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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자의 생생임신체험記] 생애 첫 임신, 화학적 유산으로 마무리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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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4일 09:00 프린트하기

임신 테스트기. 임신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hCG)를 검출한다. 대조선과 시험선 모두에 빨간 줄이 나타나야 임신이다.  플리커 /TipsTimesAdmin 제공
임신 테스트기. 임신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hCG)를 검출한다. 대조선과 시험선 모두에 빨간 줄이 나타나야 임신이다. 플리커 /TipsTimesAdmin 제공

《직접 겪은 임신은 마냥 신비롭거나 행복한 경험은 아니었다. 내 몸은 하루하루 당황스러울 정도로 변했지만, 임신에 관련된 책은 대부분 태아의 성장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의사조차 “정상 증상이며, 출산만이 해결책이다”라고 말했다. 임신부들의 경험은 그저 개인적인 경험으로 치부된다. 내 딸도 나처럼 아이를 갖는 기쁨을 누렸으면 하면서도, 내가 지나온 어려움은 겪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자면 임신과 출산, 그리고 그 주체인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지금보다는 더 한걸음 나아가야 한다. 딸이 혹 비(非)출산, 비혼을 선택한다면 임산부라는 존재를 이해하며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는 사회 구성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산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모든 게 ‘정상’이라는 내 몸은 왜 이렇게 아픈지, 과학자들은 어떤 연구를 했는지 알아봤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회사 화장실엔 마침 아무도 없었다. 적막한 그곳에서 놀란 심장이 쿵쿵거려 귓가를 울렸다. 피였다. 새빨간 피였다. 만약 갈색 피였다면 배아가 자궁벽을 뚫고 안전하게 착상할 때 찔끔 혈관을 빠져 나와 며칠간 자궁 안이나 질 벽 어딘가에 고여 산화됐다가 흘러나온 ‘착상혈’이라고 봐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신선한’ 빨간 피는 지금 내 몸 안에서 실시간으로 출혈이 일어나고 있음을 뜻했다. 그것도 많이, 콸콸. 유산이었다.

 

●야호,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이 검출됐다


임신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여성들을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임신 테스트기다. 흔히 ‘임테기’라고 부른다. 길쭉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인간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hCGㄹ·human chorionic gonadotropin)’을 검출하는 시험지가 들어 있다. 이 호르몬은 수정란이 착상한 뒤 태반에서 나오는데, 황체(난소에서 성숙한 난자를 배란한 뒤 남은 여포가 변한 것)가 계속 성호르몬을 생산하도록 해 임신이 유지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임테기의 한쪽 끝 뚜껑을 열면 소변을 묻히는 솜 뭉치가 달려 있고 케이스 중앙에 투명한 창이 나 있다. 일단 소변이 흡수되면서 빨간 선이 보이기 시작해야 테스트기가 불량이 아니며 소변도 제대로 묻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빨간 시험선마저 나타난다면, 즉 두 줄이 뜬다면 임신이다.

 

임테기는 항원 항체 반응을 이용한다. 우리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몸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때 세균을 항원, 면역 물질을 항체라고 한다. 모양이 꼭 들어맞는 항원과 항체가 만나면 세균은 병원성을 잃는다.  임신 테스터 내부에는 색깔을 나타내는 나노 입자가 부착된 ‘hCG 항체’가 들어 있다. 이 항체는 소변을 흡수시키면 소변과 함께 흘러 들어간다. 대조선에는 ‘hCG 항체의 항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임신이든 아니든 hCG 항체가 붙들려 빨간 선이 나타난다. 시험선에는 hCG 항체가 있다. 만약 임신이라면 항체와 한번 반응한 hCG가 여기에 붙들리면서 빨간 선이 나타난다.
 

임신 테스트기의 원리. 항원 항체 반응을 이용한다. 위가 임신일 때, 아래가 임신이 아닐 때다. 우아영 제공
임신 테스트기의 원리. 항원 항체 반응을 이용한다. 위가 임신일 때, 아래가 임신이 아닐 때다. 우아영 제공

몇 달 동안 임테기 몇 박스를 동낸 어느 날 두 줄이 떴다. 여성 커뮤니티에는 임테기로 임신을 확인해도 바로 병원에 가지 말라는 조언이 넘쳐난다. 생리 예정일에 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했다면 임신 4주 차인 셈인데 그땐 초음파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최소 2주는 더 기다렸다가 가야 아기집과, 장차 배아가 먹고 자랄 영양분인 난황을 보고 의사가 정상 임신으로 확인해 준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못 참고 한 주 만에 병원에 갔다. 


“아직 아기집은 안 보이네요. 테스트기로는 확인하셨다고 했죠? 오늘 혈액 검사 하고 가세요.”
피를 뽑고 집에 오는 길은 허탈하고 외로웠다. 힘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금요일 오후였다.

 

●화학적 유산이 이토록 흔하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월요일 아침에 담당의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혈중 hCG 농도를 검사했는데, 임신 맞습니다. 축하드려요.”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한 뒤 화장실에 갔는데,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피가 똑똑 떨어져 변기 안을 물들이고 있었다. 병원으로 달렸다.


“유체 흐름 보이세요? 출혈이 지속되고 있는 겁니다. 초기 유산이 진행되고 있어요.” 진득한 기름에 새카만 쇳가루를 섞어 흔들면 저런 그림일까. 초음파 화면 속 내 자궁엔 작은 강이 여럿 흐르고 있었다. 

 

“임신테스트기나 혈액 검사, 그러니까 화학적인 방법으로만 임신을 확인한 경우를 화학적 임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 임신이 종료되면 화학적 유산이라고 하고요.”


여성 커뮤니티에서 ‘화유’라고 부르던 게 생각이 났다. hCG는 태반에서 일찍부터 나오는 호르몬이라 설사 배아가 더 발달하지 못해도 임테기와 혈액검사에서는 검출된다. 화학적 유산의 학술용어를 찾아보니 생화학적 임신 소실(biochemical pregnancy loss), 영양막 세포 퇴행(trophoblast in regression), 전임상 배아 손실(preclinical embryo loss)로 연구자마다 서로 다르게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공통적으로 초음파 상으로 아기집이 관찰되기 전에 임신이 종료된 것을 뜻했다. 담당의사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임신 테스트기와 산부인과에 대한 접근성이 무척 좋아요. 상당수가 (곧 종료되고 말) 화학적 임신을 일찌감치 알아차리죠. 기본적으로 무척 흔하기도 해서 화학적 유산은 유산으로 집계하지 않습니다. 그것까지 치면 유산율이 너무 높아져서요.”


얼마나 흔한 현상일까. 일부 논문에 따르면, 첫 임신의 50~60%가 유산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신의 25%는 여성이 임신 초기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끝난다 . 임신을 시도한 건강한 여성 221명의 소변을 매일 채취해 hCG 농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198건의 임신이 확인됐고 이 중 22%가 임상적 임신이 되기 전에 끝났다 . 

 

●정신적, 신체적으로 너무 괴로웠다

 

이렇게 보편적인 현상인데 임신 전에는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의사의 다음 말은 더 의아했다. 

 

“(임테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보통은 화학적 유산을 모르고 지나칩니다.”


출혈이 시작된 날, 12살에 초경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생리통이 밤새 이어졌다. 뜬눈으로 밤을 꼴딱 새웠고 다음날 회사에 가지 못했다. 이걸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고? 게다가 생리혈에 손바닥만 한 덩어리가 함께 나왔다. 생리라는 게 두꺼워진 자궁 내막이 헐리는 현상이다 보니 원래 피부 조직 같은 덩어리가 배출되는 일이 잦다. 흔히 ‘굴 낳는 느낌’이라고 한다. 근데 이건 굴 수준이 아니었다. 이걸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고? 

 

나만 그런가 싶어 여성 커뮤니티에 질문을 남겼다. 이틀 동안 못 일어났다는 사람, 생리할 때보다 더 아팠다는 사람,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파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는 사람, 엄청 큰 덩어리를 전부 쏟아냈다는 사람 등 경험이 다 달랐다(물론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의사는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주로 배아의 염색체 이상에 의한 거라고 본다”며 “그러니 환자분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의사가 고른 말과 목소리는 세상 다정다감했지만, 난 어느새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죄책감이 꼬리를 물었다. 

 

한 논문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 화학적 유산이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오히려 불임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다행인 일이라고.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는 여성을 추적 관찰한 결과 초기 유산을 겪어본 사람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보다 향후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았다는 보고도 있다 . 

 

하지만 그게 다일까. 임신만 잘 되면 끝일까. 너무 당연하게도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하는 기계가 아니라 숨쉬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현재의 임신 관리란 태아를 안전하게 키워 건강하게 출산시키는 게 최종 목표이고, 그 목표와 직결되지 않는 고통은 대개 목소리를 잃는다.

 

참고자료

-.arquharson RG et al. (2005) Updated and revised nomenclature for description of early pregnancy events. Hum Reprod 20(11), pp. 3008-3011.
https://www.ncbi.nlm.nih.gov/pubmed/16006453/ 
-John Jude Kweku Annan et al. (2013) Biochemical Pregnancy During Assisted Conception: A Little Bit Pregnant. J Clin Med Res. 5(4), pp. 269–274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712881/ 
-Wilcox AJ et al. (1998) Incidence of early loss of pregnancy. N Engl J Med. 319(4), pp. 189-94
https://www.ncbi.nlm.nih.gov/pubmed/3393170 
-Bates GW Jr et al. (2002) Early pregnancy loss in in vitro fertilization (IVF) is a positive predictor of subsequent IVF success. Fertil Steril. 77(2), pp. 337-41
https://www.ncbi.nlm.nih.gov/pubmed/11821093/ 

 

필자소개

우아영 뉴턴 역학에 빠져 기계공학을, 그중에서도 연료전지를 공부했다. 발화 원인을 과학으로 밝히는 소방관들의 노고를 담은 기사로 2017년 1월 한국과학기자협회 ‘이달의 과학기자상’을 받았다. 동아사이언스에서 5년 넘게 《과학동아》를 만들고, '과학 읽어주는 언니'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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