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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체험하는 의료로봇]⑤ 게임 통해 기억력 높이는 로봇 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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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9일 15:00 프린트하기

김건하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왼쪽)가 로보케어와 공동 개발한 인지 훈련 로봇 ′보미′을 선보이고 있다. 나연아 신경심리사 지도하에 환자와 1대1로 인지훈련을 할 수 있다.
김건하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왼쪽)가 로보케어랑 개발한 인지 훈련 로봇 '보미'. 나연아 신경심리사 지도하에 환자와 일대일로 인지훈련을 할 수 있다.

“요리 재료를 보여드릴 거예요. 잘 기억하셨다가 재료를 담아주세요. 요리 재료는 팥, 상추, 포도, 오리고기입니다.” 

 

모니터 속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 문이 열리고 요리 재료들이 보였다가 물음표 뒤로 숨었다. 물음표를 누르니 다시 재료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바구니에 담아야 할 재료가 무엇인지, 각각 어느 자리에 있는지 잘 기억했다가 한 번에 담아야 한다. 이번에는 “팥을 냄비, 상추를 싱크대, 포도를 도마, 오리고기를 전자레인지에 넣어달라”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얼핏 재미난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기기는 치매환자와 치매고위험군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인지훈련을 시키는 로봇 ’보미‘다. 식재료의 가짓수와 이름, 냉장고에 들어있는 위치, 각각 알맞은 조리도구가 짝을 짓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기억력과 집중력 등 인지 기능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다. 

 

지난달 15일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국내 대학병원 가운데 최초로 로봇인지치료센터가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환자와 로봇이 전문가를 받아 일대일로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치매 예방은 물론 치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기억력과 집중력, 언어 능력 등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국내 로봇 제조업체인 로보케어와 함께 보미를 개발한 김건하 이대목동병원 로봇인지치료센터장(신경과 교수)은 “치매는 아직 완치 방법이 없고, 치매는 아니지만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 같다는 사람에게 약을 처방할 수도 없다”며 “일상생활과 유사한 상황을 게임으로 만들어 마치 손자 손녀와 노는 것처럼 즐겁게 인지훈련을 하면 인지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루 60분씩 3개월 이상 놀면 인지 기능 향상

 

김건하 센터장 연구팀이 기존 방법으로 또는 로봇을 이용해 인지훈련을 했을 때의 뇌 변화를 MRI로 촬영한 것. 노란색을 띨수록 인지능력이 강화, 파란색을 띨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짐을 나타낸다. 김건하 제공
김건하 센터장 연구팀이 기존 방법으로 또는 로봇을 이용해 인지훈련을 했을 때의 뇌 변화를 MRI로 촬영한 것. 노란색을 띨수록 인지능력이 강화, 파란색을 띨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짐을 나타낸다. 김건하 제공

보미는 지름이 190cm 정도 되는 커다란 얼굴(스크린)을 가진 탁상형 로봇이다. 평소에는 눈을 깜빡이면서 바라보다가, 게임을 시작하면 친근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진행한다. 이마에는 눈이 세 개 달려 있는데 환자와의 거리와 위치, 환자의 동작을 인식하는 적외선 센서와, 환자의 얼굴을 알아보는 카메라다.
 
김건하 센터장은 “보미는 현재 병원에서만 사용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정용으로 개발할 예정이기 때문에, 가족 중 인지 훈련이 필요한 사람만 알아볼 수 있도록 센서를 장착했다”며 “이 덕분에 한 가족 내에 인지 훈련이 필요한 사람이 둘 이상이더라도 얼굴을 보고 이전에 훈련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훈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미가 갖고 있는 게임은 로봇게임 10종과 블록게임 10종을 합쳐 총 20가지나 된다. 직접 체험해본 ’요리 만들기‘ 외에도 ’옷 입히기‘와 ’용돈 주기‘, ’시장 보기‘, ’낚시하기‘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을 게임으로 만들었다. 게임 종류에 따라 보미는 손자처럼 밥을 달라고 하고, 시장을 보러 함께 가거나, 원하는 옷을 입혀달라고 하기도 한다. “할머니, 전화 받으세요” 벨을 울린 다음 “저는 □□친구 □□인데요, 내일 □시에 □□□에서 만나자고 전해주세요”하고 미션을 주기도 한다. 

 

각 게임마다 난이도별로 1~10단계까지 들어 있다. ’요리 만들기‘를 예로 들면 1단계에서는 식재료를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하지만 위의 단계로 갈수록 기억해야 할 식재료와 조리도구의 개수가 늘어난다. 환자의 인지능력에 따라 개인맞춤형 훈련이 가능한 셈이다. 

 

보미와 함께 하는 인지훈련은 하루 60분씩 3개월 이상 꾸준히 해야 효과가 나타난다. 김건하 센터장은 2015년 서울 강남구 치매센터에서 한 그룹 8명씩 대상으로 인지훈련을 진행한 결과, 대뇌 피질 두께를 향상시키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로봇인 이로미에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장착해 실험한 결과다. 이로미는 보미와 달리 사람처럼 생겼고 두 팔을 가졌으며 바퀴가 달려 있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실험에 참가한 환자들은 주 5회 90분씩 이로미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인지훈련을 했다.  

 

하지만 김건하 센터장은 주 5회 90분씩 여럿이 모여서 한꺼번에 인지훈련을 하는 것보다 일대일로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룹 내에서도 인지능력이 개개인별로 다른데다, 단체로 인지훈련을 하다 보면 소외되는 환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로미보다 얼굴(스크린)이 훨씬 크고, 움직이지 않는 대신 마주 볼 수 있도록 탁상형 로봇인 보미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보미를 활용해 올 5월부터 12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환자들이 보미와 함께 게임하는 동안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이용해 인지훈련 전후로 뇌 활성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예정이다.


빅데이터 기반 ’AI보미‘ 탄생 전망

 

기자가 직접 보미와 함께 ′요리 만들기′ 게임을 하면서 인지 훈련을 해봤다.
기자가 직접 보미와 함께 '요리 만들기' 게임을 하면서 인지 훈련을 해봤다.

해외에서도 치매 환자를 위한 로봇이 여럿 탄생했다. 하지만 일본 소프트뱅크의 ’페퍼‘나 일본산업기술총합연구소의 ’파로‘처럼 대부분 꼭 껴안고 정서를 교감할 수 있는 심리치료용이 대부분이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중증 치매 환자에게는 실용적이지만 조기 환자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에게 인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개발한 로봇은 보미가 최초다. 

 

보미는 앞으로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먼저 올 5~6월에는 이로미처럼 움직이거나 이동하는 보미가 탄생할 전망이다. 게다가 지금은 프로그램에 설정된 대사를 말하고 환자가 고른 게임을 진행하고 있지만, 조만간 인공지능(AI)으로 환자별 맞춤형 훈련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보미의 알고리즘은 환자와 건강한 사람 500명의 데이터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김 센터장은 “현재 환자의 표정이나 수면상태, 활동량 등을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추적해 환자의 정서 등을 빅데이터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1만~2만명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미의 얼굴에 달린 3개의 눈으로 환자의 표정을 인식한 다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인식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전 세계에서 보미를 보게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연구팀은 영문화권에서도 보미를 통해 인지 훈련이 가능한지, 얼마나 효율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셀린시니어센터에서 활용하고 있다. 식재료나 화폐단위 등 원래 버전에서 수정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뉴질랜드에 있는 보미는 로봇게임 2종과 블록게임 2종이 장착돼 있다.

 

김 센터장은 “최근 한 환자가 정년 퇴임 후 치매고위험군을 진단받아 매우 우울한 상태였다”며 “보미와 인지훈련을 하면서 기억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 우울감도 극복했다”고 말했다. 인지기능뿐 아니라, 고령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도 예방할 수 있는 친근한 로봇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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