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루궤이전, 니덤의 조수 혹은 스승

통합검색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루궤이전, 니덤의 조수 혹은 스승

2019.05.09 19:02

"조셉은 서양과 동양 문명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했어요. 전 그 다리를 떠받치는 아치예요.”

-루궤이전


니덤이 건설한 문명의 다리, 그 다리를 가능하게 한 여성

 

중국에서의 조셉 니덤. Needham Research Institute 제공
중국에서의 조셉 니덤. Needham Research Institute 제공

조셉 니덤은 르네상스맨이었다⁠. 그는 20세기 초중반 영국의 유명한 생화학자로 경력을 시작해서, 유네스코의 창립에도 앞장 섰고, 말년에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해 과학사가로 변모했다. 니덤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글은 그가 왜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를 다루는데, 1927년 그가 연구하던 캠브리지의 생화학 연구소에 도착한 세 명의 중국인 학생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그 중 한명의 학생이었던 루궤이전(Lu Gwei-djen, 1904-1991)은 훗날 니덤의 부인이 되며, 니덤의 학문과 사상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하지만 루궤이전은 니덤의 조수 혹은 부인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중국과 서양 모두에서 니덤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난징대에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 루게이전. Needham Research Institute 제공
난징대에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 루게이전. Needham Research Institute 제공

루궤이전은 1904년 난징 약제사의 딸로 태어나 생화학에 입문, 33살에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 런던행 배에 몸을 싣는다. 그는 이제 막 태생하고 있던 생화학에 관심을 가졌고, 미국에서도 유학생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영국의 생화학 연구소로 유학을 결심했다. 그 곳에는 당시 생화학의 시작을 알리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던 영국 생화학연구소가 있었고, 그 곳의 소장은 당대에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이던 프레데릭 홉킨스(Frederick Gowland Hopkins)였다. 우리 역사 개화기의 유학생처럼, 그 또한 중국에 아직 생소한 생화학을 배워 중국의 근대화에 기여하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던 니덤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영국 생화학 연구소에 근무하던 조셉 니덤과의 만남은 개화기 유학생이었던 루궤이전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김우재 제공
 영국 생화학 연구소에 근무하던 조셉 니덤과의 만남은 개화기 유학생이었던 루궤이전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김우재 제공

당시 니덤은 37살, 루궤이전은 33살이었고, 니덤은 동료 생화학자인 도로시 니덤(Dorothy Needham)과 결혼한 상태였다. 니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당시 니덤이 루궤이전과 사랑에 빠졌고, 도로시와의 사이에서 삼각관계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도로시는 그 둘의 관계를 알고도 이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니덤에 대한 전기를 쓴 사이먼 윈체스터(Simon Winchester)는 당시 영국의 좌익에서 유행하던 어떤 지적 풍토가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한다. 도로시는 1987년 92세의 나이로 죽고, 루궤이전도 폐암으로 절제수술을 받는 등 1984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니덤과 루궤이전 사이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은 도로시가 죽고 난 2년 후, 그리고 루궤이전이 죽기 2년 전인 1989년에 일어난다. 그 둘은 만난 후 51년을 기다려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됐다⁠. 

 

결과적으로 니덤은 중국에서 도착한 신비한 여인 루궤이전으로 인해 중국으로 이끌렸다. 둘 모두 사회주의자였고,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동시에 생화학으로 학문에 입문한 르네상스맨이었다. 그리고 니덤이 루궤이전에게 가장 먼저 배운 한자는 담배를 뜻하는 연煙이었다고 한다. 둘 모두 애연가였고, 니덤은 죽을 때까지 담배를 피웠다.

 

중국의학을 과학으로 분석하려 했던 인물

 

니덤의 중국에 대한 사랑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대립하던 영국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않았다. 특히 니덤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생화학 무기 사용 조사를 위한 조사단으로 파견돼, 미국측에 불리한 진술을 한 이후, 니덤은 영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입지가 좁아졌고, 그건 니덤의 조수로만 알려졌던 루궤이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곧 생화학자로의 경력을 그만두고,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 대한 장대한 분석서를 집필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 루궤이전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바로 중국의학, 특히 침술에 관한 역사적, 과학적 분석이었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 (FDA)는 통증 치료와 관련해서 의사를 비롯한 의료제공자들에게 침술을 비롯한 대체요법을 교육받는 방안을 제시했다⁠. FDA가 이런 제안을 한 배경에는, 의료진이 아편성 진통제 등의 약물 처방을 최소화하면서 통증을 치료할 방법을 권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FDA는 침술이나 수기요법을 일종의 보완적 치료법으로 소개했다. 

 

동양의 의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침술은, 서양의학이 도입되면서 문화적, 제도적 충돌을 겪었지만 여전히 국가로부터 공인된 치료행위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침술의 과학적 기반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효과는 인정받지만, 과학적인 설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경계의 학문이 바로 침술인 셈이다. 루궤이전의 의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고, 죽기전 이에 대한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중국 한의학의 기원과 역사를 살피고, 이를 과학자로 훈련받은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한다.

 

조셉 니덤. 위키피디아 제공
조셉 니덤. 위키피디아 제공

루궤이전은 중국의학 특히 침술에 대한 연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왜냐하면 침술은 임상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효과를 분명히 보이지만,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예였기 때문이다.

특히 생화학자로 훈련받은 당시에는 드문 중국인이자, 전통적인 중국 약제상의 딸로 태어나 중국의학을 접하며 자란 그에게, 중국의학 특히 침술은 어떻게든 설명해내야만 하는 숙제였을지 모른다.

 

루궤이전은 ‘침술의 과학적 기반’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중국 고대 문헌에서 나타나는 통일되지 않은 침술의 이론들에도 불구하고, 1949년 중국의 혁명 이후 중국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중국에선 중국의학을 전공한 의사와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가 환자를 교차상담하는 제도가 확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임상적으로 효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인 설명이 전무한 이 중국의 신비한 기예는, 루궤이전 패러독스를 낳았다. 도대체 어떻게, 과학적인 설명이 전무하지만 임상에서 사용되는 의학적 실천이 가능한가? 루궤이전은 우선 침술의 효과를 인정한 상태에서, 침술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오랜 기간에 걸친 통제된 조건에서의 통계적인 임상데이터로, 침술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니덤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했다. “침술의 과학적 기반은 정립될 것이다⁠.”

 

생화학으로 길러진 과학의 정체성 

 

루궤이전은 생화학연구소에서 니덤 부부와 함께 상당히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생화학자로의 정체성보다 과학사가로의 정체성으로 더 유명한 니덤처럼, 루궤이전의 학문적 정체성도 주로 중국의학사나 과학사에 치우쳐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 대부분은 생화학연구소에서의 실험과 연구였고, 훗날 이 연구를 포기하게 되는 것도 그의 의지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특히, 중국의학을 다루면서도 신비주의나 과도한 애국심에 빠지지 않고, 분명한 분석적 관점으로 이를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과학자로 훈련받았기 때문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루궤이전이 캠브리지의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인 1937년은 생화학의 대사경로 (metabolic pathway) 연구가 막 꽃피던 시기였고, 홉킨스는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1780년엔 쉴레 (Scheele)가 락틱산(lactic acid)를 분리했고, 1835년엔 베젤리우스 (Berzelius)가 피루브산 (pyruvic acid)을 분리했지만, 세포 안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견해는 분분했다. 홉킨스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의 특이성을 옹호하는 인물이었고, 산소의 부족이 근육에 락틱산을 누적시킨다는 등을 발견했던, 당시 가장 유명한 생화학자 중 한 명이었다. 

 

TCA회로. 위키피디아 제공
TCA회로. 위키피디아 제공

지금은 TCA회로 혹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크렙스회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대사경로는 주로 세포 내의 공생체인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에서 일어나며, 이 과정을 통해 생명체는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만들 재료와,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재료의 대부분을 생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화학은 20세기 초반, 이런 대사경로들을 발견하며 새로운 학문 분야로 떠올랐고, 이제 막 영국 땅에 도착한 루궤이전은 최첨단의 학문에 발을 딛은 셈이었다.

 

당시까지 정밀한 생체 내 시료의 피루브산 측정 기술이 부족한 것을 느낀 루궤이전은 혈액과 같은 생체시료에서 피르부산의 양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비타민 B1이 부족한 포유동물의 혈액에서 피루브산의 변화를 측정해 냈다. 이런 성공적인 연구에 힘입어 그는 니덤의 부인이었던 도로시 니덤과 함께 피루브산의 생체내 역할과 변화를 연구하는데 집중했다. 1941년까지 그는 도로시와 함께 피루브산에 대한 8편의 논문을 출판한다. 하지만 1960년대 부터는 잘 알려진 것처럼 니덤과 함《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작업하며, 주로 중국의학과 전통과학에 대한 연구논문에 천착하게 된다.  

 

루궤이전은 연인이었던 니덤의 부인 도로시 니덤과 함께 피루브산에 대한 논문 8편을 출판했다. publicseminar.org
루궤이전은 연인이었던 니덤의 부인 도로시 니덤과 함께 피루브산에 대한 논문 8편을 출판했다. publicseminar.org

물론 그의 고향이었던 중국과, 연인이었던 니덤의 관심사였던 그 연구 속에서 그 또한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1930년대 동양인 여성으로 캠브리지에서 생화학 대사경로의 중요한 발견을 이끈 그의 공로야 말로, 다른 어떤 연구보다 빛나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루궤이전이 니덤의 명성에 밀려 역사에서 잊혀진건 분명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 명성이나 유명세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년에 누군가 그의 자서전적 정보를 공유해달라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정리하세요⁠.” 

 

대중매체를 보면, 학문보다는 유명세 자체를 원하는 학자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학자가 유명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학문의 본질을 잃으면서까지 그런 활동을 추구할 이유도 없다. 비록 그런 겸손함 때문에 잠시 잊혀졌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들의 자리를 되돌려 놓는 힘이 있다. 루궤이전, 생화학자였으며, 중국의학과 문명의 역사를 서양에 소개한 위대한 과학자, 이제 그를 이렇게 기억하면 된다.


1. http://lan-a-li.com/The-Lung-The-Elixir-and-The-Lancet 다음 논문에서 인용. Li, L. A. (2018). Invisible Bodies: Lu Gwei-djen and the Specter of Translation. Asian Medicine, 13(1-2), 33-68.
2. 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615 [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유네스코의 이름을 바꾼 생화학자

http://www.eroun.net/news/articleView.html?idxno=4937 [김우재의 과학적 사회] 과학의 체로 받아들인 기독교 사회주의
3. Li, L. A. (2018). Invisible Bodies: Lu Gwei-djen and the Specter of Translation. Asian Medicine, 13(1-2), 33-68. 위키백과에도 그에 관한 소개는 아주 짧게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u_Gwei-djen
4. Winchester, S., & Winchester, S. (2008). The man who loved China: The fantastic story of the eccentric scientist who unlocked the mysteries of the middle kingdom. New York: Harper. 이 책은 최근 사이언스북스에서 <중국을 사랑한 남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5. https://m.yna.co.kr/view/AKR20170512156200009, 
https://www.statnews.com/2017/05/10/pain-acupuncture-chiropractic-fda/
6. Gaze, R. M. (1982). Gwei-Djen Lu and Needham Joseph: Celestial lancets: a history and rationale of acupuncture and Moxa. xxi, 427 pp. Cambridge, etc: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0.£ 45. Bulletin of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45(1), 199-200.
7. Gwei‐Djen, L., & Needham, J. (1979). A Scientific Basis for Acupuncture? This ancient Chinese medical practice may be based on physiological mechanisms. The Sciences, 19(5), 6-10.
8. 루궤이전은 침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침술은 중국에서 가장 기원이 오래된 의술로, 아주 얇은 침을 몸의 특별한 곳에 꽃아 치료하는 방법이며, 이미 기원전 2세기에 그 이론과 효험이 완성되었다. 현대 중국에서 침술의 효과를 의심하는 서양의학자는 소수로, 대부분의 중국의학자는 침술의 효과를 인정하며, 서양의학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Gwei‐Djen, L., & Needham, J. (1979). A Scientific Basis for Acupuncture? This ancient Chinese medical practice may be based on physiological mechanisms. The Sciences, 19(5), 6-10. 에서 인용
9. 니덤과 루궤이전은 그리스의 5원소설이 정량화된 근대과학의 설립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처럼, 음양이론이 침술을 설명하는 양적 이론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침술은 분명한 임상적 효능이 있다. 이 패러독스는 여전히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하지만 한의학이 현대화되고 있고, 젊은 한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는 건 좋은 징조다. 니덤과 루궤이전의 패러독스를 푸는 한의사가 한국에서 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10. Hesketh, R. (2012). A great adventure: from quantitative metabolism to the revelation of Chinese science. Biochemical Journal, 2012, 1-4.
11 Li, L. A. (2018). Invisible Bodies: Lu Gwei-djen and the Specter of Translation. Asian Medicine, 13(1-2), 33-68.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0 + 6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