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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포기자 만들지 않아요" 함께 읽고 춤추고 실험하는 과학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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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15일 08:29 프린트하기

전국에서 e메일이 쏟아졌다. 스승의 날(5월15일)을 맞아 특별한 과학 선생님을 인터뷰한다는 공고를 낸 지 불과 몇 시간 만이었다. 물리를 춤으로 가르치는 선생님, 밤이건 주말이건 함께하는 가족 같은 선생님, 학교 최강 훈남 선생님 등 신청자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과학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하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과학은 즐거움이다_하우영 진주 무지개초 교사

 

"과학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하우영 선생님을 제보합니다 (제보자 장슬기 외 5명)"

 

민물고기 모니터링 수업 중인 하우영 교사와  무지개초 학생들. 하 교사는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수업이 학생들의 과학 감수성을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이영혜 기자
민물고기 모니터링 수업 중인 하우영 교사와 무지개초 학생들. 하 교사는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수업이 학생들의 과학 감수성을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이영혜 기자

“잡았다! 잡았다!” 그물망에 잡힌 물고기는 큰 돌 아래에 사는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 ‘꺽지’였다. 가슴장화를 입은 아이들은 꺽지를 냉큼 아크릴 관찰통에 넣고 관찰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무늬와 지느러미를 두고 토론하는 모습이 생물학자들처럼 진지했다. 4월 15일 기자는 경남 진주시에 위치한 무지개초 하우영 교사(과학 전담교사)의 민물고기 모니터링 수업에 함께했다.


민물고기 모니터링부터 과학 연극까지


“학교에서 20분 거리에 강의 지류가 있어 종종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옵니다. 생태를 직접 관찰하는 경험은 초등학생 때가 아니면 하기 힘들거든요.”


하 교사는 단순히 민물고기를 관찰하는 데서만 그치지 않고 지느러미 모양이나 멸종위기종에 대한 탐구 과정을 넣어 학생들이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수업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으로 ‘과학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그가 경남과학고를 졸업하고 초등교사가 된 이유와도 관련이 깊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던 그는 자연스레 과학고에 진학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토록 재밌는 과학적 원리를 좀 더 일찍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민물고기 모니터링 후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 세심한 관찰력과 창의적 분석이 돋보인다. 이영혜 기자
민물고기 모니터링 후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 세심한 관찰력과 창의적 분석이 돋보인다. 이영혜 기자

하 교사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과학이 어렵다는 선입견이 생기기 전에 과학은 해봐도 되는 것,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학 연극 수업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이날 오후에는 마침 6학년 학생들의 과학 연극 수업이 진행됐다. 수업 시작에 앞서 먼저 한 팀이 미세플라스틱에 의한 해양 환경오염을 주제로 연극을 펼쳤다. 노래와 율동이 주가 되는 대체로 유쾌한 분위기의 연극이었지만, 미세플라스틱을 삼킨 멸종위기 야생생물 따오기가 가슴을 쥐고 쓰러지는 장면에선 숙연함도 느껴졌다. 학생들은 이를 참고해서 ‘달과 지구의 운동’을 주제로 또 다른 연극 무대를 짰다. 


미세플라스틱 연극을 공연한 김예진 양(무지개초 6학년)은 “전학을 와서 수줍음이 많았는데, 연극을 통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며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에도 관심이 늘었다”고 말했다. 


하 교사가 처음 부임한 진주 선학초에서 그의  지도를 받았던 윤기연 양(진명여중 3학년)은 “꼭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보고 느낄 것이 많은 수업이 하우영 선생님표 과학 수업의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실제로 민물고기 모니터링과 과학 연극 외에도 별 관측, 코딩, 박쥐 탐사 등 다양한 활동이 교실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하 교사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낸 연구 주제를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과학 교사직의 재미”라고 덧붙였다.

 

동아리로 전국대회를 휩쓸다

 

하우영 교사. 사진 이영혜기자
하우영 교사. 사진 이영혜기자

하 교사는 5년 전 진주 선학초에 첫 발령을 받고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리틀뉴턴(Little Newton)’이라는 과학·환경 동아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다른 반, 다른 학교 학생들도 모여 현재는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1기부터 초등학교 6학년인 4기까지 동아리원이 100명가량 된다. 하 교사는 “과학고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끈끈한 동아리 활동이었다”며 “동아리원들을 팀으로 나눠 각종 과학탐구대회에 참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틀뉴턴 동아리원들은 놀랍게도 대회 준비 과정이 게임보다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장슬기 양(무지개초 6학년)은 “학원에서 배울 때는 물리나 화학이 정말 재미없었는데, 발명대회에 나가기 위해 발명품과 관련된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재밌어졌다”며 “올해만 대회를 3개나 참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 양의 어머니 김지연 씨(39)는 “하우영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스스로 기획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토론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며 “큰 대회에 참가해 시야를 넓히면서 진로를 선택하는 폭이 넓어진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리틀뉴턴 1기로 하 교사와 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정수연 양(진명여중 3학년)은 ‘오조봇’이라는 코딩 가능한 로봇을 주제로 대회에서 부스를 운영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어린이, 노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들이 내 설명을 신나게 듣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하 교사는 “부스 운영은 힘든 일이지만 기획 단계부터 스스로 참여해 한 번 성취감을 맛보면 계속해서 재밌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가한 대회는 성적도 눈부셨다. 작년 한 해에만 ‘대한민국학생창의력챔피언대회’에서 특허청장상, ‘대한민국학생창의력올림피아드’에서 대상, ‘전국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동아리활동발표전국대회’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휩쓸었다. 하 교사와 리틀뉴턴 동아리원들은 과학활동 우수학생 및 교사로 선발돼 올해 1월 대만으로 4박 5일간 해외과학탐방을 다녀왔다. 올해 8월에는 학생 6명과 함께 미국 뉴저지주 라이더대에서 열리는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할 예정이다.

 

“학생, 학부모 함께 하는 ‘페임랩’ 꿈 꿔”


인터뷰에 참가한 학생들은 상당수가 이공계 진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김미연 양(진명여중 2학년)은 “원래는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선후배들과 다양한 과학탐구 활동을 하다보니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생겼다”며 “희망 진로가 연구원이나 과학교사 같은 이공계 쪽으로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 양은 “현재 영재교육원을 3년째 다니고 있는 것도, 진명여중에서 과학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모두 하우영 선생님의 영향”이라고 덧붙였다. 


하 교사는 “앞으로도 모든 학생들이 과학을 편안하게, 다양하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며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도 그런 열정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함께 하는 과학 토크콘서트다. 콘셉트는 페임랩(Fame Lab)과 유사하다. 3분 동안 각자 최근에 배웠던, 혹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과학 주제를 흥미롭게 이야기하면 된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여 함께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그에게서 진정 과학과 학생들을 사랑하는 열정이 느껴졌다. 

 

● 과학은 실험이다_김정민 대전외삼중 교사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해주는 김정민 선생님을 제보합니다(제보자 임태연)"

 

김정민 교사가 대전외삼중 영재학급 수업 중 학생들의 해부 실험을 지도하고 있다. 신용수 기자
김정민 교사가 대전외삼중 영재학급 수업 중 학생들의 해부 실험을 지도하고 있다. 신용수 기자

“이렇게 잡고 잘라야 하는 겁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교실 밖까지 새어나왔다. 흰색 가운을 입은 학생들 사이로 붉게 보이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설명을 이어가는 선생님이 보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풍기는 것 같더니 붉은 물체의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그것은 심장이었다. 


4월 12일 대전 유성구 대전외삼중 영재학급 수업 시간. 첫 수업부터 돼지의 심장을 해부하는 ‘극한 수업’이 한창이었다. 학생들은 심장을 보고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가위와 메스를 들고 심장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심장을 잘라나가는 학생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첫날부터 학생들을 위해 과학의 ‘손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수업을 준비한, 심장을 거침없이 가르며 목청을 높였던 선생님이 사연의 주인공 김정민 교사였다.

 

실험으로 학생 호기심 유도

 

김정민 교사. 돼지 심장 해부 수업에서 심장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신용수 기자
김정민 교사. 돼지 심장 해부 수업에서 심장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신용수 기자

“오늘 수업은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영재 수업입니다. 과학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교내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이죠. 과학은 체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가진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여러 활동으로 다양한 자극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교사는 영재 수업과 창의연구(R&E)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체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실 안에서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이론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경우는 극소수에요. 실생활에서 문제를 인식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해결 의식이 있어야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해부학 수업 중 돼지의 심장에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용수 기자
해부학 수업 중 돼지의 심장에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용수 기자

그래서일까. 김 교사는 과학 수업이나 영재학급 수업을 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최근 과학 이슈를 발표하게 했다. 학생들의 흥미를 먼저 끌어내기 위해서다. 김 교사는 “이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발표를 준비해 온다”며 “최근 수업에서는 인류 최초로 블랙홀을 촬영한 연구에 대해 학생들이 자료를 준비해 발표했다”고 말했다. 


김 교사가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게 된 데는 과거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1991년 사범대를 졸업한 그는 처음에는 교사에 뜻이 없어서 학원 강사를 했다. 하지만 이내 한계를 느꼈다. 결국 2007년 교사가 됐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해줄 수 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어요. 그러나 학교에서는 수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죠. 교사가 열심히 노력해 학생들을 이끌고, 또 학생들이 이를 따라와 주는 과정이 재밌고 보람찹니다.”


김 교사는 ‘과학도시’ 대전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그는 “대전은 KAIST 외에도 대덕연구단지와 각종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모여 있는 과학 특화 도시”라며 “대전이 갖춘 최고의 인프라를 활용해 어떻게 학생을 지도할지는 교사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이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회로 만난 인연 중학교까지 이어져

 

김정민 교사는 교내 동아리 '랩걸'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랩걸은 노벨상을 꿈꾸는 여학생들이 모여 만든 자율동아리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실험을 통해 체험한다. 신용수 기자
김정민 교사는 교내 동아리 랩걸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랩걸은 노벨상을 꿈꾸는 여학생들이 모여 만든 자율동아리로,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실험을 통해 체험한다. 신용수 기자

김 교사가 대전외삼중에 부임한 건 올해 3월이다. 처음 사연을 받았을 때는 부임한 지 한 달 된 스승과 입학한 지 한 달 된 제자 사이에 얼마나 깊은 인연이 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인연은 작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8년 6월 대전교육과학연구원이 주최한 대전시 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탐구실험대회에 참가한 임태연 양은 우수한 성적을 거둬 전국대회에도 참가하게 됐다. 이때 전국대회 준비를 도운 지도교사 중 한 명이 김 교사였다. 


임 양은 “당시 주어진 과제가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을 서로 섞이지 않게 하는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었다”며 “열전도와 대류 현상을 이용해 실험을 설계해야 했는데, 초등학교 과정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 당황했다”고 회상했다. 


임 양이 실험을 제대로 설계하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김 교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임 양은 “초등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개념으로 대류 현상을 설명해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견했다”며 “아이디어를 내는 기발함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예뻐서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김 교사는 임 양이 활동하는 교내 동아리 ‘랩걸(Lab Girl)’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랩걸은 1학년 여학생 5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자율동아리다. 노벨상을 꿈꾸는 학생들이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을 ‘벤치마킹’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임 양은 “중학생이 실행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동안 노벨상을 받은 연구를 학습하고 이를 직접 실험을 통해 체험하는 동아리”라며 “아직 우리나라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만큼 노벨상을 꿈꾸는 동아리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랩걸의 결성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컬링 국가대표였던 ‘팀킴’처럼 이뤄졌다. 랩걸 부원인 서영은 양은 “모두가 서로 알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각자 친분이 있긴 했다”며 “마음이 맞는 친구를 서로 데려오면서 동아리가 결성됐다”고 말했다. 


랩걸의 첫 프로젝트는 ‘분배 크로마토그래피’다. 분배 크로마토그래피는 195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아처 마틴과 리처드 싱의 연구 주제로, 서로 섞이지 않는 두 액체의 분배계수 차이를 이용해 혼합된 시료를 분리하는 방법이다. 현재 화학, 생물학 및 의학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실험 방법이다. 


임 양은 “앞으로 초콜릿 색소 추출, 브로콜리 DNA 분리 등 실험을 통해 본격적으로 분배 크로마토그래피를 탐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창의체험 동아리는 수십 명씩 모여서 진행하기 때문에 심층적인 과학 탐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며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창의적이고, 이런 동아리가 학교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 기꺼이 지도교사를 맡았다”고 설명했다. 


또 김 교사는 “태연이가 동아리도 만들고 영재학급 수업도 들으며 과학에 대해 계속 흥미를 갖고 열심히 공부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김 교사에게 교사로서의 꿈을 물었다. 그는 “이제 정년까지 그리 오랜 기간이 남지 않았다”며 “교단에서 물러나는 날까지 학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즐거운 경험을 다양하게 선물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수업에 필요한 사진이나 삽화를 찾거나 학생들의 토론을 위한 참고 자료를 준비할 때 도서관에 비치된 과학잡지를 많이 활용한다”며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과 창의력을 기르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과학은 이해다_정종태 경산 무학교 교사

 

"물리 과목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으신 분입니다 (제보자 이예찬)"

 

정종태 교사는 어려운 물리 개념을 율동이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이해가 쉽고, 한 번 이해하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혜 기자
정종태 교사는 어려운 물리 개념을 율동이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이해가 쉽고, 한 번 이해하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혜 기자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로 2시간, 동대구역에서 다시 차로 30분을 달려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무학고에 도착했다. 4월 12일, 주말을 하루 앞두고 찾아간 학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정원에는 봄꽃들이 피었고,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활기차게 공을 차고 있었다. ‘물리 공부하기 딱 싫은 날씨군’. 


'개인적인 편견'을 잔뜩 안고 제보가 들어온 3학년 6반 교실 문 앞에 섰다. 학생들이 딴전을 피우거나 고개를 파묻고 잠을 자는 흔한 물리 수업 풍경을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교실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율동과 비유로 물리를 이해하다

 

정종태 교사가 전자기 유도현상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율동은 물리수업 집중력을 키우는 나름의 비법이다. 이영혜 기자
정종태 교사가 전자기 유도현상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율동은 물리수업 집중력을 키우는 나름의 비법이다. 이영혜 기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아함은 더욱 증폭됐다. 선생님이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양팔로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만들고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입으로는 “나가 나가, 휙휙” 같은 알 수 없는 주문들을 외고 있었다. 


“전자기 유도현상이 일어날 때 코일과 자석의 상대적인 운동을 몸으로 표현해본 겁니다. 양팔로 만든 동그라미가 코일, 머리가 자석, 동그라미가 움직이는 방향이 코일에 유도된 전류의 방향이죠.”


정종태 교사는 “율동은 학생들이 물리 수업에 집중하게 만드는 나름의 비법”이라며 “외부에 공개한 건 처음”이라고 쑥스럽게 웃었다. 약간 민망하긴 해도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오후 4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시간인데도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정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3학년 6반의 실장이자, 사연을 보내준 이예찬 군은 “몸을 움직이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친구들이 율동하는 모습을 보면 웃겨서 저절로 잠이 달아난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제물포’라는 별명이 생기지 않도록 특히 학기 초반에 애를 많이 쓴다고 했다. ‘제물포’란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다’의 줄임말로, 물리 수업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교사는 “학기 초에 배우는 ‘힘과 운동’ 단원에서 이미 많은 학생들이 물리를 어렵게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며 “교재 연구를 할 때 학생들에게 재밌을만한 비유나 율동을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그는 핵융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질량결손 현상을 ‘계모임’으로 설명했다. 많은 학생들이 핵자들이 합쳐지는데도 질량이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데, 핵자들을 계모임 일원이라고 가정하고 핵자들의 질량을 계모임 일원들이 가진 돈, 핵자 간 결합에너지를 계모임이 운영되는 정도에 비유한 것이다. 계모임이 잘 운영될수록(결합에너지가 높을수록) 사람들(핵자들)의 수중에는 돈(질량)이 없다. 돈이 은행에 모일 테니까 말이다. 성인인 기자에게도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찰진 비유였다. 


정 교사는 “물리 개념은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학생들이 이해한 모습을 보면 더욱 큰 기쁨을 느낀다”며 “그 과정에 작게나마 기여한다는 게 물리 교사직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물리 개념 잘 이해하려면 “익숙해져라” 

 

과학실에 모인 정종태 교사와 무학고 학생들. 이영혜 기자
과학실에 모인 정종태 교사와 무학고 학생들. 이영혜 기자

정 교사는 많은 학생들이 물리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로 “접할 기회가 적고, 익숙하지 않아서”라며 “원하는 진로가 물리와 연관이 있다면 물리를 최대한 많이 접하는 것이 성장을 위한 정도(正道)”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아두이노 및 코딩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직접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코딩 공부를 하고, 매주 수요일 학생들과 스터디를 진행한다. 실제로 무학고 과학실 한 켠에는 동아리 학생들이 설계한 RC(무선조종)드론, RC자동차 등이 전시돼 있었다.

 

“아두이노 설계에 회로와 같은 물리 지식을 적용할 수 있거든요. 물리 지식을 이용해서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도 구현할 수 있고요. 코딩이라는 논리적인 언어를 배우면 공대 진학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두이노를 전문가 수준으로 익히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듣고 있던 이 군은 또 다른 사례로 지난해 초 교내에서 열린 ‘열기구날리기’ 대회 영상을 꺼냈다. 비닐을 이용해 낙하산을 만들고 여기에 공을 매달아 공의 체공 시간이 가장 긴 팀이 이기는 대회였다. 참가한 학생들의 함성이 월드컵 한일전을 방불케 했다. 

 

이 군은 “열기구날리기 대회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종단속도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뿌듯해 했다. 낙하하는 물체의 중력과 공기의 저항이 같아지면 물체가 등속운동을 하는데, 종단속도는 이 때의 속도를 말한다. 


이 군은 물리 과목에 자신감을 얻으면서 건축설계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학급 동아리 시간을 활용해 친구들과 내진 설계 실험을 해보고, 방학 때는 캐드(CAD)도 배웠다는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그는 새로운 진로를 탐구하는 데 과학동아에 실린 최신 과학 이슈와 인터뷰 기사가 큰 도움이 된다는 말로 인터뷰하는 기자의 마음을 부레옥잠처럼 동동 뜨게 만들었다. 


정 교사는 이번 인터뷰가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의 날 이벤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교내에서 오랫동안 정보 분야 전담교사를 하다가 학급 담임을 맡은 지 3년 차. 반 운영하랴, 고3 학생들 진학지도 하랴,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올해는 이 군 같은 열성적인 반 학생을 만나 인터뷰도 하게 됐다며 이 군에게 공을 돌렸다. 왜 이과생 140명 중 90명 이상이 물리II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정 교사는 “학생들이 물리 과목을 더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과학은 대화다_ 안양 부흥고 교사 

 

"선생님과 함께라면 힘든 수험생활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제보자 김서은)"

 

홍영덕 교사는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는 역동적인 수업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신용수 기자
홍영덕 교사는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는 역동적인 수업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신용수 기자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어느 학생이 저를 소개한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서은이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아직 본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짧은 기간 만났는데도 저를 좋아해주고, 제 수업을 즐겁게 들어줘서 고마워요.”


홍영덕 교사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따뜻했다. 그가 첫 수업부터 학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비결이 바로 이런 따뜻한 대화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이 만연한 4월 15일 경기 안양시에 위치한 부흥고 과학실험실에서 홍 교사를 만났다. 

 

학생들에게 ‘설문조사’ 하는 이유


“수업 첫날 학생들이 좋아하는 과학 과목, 수업 전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 앞으로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다짐 등을 적게 해요. 학생들이 과학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죠.”


홍 교사는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이유가 수업 때문이라고 담백하게 답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순간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취재를 요청한 김서은 양은 “정확히 3월 첫째 주 통합과학 수업이었다”며 “고등학교 과학 수업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수업에 앞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주려고 하는 선생님을 보고 걱정을 떨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설문지는 학생과 선생님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홍 교사는 “서은이가 맨 앞줄에 앉아 설문지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볼 수 있었다”며 “자신의 꿈을 묻는 질문에 ‘텔로미어 연구를 하고 싶다’고 적는 것을 보고 속으로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에 있는 반복 염기서열로 세포의 시계 역할을 한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세포가 분열을 멈추거나 사멸한다. 홍 교사는 “1학년 학생이 텔로미어라는 단어를 아는 경우가 흔치 않다”며 “서은이가 과학을 아주 좋아하는 범상치 않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분 독서, 5분 리뷰, 수업은 대화로

 

 

홍영덕 교사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과학 서적을 읽고 있다. 그는 수업시간에 10분가량 독서 시간을 마련해 학생들이 과학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김서은 제공
홍영덕 교사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과학 서적을 읽고 있다. 그는 수업시간에 10분가량 독서 시간을 마련해 학생들이 과학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김서은 제공

홍 교사는 수업 방식도 일반적인 과학 수업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수업에 앞서 과학 서적을 읽는 시간이 주어진다. 학생들은 10분 동안 자신이 가져온 과학 서적을 자유롭게 읽는다. 


홍 교사는 “과학 서적은 용어들이 어려운 편이라 학생들이 선뜻 손에 잡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과학 서적과 친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과학 독서 시간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또 홍 교사는 “학생들이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을 바로 물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굳이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독서 시간 이후 5분간은 복습 시간이다. 수업마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지난 수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 발표한다. 홍 교사는 “정리한 내용을 다시 들으면서, 지난 수업에 무엇을 배웠는지 학생들이 상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표를 통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는 효과는 덤이다. 김 양은 “첫 단원이 우주의 빅뱅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리뷰 덕분에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이후 35분간은 교사의 주도로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때도 수업의 주체는 철저히 학생이다. 교사가 설명하는 시간이 있지만, 학생들이 서로 설명해주는 시간이 수업의 핵심이다. 학생마다 설명할 부분을 정해 각자 맡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학습하게 한 뒤 학생들끼리 서로 설명하면서 의견을 교환한다. 


“학생들이 역동적으로 수업에 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획한 수업 방식입니다. 사실 수업 중에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교사거든요. 가르쳐봐야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모든 학생이 서로를 가르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된 부흥고에는 매년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이 몰린다. 홍 교사는 단순히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학생들이 ‘과학을 알아가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데 초점을 둔다. 당장 교과 과정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도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느껴지면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김 양은 일산화탄소의 배위결합을 공부했던 일화를 예로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 교과 과정에는 일산화탄소가 배위결합을 이룬다는 내용은 나오지만, 왜 그런 결합을 형성하는지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개념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 양은 “보통은 ‘나중에 배운다’고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께서는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해주신다”고 자랑했다.

 

“사람들 기쁘게 하는 과학도로 성장하길”

 

부흥고 자율동아리 '과학의 샘'은 과학 잡지를 통해 최근 과학 이슈를 접하고 이를 주제로 토론하며 과학적 소양을 넓히는 동아리다. 홍영덕 교사는 이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부흥고 자율동아리
부흥고 자율동아리 '과학의 샘'은 과학 잡지를 통해 최근 과학 이슈를 접하고 이를 주제로 토론하며 과학적 소양을 넓히는 동아리다. 홍영덕 교사는 이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부흥고 자율동아리

홍 교사는 현재 김 양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만든 자율동아리 ‘과학의 샘’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과학의 샘은 과학잡지를 통해 최근 과학 이슈를 접하고 이를 주제로 토론하는 과학탐구 학술 동아리다. 


3월에는 타미플루에 관한 기사를 읽고 타미플루의 원리와 다른 나라에서 금지한 의약품을 주제로 토론했다. 4월에는 주기율표 15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읽은 뒤 기존 주기율표를 다시 만들어보는 활동을 했다. 


홍 교사는 “검증된 자료 없이는 학생들이 토론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며 “주기적으로 과학 이슈를 다루는 과학잡지를 이용해 최신 과학 이슈에 대한 검증된 자료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홍 교사는 “과학잡지를 읽고 토론하는 활동은 사실 개인적으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해보고 싶었던 활동”이라며 “서은이가 같은 주제로 먼저 찾아와서 반가운 마음에 흔쾌히 지도교사를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홍 교사와 김 양에게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김 양은 “과학 수업을 기다려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과학을 암기 과목이 아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교사는 “지금처럼 과학을 재밌게 공부해나갔으면 좋겠다”며 “과학을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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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15일 08:29 프린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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