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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아빠의 교육실험](12) 게임 만들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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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아빠의 교육실험](12) 게임 만들어 보기

2019.05.22 15:23

어렸을 때, 어머니는 전자오락실을 운영했다. 국민학교 3,4학년 무렵이다. 당시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얇은 월급봉투로는 먹성 좋은 아들 둘의 식비조차 감당키 어렵단 판단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주로 오후에 가게에 나갔는데, 막내 혼자 집에 두고 가기에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종종 필자를 데리고 갔다. 그날은 축복과도 같았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갤러그나 제비우스 따위의 게임을 오후 내내 실컷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컴퓨터와의 첫 대면은 게임을 통해 이뤄졌다.

 

1980년대 전자오락실은 순진한 아이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악질적인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많은 ‘용산 키즈’의 시작이 동네 오락실이었다는 사실을 기자가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1980년대 전자오락실은 순진한 아이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악질적인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많은 ‘용산 키즈’의 시작이 동네 오락실이었다는 사실을 기자가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집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어머니를 졸라 우여곡절 끝에  MSX 컴퓨터를 마련했다. 정부에서 교육용 컴퓨터 보급 정책을 막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로서 적지 않은 29만8000원이던 컴퓨터 가격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콤퓨우터로 창의력을 키웁시다”라는 당시 광고(https://youtu.be/5nxpe2WRltU) 문구는 부모의 조급함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코딩 교육 만능론이 판치는 지금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역사는 비극 없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MSX 기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각종 게임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마성전설이나 몽대륙 등 지금도 역대급 명작으로 평가되는 게임들은 MSX에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 확보도 간편했다. 음악 녹음하듯 더블데크 카세트를 이용해 복사하면 끝이다. 지금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이들 사이엔 나름의 게임 공유 커뮤니티도 형성됐다. 플랫폼과 생태계가 갖춰지면 공간의 성격은 바뀐다. 어머니가 집을 비울라치면 집은 작은 나만의 전자오락실로 쉽게 바뀌었다.

 

게임 로딩 전에 카세트 헤드 위치를 정확히 맞춰야만 했다. 게임이 저장된 테이프를 재생시키면 시끄러운 기계음이 나오는데, 드라이버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가장 큰소리가 나올 때가 있다. 여기가 바로 정확한 위치다. 순간 도파민 과다 분비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기다리던 음악의 후렴구가 들릴 때 느껴지는 행복감과 마찬가지다.
게임 로딩 전에 카세트 헤드 위치를 정확히 맞춰야만 했다. 게임이 저장된 테이프를 재생시키면 시끄러운 기계음이 나오는데, 드라이버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가장 큰소리가 나올 때가 있다. 여기가 바로 정확한 위치다. 순간 도파민 과다 분비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기다리던 음악의 후렴구가 들릴 때 느껴지는 행복감과 마찬가지다.

요즘 게임에 중독성이 있네 마네하지만 당시 무작정 게임만 한 것은 아니다. 컴퓨터가 가진 교육적 효과를 어머니에게 입증해야만 했다. 때때로 스스로 작성한 프로그램을 모르는 척 보여줬다. 주로 그래픽을 활용했다. MSX가 가진 스프라이트 기능은 여기에 제격이었다. 지금의 그래픽 카드와 유사한 기능을 가졌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 모니터에는 별 사이로 날아다니는 로켓 따위가 나타났고, 어머니는 그 광경을 보며 당신의 투자가 아깝지 않다고 애써 자기 자신을 설득했을 것이다.

 

조금 더 복잡한 것도 만들었다. 바닥부터 모두 다 만든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학생과 컴퓨터”란 잡지에 실린 게임 코드를 그대로 입력하는 것이다. 입력에 많은 노력이 필요했으나, 새로운 게임에 대한 유혹은 그보다 컸다. 몇 시간은 족히 걸렸지만 입력을 모두 마친 후 “RUN” 명령을 실행할 때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다.

 

애써 입력한 코드가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코드를 잘못 입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잡지와 모니터의 코드를 한 줄 한 줄 비교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교만 한 것은 아니었다. 코드의 논리를 분석하면 잘못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름 디버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개발자로서의 인생은 이렇듯 게임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에게도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배운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배열 등 몇 가지 필수 요소를 제외하면 프로그래밍의 기본적인 개념은 웬만큼 전달됐기 때문이다. 일종의 졸업 프로젝트인 셈이다. 미진행된 배열은 금번 교육에 녹여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한동안 아이가 기억력 카드 게임을 해달라 조르던 게 기억났다. 잘 응해주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거니와 게임에서 지면 대책 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달래야 하는 상황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 일이다. 대신 아이와 기억력 게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만든 기억력 놀이 게임. 바나나와 고추, 감자가 무작위로 배치된 과일 다섯 개를 순서대로 기억해 입력하는 과정으로 만들했다. 지금까지 배운 변수와 비교, 판단과 반복 등을 종합하여 구성해야 한다. 마지막 총 복습이자 졸업 프로젝트인 셈이다.
아이와 함께 만든 기억력 놀이 게임. 바나나와 고추, 감자가 무작위로 배치된 과일 다섯 개를 순서대로 기억해 입력하는 과정으로 만들했다. 지금까지 배운 변수와 비교, 판단과 반복 등을 종합하여 구성해야 한다. 마지막 총 복습이자 졸업 프로젝트인 셈이다.

'졸업 프로젝트'인 만큼 긴 호흡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아이에게 실습 지침을 제외한 직접적인 설명은 최대한 억제하고자 했다. 설령 아이가 묻더라도 기억을 상기시키는 정도로만 설명의 폭을 제한했다. 예컨대 반복문 사용에 대한 질문에는 가위바위보 게임 만들기에서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아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때 만들었던 코드를 열어서 다시 확인해보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교육 진행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교육 시간은 하릴없이 늘어졌다. 애당초 계획했던 3시간을 훌쩍 넘어 5시간 만에야 끝마칠 수 있었다. 더구나 과일 이름 오입력을 대비한 예외처리는 부족한 시간을 이유로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했고, 그럴수록 교육을 빨리 끝마쳐야 한다는 압박은 강하게 다가왔다기 때문이다. 손과 다리를 동시에 제어해야 하는 줄넘기조차 익숙해지기 전까지 아이들은 어려워한다.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논리적 구조는 더욱 그렇다.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탓이 크다. 9살은 고추와 감자가 왜 과일이냐는 즉자적인 의심이 더 어울리는 나이다.

 

모든 교육은 마무리됐다. 원래 계획했던 17교시보다 한 시간 더 진행했지만 말이다. 교육을 마무리하면서 아이에게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코드를 불러오고 실행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작품 공유하기’ 메뉴를 눌러보라고 했다. 갖가지 이름의 코드가 펼쳐졌다. 헛헛한 마음에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들어왔는데, 아이는 컴퓨터를 앞에 두고 화면에 몰입해 있었다. 궁금하여 화면을 확인했다. 점프하며 장애물 피하는 단순한 게임이다. 수많은 공유 코드 중에 어떻게 게임을 골라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캐릭터를 조종하는 아이의 표정에서는 제법 진지함까지 느껴졌다. 그래, 게임이 먼저다. 30여년 전 필자의 모습이 다시 생각나는 밤이었다.
 

도움자료

1) 14~18일 차 교안을 공유합니다.

https://drive.google.com/open?id=1teucNsKsi_8aERAdpbvBS25yu3L8A6UJ

2) 아이와 만드는 코드도 공유합니다. 엔트리 메인화면의 공유하기에서 “chloe10”을 검색하세요.

 

※필자소개

김기산 기업에서 IT 디바이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20년 가까이 리눅스 개발자로 지내다가 뜻밖의 계기로 육아휴직을 냈다. 지난해 한층 강화된 '아빠의 달' 제도의 수혜자로, 9살 아이와 스킨십을 늘리며 복지 확대의 긍정적인 면을 몸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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