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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일등 만능주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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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일등 만능주의의 함정

2019.05.29 10:00
 

KAIST가 이달 23일 인공지능(AI) 기계학습 분야 논문발표 실적 순위에서 아시아 1위, 세계 16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학교 측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KAIST는 국제머신러닝학회(ICML)가 공식 발표한 세계 100대 기관 순위에서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AI 연구에서 아시아 1위로 꼽히던 중국의 칭화대를 앞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ICML 측은 내달 9일부터 15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제36회 ICML 학회에 채택된 논문 저자와 소속 기관, 제목 만이 공개했을 뿐 논문발표 실적을 가지고 세계 100대 기관 순위를 ‘공식발표’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사실 KAIST가 공식 발표라고 언급한 순위는 독일의 한 엔지니어가 임의로 작성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자료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작성한 자료지만 KAIST같은 공인된 기관이 인터넷에 떠도는 공인되지 않은 개인 자료를 마치 학회 공식 발표 자료인양 꾸며 발표한 것이다. 국내 최고 이공계 대학이 유명 인터넷 카페에 개인이 올린 통계자료를 인용해 학교의 AI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홍보 자료 작성 과정만 살펴봐도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을 꿈꾸는 학교가 했다고 하기엔 어설픈 점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엉뚱한 통계 자료를 제시한 교수, 이를 부풀려 작성한 홍보 조직, 그렇게 작성된 잘못된 보도자료를 거르지 못한 학교 측의 허술한 확인 체계가 50년 가까이 한국의 이공계 명문으로 자리해온 학교의  명성과 신뢰를 한순간에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KAIST가 홍보자료를 왜 이런 방식으로 AI 연구 경쟁력 순위를 발표했는지 내부자가 아닌 이상 알 길이 없다. 정부가 최근 AI 대학원 설립을 서두르는 등 AI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것을 염두에 두고 의도한 조작인지, 잘 하려다가 발생한 실수인지 당사자들만이 안다. 왜 출처를 차마 개인이라고 밝히지 못하고 공식발표한 것처럼 꾸몄는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료라도 써가면서까지 홍보를 해야했는지 외부인들은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KAIST가 홍보를 위해서라면 임의로 작성된 자료를 공식 발표라고 포장하고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원칙도 쉽게 깨는 이미지를 남긴 것이 사뭇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사가 나가자 KAIST가 그간 쌓아온 명성을 폄훼하는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KAIST가 지난 수년간 인공지능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좋은 교수를 초빙해 해외보다 늦게 시작한 AI에서 괄목할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부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KAIST가 국내 최고 대학답게 AI 연구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적을 부풀리기나 허위로 연구성과를 홍보하는 방식은 정확성과 엄밀함으로 대변되는 과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KAIST마저 1등 만능주의, 순위만을 추구하는 대학으로 전락한다면 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독창적 연구, 인류의 공존과 미래를 책임질 기술을 배출할 아이디어와 학문의 산실 역할 노릇을 과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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