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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까지 넘보는 대륙의 힘 '유랑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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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까지 넘보는 대륙의 힘 '유랑지구'

2019.05.04 06:00
태양에서 멀어지며 얼어붙은 지구의 모습. 사람들은 영하 70도의 극한 기후를 피해 지하도시에서 살아간다
태양에서 멀어지며 얼어붙은 지구의 모습. 사람들은 영하 70도의 극한 기후를 피해 지하도시에서 살아간다

머지않은 미래에 태양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태양계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 이때 누군가가 아주 대담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바로 지구를 통째로 옮기자는 겁니다. 
4월 18일 국내 개봉한 중국 SF영화 ‘유랑지구(流浪地球)’는 ‘떠돌아다니는 지구’라는 꽤 흥미로운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장대한 스케일과 시각 효과로 중국과 북미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태양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별이라고 해도 수천 년에서 수만 년까지 걸릴 수 있으니,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우주선이 필요합니다. 우주선 안에서 생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주선 안에서 살면서 자손을 낳고 대를 이어가는 ‘세대 우주선’ 방식이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수십~수백 세대에 걸쳐 사회가 목적의식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가능하다고 해도 수십 억 명이나 되는 인류 전체를 실어 나르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가고 누구는 못 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우주선이 몇 대나 필요할까요? 그 많은 우주선을 다 만들 자원과 시간이 있을까요? 일부만 갈 수 있다면,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먼저 타려고 수작을 부리지 않을까요? 


그때 누군가가 지구를 통째로 옮기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지구에 엔진을 달아서 우주선처럼 만든 뒤 다른 별로 떠나자는 거죠. 실현만 된다면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고, 지구의 자원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람이 살 수 있는 외계행성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담하지만 혹할 만한 아이디어입니다.

 

지구의 소멸은 운명

 

여느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극중에는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등장한다. 영화 ′유랑지구′는 그 영웅이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여느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극중에는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등장한다. 영화 '유랑지구'는 그 영웅이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최근 개봉한 SF영화 ‘유랑지구’는 이런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SF작가 류츠신(劉慈欣)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었습니다. 류츠신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SF상인 ‘은하상’을 9번 받았으며, 2015년에는 국내에도 출간된 장편소설 ‘삼체’로 아시아인 최초로 ‘휴고상’을 받은 뛰어난 작가입니다.


영화는 류츠신의 원작 소설에서 지구를 옮긴다는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그 외의 이야기는 영화와 소설이 전혀 다릅니다. 


일단 공통적인 설정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양의 수소 핵융합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태양이 수소를 모두 소모하면 적색거성 단계에 진입합니다.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면 온도는 낮아지지만, 크기는 훨씬 커져서 지구를 집어삼킬 수도 있습니다. 유랑지구의 세계에서는 이 과정이 400년 동안 일어납니다. 


사실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태양은 계속해서 수소를 소모하고 있고, 언젠가 수소는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는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기까지 약 50억 년이 걸립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태양은 약 100억 년 동안 수소를 태우며 살 수 있습니다. 태양의 나이가 약 46억 년이니 아직은 적색거성이 되려면 한참 남았죠. 물론 그동안에도 조금씩 밝아지고 있기는 합니다. 1억 년마다 1% 정도 밝아진다고 하니, 몇 억 년쯤 뒤에는 지구가 사람이 살기에 너무 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를 옮기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지구 전역에 추진기 1만 개를 설치합니다. 영화에서는 돌과 흙을 실어 날라 연료로 쓰는 장면이 나옵니다. ‘중(重)원소 융합’이라는 원리가 슬쩍 지나가는데,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유랑지구의 배경이 된 미래에는 지각에 있는 무거운 원소를 이용한 핵융합 기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추진기와 함께 사람들이 살아갈 지하도시를 건설합니다.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지면 지표면이 얼어붙어 더 이상 지상에서는 살 수 없을 테니까요.

 

충돌 37시간 전, 목성을 탈출하라

 

새로운 태양을 찾아 유랑하던 지구는 어느날 목성과 충돌할 위기에 처한다. 목성과 가까이 끌려갈수록 목성의 조석력이 강해져 지구의 내부를 휘저어 놓는다.
새로운 태양을 찾아 유랑하던 지구는 어느날 목성과 충돌할 위기에 처한다. 목성과 가까이 끌려갈수록 목성의 조석력이 강해져 지구의 내부를 휘저어 놓는다.

추진기 설치가 끝나면, 먼저 적도 부근의 추진기를 이용해 지구의 자전을 멈춥니다. 지구가 계속 돌아가는 상태라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어렵겠죠. 추진기가 원하는 방향에 왔을 때만 작동시켜야 하니까요. 지구의 회전에 타이밍을 맞춰서 차례대로 추진기를 켰다 꺼야 할 겁니다. 영화에서는 그 대신 지구를 완전히 멈춰 놓고 방향을 잡아서 추진기를 작동시킵니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보입니다.


그러고도 태양계 탈출 속도에 도달하기 어려워 도중에 목성을 지나치며 속도를 얻습니다. 이는 자신보다 질량이 큰 천체의 중력을 이용해 가속하는 방식으로 ‘스윙바이’나 ‘슬링샷’ ‘중력보조’ 등으로 부릅니다. 요즘 거의 모든 우주 탐사선은 이 방식을 이용해 시간과 연료를 아낍니다. 


그런데 목성을 지날 때 계산을 잘못했는지, 지구가 목성에 끌려 들어가는 일이 생깁니다.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내용이죠. 이 정도는 영화 소개에도 나와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니겠죠? 


어떤 천체가 자신보다 크고 무거운 천체에 끌려 들어갈 때는 그냥 끌려 들어가지 않습니다. 1994년 목성에 충돌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을 봅시다. 목성의 중력에 붙잡힌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은 목성 주위에 점점 가까워지다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뒤 충돌했습니다. 목성의 조석력 때문에 산산이 부서졌죠.


큰 천체에 다가가는 작은 천체가 받는 조석력이 스스로 뭉치는 힘보다 커지면 부서집니다. 부서지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거리를 ‘로슈 한계’라고 합니다. 지구도 목성에 끌려 들어가면서 부서질 위기에 처합니다. 설령 부서지지 않더라도 목성의 조석력이 지구의 내부를 휘저어 놓을 테니 지진이나 화산 같은 각종 재해가 일어나 지하도시가 위태롭습니다.

 

적색왜성을 새로운 태양으로?

 

우주정가장, 행성추진기 등 다양한 우주기술이 등장한다. 이를 위해 1만 개가 넘는 촬영 소품과 배경, 세트가 제작됐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우주정가장, 행성추진기 등 다양한 우주기술이 등장한다. 이를 위해 1만 개가 넘는 촬영 소품과 배경, 세트가 제작됐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에서는 기발한 방법으로 이 위기를 극복합니다. 어떤 방법인지 궁금하신 분은 직접 영화를 보시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지구가 향하는 별 이야기입니다. 우주는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별로 가야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알파 센타우리계입니다. 태양보다 약간 큰 알파 센타우리A, 태양보다 약간 작은 알파 센타우리B, 그리고 적색왜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이뤄진 삼중성계입니다. 알파 센타우리 A와 B는 서로 아주 가깝고,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그 둘과 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지구에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그 거리는 약 4.2광년입니다. 


지구는 바로 이 별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알파 센타우리계라고 모호하게 나오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프록시마 센타우리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적색왜성이거든요. 밝기가 태양의 0.17%밖에 안 되는 데다가, 적외선이 많이 나와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그보다 훨씬 더 적습니다. 


그러면 지구를 별에 가까운 궤도에 놓아야 하는데, 조석 고정 현상 때문에 한쪽 면만 별을 향하게 될 겁니다. 달이 지구에 한쪽 면만 보여주는 것처럼요. 한쪽은 영원히 낮이라 뜨겁고 반대쪽은 영원히 밤이라 추우니,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적색왜성은 광도 변화가 심하고 표면에서 폭발이 자주 일어납니다. 


2016년에는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 행성이 발견됐습니다. 프록시마 센타우리b라는 이름이 붙은 이 행성은 지구보다 약간 크며, 거주 가능한 영역에 있습니다. 지구가 들어가야 할 궤도를 미리 차지하고 있는 셈이죠. 원작 소설은 2000년에 나왔으니 작가는 이 행성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차라리 조금 더 멀지만, 알파 센타우리A나 B로 가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이 두 별은 태양과 좀 더 비슷하니까요. 이 두 별은 서로 가까우니 지구는 이 두 별 주위를 공전해야 할 겁니다. 여기에 자리 잡는다면 미래의 인류는 태양 두 개가 나란히 뜨는 모습을 볼 수 있겠죠.

 

 

목성이 보여주는 장관

 

목성에 다가가는 지구. 미국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은 정교한 CG로 목성의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목성에 다가가는 지구. 미국 할리우드 영화 못지 않은 정교한 CG로 목성의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와 소설은 같은 설정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둘 다 제각기 장점이 있습니다. 영화는 가족애와 희생,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솔직히 아주 새롭지는 않습니다. 미국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많이 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매번 미국인이 세계를 구하는 영화만 보다가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어도 외모가 비슷한 동양인이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를 보니 색다르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블록버스터 영화답게 화려한 볼거리가 많습니다. 태양에서 멀어져 얼어붙은 세상, 플라스마를 내뿜으며 우주를 날아가는 지구, 그리고 하늘을 가득 채운 목성도요. 영화에서 거대한 목성의 위엄을 이렇게 강렬하게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요? 


반면, 소설은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더 자세히 파고듭니다.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짐에 따라 사회의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과거에 정상으로 간주되던 일이 더는 정상 범주에 들지 않게 되고, 또 그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자연스럽게 갈등도 생기죠. 소설에서는 이런 게 장애물이 됩니다. 영화에서는 자연이 극복해야 할 역경이라면, 소설에서는 사람 사이의 갈등이 그렇습니다.


영화와 소설 모두 충분히 권할 만한 SF입니다. 영미권 SF소설과 할리우드의 SF영화에만 익숙하다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겁니다. 다양성이란 좋은 것이죠. 

 

필진소개

고호관.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고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SF와 과학에 대한 글을 쓰거나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낙원의 샘》 《링월드》 《신의 망치》가 있고 최근 달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룬 책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출간했다. hokwan.ko@gmail.com

 

관련기사 : 과학동아 2019년 5월호, 대륙스케일 자랑하는 중국판 SF ‘유랑지구’http://m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905N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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