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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학은 24명의 '스승'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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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학은 24명의 '스승'에게서 나왔다

2019.05.15 13:49
수학자 계보 나무. 24명의 수학적 조상, 그 중에서도 시지스몬도 폴카스트로, 이반 돌브냐, 장르 롱 달랑베르, 프리드리히 라이프니츠, 헨리 브레큰으로부터 수많은 수학적 자손이 탄생했다. 수학동아 제공
수학자 계보 나무. 24명의 수학적 조상, 그 중에서도 시지스몬도 폴카스트로, 이반 돌브냐, 장르 롱 달랑베르, 프리드리히 라이프니츠, 헨리 브레큰으로부터 수많은 수학적 자손이 탄생했다. 수학동아 제공

2016년 8월 네이처 뉴스에 '수학 계보 프로젝트(MGP)'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기사가 실렸다. 현대 수학자의 65% 이상이 24명의 학자에게서 파생됐다는 내용이었다. 스승-제자 사이를 부모-자식 관계라고 치면 수학자 세계는 24개 가문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전세계 수학자 조상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주인공은 해리 쿤스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수학과 교수다. 1996년 쿤스 교수는 자기 지도 교수의 지도 교수를 알아내려다 어디에도 그런 문헌이나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수학자 족보’를 만들기 위해 처음에는 혼자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를 온라인화했다. 그러자 MGP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사람과 단체가 늘어났고, 지금은 미국수학회가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수학적 할아버지’를 찾으려던 한 수학자의 호기심 덕에 MGP는 수학 세계를 아우르는 큰 프로젝트로 발전한 것이다. 


세계 수학자, 핵심 조상은 다섯 명


수백 개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에도 언제나 강호는 있는 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학 가문 24개 중에서도 특히 세력을 크게 차지하는 5개가 있다. 시지스몬도 폴카스트로, 이반 돌브냐, 장 르 롱 달랑베르, 프리드리히 라이프니츠, 헨리 브레큰 가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이 모두 수학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5만6387명으로 수학자 자손을 가장 많이 보유한 폴카스트로는 심지어 의사였다. 이처럼 MGP를 조사하면 본인이 수학자가 아님에도 훌륭한 수학자의 탄생에 영향을 준 사람, 유명한 수학자였음에도 다른 학문에 영향을 준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머신러닝 알고리듬으로 MGP를 분석한 플로리아나 가기울로 벨기에 나무르대 연구원은 수학자 계보로 수학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수학적 네트워크를 연구했다. 가기울로 연구원은 “수학자들은 다른 연구자에 비해 적은 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경향이 있고, 논문 수나 인용횟수가 학문적 명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편”이라며 “그 대신 누구를 스승으로 두었는지, 누구와 공동연구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이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 명예 교수는 “그런 측면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생각해볼 사례로 2006년 필즈상을 받은 그리고리 페렐만을 들었다. 


이 교수는 “페렐만이 처음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했을 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소위 ‘톱클래스의 수학자 그룹’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결국 증명이 맞다는 것이 밝혀지자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수학자 계보나 그룹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천재는 계보에 상관없이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또는 기존의 그룹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휘됐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말처럼 수학적 계보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스승-제자 흐름을 찾아보는 것은 흥미롭다.  

 

전세계에 제자를 둔 마당발 스승

 

방랑자로 알려진 수학자이자 소문난 수학 사랑꾼 에르되시 팔은 수학자들을 찾아다니며 공동연구하는 것을 누구보다 즐겼다. 그래서 무작정 수학자를 찾아가 같이 문제를 풀자고 제안하고 그 집에 눌러 앉았다가 논문을 하나 완성하면 다음 수학자를 찾아 나서곤 했다. 한 곳에 지긋이 머물지 않으니 제자를 키우기 힘들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과 공동연구한 수학자로서 에르되시는 수많은 수학자에게 영감을 준 ‘방문 교사’ 같은 존재였다. 

 

에르되시가 주변 사람들이 수학에 매진하도록 얼마나 들볶았는지 몇 가지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로널드 그레이엄과 판 청의 집에서 공동연구할 때 낮부터 새벽 2시까지 연구하다가 두 사람이 이제는 정말 자야 한다고 떠나자 새벽 4시 30분에 팬과 주전자를 꽝꽝 쳐대며 공부하자고 깨웠다.

 

등쌀에 못 이긴 둘이 다시 연구를 시작해 몇 시간만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자 흥분한 에르되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수학자에게 전화하려 했다. 그레이엄이 “캘리포니아는 지금 새벽 5시”라고 말하자 에르되시는 “오, 좋아. 그럼 집에 있겠군!”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에미 뇌터의 든든한 지원군, 힐베르트

 

에미 뇌터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여성의 고등교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뛰어난 수학자”라고 일컬었을 만큼 능력 있는 수학자였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재능을 인정받고 펼칠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7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강의하던 뇌터를 알아보고 당시 수학의 성지였던 독일 괴팅겐대로 부른 사람은 20세기 초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손꼽히던 다비트 힐베르트였다. 당시 물리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던 힐베르트는 이 분야에 뛰어난 수학자가 필요했고, 뇌터를 괴팅겐대로 초청해 정식 교수로 들이려 했다.

 

이때 엉뚱하게 철학과 교수들이 반대하고 나섰는데, 힐베르트는 “이곳은 대학이지 목욕탕이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괴팅겐대는 뇌터의 초빙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힐베르트는 1919년 뇌터가 정식 교수직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4년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강의할 수 있도록 도우며 든든한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필즈상 수상자로 만든 비밀 스승

히로나카 헤이스케. Klaus Tschira Stiftung/Peter Bedge
히로나카 헤이스케. Klaus Tschira Stiftung/Peter Bedge

난제였던 ‘특이점 해소 정리’를 증명하고 1970년에 필즈상을 받은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자를 꿈꾸는 많은 이를 독려하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히로나카가 일본 교토대 수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당시 최고의 수학자였던 오스카 자리스키가 초청 교수로 일본에 방문했다. 이때 자신의 첫 번째 논문을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히로나카를 좋게 본 자리스키가 히로나카를 미국 하버드대로 불러들이면서 그의 '수학 인생'은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대학원에 들어간 히로나카는 한동안 전혀 논문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매년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 아무 평가도 받지 못했고, 걸출한 수학자들이 남긴 완성작을 읽으면 자기 이론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학자로서의 길을 고민하던 그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지도 교수도 명성 높은 수학자도 아닌 한 소녀였다. 


생각에 빠져 교내를 걷고 있던 히로나카는 멀리서 들리는 한 소녀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다. 그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달려온 소녀는 “이거 선생님 거지요?”라며 그의 수첩을 내밀었다. 이 순간 히로나카는 '과연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됐다. 책을 읽고 고급 이론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선생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 느낀 그는 아무리 형편없는 논문일지라도 자신의 것을 창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후에 히로나카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나를 수학자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 소녀’라고 말했다. 이 소녀가 없었다면 히로나카는 첫 논문을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자리스키를 만났을 때 보여줄 논문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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