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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비자에겐 ‘측정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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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비자에겐 ‘측정할 권리'가 있다

2019.05.07 14:14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된 후 설치된 방사능 측정소에서 집에서 가지고 온 제품들의 라돈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침대 매트리스에서 '라돈'이 검출된 후 설치된 방사능 측정소에서 집에서 가지고 온 제품들의 라돈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5월 한국 침대회사인 대진침대 제품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나온다는 보도가 나온 지 1년이 흘렀다. 원자력발전소나 방사성동위원소 취급 장소가 아닌 집안 가구에서 연간 허용치를 초과하는 방사선이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전국의 우체국 집배원들까지 회수에 나섰던 방사능 침대 공포는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라돈 침대 사태는 소비자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한 간이 라돈 검출기에서 촉발됐다. 당시 한 소비자가 우연히 검출기를 침대 위에 올려놨다가 허용 기준인 ℓ당 4피코큐리(pCi)를 훨씬 뛰어넘어 검출한계를 넘어선 99pCi를 기록한 것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방사능 침대 존재가 알려진 것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닮은 원통 모양의 간이 검출기 ‘라돈아이’는 벤처회사 ‘에프티랩’이 개발했다. 원래 고정밀 계측기계를 만들다가 우연한 계기로 라돈아이를 개발했다. 라돈 침대 사태 1년을 앞두고 지난달 3일 경기도 수원 영통구 에프티랩 기술연구소에서 고재준 대표와 김영권 부대표를 만났다.

 

에프티랩은 고 대표가 광운대 전자물리학과 연구교수로 일하던 2001년 같은 과에서 함께 플라스마를 연구하던 김 부대표와 의기투합하며 설립한 회사다. 처음에는 TV용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과 스마트폰의 터치패널 품질 검사용 장비를 개발하고 생산했다.  에프티랩은 기기를 개발하지만 판매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개발된 제품의 판매는 철저히 총판에 맡긴다. 고 대표는 “연구실 밖에서 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라며 “가급적 모든 시간을 연구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났다. 고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면서 생활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들었다”며 “어차피 무언가를 측정하는 장비를 만드는 것은 회사 전공이라고 생각해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2012년 스마트폰의 이어폰 단자에 꽂아 사용하는 자외선 측정기와 전자파 측정기, 방사능 측정용 가이거 계수기를 연달아 개발했다. 고 대표는 “일찌감치 스마트폰이 널리 쓰일 것을 직감하고 휴대용 스마트 센서 시장이 커질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이들은 측정기기 사업에 착수했다. 

 

고재준 에프티랩 대표와 김영권 부대표. 과학동아 제공
고재준 에프티랩 대표와 김영권 부대표. 과학동아 제공

간이 라돈 검출기 개발에 뛰어든 건 2년 뒤인 2014년쯤이다. 환경 방사선 전문가인 조승연 연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연세대 라돈안전센터장)와 이재성 실내라돈저감협회장이 에프티랩의 방사능 측정기를 보고 회사로 찾아온 것이다. 조 교수는 라돈 분야만 20년간 연구하며 라돈 측정기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상용화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가이거 계수기를 개발한 경험이 전부이던 고 대표에게 라돈은 낯선 물질이었다. 라돈은 흙에서도 나오는 자연방사성 물질이지만 몸에 해를 끼치는 유독 물질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라돈을 흡연 다음으로 폐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 라돈은 호흡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와 피폭을 일으킨다. 하지만 색깔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아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고 대표는 “라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시장 조사를 했다”며 “그때까지만 해도 실시간으로 손쉽게 측정할 장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쓰는 계측기들은 실시간 측정은 가능하지만 크고 가격도 1000만 원이 넘는 고가이고 부피도 컸다. 실시간으로 라돈을 측정하는 검출기도 전무했다. 기존 측정기기 업체들은 라돈을 한번 마신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한 번 측정하는 데 최소 48시간이 걸리는 저가 검출기를 시장에 내놓고 있었다. 고 대표는 “한국 사람 중 하루 이틀 있다가 경고가 울리는 검출기를 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프티랩 연구원이 라돈아이를 테스트 하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에프티랩 연구원이 라돈아이를 테스트 하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라돈은 비활성기체로 화학적 반응성이 없고 농도도 극히 낮아 검출하기 어렵다. 라돈 검출에는 방사성 붕괴를 활용한 간접 측정방식을 쓴다. 자연에서 라돈은 알파 붕괴를 거치면서 폴로늄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헬륨 원자핵과 같은 알파 입자를 방출한다. 이것이 방사능이다.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은 반도체 방식, 신틸레이션 방식, 이온 챔버 방식 등 세 가지로 나뉜다. 반도체의 전리작용을 이용하는 반도체 방식과 고에너지 방사선 입자가 전자를 들뜨게 해 발생하는 빛을 포착하는 신틸레이션 방식은 핵종 분석이 가능해 라돈과 토론을 구분한다. 하지만 측정 장비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장치가 필요하고 습도에 민감한데다 소재 가격이 비싸 간이 검출기에는 불리하다.

 

라돈아이는 이온 챔버 방식을 택했다. 알파 입자는 에너지가 큰 입자로 공기와 충돌하며 이온을 만든다. 이를 방사선 전리작용이라 한다. 이온 챔버 방식은 라돈이 방출하는 알파 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한다. 챔버의 바깥 벽과 속의 탐침 사이에 전기장을 걸고, 알파 입자가 만든 이온을 탐침으로 측정해 전기 신호를 받는다. 음이온을 방출한다는 광고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때 발생하는 횟수로 방사능의 농도를 유추한다. 알파 입자가 2분에 1번 나오면 2pCi다.

 

라돈 측정기인 라돈 아이 제품의 모습이다. 원통 모양으로 내부에는 이온화 챔버를 사용한 라돈 가스 측정 센서가 들어 있다. 측정 시간은 10분 계측기 감도는 전문가 수준이다. 에프티랩 제공
라돈 측정기인 라돈 아이 제품의 모습이다. 원통 모양으로 내부에는 이온화 챔버를 사용한 라돈 가스 측정 센서가 들어 있다. 측정 시간은 10분 계측기 감도는 전문가 수준이다. 에프티랩 제공

알파 입자는 토론의 붕괴 과정에서도 나오기 때문에 라돈과 토론을 구별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알파 입자 하나하나를 측정할 수 있어 실시간 측정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이온 챔버 방식은 반도체 방식 비해 단순한 구조라 가격도 싸다. 자연 순환하는 대기를 활용하는 방식이라 별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고 습도 영향도 적고 3차원 구조라 실제 환경에 좀 더 가깝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1년간의 개발 기간동안 이온 챔버를 100번 뜯고, 기판은 40여 번 바꿔가며 라돈아이를 개발했다. 플라스마를 연구하며 배운 이론이 이온 챔버에서 쓰이는 이론과 유사해 연구기간은 상당히 빨랐다. 탐침을 잡아주는 기술인 가드링을 활용해 잡음을 줄이는 방법도 개발했다. 고 대표는 “가드링에서 나오는 잡음을 분리해 기존 신호의 잡음과 상쇄하도록 회로를 조정해 선명한 신호를 얻었다”고 말했다.

 

1년간의 개발 끝에 측정시간 10분에 전문가들이 쓰는 계측기 수준의 감도를 갖춘 간이 측정기가 나왔다. 내부 구조가 보이지 않도록 깡통만 씌운 첫 시제품을 들고 2015년 9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국제라돈학회에 참가했다. 고 대표는 “미국은 1층 단독주택이 많고, 지하실 문화도 있어 토양에서 나오는 라돈에 민감한 나라다 보니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은 30개 주 정부에서 집을 사고팔 때 라돈 농도를 제시하도록 하는 등 라돈 관리에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도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 관리법이 제정돼 라돈 농도를 관리하지만 엄밀하게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  

 

라돈 침대 문제 발굴 일등공신

 

미국의 경우 주택 매매시 라돈 농도를 제시하게 하는 등 라돈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라돈 측정기도 처음에는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 2015년 '국제라돈학회'에서 큰 관심을 받은 에프티랩의 라돈아이. 고재준 대표가 라돈아이 부스에서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에프티랩 제공
미국의 경우 주택 매매시 라돈 농도를 제시하게 하는 등 라돈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라돈 측정기도 처음에는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 2015년 '국제라돈학회'에서 큰 관심을 받은 에프티랩의 라돈아이. 고재준 대표가 라돈아이 부스에서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에프티랩 제공

지난해 5월 3일 음이온을 내기 위해 방사성 물질 ‘모나자이트’를 바른 침대에서 라돈이 방출된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정부는 부라부랴 조사에 들어갔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같은 달 10일 첫 조사 결과에서 연간 피폭 방사선량이 0.15밀리시버트(mSv)로 안전기준인 1mSv보다 낮다고 발표했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원안위는 당시 전문가용 라돈 계측기 ‘라드세븐’과 라돈아이 성능을 비교하는 자료도 내놨다. 라드세븐의 경우 라돈(Rn-222)과 라돈 동위원소인 토론(Rn-220)을 구분하지만 라돈아이는 구별하지 못해 실제보다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라돈아이 성능에 회의적인 사람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곧 정부의 1차 발표는 뒤집혔다. 소비자들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 바닥에서 50㎝ 떨어진 위치에선 이상이 없다는 원안위의 측정방식에 문제가 있을뿐더러 토론도 내부 피폭될 경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라돈침대 피해자 모임 카페는 직접 측정 데이터를  만들었다. 침대 커버 이불은 빼고 매트리스만 남겨 놓은 채 라돈아이로 30분, 1시간 단위로 측정해 데이터를 공유하자는 움직임까지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너도나도 침대 제품명과 구매 일시, 라돈 농도, 측정에 이용한 장비명을 카페에 올렸다. 발표 후 3일 만에 428개 침대의 데이터가 모였다. 이 중 약 78%에 해당하는 334개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나왔다는 데이터가 모였다.

 

원안위는 결국 5월 15일, 소비자들보다 이틀 늦게 대진침대에서 안전기준의 최대 9배가 넘는 방사선이 검출됐다며 한발 물러섰다. 소비자들은 그 이후로도 라돈아이를 들고 다른 생활제품의 방사선 검출에 나섰다. 라텍스, 온수매트 등 다양한 생활제품에서 라돈이 검출됐다.

 

원안위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을 통해 라돈아이 2000대를 사들였다. 김 부대표는 “당시는 라돈이 검출되는 침대가 그렇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파급력이 큰 사태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사업을 접으려 하던 터라 당연히 생산을 늘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라돈침대 사태가 터진 이후 라돈아이 품귀현상이 벌어진 이유다. 고 대표와 김 부대표는 방사능 공포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언론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대진침대 사태 당시 회수된 매트리스가 대진침대 본사에 쌓여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대진침대 사태 당시 회수된 매트리스가 대진침대 본사에 쌓여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원래 라돈아이는 실내 대기질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됐다. 일반인은 잘 몰랐지만 정부는 2011년부터 실내주택의 라돈 농도를 점검하며 라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자연 토양에서 흔히 발생하는 라돈은 화강암이 많은 지역에서 많이 검출된다. 산이 많은 한국의 라돈 농도 지도를 보면 산맥 줄기와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라돈은 어디서나 나오기 때문에 환기가 중요하다. 고 대표는 회사 앞에서 퍼온 흙을 담아 밀봉한 후 라돈아이로 측정한 수치를 보여줬다. 라돈아이는 실내 허용치의 6배에 해당하는 ℓ당 24pCi를 가리켰다. 고 대표는 “동네 마당에서 가져온 흙도 밀폐한 뒤 측정하면 이렇게 라돈 농도가 올라간다”며 “실내 공기를 자주 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프티랩은 현재 라돈아이의 핵심 기술이였던 이온화 챔버를 더 저렴하고 작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 대표는 “라돈 센서를 미세먼지 측정기 등이 포함된 공기질 측정 장치에 센서로 추가하는 방식을 목표로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며 “실내공기질(IAQ)를 관리하는 공기 측정기가 라돈 센서의 미래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라돈넷’이라는 라돈 실시간 감시 모니터링 시스템도 개발했다. 라돈아이를 통해 얻은 라돈 농도 정보를 공유하기로 동의한 소비자의 라돈 농도 정보를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고 대표는 “단순 센서회사를 넘어 데이터 모니터링에도 뛰어들 예정”이라며 “주택 중 10%는 라돈 저감장치를 달아야 하는 상황인 미국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미국 법인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이번 라돈사태가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해 소비자의 적극적인 측정 활동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라돈사태를 전후로 소비자들은 자신들에게 알 권리뿐 아니라 측정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측정하고 인지하고 행동하는 문화가 한국에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라돈아이와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 등 소비자가 대응할 무기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고 대표는 “미세먼지를 비롯한 공기질 문제가 커지면서 공기질 센서들이 싸지고 데이터화되고 있다”며 “일부 국내 아파트단지에서는 하자를 확인하는 사전입주 기간 동안 라돈아이로 실내 라돈 농도를 점검하는 등 실내공기질을 확인하는 활동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향후 한국 주택시장도 미국처럼 판매자가 실내 공기질을 증명할 것이라 예측했다. 고 대표는 “미국은 집을 파는 사람이 집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한국도 아파트 홍보에 쾌적한 공기를 자랑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에프티랩은 최근 회사의 구호를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으로 바꿨다.

 

라돈아이 내부에는 에프티랩이 개발한 원통형 이온 챔퍼가 들어있다. 라돈아이를 실시간 휴대용 검출기로 만든 핵심 기술이다. 과학동아 제공
라돈아이 내부에는 에프티랩이 개발한 원통형 이온 챔퍼가 들어있다. 라돈아이를 실시간 휴대용 검출기로 만든 핵심 기술이다. 과학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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