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또 정작 아이가 태어난 이후의 복지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컨데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미숙한 행동을 했을 때 불쾌함을 넘어 아예 용납하지 못하는 무관용적인 어른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아이들을 잘 보이지 않도록 하는 ‘노키즈 존’이 성행하는 것일 거다. 


생명이 소중하다면 그 소중한 생명을 키우는 사람 또한 소중할텐데 ‘맘충’ 같은 표현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비혼모 역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생명을 낳았다는 찬사를 받기보다 차별을 받는다. 낙태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생명 존중’이라는 어구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어쩌면 낙태 반대에는 생명 존중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해외에서는 흔히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람들에 비해 낙태에 반대하는 편이다. 여기에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심리학자 카라 매키니스 교수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람들에 비해 실제로 태아를 더 사람처럼 인식해서 낙태에 반대하는지에 대해 살펴봤다(MacInnis et al., 2014). 연구자들은 정치적 성향과 수정란, 배아, 태아(zygotes, embryos, fetuses)등이 얼마나 ‘인간’ 같다고 여겨지는지, 또 각각이 얼마나 사람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지, 마지막으로는 낙태에 대한 태도를 물었다. 

 

(왼쪽부터) 세포분열이 여러 번 일어난 수정란, 수정된지 12일 된 인간배아의 현미경 사진, 태아 일러스트. 과학동아 제공(자료 네이처)
(왼쪽부터) 세포분열이 여러 번 일어난 수정란, 수정된지 12일 된 인간배아의 현미경 사진, 태아 일러스트. 과학동아 제공(자료 네이처)

그 결과 보수적인 사람들은 태아를 사람으로 인지하는 측면에서 낙태 반대 이유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생명 존중을 앞세우는 것에 반해 낙태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 브록대의 심리학자 고든호드슨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선 안된다고 보는 성차별적 인식이 보수적인 사람들의 낙태 반대 경향을 더 잘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Hodson & MacInnis, 2017). 


연구자들은 미국과 뉴질랜드에서 약 74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정치적 성향, 적대적 성차별, 온건한 성차별 , 낙태에 대한 태도를 묻고 그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적대적 성차별은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이고, 온건한 성차별은 ‘여자는 역시 조신하고 남자를 잘 내조해야’하는 식으로 전통적 규범 틀에 맞는 여성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존 연구에서 생명 존중이 보수 성향에 따른 낙태 반대를 잘 설명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성차별적 인식이 오히려 낙태 반대를 잘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보수 성향 → 성차별 → 낙태 반대). 성차별 인식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낙태를 반대하는 현상의 약 30-70% 정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성별, 종교적 성향과 상관 없이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낙태 반대에는 성차별적 인식과 여성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이 차별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소망이 반영돼 있다고 언급했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 존중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실제로는 성차별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낙태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자면서 여성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동시에 남성 측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불균형이나, 생명을 존중하자면서 이미 태어난 생명이나 비혼모를 존중하지 않는 모순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뿌리 깊은 성차별적 태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Hodson, G., & MacInnis, C. C. (2017). Can left-right differences in abortion support be explained by sexism?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04, 118-121.
-MacInnis, C. C., MacLean, M. H., & Hodson, G. (2014). Does “humanization” of the preborn explain why conservatives (vs. liberals) oppose abortion?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9, 77?8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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