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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생명력 질긴 A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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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08일 15:00 프린트하기

A형간염 바이러스는 강한 산성인 위산에서도 장기간 살아남을 정도로 생명력이 질기다. 최근 중국의 연구자들이 A형 간염 바이러스 구조를  분석해 약물을 찾아냈다. 게티이미지뱅크
A형간염 바이러스는 강한 산성인 위산에서도 장기간 살아남을 정도로 생명력이 질기다. 최근 중국의 연구자들이 A형 간염 바이러스 구조를 분석해 약물을 찾아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20년 동안 B형간염 바이러스와 C형간염 바이러스에 대응하느라 집중하는 사이 A형간염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인간 감염에 대한 이해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 학술지 ‘PLOS 생물학’에 실린 논문에서

 

에이즈나 결핵, 말라리아보다도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감염질환이 있다. 바로 간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간염보다 앞의 세 병을 훨씬 더 무서워한다. 그래서인지 간염은 ‘침묵의 역병’이라고 불린다. 

 

이런 인지 왜곡은 간염의 경우 대부분 감염원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간염 바이러스 6가지가 알려져 있는데, B형과 C형만 만성간염을 일으키고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간염으로 인한 사망 대다수가 감염 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비감염성 질병 같은 양상의 결과로 일어난다.

 

반면 최근 유행하고 있는 A형간염의 경우 급성 형태만 존재하고 간암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걸려도 대다수는 증세가 경미하고 회복 뒤에는 평생 면역성을 지녀 다시 감염되지 않는다. B형간염과 C형간염에 대처하기도 바쁜 보건 당국으로서는 A형간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가벼운 후진국 질병이 선진국에서 발생하면?

 

연도별로 1주일 단위로 A형 간염 환자 수를 나타낸 그래프다. 올해 넉 달 동안만 3671명이 신고돼 지난해 2436명을 훌쩍 뛰어넘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그래프(빨간색)를 보면 봄이 되면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제공
연도별로 1주일 단위로 A형 간염 환자 수를 나타낸 그래프다. 올해 넉 달 동안만 3671명이 신고돼 지난해 2436명을 훌쩍 뛰어넘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올해 그래프(빨간색)를 보면 봄이 되면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제공

사실 A형간염은 전형적인 후진국 질병이다. 위생 상태가 안 좋은 곳에서 음식이나 물을 통해 바이러스가 감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과 쓸개즙을 거쳐 대변과 함께 배출되고 대변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사람 몸으로 들어간다. 회충이나 요충 같은 기생충이 연상되는 패턴이다. 

우리나라 역시 필자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이 어릴 때 A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가볍게 병을 앓고 난 뒤 면역력을 획득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특히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들 대다수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없었고 따라서 최근 유행에서는 20~40대 환자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바이러스는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위험하다. 여섯 살 미만의 경우 절반 이상이 무증상일 정도이지만 성인이 감염되면 간세포가 손상돼 황달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급성 간부전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아마도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이에 대응하는 인체의 면역반응이 문제를 일으킨 결과로 보인다.

 

선진국에서 A형간염이 간헐적으로 유행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인구 4000만 명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지난해 649건 이상 발생해(신고 기준) 417명이 입원했고 이 가운데 21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A형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됐기 때문에 맞으면 간염에 걸릴 위험성을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설마 내가...’라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백신을 맞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A형간염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기보다는 그 필요성을 못 느낀 게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선진국에서 성인 감염 건수가 늘다 보니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캡시드 단백질 인식하는 항체에서 영감 얻어

 

 

A형간염 바이러스의 표면 캡시드를 도식화한 그림으로 정20면체다. 캡시드 형성에는 세 가지 단백질(VP1(파란색), VP2(녹색), VP3(빨간색))이 각각 60개씩 총 180개가 참여한다. Microbiology Society 제공
A형간염 바이러스의 표면 캡시드를 도식화한 그림으로 정20면체다. 캡시드 형성에는 세 가지 단백질(VP1(파란색), VP2(녹색), VP3(빨간색))이 각각 60개씩 총 180개가 참여한다. Microbiology Society 제공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4월 30일자에는 A형간염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견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중국과학원이 주축이 된 중국의 공동연구자들은 항체가 붙어 있는 상태의 A형간염 바이러스의 구조를 분석해 그 자리에 맞는 약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약물이 항체처럼 바이러스 표면에 달라붙어 바이러스의 활동을 저지했다는 말이다.

 

A형간염 바이러스는 피코나바이러스과(科)에 속하는 작고 단순한 바이러스다. 원래 바이러스 자체가 작지만 여기에 ‘작다’는 뜻의 ‘피코(pico)’라는 접두어까지 붙었다. A형 간염 바이러스 입자의 지름은 27나노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3000분의 1에 불과하다. 참고로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 감기를 일으키는 라이노바이러스도 피코나바이러스다.

 

A형간염 바이러스의 게놈은 염기 7500개로 이뤄진 양성(+) 단일 가닥 RNA로 간세포에 침투하면 그 자체가 전령RNA로 작용한다. 여기서 네 가지 캡시드 단백질(VP1, VP2, VP3, VP4)이 만들어지고, 이 가운데 세 가지(VP1, VP2, VP3)가 각각 60개씩 총 180개가 모여 축구공 모양의 바이러스 캡시드를 이루고 내부 공간에 게놈(RNA 단일 가닥)이 들어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2009년 8월호 ‘바이러스 껍질, 캡시드의 기하학’ )

 

A형간염 바이러스는 굉장히 안정하다. 강한 산성인 위산에도 견디고 음식이나 물을 끓이지 않는 한 살아남는다. 아마도 캡시드 단백질의 견고한 구조 때문으로 보인다. 대신 캡시드 단백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아미노산이 바뀌면 캡시드 구조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표면 구조에 큰 변화가 없어 이를 인식하는 항체가 만들어지면 평생 면역력을 갖게 된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셈이다.

 

연구자들은 A형간염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생쥐에서 얻은 항체 네 종(F4, F6, F7, F9)을 분리해 바이러스와 결합시킨 뒤 극저온전자현미경으로 구조를 밝혔다. 그 결과 네 가지 항체가 달라붙는 바이러스 표면의 자리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VP2와 VP3가 연결된 부위였다. 

 

여러 A형간염 바이러스의 단백질 서열을 비교분석한 결과 항체 분자와 접촉하는 부분의 바이러스 단백질의 아미노산 21개 가운데 18개가 동일했고 나머지 3개도 비슷한 성격의 아미노산으로 바뀌는 정도였다. 이 부분은 꽤 안정한 구조로 바이러스에 따른 변화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물론 항체 형태의 약물을 만들 수도 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주사제로 쓸 수밖에 없다(먹는 약은 항체(단백질)가 소화되므로). 따라서 연구자들은 항체가 인식하는 바이러스 표면에 달라붙는 약물을 찾기로 했다.

 

A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쥐에서 얻은 항체 네 가지를 바이러스에 붙인 뒤 극저온전자현미경으로 구조를 분석한 결과 모두 바이러스 표면의 같은 자리에 달라붙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VP2와 VP3가 연결된 부분으로 아래 왼쪽은 확대 이미지이고 오른쪽은 90도 회전해 본 모습이다(위가 항체, 아래가 바이러스 캡시드의 측면). ‘플로스 생물학’ 제공
A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쥐에서 얻은 항체 네 가지를 바이러스에 붙인 뒤 극저온전자현미경으로 구조를 분석한 결과 모두 바이러스 표면의 같은 자리에 달라붙는 것으로 밝혀졌다. VP2와 VP3가 연결된 부분으로 아래 왼쪽은 확대 이미지이고 오른쪽은 90도 회전해 본 모습이다(위가 항체, 아래가 바이러스 캡시드의 측면). ‘플로스 생물학’ 제공

 

항암제로 개발된 약물이 걸려

 

이들은 실제 약물을 바이러스에 붙여보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 전략 대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약물 데이터 은행에 등록된 약물 수천 가지를 바이러스에 접근시킬 때 달라붙는 정도를 보고 네 가지를 골라냈다. 실험동물(in vivo)이나 시험관(in vitro)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가상으로 진행되므로 ‘in silico’ 실험이라고 부른다.

 

선별된 네 가지 약물을 바이러스에 처리한 결과 항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꽤 잘 달라붙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결과가 믿을만하다는 말이다. 이 가운데 결합력이 가장 우수한 약물은 골바티닙(golvatinib)으로 원래 항암제로 개발된 분자다. 아마 약효가 기대에 못미처 제품화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세포에 다양한 농도의 골바티닙을 넣고 배양하면서 A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시켰다. 그 결과 골바티닙이 0.5마이크로몰농도만 되도 바이러스 수치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8마이크로몰농도에서는 15%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편 이 농도에서도 약물로 인한 세포독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골바티닙이 A형간염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출발물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골바티닙의 구조를 조금씩 바꿔 바이러스 표면에 좀 더 잘 달라붙고(그래야 투여량을 줄일 수 있다) 부작용은 더 적은 분자를 찾아낸다면 A형간염 치료제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기존에 연구된 약물 가운데 치료제 후보 물질을 찾는 과정을 ‘약물재활용’이라고 부른다. A형간염 치료제처럼 시장이 불투명해 큰 연구비를 투입하는 결정을 선뜻 내릴 수 없는 경우 특히 유용한 접근법이다. 

 

그럼에도 실제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딘가 문제가 생겨 제품화에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어릴 적 감염으로 항체를 보유한 비율이 10%가 안 되는 이삼십 대 가운데 음식을 공유해 먹는 습관(특히 팥빙수를 이렇게 먹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다)이 있는 사람은 이참에 A형간염 백신을 맞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천 가지 약물 가운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실험을 통해 네 가지 약물을 선별했고 실제 실험결과 원래 항암제로 개발된 골바티닙이 가장 뛰어났다. 왼쪽은 바이러스 표면에 골바티닙(파란색)이 달라붙은 상태이고 오른쪽은 클로즈업 이미지로 이때 약물 분자와 상호작용하는 단백질의 아미노산(주로 VP3)을 보여주고 있다. ‘플로스 생물학’ 제공
수천 가지 약물 가운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실험을 통해 네 가지 약물을 선별했고 실제 실험결과 원래 항암제로 개발된 골바티닙이 가장 뛰어났다. 왼쪽은 바이러스 표면에 골바티닙(파란색)이 달라붙은 상태이고 오른쪽은 클로즈업 이미지로 이때 약물 분자와 상호작용하는 단백질의 아미노산(주로 VP3)을 보여주고 있다. ‘플로스 생물학’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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