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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아빠의 교육실험](끝)최종 보고서, 코딩교육 정말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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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아빠의 교육실험](끝)최종 보고서, 코딩교육 정말 필요한가?

2019.05.28 17:25

아이를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은 18시간으로 마무리됐다. 교육부에서 규정한 연간 17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썼다. 게다가 일대일 과외라는 개발자 아빠 찬스도 적용됐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이뤄질 교육보다 모자라지는 않을 것이다. 질적, 양적인 면 모두에서 말이다. 교육을 통해 아이는 컴퓨터에게 명령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알게 됐고, 스스로 조합하여 결과물도 내놓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아홉 살 아이에겐 기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가 그렇다고 코딩 교육 의무화가 타당하다 결론짓기는 섣부르다. 의무화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창의력 배양이라는 논리가 깔려있다. 바꿔 말하면, 문제의 논리적 분석과 해결의 절차적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엔트리 도구 활용 능력이 그 자체로 평가의 잣대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오히려 코딩 교육 과정에서 아이가 얻은 2차적 효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2차적 효과는 엔트리 활용 능력이 가져올 수 있는 아이의 모든 변화를 포함한다. 변화의 양상이 긍정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코딩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람의 눈에 비친 초등 코딩 교육 의무화

 

얼마 전 후배 부부와 식사 자리를 가졌다. 프랑스로 건너간 후배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한 달의 휴가를 마련하여 한국에 방문한 터였다. 후배의 남편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데, 육아 휴직 기간 중 아이에게 코딩 교육을 진행했다는 얘기에 대한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It’s a stupid thing)”

 

논리적 사고력 배양을 목적으로 코딩 교육이 의무화된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그 정도의 교육 효과는 체스 같은 전략 게임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에게 코딩 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음도 경고했다. 의무화는커녕 아동 코딩 교육조차 의미 없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한 판의 체스는 수 싸움의 연속이다. 수 싸움을 다른 말로 하면 논리적 사고 실험이다. 상대방이 둘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상상하고, 그에 대응하는 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체스 판에 논리적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은 그림을 정교화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즉, 문제의 단순화 및 추상화, 절차적 해결 등 코딩 교육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교육적 효과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념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미술가 마르셀 뒤샹이 체스 국가 대표로 활약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는 코딩 교육의 기회를 전혀 가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붉은 여왕 효과’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

 

소설《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 계속 달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앨리스를 오히려 느림보라고 질타한다. 위키피디아
소설《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 계속 달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앨리스를 오히려 느림보라고 질타한다. 위키피디아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은 끊임없이 앞으로 달린다. 그래봤자 같은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두 배는 더 빠르게 달려야 한다. 이른바 ‘붉은 여왕 효과’인데, 경쟁이 심한 우리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떤 과목이 정규 교과에 포함된다면 이런 현상은 더욱 또렷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의 미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데, 정규 교과에 포함되어 입시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 순간 그 편향은 더 심해질 것은 뻔하다. 코딩 교육 의무화가 발표되면서부터 넘쳐나는 각종 교보재와 학원이 이에 대한 좋은 사례다. 사실 필자마저 의무화란 계기가 아니었다면 아이에게 코딩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딩 교육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이 증가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적어도 이번 아이와의 교육에서는 그렇다.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한 논리적 사고를 코딩 블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거기에 더해서 몇 가지 필수적인 코딩 패턴을 따라 한 것뿐이다. 입시를 위해 수학 문제 풀이 방법을 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수학 교육이 논리적 사고 배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코딩 교육 의무화를 맞이하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다.

 

각종 어린이 코딩 자격증이 머리를 들고 있다. 어린이 코딩 경진 대회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이런 움직임에 발맞춘 학원들의 행보도 재빠르다. 포털에서 '코딩 연습' 혹은 '코딩 대회'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모두 입시와의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면 스스로를 '컴퓨팅 사고력 및 협력적 문제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교과'라고 칭하는 정규 정보 교과는 전혀 컴퓨팅적이지 않고, 협력적이지도 않으며, 문제해결과도 관계가 없다.

 

머리카락 한 올만큼 보다 훨씬 많은 긍정성

 

교재선택부터, ″Hello, World!″에 입문해 프로그램 오류 ′버그′를 경험하는 등 12화에 걸쳐 개발자인 아빠가 아이에게 교육실험을 진행했다.
교재선택부터, "Hello, World!"에 입문해 프로그램 오류 '버그'를 경험하는 등 12화에 걸쳐 개발자인 아빠가 아이에게 교육실험을 진행했다

그렇다고 아이와 진행한 코딩 교육이 의미 없다 폄훼하기는 왠지 께름직하다. 머리카락 할 올만큼의 긍정성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실험은 실패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비록 4차 산업 혁명의 창의력을 찾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대형 서점을 찾았다. 아이가 스스로 따라 할 수 있을만한 교재를 찾기 위함이었다. 역시 교재는 넘쳐났다. 그렇다고 큰 망설임은 없었다. 시작할 때와 다르게 교재 선정의 기준이 좀 더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려워했던 변수와 중첩 판단 등을 더 자세하게 다룬 교재를 구입했다. 아이에게 건네주며 1주일에 스스로 따라 할 수 있는 분량을 숙제로 내줬다.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아빠에게 바로 물어보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일부러 무심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반복과 훈련인데, 스스로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며칠 동안 저녁 식사 후 혼자 엔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진도가 궁금하여 아이가 저장해 놓은 코드를 살짝 열어 보았는데, 숙제가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것이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아이는 교재와는 전혀 다른 코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저번 시간에 아빠가 알려준 그거 있잖아.”라며 ‘작품 공유하기’ 메뉴를 가리켰다. 다른 사람이 만든 코드를 보고 따라 해봤다는 것이다. 메뉴를 눌러봤다. '아이스바 만들기'나 '핼러윈 탈출', '멍뭉이 대전쟁' 등 아이에게 흥미로운 제목의 코드들이 펼쳐졌다. 아이가 만든 코드도 살펴봤다. 단순하게 따라 하기만 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엔트리의 ‘장면 전환’ 기능이 포함되어 있었다. 교육 중 배우지 않은 것이다. ‘장면 전환’의 의미를 알고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아이는 몇 개 따라 해보면 당연히 알게 된다며 우쭐해했다.

 

아이가 스스로 놀이처럼 만든 결과물들이다. 대부분 교육 내용에 포함되지만 몇가지 기능은 따라하는 과정에서 혼자 깨우친 것들이다.
아이가 스스로 놀이처럼 만든 결과물들이다. 대부분 교육 내용에 포함되지만 몇가지 기능은 따라하는 과정에서 혼자 깨우친 것들이다.

아이에게 엔트리 공간은 놀이터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동네 오빠, 언니에게 새로운 게임을 배우는 그런 놀이터 말이다. 게다가, 아이에게 코딩은 흙장난과 같은 놀이였던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수고 다시 만들 수 있는 모래성과 같았던 셈이다. 과장해 말하면, 큰 비용이 필요치 않은 실패 경험을 제공하는 코딩의 장점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교재 따위나 던져 주는 정도 밖에 안되는 필자의 상상력이 부끄러워졌다. 4차 산업 혁명에 걸맞은 창의력이 필요한 사람은 정작 필자라는 사실이 뼈져리게 느껴졌다.

 

교육 종료 후 3달 정도 지났다. 길을 지나가거나 티브이에서 코딩과 관련된 것들이 보이면 매우 반가워한다.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아이들은 의외로 단순하다. 어떤 기준을 넘기면 자랑하고 싶어 하고, 그 이상을 해보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아이에게 던져지는 기준점이 가지는 큰 장점이다. 아이가 좀 더 흥미를 가진다면 'meowbit' 과 같은 게임 프로그래밍 플랫폼을 도전해보고 싶으나, 그건 전적으로 아이가 판단할 몫이다.

 

지금도 아이는 할 일이 없을 때면 엔트리로 뭔가를 만들곤 한다. 종이접기나 슬라임 만지작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코딩 스킬이 딱히 는 것 같지는 않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잘 안 만들어질라치면 개발자 아빠 찬스를 다시 사용하면 그만이다.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 하나가 더 만들어진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교육의 긍정성은 머리카락 한올의 무게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혼자만의 우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아내의 큰 그림에 속았다는 의혹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필자소개

김기산 기업에서 IT 디바이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20년 가까이 리눅스 개발자로 지내다가 뜻밖의 계기로 육아휴직을 냈다. 지난해 한층 강화된 '아빠의 달' 제도의 수혜자로, 9살 아이와 스킨십을 늘리며 복지 확대의 긍정적인 면을 몸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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