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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소로가 사랑한 월든 호수 모습을 바꾼 지구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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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소로가 사랑한 월든 호수 모습을 바꾼 지구온난화

2019.04.30 13:05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의 전경이다. 둘레가 2.7km로 그리 크지 않은 호수이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 덕분에 지역 명소가 됐다. 위키피디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수의 전경이다. 둘레가 2.7km로 그리 크지 않은 호수이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 덕분에 지역 명소가 됐다. 위키피디아

어떤 꽃은 오늘처럼 따뜻하다면 내일 필 테지만 날씨가 추우면 일주일 이상 멈출 것이다. 봄은 그렇게 앞으로 갔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꾸준히 나가면서도 봄의 추는 좌우로 흔들거린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야생화 일기’에서

 

앞으로 미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동부에 가게 된다면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수다. 

 

1817년 미국 콩코드에서 태어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귀향해 프리랜서로 잡일(강의, 목공, 석공)을 하면서 산책과 관찰, 사색, 독서, 글쓰기의 삶을 살았다. 20대 후반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1845년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홀로 머물렀다. 이때의 삶을 기록한 책 ‘월든’(1854)은 자본주의의 반(反)생태 반환경 질주에 환멸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위안과 함께 삶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대를 한참 앞선 책이다.

 

소로는 자연을 단순히 사랑했을 뿐 아니라 세밀하게 관찰해 일기에 기록했다. 특히 식물에 관심이 많아 야생화와 나무의 꽃피는 시기와 잎이 나는 시기를 꼼꼼히 적었다. 소로는 훗날 이 자료를 정리해 책을 쓸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만 45세 생일을 두 달여 앞둔 1862년 5월 6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제프 위스너는 소로의 일기에서 식물 관찰에 대한 부분을 발췌해 2016년 ‘소로의 야생화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고 2017년 한글판이 나왔다. 
 
7년 동안 야생화 개화일 기록

 

미국 보스턴대의 식물학자 리처드 프리맥 교수는 콩코드의 식물을 관찰해 얻은 데이터를 160년 전 소로의 데이터와 비교해 지구온난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소로의 청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프리맥 교수. Abraham Miller-Rushing 제공
미국 보스턴대의 식물학자 리처드 프리맥 교수는 콩코드의 식물을 관찰해 얻은 데이터를 160년 전 소로의 데이터와 비교해 지구온난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소로의 청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프리맥 교수. Abraham Miller-Rushing 제공

콩코드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보스턴대의 식물학자 리처드 프리맥 교수는 21세기의 소로다. 그는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시민 과학자들)과 함께 2004년부터 콩코드의 식물의 개화시기와 첫 잎이 나는 시기, 벌과 나비가 등장하는 시기, 철새가 오는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160년 전 소로의 기록(1852~1858년)과 비교하기 위해서다. 지구온난화로 이 기간 동안 콩코드의 봄철 평균기온이 무려 3도나 올랐고 식물들이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맥 교수와 동료들은 2012년 국제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온난화가 콩코드 동식물의 계절학에 꽤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였다. 계절학(phenology)은 개화 시기처럼 ‘생물적 사건의 타이밍’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봄이 빨라지면서 개화 시기나 벌이나 나비의 등장 시기도 꽤 빨라졌지만 철새가 돌아오는 시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결국 철새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동안 애벌레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벌이나 나비는 새에게 먹힐 위험성이 낮아져 개체수가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상호작용하는 생물 사이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도에 차이가 나는 현상을 ‘계절불일치(phenological mismatch)’라고 부른다. 

 

소로가 활약하던 시기 콩코드의 야생화 가운데 거의 4분의 1이 자취를 감췄고 4분의 1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흥미롭게도 이 역시 계절불일치와 관련이 있다. 봄이 빨라진 것과 맞춰 개화 시기가 빨라진 블루베리류 같은 종들은 잘 적응했으나 그렇지 못한 난류와 백합류 같은 종들은 고전했다. 외래종으로 기후변화에 빠르게 대응한 털부처꽃은 번성했다.

 

소로(1852~1858)와 그의 후계자 에드워드 호어가 식물을 관찰하던 때(1878, 1888~1902년)와 2000년대 프리맥 교수와 동료들이 활동하던 때(2004~2006, 2008~2012)의 콩코드의 평균 봄 기온(가로축)과 평균 개화일(세로축)을 나타낸 그래프다. 소로가 활약할 때 봄의 평균 기온은 5.5도였고 평균 개화일은 5월 15일이었지만 2000년대 평균은 각각 8.8도와 5월 4일로 바뀌었다. 아래는 콩코드에 자생하는 식물의 꽃으로 왼쪽부터 캐나다채진목, 동의나물, 분홍개불알꽃, 캐나다진달래(학명 Rhododendron canadense), 세르눔연영초, 블루베리다. ′플로스 원′ 제공
소로(1852~1858)와 그의 후계자 에드워드 호어가 식물을 관찰하던 때(1878, 1888~1902년)와 2000년대 프리맥 교수와 동료들이 활동하던 때(2004~2006, 2008~2012)의 콩코드의 평균 봄 기온(가로축)과 평균 개화일(세로축)을 나타낸 그래프다. 소로가 활약할 때 봄의 평균 기온은 5.5도였고 평균 개화일은 5월 15일이었지만 2000년대 평균은 각각 8.8도와 5월 4일로 바뀌었다. 아래는 콩코드에 자생하는 식물의 꽃으로 왼쪽부터 캐나다채진목, 동의나물, 분홍개불알꽃, 캐나다진달래(학명 Rhododendron canadense), 세르눔연영초, 블루베리다. '플로스 원' 제공

나뭇잎 나오는 시기도 영향 미쳐

 

국제학술지 ‘생태학 레터스’ 4월호에는 프리맥 교수팀과 미국 카네기자연사박물관의 식물학자들의 공동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콩코드의 야생화가 꽤 타격을 받은 데는 나무와의 계절불일치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숲에 사는 야생화는 나무가 낙엽수일 때 종 다양성이 가장 크다. 봄이 돼도 아직 나뭇잎이 나오지 않아 땅까지 햇빛이 충분히 도달할 때 꽃을 피우고 열심히 광합성을 해 씨앗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 나뭇잎이 돋아 커지면서 그늘이 드리우면 풀 죽어 지내다 일찌감치 생을 마치기도 한다. 이런 전략을 쓰는 야생화를 ‘봄살이식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소로의 기록과 오늘날 기록을 비교한 결과 콩코드의 야생화 14종의 첫 잎이 나오는 시기가 평균 5.9일 빨라진 반면 그 위에 있는 나무 15종은 평균 12.9일 빨라졌다. 철새에 비하면 야생화도 꽤 대응을 잘 한 셈인데 나무가 한 수 위라는 말이다. 

 

봄이 와서 야생화가 잠을 깨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워 광합성을 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는 기간이 일주일이나 줄어든 결과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를 고정한 양도 10~48%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콩코드 야생화는 낙엽수와 계절불일치로 지구온난화에 꽤 타격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난류나 백합류처럼 기후변화에 둔감한 종들은 더 일찌감치 나무 그늘에 가려져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두 식물군은 지구온난화에 다른 속도로 반응할까. 어차피 봄이 빨라지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이는 계절의 변화를 인식하는 신호체계가 식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 공전에 따른 낮 길이의 변화(광주기)와 온도 변화가 주된 신호임에도 야생화는 땅에 가까이 있다 보니 눈이 녹는 것과 토양 온도에 더 민감하다. 그런데 이 변화가 공기의 온도 변화보다 폭이 적었다. 

 

지난 160년 사이 지구온난화로 콩코드에 자생하는 낙엽수의 첫 잎이 나오는 시기가 야생화 개화 시기보다 평균 일주일 더 많이 당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계절불일치로 야생화가 꽤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란디덴타타포플러의 첫 잎이 나오는 때의 모습이다. Richard Primack 제공
지난 160년 사이 지구온난화로 콩코드에 자생하는 낙엽수의 첫 잎이 나오는 시기가 야생화 개화 시기보다 평균 일주일 더 많이 당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계절불일치로 야생화가 꽤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란디덴타타포플러의 첫 잎이 나오는 때의 모습이다. Richard Primack 제공

먹이 많을 때 새끼 길러야

 

계절불일치는 생태계에서 널리 관찰되는 현상으로 1969년 영국의 어류학자 데이비드 쿠싱이 제안한 ‘일치·불일치 가설(match/mismatch hypothesis)’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쿠싱은 대구 치어가 섭식활동을 하는 시기와 먹이로 삼는 플랑크톤의 번성 시기가 일치하면 치어의 생존율이 높지만 일치하지 않으면 낮다는 걸 발견했다. 예기치 못한 해양 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생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되면서 콩코드의 야생화처럼 계절불일치로 위기를 겪는 종들이 나오고 있다. 다른 예로 꽃이 벌처럼 생긴 난(early spider orchid)이 있다. 이 난을 암컷으로 착각해 짝짓기를 하려다가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어리석은 수벌이 딱 한 종(학명 Andrena nigroaenea) 있다. 

 

원래는 수벌이 나올 무렵 꽃이 피기 때문에 속여먹을 수가 있는데 지구온난화로 벌의 등장 시기가 상당히 빨라지면서 암벌이 꽃보다 먼저 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계절불일치). 진짜 암벌과 일을 치르느라 지친 수벌이 난의 꽃을 외면하면서 수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와 플랑크톤의 육지 버전도 있다. 네덜란드의 박새는 지구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알을 낳는 시기에 변화가 없다. 그런데 먹이인 애벌레는 역시 그 먹이인 나뭇잎이 나는 시기가 빨라짐에 따라 23년 사이 성장 일정이 9일이나 빨라졌다. 그 결과 알에서 부화한 새 새끼들이 한창 먹을 때 애벌레는 이미 고치를 만들어 나방으로 변신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결국 먹을 게 부족해져 살아남는 새끼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박새는 왜 기후변화에 대응해 산란 시기를 앞당기지 못한 걸까. 먼저 박새가 알을 낳는 시기와 새끼를 키우는 시기에 먹이를 얻기 위해 주로 찾는 나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알을 낳을 때 찾는 낙엽송과 자작나무는 지구온난화에 둔감한 반면 새끼를 키울 때 주로 찾는 참나무는 민감하다. 참나무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의 등장 시기도 빨라진다는 말이다. 봄의 온도 상승 폭이 알을 낳는 시기인 4월 15일 이후에 더 크다는 것도 이유다. 애벌레의 생물량이 가장 많을 때인 5월에 평균기온이 더 많이 올랐다.

 

다만 박새도 손(날개) 놓고 있는 건 아니어서 23년 사이 첫 알을 낳은 날과 알이 부화한 날의 차이가 이틀 줄었다. 박새는 첫 알을 낳은 뒤 며칠에 걸쳐 알을 십여 개 더 낳은 뒤 품기 시작하는데, 그 기간이 짧아졌다는 말이다.

 

생물들의 적응력 생각보다 강해

 

지구온난화가 가속된다면, 계절불일치로 인해 위기를 맞는 종들이 늘어나는 등 문제가 심화될 것이다. 픽사베이
지구온난화가 가속된다면, 계절불일치로 인해 위기를 맞는 종들이 늘어나는 등 문제가 심화될 것이다. 픽사베이

계절불일치로 고생하는 생물들을 보고한 논문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만 놀랍게도 생물 대다수는 계절불일치의 영향을 예상보다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물론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미미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 ‘생태학, 진화, 계통분류학 연간 리뷰’에 실린 논문에서 계절불일치 분야의 대가인 독일 뮌헨대의 수전 레너 교수는 “온대지역과 극지방의 동식물이 보이는 계절적 변화를 생각하면 계절불일치의 명확한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이 좀 놀랍게 보일 수 있다”며 “그러나 생물종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과 진화를 고려하면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먼저 개체 사이의 유전적 차이다. 계절불일치가 덜 일어나는 유전형이 선택돼 번성할 수 있기 때문에(소진화) 처음에 예측했던 것보다 타격이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개체는 경쟁이 덜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손을 봐 줄어든 수를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다. 한편 식물과 수분 곤충처럼 의존 관계에 있는 종들 대다수도 특정 파트너를 고집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꿩 대신 닭’ 전략으로 위기를 넘긴다.

 

그럼에도 계절불일치는 이번 야생화 이산화탄소 고정량 감소 논문에서 볼 수 있듯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여러 영역에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된다면 계절불일치로 위기를 맞는 종들도 늘어날 것이다.

 

‘소로의 야생화 일기’에는 콩코드 식물 역사의 권위자인 레이 안젤로의 ‘식물학자 소로에 대하여’라는 글이 함께 실려있다. 이 글에서 안젤로는 소로가 얼마나 야생화 관찰에 몰두했는가를 아래의 일기 구절을 인용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모은 자료가 160년 뒤 나온 논문에 쓰일 걸 소로는 상상이나 했을까.

 

“스스로 항상 아래쪽만 쳐다보고 시선을 꽃에만 가두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구름을 관찰해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아. 구름 연구도 그에 못지않게 나쁜 생각이다.” (1852년 9월 13일자 일기에서)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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