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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끊긴 北 내년 6월 결핵약 동나…한국사회 마음으로 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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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끊긴 北 내년 6월 결핵약 동나…한국사회 마음으로 안아야"

2019.05.30 15:15

 

유진벨재단 의료진이 북한에서 결핵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모습. 유진벨재단 제공
유진벨재단 의료진이 북한에서 결핵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모습. 유진벨재단 제공

"어떤 날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맑은 날처럼 술술 잘 풀리다가도 어떤 날은 미세먼지가 낀 것처럼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남북 관계와 분위기에 따라 북한 결핵 지원 사업의 가능성이 크게 달라진다. 정치 문제를 떠나 한반도에서 결핵을 퇴치하려면 한국 사회가 나서야 한다."

인세반(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은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진벨재단 방북 기념 기자회견'에서 현재 북한의 심각한 결핵 상황을 해결하려면 한국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 회장은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진벨재단 방북대표단을 이끌고 결핵 환자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북한을 다녀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현재 북한 결핵 환자 현황과 의료 지원의 어려움과 한계를 설명하고,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조기 진단-조기치료-확산 방지' 치료 프로그램 운영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이 북한 내 결핵 환자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세반 유진벨재단 회장이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내 결핵 환자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유진벨재단은 1995년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던 북한 주민을 위한 식량 지원을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북한 내 결핵 퇴치를 위해 결핵 치료제와 진단 장비를 지원하는 등 의료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08년부터는 두 가지 이상의 치료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에 감염된 환자(다제내성 결핵환자)를 위해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조기 진단하고 조기 치료하는 프로그램(EDET)’을 개발해 평양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핵 환자를 조기에 진단하면 그만큼 완치할 가능성이 크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위험도 낮출 수 있다. 현재 북한 내 약 700명의 환자가 이 프로그램에 등록돼 있다. 대부분 일반 결핵치료제(약제 감수성 결핵약제)에는 내성을 갖고 있어 일반 약으로는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환자들이다. 

 

인 회장은 북한에서 결핵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를 꼽았다. 다제내성 결핵을 검사하는 장비인 ‘진엑스퍼트’와 이 장비를 활용하기 위해 환자의 객담을 담는 ‘일회용 진단카트리지’, 일반 결핵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약제 감수성 결핵약제’와 이 약에 대해 내성을 가진 환자를 위한 ‘다제내성 결핵약제’, 그리고 결핵 환자가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고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깨끗한 ‘병동’이다. 


내년 6월이면 북한 내 결핵약 바닥

유진벨재단이 북한 내 다제내성결핵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건립한 20개 병동. 유진벨재단 제공
유진벨재단이 북한 내 다제내성결핵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건립한 20개 병동. 유진벨재단 제공

이날 유진벨재단은 북한 내 결핵 상황을 보여주는 통계 지도를 공개했다. 북한의 각 지역별로 인 회장이 꼽았던 다섯 가지  요건이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에 대한 통계다.

 

북한 보건성과 세계보건기구(WHO), 재단이 지원하는 다제내성치료소 12곳 등 여러 기관의 자료들을 바탕으로 유진벨재단에서 재구성했다. 한 기관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한 통계가 아니므로 실제 상황과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껏 어떤 기관에서도 조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북한 내 결핵 환자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이 중에서 그나마 북한 전역 곳곳에 잘 갖춰져 있는 것은 약제 감수성 결핵 약제다. 그간 국제기금 글로벌펀드에서 100%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글로벌펀드 이사회에서는 앞으로도 북한 내 지원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지 않았다. 

 

인 회장은 “당장 내년인 2020년 6월이면 북한 내 약제 감수성 결핵 약제가 바닥날 예정”이라며 “글로벌 펀드의 지원이 이대로 끊기면 결국 일반 결핵에 감염된 환자들마저 치료받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금 당장 치료제를 북한에 보낸다고 하더라도 통관과 검역 등 여러 절차까지 고려하면 주문에서 배송까지 최소 9개월이 걸린다”며 “현 시점에서 더 이상 지원하지 않는다면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공백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핵으로 숨지는 환자수가 다시 급증하거나 대규모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진엑스퍼트는 평양과 개성을 중심으로만 잘 구비돼 있다. 유진벨재단과 글로벌펀드에서 지원한 덕분이다. 이전에는 약제 감수성 결핵 약제를 수 개월간 먹고도 낫지 않는 환자를 다제내성 결핵환자로 분류했지만, 이 장비를 이용하면 단 90분 만에 다제내성 결핵을 진단할 수 있다. 환자의 객담 등에서 결핵균의 특정 DNA 염기서열과 약제 감수성 결핵 약제(리팜피신)에 대한 내성 유전자를 검출하는 원리다. 

 

그래서 평양과 개성, 그리고 두 도시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황해북도에서는 다제내성 치료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황해남도 등 거리가 먼 지역은 재단 의료진이 1년에 이틀씩 방문할 때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그마저도 의료진을 만나러 올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진전된 환자에게는 기회도 없다. 
  
지난해 11월 유진벨재단은 통풍이 잘 되면서도 격리돼 있고 온수를 이용한 난방시설을 갖춘 결핵환자용 병동 20개 동을 건설했다. 인 회장은 “현재 치료 프로그램에 등록된 환자만 700명”이라며 “환자들을 충분히 수용해 치료하려면 평양에만 최소 100개 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북한 결핵 퇴치에 나서야  

다제내성결핵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완치한 환자들이 찍은 기념사진. 유진벨재단 제공
다제내성결핵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완치한 환자들이 찍은 기념사진. 유진벨재단 제공

유진벨재단은 내년 6월 글로벌펀드의 약제 감수성 결핵 약제 지원이 끊길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아무리 재단에서 다제내성 결핵환자를 치료한다 하더라도, 일반 결핵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결핵이 크게 확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만큼 다제내성 결핵환자가 증가할 가능성도 커진다.  

 

인 회장은 “글로벌펀드 등 국제기구의 도움도 절실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가 나서서 북한 내 결핵을 퇴치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국제사회에만 의존했던 북한의 결핵 문제를 한반도의 문제라 생각하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재단에 모금을 지원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최세문 유진벨재단 이사(국제보건학 박사)는 “과거 대한결핵협회가 마련한 장비를 재단이 방북할 때 전달한 경험이 있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북한에 결핵약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노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인 회장은 “현재 남북관계, 북미관계 등 정치적 관계와 사회적 분위기를 떠나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결핵 환자의 생명만을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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