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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보이지 않는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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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24일 14:00 프린트하기

모발 성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실 쥐와 일반적인 실험실 쥐. NHGRI 제공
모발 성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실 쥐와 일반적인 실험실 쥐. NHGRI 제공

대학원 시절, 인간유전체 프로젝트와 더불어 생쥐 유전학이 유행하고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유전체 속에서 단 하나의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 그 생쥐는 녹아웃 마우스(Knock-out mice)라 불리며 생물학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다. 바로 이 유전자 사냥꾼들은 유전자 하나만 차지하면 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유전자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유전자 제거 혹은 형질전환 생쥐의 도래야말로 현재 생쥐 유전학이 의생명과학을 독식할 수 있는 기술적 근간이었을 것이다.

 

‘유전자 제거 생쥐’라는 복권

 

지금이야 다양한 생물공학적 기법들로 유전자가 조작된 생쥐를 만드는 일이 쉬워졌지만, 여전히 한 세대가 길고 다루기 까다로우며,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는 생쥐 유전학은 접근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박사과정 시절, 몇몇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지켜본 일이 있다. 생쥐 유전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들은 우스개소리로 “유전자를 잘 골라야” 졸업을 일찍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곤 했다. 연구실의 연구주제에 따라 흥미로운 유전자를 골라 제거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이던 그들은, 가끔 유전자를 제거해도 아주 멀쩡하게 잘 사는 생쥐들의 등장을 슬프게 지켜봐야 했다. 하나의 유전자가 사라지고 생쥐에게 아주 흥미로운 표현형이 나타나야만 영향력 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실을 수 있는데, 어떤 유전자의 제거는 생쥐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생쥐의 유전자 하나를 선택하고 그 유전자 하나만 특이하게 제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빨라야 2년, 길면 3~4년까지도 걸리는게 보통이었다. 그러니 운 나쁘게 유전자를 두 번 잘못 뽑은 학생의 졸업은 무한정 연기될 수도 있었다. 반면에 기가막힌 표현형을 보이는 유전자 제거 생쥐를 만든 학생은 몇 편의 논문을 쓰고 미래가 보장된 연구자의 길로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니 유전자 제거 생쥐를 만드는 일의 절반은 운에 가까웠다. 어떤 과학연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생쥐 유전학은 고위험 고수익의 주식상품에 투자하는 일과 비슷했다. 잘되면 평생 먹고 살 연구주제가 생기는 것이고 잘 안되면 폭삭 망하는 연구, 어쩌면 주식보다 복권에 더 가까운 게 생쥐유전학 실험실의 일상이었다.

 

필살의 기예, 그리고 황우석

 

유전자 제거 과정은 섬세한 기에와 인내심을 요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유전자 제거 과정은 섬세한 기에와 인내심을 요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생쥐의 유전자를 제거하는 과정은 섬세한 기예와 지난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될지 안될지도 모를 생쥐의 유전자를 클로닝하고, 클로닝한 유전자를 몇 번에 걸쳐 플라스미드라는 동그란 DNA 벡터에 집어 넣어야 한다. 이 과정에만 1년이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게 클로닝이 된 플라스미드를 생쥐의 배아세포에 집어넣고, 제대로 유전체가 교정된 배아세포를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지만 분자생물학 실험을 위한 도구와 시약들이 키트 형태로 발전하면서, 아무리 손 기술이 좋지 않은 학생이라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보장하는 정도의 수준이 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제거한 배아세포는 암컷 생쥐에 착상시켜야 한다. 바로 이 과정이 전문적인 경험과 기술이 요구되는 곳이다. 아무리 유전자를 잘 클로닝해서 유전자 제거 배아세포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 세포를 잘 관리해서 암컷 생쥐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일을 망치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이 착상과정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빈번해서 대부분의 실험실은 착상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술자를 쓰거나 아예 회사에 이 과정을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당시 생쥐유전학 실험실에는 지방의 전문대를 졸업한 기술자 한 분이 계셨는데, 그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유전자 제거 생쥐는 이 분이 착상시키고 관리하셨다. 당시 동료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신기하게도 학생이나 박사후연구원 누구도 이 분처럼 높은 확률로 착상을 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이 기술자는 언제나 친절하게 학생들을 대했고, 누구보다 실험실의 일원으로 긍지를 지녔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학생들의 실험에 함께 일희일비했고, 학생들의 생쥐가 잘 만들어지고, 잘 자라도록 언제나 뒤에서 힘썼다. 내가 아는 모든 동료가 그의 존재 가치를 알고 있었고, 그가 없으면 유전자 제거 생쥐를 만드는 일이 몇 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후 다른 대학으로 실험실을 옮긴 생쥐 유전학 실험실 교수는 그를 함께 데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유전자 제거 생쥐를 만들지 못해 몇 년을 크게 고생했다고 전해 들었다. 기술의 경험은 축적된다. 그리고 그 축적을 무시하는 사회는 결코 발전할 수 없다. 

 

젓가락 기술의 실제 실험 장면
젓가락 기술의 실제 실험 장면

2005년 황우석은, 형질전환된 소나 돼지의 난자를 자기 손으로 착상시키는 과정을 미디어로 내보내곤 했다. 그가 팔 전체를 암소의 자궁까지 넣는 사진은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황우석의 이미지 중 하나였고, 그는 이 과정을 자신이 직접 수행한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리고 그는 종종 세미나에서 자신의 여성 대학원생 중 한 명이 유전자를 난자에 주입하는 방식을 개량해서 성공률을 높였다고 자랑했으며, 이것이 한국인이 젓가락을 쓰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렇게 그는 역설적으로,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 기술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국사회에 알렸고, 이를 애국심과 연결시켜 자신의 연구를 홍보했다. 

 

실험실의 기술자들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취재진들. 노벨위원회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취재진들. 노벨위원회

1989년 과학사가 스티븐 세이핀은 보이지 않는 기술자들이라는 논문을 통해 위대한 과학자 로버트 보일의 실험실을 가득 채웠던 노동자들을 조명했다. 보일의 진공관을 만들고 개량하고 유지시킨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보일은 그들에게 명령만 내린 게 아니라 그들의 판단력에 의지해야만 했다. 즉, 실험실의 주인은 보일이었지만 보일의 발견한 법칙들의 주인은 여러 명이어야 했다. 하지만 과학사는 그들 대부분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우고 ‘보일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피라미드 꼭대기의 과학자 한 명만을 기억한다.

 

이런 상황은 현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현대의 생물학 실험실은 연구실을 책임지는 연구책임자인 과학자 한 명과, 한 두명의 기술자 혹은 테크니션 (테크니션이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와 생긴다), 그리고 박사후 연구원과 대학원생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이 논문을 출판하면, 과학자, 박사후연구원, 대학원생의 이름은 등재되지만, 테크니션의 이름은 논문에 등재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실험을 디자인하고, 수행하고, 논문으로 출판하는 과정이 과학이라는 학문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때, 테크니션은 분명 실험을 수행하는 부분에만 관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떤 실험은, 테크니션의 경험과 아이디어가 없으면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과학자와 테크니션의 경계를 꽤 분명히 나누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감사는 비공식적인 자리 등에서나 표현하는게 일반적이다. 

 

과학계의 이런 관행은 노벨상 수상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노벨상 위원회의 노벨상 선정 방식에선 어떤 발견이 가능할 수 있었던 기술자의 공헌을 평가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벨상 위원회는 과학 논문을 기준으로 그 영향력과 기여를 평가하며 오래된 과학계의 관행 속에서 기술자들은 논문에서 제외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대 생물학 실험실은 기술직 혹은 테크니션이라 불리는 직업군이 없으면 기능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과학자들은 그들을 조수 혹은 실험도구와 같은 대체 가능한 존재로 치부하곤 한다. 과학의 역사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기술자들, 혹은 과학자로 훈련받았지만 기술자의 삶에 더 천착했던 인물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이름과 업적 속에서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과학의 이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참고자료

-Shapin, S. (1989). The invisible technician. American scientist, 77(6), 554-563.

-(*)물론 이건 철저히 논문의 교신저자의 몫이다. 필자가 연구했던 미국의 실험실은 테크니션의 기여를 항상 논문에 기재하곤 했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김우재 보통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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