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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학회 판단 어렵다" 부실통계에 참가자 면죄부까지 준 이상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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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학회 판단 어렵다" 부실통계에 참가자 면죄부까지 준 이상한 보고서

2019.04.21 11:31
부실학회가 학회에 참석한 것을 인증해주는 증서의 모습이다. 한국 학자들이 여전히 부실학회에 참석하며 논문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ASTEM 홈페이지 캡처
부실학회가 학회에 참석한 것을 인증해주는 증서의 모습이다. 한국 학자들이 여전히 부실학회에 참석하며 논문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ASTEM 홈페이지 캡처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과학계는 물론 사회적 관심을 모은 부실학회 관련 보고서를 잇따라 냈지만 엄밀해야 할 조사 통계가 틀리는 등 내용에 허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부실 학술단체 판단에 정부가 개입할 경우 헌법을 침해할 수 있다며 판단을 사실상 학계 몫으로 미뤄 논란이 예상된다. 이 같은 입장은 정부가 지난해 국가 연구개발(R&D)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부실학회 참가자에 대한 강력한 징계 기조와도 엇박자로 비쳐져 혼란이 예상된다. 또 학문 활동의 부실여부 판단을 학계에 맡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지만 세금을 받아 연구하는 일부 연구자들이 저지른 도덕적 해이와 부정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가시지 않고 있고 학계가 자정 시스템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기관이 앞장서 악용될 소지가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해 5조원이 넘는 연구비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연구재단이 부실학회 참가 학자들의 입장에 서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연구재단은 이달 15일 부실학회와 관련해 ‘한국학자의 부실추정학회 최근 참가추이 분석’, ‘학술단체의 부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 보고서를 잇따라 내놨다. 이들 보고서는 한국학자의 부실추정학회 참가가 줄어들고 있다는 해석과 학술단체 부실 여부를 정부가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 담고 있다.

 

지난해 8월 부실학회 존재가 알려진 이후 참가는 확실히 줄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재단이 전국 대학과 연구기관에 ‘부실학회 예방가이드’를 배포한 이후인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한국 연구자가 부실학회로 지목된 대표적 학술단체인 ‘BIT’와 ‘월드리서치라이브러리’(WRL)에 논문을 발표한 횟수는 각각 15건과 33건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조사 방식과 데이터에서 부실함을 면치 못했다.  연구재단은 보고서에 “학술대회에서의 발표 목적으로 만든 학술 연구 논문에 게재된 한국인 저자를 조사했다”며 “다만 실제로 참석한 것을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단서를 달았다. 논문만 내고 참석하지 않은 경우나, 논문을 낸 후 부실학회임을 알고 철회해도 부실학회가 논문 게재를 강행하는 경우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재단이 조사한 방식대로 WRL 홈페이지에 게재된 한국인 참가자의 수를 일일이 세어보니 실제로는 이보다 5개 많은 38개 논문이 발표된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 대부분은 대학 연구자로 38개 논문 참여자 99명 중 86명이 대학 연구자였다. 기업 연구자 한 명을 제외하고 부실학회에 2회 이상 참석한 경우는 없었다.  연구재단 측은 통계가 틀린 이유에 대해 “추이만 확인하려 했다"며 "관련 통계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재단 보고서는 다른 연구기관은 물론 정부가 사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민감한 통계를 수집하는데 안일하게 접근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전체적인 숫자만 줄었을 뿐 다른 행사에 참석하며 논문 실적을 쌓기 위해 부실학회에 참석하거나, 고등학생의 논문 실적을 위해 부실학회에 참석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모 대학 연구자는 싱가포르에 열린 WRL 계열 부실학회에 학부생 18명과 함께 6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자는 “한국 한 공공기관과 싱가포르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검색했더니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학회가 있어 참석했다”며 “학생들의 논문실적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시인했다. 지역 국립대의 한 연구자는 고등학생 3명을 데리고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연구자가 많은 반면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자들은 없었다. 다만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소속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학연학생으로 있던 베트남 유학생이 지난 1월 한국에서 열린 학회에 낸 논문은 있었다. UST 측은 “현재 조사 결과로는 학생이 KIST 소속 교수에게 참가 여부를 알리지 않고 자비로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학생은 현재 졸업한 상태로 실제 참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업 연구자들의 논문도 3편 있었다. 기업 연구자 중 한 연구자는 17일 간격으로 독일 함부르크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WRL 계열 학회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연구재단의 부실학회 예방가이드에 나오는 약탈적 학술지의 특징. 이와같은 세세한 특징을 밝혔음에도 한국연구재단은 부실학회 판단에 대해서는 연구자의 몫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한국연구재단의 부실학회 예방가이드에 나오는 약탈적 학술지의 특징. 이와같은 세세한 특징을 밝혔음에도 한국연구재단은 부실학회 판단에 대해서는 연구자의 몫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하지만 연구재단은 여전히 부실학회 참가하는 사례가 나타나는데도 부실학회 판단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보고서는 부실 학술단체가 국제적으로 합의된 정의가 없고, 정부기관이 부실 학술단체 목록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부실 학술단체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아직 분분하고, 부실학술단체 목록은 제프리 비올 미국 콜로라도대 사서가 만든 ‘비올 리스트’ 등 개인이나 기관 차원에서 만든 것만 존재할 뿐 정부 차원의 목록은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헌법을 들어 개별 학술단체의 부실 판단을 정부가 할 수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보고서는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부실 판단은 학계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도 대표적 부실학술단체인 ‘오믹스’를 사기적 영업행위로만 고소했을뿐 학회의 부실 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니라며 부실 판단은 정부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가이드를 제공하겠다는 수준의 대책을 밝혔다.  


문제는 연구재단의 이와 같은 태도가 지금까지 정부가 보인 부실학회 참가자에 대한 강력 처벌 기조와 배치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받은 일부 대학과 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의 부실학회 참석과 관련해 징계조치를 내렸다. 지난 3월에는 청와대가 조동호 전 과기정통부 장관후보자의 결격 사유로 부실학회 참가를 지적하는 등 정부는 지금까지 부실학회에 대해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왔다. 하지만 5조원이 넘는 연구비를 연구자들에게 지원하며 연구자들의 연구윤리 관리에 책임이 있는 연구재단이 오히려 ‘부실학회를 정할 수 없다’며 오히려 한 발 물러선 태도를 취한 것이다.

 

특히 학술단체에 대한 부실 판단이 어렵다며 보고서에서 밝힌 연구재단이 입장은 지금까지 부실학회 참가 연구자들의 변명과 결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보고서는 부실학회가 설립 초기에는 부실했지만 점차 일반적 학술단체로 진화하거나, 일반적 학술단체로 운영되다가 부실해지는 경우도 있어 판단이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조동호 전 과기정통부 후보자도 부실학회에 대해 “당시에는 정상적인 학회라고 판단했다”는 소명을 내놓았다.

 

연구재단 측은 결론적으로 부실학회 참석을 직접적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구재단의 한 관계자는 “부실학회를 정의할 수 없는데 직접적인 징계를 할 수는 없다”며 “다만 부실 추정 학회에 참석하면서 연구 증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심의를 통해 밝혀내면 학회 참가비 등을 환수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심의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조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학술진흥 조직인 연구재단이 부실학회 판단에 부정적인 입장을 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연구자들은 지난해 부실학회에 대한 관심이 가중되면서 건전한 학술활동까지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비올 리스트에 등록된 학회 참석을 모두 규제한 대학에 대해 리스트에 오른 정상 학회가 대학측에 항의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학계가 이번 부실학회 문제로 몸을 사리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문 활동의 부실여부 판단을 학계에 맡기는 것은 과학계 자정 능력이 있는 나라들에서는 보편화돼 있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일부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받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저지른 도덕적 해이와 부정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가시지 않고 있고 학계가 명확한 자정 의지와 시스템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기관이 앞장서 악용될 소지가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해당 학회를 안내하는 공식 홈페이지에 지난 2017년, 2018년도 행사사진이 걸려있다. iastem 홈페이지 캡쳐
해당 학회를 안내하는 공식 홈페이지에 지난 2017년, 2018년도 행사사진이 걸려있다. iastem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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