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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생명의 기원 밝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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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생명의 기원 밝혀질 수 있을까

2019.05.21 17:13

생물체가 이용하는 모든 생체분자는 생물체에 의해 합성된다.
- 로베르 파스칼, 막스무스롱생체분자연구소 

 

최근 불교학자인 일본 하나조노대 사사키 시즈카 교수가 쓴 ‘붓다와 아인슈타인’이라는 책을 재미 읽게 읽었다. 쿄토대에서 공업화학을 공부한 사사키 교수는 이후 철학과 불교학으로 진로를 바꿨는데, 초기 불교와 현대 과학이 우주(자연)를 보는 관점에서 겹치는 면이 많다는 걸 깨닫고 이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르면 붓다와 과학자들(아인슈타인이 대표다)은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붓다는 깊은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고 과학자들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조금씩 비밀을 밝혀가고 있다.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이 과정에서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에 의지할 뿐 신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사키 교수는 책에서 “(초기) 불교야말로 과학과 대등하게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세계 종교다”라고 주장했다.

 

책은 다섯 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1장 물리학, 2장 진화론, 3장 수학, 4장 석존/불교, 5장 대승불교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의 흔적을 지워 간 반면, 불교는 신을 개입시키면서 과학과 멀어졌다(5장). 

 

다윈과 월리스의 결별

 

1850년대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생각해 낸 찰스 다윈(왼쪽)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오른쪽). 그러나 인간을 두고 두 사람의 입장이 갈렸다. 월리스는 인간은 예외라고 본 반면 다윈은 인간도 예외일 수 없음을 주장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진화론을 심화시켰다.
1850년대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을 생각해 낸 찰스 다윈(왼쪽)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오른쪽). 그러나 인간을 두고 두 사람의 입장이 갈렸다. 월리스는 인간은 예외라고 본 반면 다윈은 인간도 예외일 수 없음을 주장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진화론을 심화시켰다.

물론 과학의 발전에서 신의 흔적을 씻어내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저자는 2장 진화론에서 찰스 다윈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궤적을 통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58년 월리스가 다윈에게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개념을 담은 논문을 보내 1842년 초안을 쓴 이래 십수 년째 ‘종의 기원’을 준비하고 있던 다윈을 충격에 빠뜨렸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의 입장은 비슷했다.

 

그 뒤 월리스는 “인간만은 신의 힘으로 창조된 특별한 생물”이라고 주장하며 한발 물러선 반면 다윈은 ‘인간의 유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해’ 등 저서를 내놓으며 진화론을 심화시켰다. 그렇다고 다윈이 리처드 도킨스처럼 과격한 인물은 아니었다.

 

저자는 “다윈 자신도 생물 진화라는 현상에는 신의 개입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지만, 신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며 “그것은 불가지(不可知)의 문제”라는 태도를 견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과학은 “생명이라는 것이 신의 개입 없이 완전히 자연현상 그 자체로 탄생한다는 것을 증명”할 정도까지 진전돼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온지 13년이 지났지만 과학은 여전히 ‘생명 탄생의 메커니즘’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비생물 과정으로 대사물질 합성

1953년 스탠리 밀러의 초기 지구 조건에서 아미노산 합성 실험이나 1982년 토머스 체크의 RNA효소 발견으로 생명의 화학적 기원에 대한 가능성이 보였고(‘DNA가 먼저냐 단백질이 먼저냐’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뒤이어 ‘RNA세계 가설’도 나왔지만 이를 토대로 생물이 등장한다는 시나리오는 실현성이 너무나 희박하다.

 

핵산이나 아미노산 같은 정보와 관련된 분자가 비생물 과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생물체가 되려면 폐쇄 시스템에서 대사과정을 통해 에너지와 물질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복잡한 시스템이 무(無)에서 진화했다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수년 사이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최근 과학자들은 세포에서 일어나는 대사에 관여하는 분자들이 비생물 과정, 생체 촉매인 효소(단백질) 없이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속속 발견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생명체의 핵심 대사 경로인 TCA 회로는 11가지 분자로 이뤄져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피루베이트와 글라이옥실레이트 두 분자(왼쪽 아래 박스 안)와 철 이온이 들어있는 수용액을 초기 지구 조건에서 세 시간 두자 TCA 회로의 9가지 분자(빨간색)가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자기복제 능력이 있는 분자가 TCA 회로를 비롯한 여러 대사 회로를 발명한 게 아니라 주위에서 가져다 쓴 것이라면 비생물에서 생물로의 도약의 폭이 꽤 줄어들 수도 있다. 네이처 제공
오늘날 많은 생명체의 핵심 대사 경로인 TCA 회로는 11가지 분자로 이뤄져 있다. 최근 과학자들은 피루베이트와 글라이옥실레이트 두 분자(왼쪽 아래 박스 안)와 철 이온이 들어있는 수용액을 초기 지구 조건에서 세 시간 두자 TCA 회로의 9가지 분자(빨간색)가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자기복제 능력이 있는 분자가 TCA 회로를 비롯한 여러 대사 회로를 발명한 게 아니라 주위에서 가져다 쓴 것이라면 비생물에서 생물로의 도약의 폭이 꽤 줄어들 수도 있다. 네이처 제공

학술지 ‘네이처’ 5월 2일자에는 두 가지 분자와 철이온이 존재할 때 세포호흡의 핵심인 ‘TCA 회로’를 이루는 11가지 분자 가운데 9개 분자가 비생물 과정으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인 연구결과가 실렸다. 참고로  세포에서는 TCA 회로를 거치며 분자들이 바뀌는 과정에서 에너지 분자들이 만들어지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대사물질 가운데 피루베이트와 글라이옥실레이트라는 분자가 이산화탄소로부터 비생물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 두 분자에 철 이온(Fe2+) 촉매를 넣어줬을 때 어떤 분자들이 만들어지는지 알아봤다. 반응 조건을 보면 70도 수용액에 환원성 대기(산소가 없는)로 초기 지구 조건을 재현했다. 촉매로 쓴 철 이온도 당시 지각이나 바다에 풍부하게 존재했을 것이다. 

 

그 결과 놀랍게도 불과 세 시간 안에 TCA 회로를 이루는 11가지 분자 가운데 무려 9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질량분석기를 통해 확인했다. 

 

실제 세포에서는 TCA 회로에 많은 효소가 개입해 분자가 바뀌는 반응을 촉매한다. 그런데 시험관 안에서 이들 효소 없이도 9가지 분자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생명체가 이 회로를 ‘발명’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분자도 다른 촉매 시스템이 쓰인다면 비생물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RNA 세계로 대표되는, 자기복제 능력이 있는 분자가 이와는 별도로 주변에 존재하는 비생물 대사 회로와 병합해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었고 어느 순간 구획화가 일어난 뒤(세포가 형성되면서) 게놈이 확장되며 대사 회로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의 유전자가 하나씩 진화해 비생물 과정을 대체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즉 지금은 생물체가 이용하는 모든 생체분자는 생물체에 의해 합성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막스무스롱생체분자연구소 로베르 파스칼은 “생명은 여러 차례 도입된 진화하는 시스템의 점진적인 개선의 결과에서 기원할지 모른다”며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생물과 비생물 사이의 구분이 흐릿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붓다는 80세에 입적하면서 제자들에게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無常).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는 말을 남겼다. 자기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탐구해 깨달음에 이르라는 것이다.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도 ‘게으름 없이 정진해’ 좀 더 심오한 발견을 해내길 바란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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