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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포기할 줄 아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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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포기할 줄 아는 용기

2019.05.18 06:00
포기할 때를 아는 것은 자존감과 관련을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포기할 때를 아는 것은 자존감과 관련을 보인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미 너무 많은 시간·노력·돈을 쏟아 부어서, 자존심이 상해서, 포기하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좋다고들 하니까, 벌써 또 그만두냐고 눈총을 받을까봐, 아니면 그냥 우유부단해서 등등의 이유로 수렁에 빠져드는 징조가 보이는데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 매달리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여러 번 이러한 이유들로 미련하게 몸과 마음을 갈아넣다가 펑 터지고 나서야 이건 아닌 거 같다며 그만둘 결심을 했던 기억이 있다. 버티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지만, 상황에 따라 미련을 버리고 접을 줄 아는 것 또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심리학자 아담 디 파울라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포기할 때를 아는 것과 자존감이 관련을 보인다고 한다(Di Paula & Campbell, 2002). 


실험은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에게 빈칸을 채워 낱말을 완성하는 ‘추론’ 과제를 주었다. 매우 어려운 단어들을 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다. 문제를 하나 풀 때마다 정답 또는 오답이라는 피드백을 주었고 한 세트가 끝나고 난 후에 전체 성적을 보여주었다. 참가자 모두에게 하위 30%에 해당되는 실력이라는 ‘실패’ 피드백을 주었다. 


여기서 조건을 다르게 하여 한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과제를 한 세트만 줬고 (한 번의 실패)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여러번 반복해서 과제를 하도록 해서 하위권이라는 피드백을 여러번 주었다 (여러번 실패). 그러고 나서 사람들에게 이후 똑같은 과제를 다시 시도해 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창의성’ 테스트 같은 걸 해보겠냐고 물었다(대안 제시). 


그 결과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이미 여러번 망한 추론 과제는 버리고 창의성 테스트에 도전해보겠다고 한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번 망한 과제에 계속 매달리는 경향을 보였다. 한 번만 실패한 경우에서는 반대의 경향이 나타났다. 추론을 한 번만 망한 조건에서는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들이 추론을 다시 한 번 해보겠다고 재도전 한 반면, 자존감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도전 하지 않겠다고 기권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을 그럭저럭 좋게 받아들일 줄 알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한 번 해서 안 됐을 때 삼세판 정도는 해보지만, 그래도 안 되면 재빨리 그만을 외치고 다른 잘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반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바로 그만두거나 아니면 계속 해도 안 되는 무엇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까? 연구자들은 한 가지 원인으로 목표를 추구하는 이유가 다르다는 것을 꼽았다. 자아가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잘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잘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하며 나아간다. 하지만 자아가 건강하지 않은 경우 목표 달성 자체보다 ‘실패하지 않는 것’, 즉 못 하는 것을 막는 것에 더 많은 초점을 두는 편이라고 한다. 원래 목표였을 잘 하는 것 늘리기보다 못함 막기가 더 주된 목표가 된다는 것.  


이런 경우 계속 실패할수록 '못 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이를 '어떻게든 못하는 것'이 아닌 '못 하지는 않는 애매한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시간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굴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는데 말이다. 많은 것들을 그럭저럭 해내지만 딱히 잘 하는 건 없는 상태 또한 일면 뭐 하나라도 못 하는 게 있어선 안된다는 두려움이나 강박의 결과물일까?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라고들 한다. 하지만 한정된 에너지와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런 요구는 애초에 비현실적이다. 나아가 이러한 요구들이 사실 중요치 않은 자투리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게 만드는 반면 정작 나에게 있어 중요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엇에 투자하는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만능’에 대한 집착을 조금 덜어내야 선택과 집중이 가능한 게 아닐까?

 

- Di Paula, A., & Campbell, J. D. (2002). Self-esteem and persistence in the face of failure.?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3, 711-724.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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