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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고고학 산책] 우삼별초 도령은 어쩌다 택배사고로 상어를 받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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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고고학 산책] 우삼별초 도령은 어쩌다 택배사고로 상어를 받지 못했나

2019.04.27 06:00
꼭 난파선만 수중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안선이 변하면서 수몰된 유적도 수중고고학의 연구대상이다. 물속에서 청자를 발굴 중인 고고학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꼭 난파선만 수중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해안선이 변하면서 수몰된 유적도 수중고고학의 연구대상이다. 물속에서 청자를 발굴 중인 고고학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선박이 통과하기 어렵다’는 뜻의 뱃길 ‘난행량(難行梁)’. 이곳은 예로부터 파도가 험하고 거칠어 지나가던 배들이 자주 난파했습니다. 뱃사람들에게는 꿈에도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이곳은 사실 고고학자에겐 보물창고입니다. 

 

그물로 귀한 청자를 건지다

선박의 조난이 빈번해 ‘난행량’으로 불렸던 마도 앞바다의 전경. 이후 무사 항해를 바라는 뜻에서 ‘안흥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선박의 조난이 빈번해 ‘난행량’으로 불렸던 마도 앞바다의 전경. 이후 무사 항해를 바라는 뜻에서 ‘안흥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2007년 난행량이 있는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심선택 씨의 그물에 이상한 것이 걸렸습니다. 묵직한 그물에는 물고기가 아니라 청자 파편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심 씨가 도자기 조각을 태안군청과 문화재청에 신고하자, 놀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고고학자들이 마도 앞바다로 달려왔습니다. 도자기 조각은 청자를 싣고 가던 배가 바닷속에 가라앉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일찍부터 바다를 통한 교역이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폭풍을 만나거나 조류가 험한 곳에서는 많은 배가 난파되기도 했습니다. 서해에 가라앉은 난파선 위로는 갯벌의 고운 진흙이 쌓이면서 유물이 고스란히 보존됐습니다. 난파선이 타임캡슐이 돼버린 셈입니다.

 

수중문화재는 어부의 신고로 발견되는 일이 잦다. 태안 대섬의 수중 유물은 어부 김용철 씨가 알을 보호하기 위해 청자를 사용한 주꾸미를 잡으면서 알려졌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문화재는 어부의 신고로 발견되는 일이 잦다. 태안 대섬의 수중 유물은 어부 김용철 씨가 알을 보호하기 위해 청자를 사용한 주꾸미를 잡으면서 알려졌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고고학자들은 난파선을 찾기 위해 청자가 발견된 해역 주변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음파로 물속 지형을 탐색하는 음향측심기 등의 장비를 사용하고, 때로는 고고학자가 직접 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4년에 걸친 조사 끝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고고학자들은 마도 앞바다에서 세 척의 배를 찾아냈습니다. 이 배들에는 발견된 순서대로 마도 1호, 2호, 3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바다에 침몰한 옛 선박, 호수에 잠긴 도시 등 물속에 남겨진 인류의 흔적을 ‘수중문화재’라고 합니다. 수중문화재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수중고고학’이라 합니다. 국내에서 수중고고학은 1976년 전남 신안군 앞바다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발굴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초기에는 기술과 장비가 부족해 해군 잠수사의 도움을 빌려야 했지만, 지금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아시아 최대의 수중문화재 발굴선 ‘누리안호’가 있어서 걱정이 없습니다. 2012년에 취항한 누리안호에는 20여 명의 조사원이 20일간 체류하면서 수중 발굴조사를 할 수 있습니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선박도 인양할 수 있습니다.

 

물속에서 발견된 청자와 이를 발굴 중인 고고학자. 도자기는 짚으로 포장된 상태 그대로 발견되어, 고려 사람들의 포장 기술도 추측할 수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물속에서 발견된 청자. 도자기는 짚으로 포장된 상태 그대로 발견되어, 고려 사람들의 포장 기술도 추측할 수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간이 알려준 고려 시대 택배의 목적지

 

비밀은 화물과 함께 발견된 ‘목간’ 덕분에 풀렸습니다. 목간은 글을 적은 나뭇조각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대에 문서로 쓰였습니다.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목간에는 배에 실린 화물을 보낸 사람과 지역, 받는 사람, 화물의 종류와 수량이 적혀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목간에 적힌 이름과 관직명을 토대로 마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배들이 13세기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음을 알아냈습니다. 이 배들은 ‘조세 운반선’으로, 남부 지방에서 세금으로 거둔 물자를 수도로 옮기다 마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고학자들은 수중 발굴을 통해 마도 1~3호선에서 다양한 유물을 발굴했습니다. 이 배들에서는 기존의 난파선에서 발견되는 도자기나 동전은 물론, 특이한 유물도 있었습니다. 바로 대나무 상자에 담긴 동물의 뼈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왼쪽부터) 가라앉은 마도 3호선을 재구성한 모습.  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목간. 앞면에 ‘우삼번별초 도령시랑 댁에 올림’, 뒷면에 ‘상어를 상자 하나에 담음’이라 쓰여 있다. 실제로 마도 3호선에서 곱상어의 척추뼈가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발견되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왼쪽부터) 가라앉은 마도 3호선을 재구성한 모습. 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목간. 앞면에 ‘우삼번별초 도령시랑 댁에 올림’, 뒷면에 ‘상어를 상자 하나에 담음’이라 쓰여 있다. 실제로 마도 3호선에서 곱상어의 척추뼈가 대나무 바구니에 담겨 발견되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목간에 따르면 마도 3호선은 전남 여수에서 출발해 당시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화물을 받을 사람은 우삼별초 도령으로 불리던 무신 정권기 최고 권력자인 김준과 그의 측근들입니다. 실제로 ‘우삼별초 도령에게 상어를 상자에 담아 보낸다’고 적힌 목간과 함께, 곱상어 척추뼈가 가득 들어있는 대나무 상자가 발견됐습니다. 말하자면 목간은 나무로 된 택배 송장인 셈입니다. 


마도선에서 발견된 물건들이 휘황찬란한 금은보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 척의 배는 800백 년 동안 물속에서 옛날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유물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도 3호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고려 사람들이 상어를 잡았고, 우삼별초 도령이 택배 사고로 상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마도선은 고고학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진귀한 보물선입니다.  

목간을 분석한 결과 세 배의 목적지가 밝혀졌다. 마도 1호선은 1208년 봄에 장흥, 해남, 나주에서 생산된 곡물과 식재료를 싣고 개경으로 가던 중 침몰했다. 마도 2호선은 1200년경 고창, 정읍에서 난 곡물을 개경으로 운반하다 침몰했다.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 사이 여수를 포함한 남부지역에서 출발하여 강화도로 향하다 침몰했다.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목간을 분석한 결과 세 배의 목적지가 밝혀졌다. 마도 1호선은 1208년 봄에 장흥, 해남, 나주에서 생산된 곡물과 식재료를 싣고 개경으로 가던 중 침몰했다. 마도 2호선은 1200년경 고창, 정읍에서 난 곡물을 개경으로 운반하다 침몰했다.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 사이 여수를 포함한 남부지역에서 출발하여 강화도로 향하다 침몰했다.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필자소개

고은별(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8호(4.15발행) [Go!Go! 고고학자] 난파선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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