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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부실학회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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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29일 16:00 프린트하기

 

이달 19일 부실학회로 추정되는 학회가 열린다는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을 찾았다.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까지 안내판 하나 제대로 없어 학회가 열리는 지 의심스러웠다. 학회가 열린다는 것은 호텔 내 14인 규모의 조그만 회의실 문 너머 보이는 학회 이름과 ‘웰컴’만 덩그러니 적혀있는 쭈글쭈글한 학회 환영 포스터를 통해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학회 관계자는 없고 대신 행사를 열어주기만 할 뿐이라는 대행사 직원 한 명이 학회 발표 연구 논문 모음집인 ‘프로시딩’은 없다며 대신 발표 차례만 적혀있는 일정표 한 장만 보여줬다. 장수가 더 없어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한 외국인 연구자는 짐을 가득 든 3명의 일행과 같이 왔다. 일행은 호텔 로비에서 연구자의 발표가 끝날때만 기다리고 있다가 발표만 마치고 나온 연구자와 함께 짐을 챙겨 떠났다. 발표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떠난 곳에는 학회 참가 인증서를 보내기 위해 골판지로 둘둘 만 택배가 뜯어진 채 버려져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본 부실학회의 부실 정도는 황당한 수준이었다. 대행사 관계자는 “학회에 문제가 있는지 판단할 수 없고 열어주기만 할 뿐”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관계자의 이름과 사진은 학회의 국제 이사회 명단에 버젓이 올라있었다. 대행사도 한통속인, 조직적인 부실학회가 열리고 있음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학회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고의성이 충분히 엿보였다. 부실학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학회 발표 당일에도 학회에서 누가 발표하는지,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조차 없었다. 하지만 부실학회에 최근까지도 참석한, 혹은 참석을 시도한 한국 연구자들은 “날짜가 맞는 학회를 찾아보니 있어서 갔다”며 그저 인터넷에서 보고 신청했다고 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이달 15일 낸 ‘부실학회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 보고서는 부실학회가 정상학회가 될 수 있고, 반대로 정상학회가 부실학회가 될 수 있다며 부실 여부를 즉각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부실학회가 점점 규모를 갖춰가고 동료 평가를 활성화하면서 정상적인 학회의 모습을 가져간 사례가 없지는 않다. 부실학회로 지적받는 학회도 모양새를 어느 정도 갖춰 판단이 어려운 사례도 있다.

 

하지만 부실학회를 정상학회처럼 만들어 준 것은 한국 연구자들의 변명처럼 날짜가 맞아서, 실적을 채우기 위해, 혹은 이번에 참가한 외국 연구자처럼 관광 목적으로 참석해가며 낸 학회 등록비다. 우선은 부족하게 시작하고 나중에 정상적으로 하겠다는 학회에 연구윤리가 부족한 연구자의 돈이 투자되는 것이다. 학회의 논리는 결과론적으로 좋은 연구자들이 상당수 모였다며 부실학회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던 여러 연구자의 해명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연구자들이 국제학회에 내는 등록비 중 상당부분은 정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납세자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아낌없이 과학에 투자한 세금이다.  연구재단의 한 관계자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부실학회라는 것은 명확히 규명할 수 없고, 처벌 근거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학회의 구성과 형태를 꼼꼼히 알아보고 자신의 연구에 도움이 되는 학회를 가면서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부실학회를 판단하니 마니를 떠나 강력한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부실학회 관련 교육을 열어 연구자들이 진정한 ‘이성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돕는게 먼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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