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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주제 제각각, 일정도 제멋대로' 서울서 열린 부실학회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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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주제 제각각, 일정도 제멋대로' 서울서 열린 부실학회 가보니

2019.04.21 11:30
이달 19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부실학회로 추정되는 ′인터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 앤 매니지먼트(IASTEM) 2019′가 열리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19일 서울 마포구 한 호텔에서 부실학회로 추정되는 '인터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 앤 매니지먼트(IASTEM) 2019'가 열리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19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 회의실.  이날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인터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 테크놀로지, 엔지니어링 앤드 매니지먼트(IASTEM)가 주최한 ‘IASTEM 인터내셔널 2019’가 열렸다. IASTEM은 ‘월드리서치라이브러리(WRL)' 계열의 부실학회 중 하나다. IASTEM은 이날 ‘590회 과학기술과 경영 국제 컨퍼런스’(ICSTM), ‘제 588회 기계항공공학 국제 컨퍼런스’(ICMAE) 등 9개 학회를 연다고 공지했지만, 학회는 IASTEM 인터내셔널 2019라는 이름의 학회 하나만 열었다. 일정 분야 연구를 발표하는 일반 학회와 달리 발표 주제도 제각각이고, 일정도 공지한 바와 달랐다. 한국 연구자도 발표자로 등록돼 있었지만 이날 참가하지는 않았다.

 

한국연구재단이 와셋, 오믹스와 함께 부실 추정 학회로 지목한 WRL 계열의 학회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렸다. 부실학회에 참여한 연구자에 대한 대중의 따가운 시선과 정부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실학회가 국내에서 버젓이 열려도 이를 제재할 방법은 없다.  행사 개최장소로 소개된 일부 호텔은 마치 실제 행사가 열리는 것처럼 명칭이 도용됐지만 이를 법적으로 금지할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경영·기계공학·과학 한 행사에서

 

이날 학회를 준비한 대행사 ‘컨퍼런스 아시아’ 측 관계자는 “본인은 담당이 아니고 단순히 학회를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학회 담당자는 한국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학회가 서울에서 열리지만 현재 대만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대행사 담당자는 “우리는 학회를 열기만 할 뿐”이라며 “부실학회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행사 홈페이지에는 ‘대만에서 활동하는 박사급 연구원들이 모여서 학회를 개최한다’는 소개와 함께 ‘지식 공유를 통해 세계 연구환경을 강화한다’고 적혀있다.

 

이런 정체 불명의 학회는 한국을 무대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대행사 관계자는 “학회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연다”며 “학회가 열린다는 전화를 2~3주 전에 받으면 호텔 예약과 조직을 담당하고 참가자 숫자에 맞춰 증서를 준다”고 말했다. 호텔 관계자는 “올 들어 우리 호텔에서 이 학회 주관사는 2월부터 학회를 총 4회 열었다”고 말했다.

 

대행사와 호텔 측은 학회가 부실학회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대행사 관계자는 “학회가 정상적인지 비정상적인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호텔 측도 "부실학회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며 “대관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응대할 뿐 학회 내용을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호텔은 WSL 계열의 다른 학회 개최 장소로도 올라 있다. 하지만 호텔 측은 “확인 결과 이번 행사 이후 예약은 없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학회에는 모두 연구자 7명이 발표하고 3명이 참관을 신청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날 실제 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총 8명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체대 이 모 교수가 해부학 관련 발표를 할 예정으로 소개됐지만 이날 참석하지는 않았다. 학회가 열리는 시간에 이 교수는 연구실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자신은 국제학회인 줄 알고 초록만 냈고 이후에 인터넷을 통해 부실학회인 것을 알고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학술 활동 실적에 등록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 학회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며 “일개 연구자가 국제 학회가 제대로 된 학회인지 모두 알기 어렵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학회 등록비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UAE에서 학회 참관을 위해 한국을 온 한 연구자는 공지된 일정을 보여주며 학회는 18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19일 오전에만 열렸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UAE에서 학회 참관을 위해 한국을 온 한 연구자는 공지된 일정을 보여주며 "학회는 18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19일 오전에만 열렸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학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조차도 내용이 부실하다고 했다. 학회에서 연구 동향을 듣기 위한 목적으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한국을 왔다는 두 참가자는 “공공시설 관련 기술 동향을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방문했다”며 “그런데 재활 , 재무 같은 엉뚱한 분야만 학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전혀 다른 분야의 발표를 들은 것이다. 발표자로 참석한 말레이시아에서 온 연구인은 “기조연설자로 말레이시아 학자가 왔던데 학계에서 전혀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자칫 한국에서 열리는 다른 국제학술대회들의 권위마저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하나 행사에 발표 학문 제각각, 학회 일정 임의로 바꿔

 

참가자들은 사전 공지한 학회 일정과도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UAE 참가자는 “학회는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고 나와 있었으나 예정과 달리 19일 오전만 열렸고 18일 일정은 취소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비슷한 시점에 여러 개 학회를 동시 다발적으로 연다고 홍보하고 등록자들을 각각 받은 뒤 이를 하나로 합쳐버리는 패턴은 부실학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전형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대행사를 통해 학회 참관비를 환불받은 채 학회가 끝나기도 전에 호텔을 떠났다.

 

부실학회 홈페이지 등에는 이런 부실학회로 추정되는 행사들이  이후에도 한국에서 계속해 열린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WSL 계열의 학회 일정을 공개하는 ‘월드 컨퍼런스 얼럿’ 홈페이지에는 20일에서 21일 서울에서 ‘인터내셔널 소사이어티 포 사이언티픽 리서치 앤드 디벨롭먼트’(ISSRD)가 주최하는 학회 5개, '글로벌 소사이어티 포 리서치 앤드 디벨롭먼트'(GSRD)가 여는 학회 5개가 열린다고 홍보해 놓았다. 이 학회들 모두 부실학회로 지목되는 학회다. 이런 학회들은 매일같이 열컨퍼런스를 연다고 홍보하며 연구자들을 유혹한다. GSRD는 21일에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22일에는 태국 파타야에서 학회를 연다고 홈페이지에 일정을 게시해 놓았다. 학술 업적을 펑튀기하려는 연구자들을 유혹하는 한편 학회에 대한 변별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도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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