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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과학은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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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과학은 왜 어려운가

2019.05.30 15: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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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렵다. 쉽지 않다. “과학은 왜 그리 어려운가요?” 대중강연에서 흔히 듣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원래 어려워요.” 물론 이렇게 대답하면 나의 형편없는 강의 실력이 숨을 공간이 생긴다. 그래도 내 대답은 진심이다. 과학은 원래 어렵다. 이 점을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과학과의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왜 과학은 원래 어려울까? 특히 우리에게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어지간한 교양과학책을 펼쳐보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어르신들부터 나온다.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뭔가, 즉 근대과학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16~17세기 이른바 ‘과학혁명기’라 부르던 시기의 서유럽에서였다. 역시나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과학은 남의 것이다. 과학을 배우는 일은 외국어를 배우는 일과도 비슷하다. 우리에게 없던,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진입장벽이 있다. 과학을 접할 때마다 이건 외계어야, 라는 느낌이 든다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보통 사람이 영어나 스페인어, 또는 라틴어로 쓰인 문장을 보고 친숙한 느낌이 들 수는 없다. 낯선 언어로 적힌 문장들을 처음 보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난 정말 언어능력이 없나봐.”라고 자책하는 사람은 없다. 그건 원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장을 이해하려면 적잖은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문법과 단어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외국어를 배울 때 이런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애써 노력해야 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을 그냥 한번 슬쩍 훑어보고서 “난 정말 과학머리는 없나봐”라고 체념할 필요가 없다. 

 

과학은 남의 것이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점은 가장 기본적인 숫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숫자를 쓸 때 보통은 세 자리마나 쉼표를 찍어 자릿수를 표시한다. 가령 3천원은 3,000원으로 쓰는 식이다. 지금은 이런 표기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익숙하지만 우리의 숫자체계와 어울리는 표기법은 아니다. 세 자리마다 쉼표를 찍는 것은 세 자리를 기본으로 하는 숫자체계와 잘 어울린다. 영어에서는 일(one), 십(ten), 백(hundred), 천(thousand)이 기본단위이다. 천 다음 단위인 만(10,000)은 영어로 ten thousand이다. 천이 열 개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10,000으로 적는 것이 편리하다. 쉼표 앞의 10(ten)과 쉼표 뒤의 1000(thousand)이 확연하게 구분돼 읽기가 쉽다. 천이 천 개 모이면 새로운 단위인 백만, 즉 million이 등장한다. 백만이 다시 천 개 모이면 billion(=10억)이라는 새로운 단위가 나온다.

 

무엇이 더 읽기 쉬운가?
무엇이 더 읽기 쉬운가?

반면 우리에겐 이런 표기법이 그다지 편리하지 않다. (익숙함과 편리함은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숫자체계에서는 네 자리마다 새로운 단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 십, 백, 천, 만을 숫자의 기본단위로 한다. 만이 열 개 모이면 십만, 백 개 모이면 백만, 이런 식이다. 만이 만 개 모이면 새 단위가 필요하다. 바로 일억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억 단위가 큰 숫자의 대명사이다. 영어에서는 백만이 새로운 숫자단위이기 때문에 큰 숫자의 대명사이다. ‘백만장자’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우리에게 백만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만이 100개 있을 뿐이다. 우리에겐 ‘억만장자’가 더 솔깃하다. 

 

이렇듯 우리는 네 자리 단위로 숫자를 읽기 때문에 만은 10,000보다 1,0000으로 써야 더 쉽다. 삼백칠십오만은 375,0000으로 쓰면 편리하다. 우리에게 편리하지는 않지만 익숙한 표기법인 3,750,000은 영어로 읽기가 더 쉽다.  숫자3 다음의 쉼표 때문에 three million으로 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가 크지 않을 때는 세 자리로 쉼표를 찍더라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523,765,800 정도만 되더라도 우리는 자릿수를 세어봐야 5억2천3백만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전히 영어로는 쉽다. 523 million···으로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네 자리 기준으로 쉼표를 찍는다면 5,2376,5800이 되어 5억2376만이라는 숫자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천 단위 숫자 표기 방식
천 단위 숫자 표기방식

공공기관의 문서에서 큰 단위 숫자를 쓸 때 천원 단위로 숫자를 표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을 것이다. 가령 강연료로 50만원이 책정돼 있다고 하면 보통 이를 500천원으로 쓴다. 500,000을 더 쉽게 쓰기 위한 방편이지만 우리의 숫자체계에서는 혼동을 피할 길이 없다. 최근에 나는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추정 건립비용으로 “214,248 백만 원”으로 나와 있었다(2016추정치). 액수가 커지니까 아예 백만 단위 이하는 생략하고 표기한 것이다. 백만 원 단위이하까지 숫자로 쓰면 214,248,000,000원이다. 그냥 봐서는 한눈에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이 액수가 얼마인지 알아보려면 자릿수를 세어 봐야 한다. 2천1백4십2억4천8백만 원이다. 만약 이 숫자를 2142,4800,0000 이렇게 쓰면 적어도 우리에게는 훨씬 읽기 쉽다. 쉼표로 나누어진 2142는 그냥 2천1백4십2로 읽으면 된다. 자릿수는? 네 자리 쉼표가 둘 있다. 이는 만 자리가 두 번 있다는 얘기다. 즉 만의 만 자리, 따라서 억 단위이다. 따라서 2142는 2천1백4십2억이 된다. 너무나 쉽다. 그 뒤의 4천8백, 그리고 ‘만’은 더 쉽다. 숫자가 커서 읽기 어려운 게 아니라 자릿점이 우리 체계와 안 맞기 때문에 읽기 어렵다. 그렇다면 공문서에서 큰 숫자를 쓸 때 백만 단위가 아니라 우리식으로 1억 단위로 끊어서 쓰면 훨씬 편리하다. 즉, ‘214,248 백만 원’이 아니라 ‘2142.48억 원’으로 쓰면 혼동의 염려 없이 한눈에 숫자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한글맞춤법을 찾아보면 제44항에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고 돼 있다. 예컨대 ‘이천백사십이억 사천팔백만 원’ 또는 ‘2142억 4800만 원’이라고 써야 우리 맞춤법에 맞다. 이렇게 쓰면 아무리 큰 숫자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숫자읽기부터 우리는 불편하다. 숫자만 보면 골치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여러분 탓이 아니다. 여러분이 ‘수학머리’ 또는 ‘과학머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굳이 탓을 하자면 여러분 탓이 아니고 우리에게 편리한 표기법을 세계표준으로 만들지 못한 조상님들 탓이다. 


서구의 숫자 표기가 세 자리 단위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세 자리마다 고유의 접두사를 도입해서 쓰고 있다. 몇 가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 접두사의 어원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어이다. 역시 우리에겐 낯설고 어렵다. 예컨대 십억을 뜻하는 기가(giga)는 고대 그리스어로 거인(giant)을 뜻한다. 영어로 gigantic은 아주 아주 크다, 어마무시하게 크다는 뜻이다. 십억 분의 일을 뜻하는 나노(nano)의 어원은 그리스어 나누스(nanus)로, 난쟁이란 뜻이다. 우리에겐 십억이라는 단위도 익숙하지 않고 giga나 nano라는 말도 어렵다. 저쪽 사람들은 우리보다 쉽게 익힐 수 있다. 과학을 접하는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과학이 원래 우리 것이 아닌데다 과학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에겐 왜곡된 선입견도 있다. 십 년 쯤 전 고등과학원에 있을 때 영화 제작진 한 분이 나와 동료연구원을 찾아왔었다. 영화 하나를 제작 중인데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어떤 공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얘기를 듣던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시간이 며칠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이라는 말에 그 제작진은 화들짝 놀랐다. 고등과학원에 있는 과학자들이라면 그 정도 공식쯤은 자신이 질문을 하자마자 10분 안에 주르륵 적어줄 것이라 예상했다며 크게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엔 우리가 물었다.


“그런데, 자문료는 얼마 정도로 책정돼 있습니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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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제작진의 표정은 놀람을 넘어 경악에 가까웠다. 자문료 같은 건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이렇게 먼 길을 찾아와서 물어보면 여기 과학자들이 순식간에 원하는 답을 적어주고, 그러면 제작진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주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100억 원에 달한다고 알려진 그 영화의 제작비에 전문가 자문료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번에는 우리가 놀랐다. 과학에는 돈을 쓰지 않고 요즘 말로 ‘열정페이’를 바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지만, 나는 과학을 일종의 문제해결 자판기, 또는 원하는 건 뭐든지 즉각 가져다주는 도깨비 방망이로만 받아들이는 자세가 못내 아쉬웠다. 이는 한탕주의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게 내 나름의 결론이다. 


첫째, 과학은 우리 것이 아닐뿐더러 과학이 형성되는 과정이나 사회화되는 과정으로서의 과학문화가 우리에겐 부족하다. 하지만 그 결과의 경이로움과 위력은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과학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도 깔려 있다. 한국 현대사에 드리운 우리의 트라우마 중 하나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는 산업화·근대화가 늦어 일제식민지가 되었고 이후 분단과 내전을 겪은 뒤 지금 힘들게 살고 있다, 우리가 제때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산업화에 성공했더라면 지금 선진강국으로 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구호에는 이런 우리의 트라우마가 잘 드러나 있다. 4차 산업혁명에 지금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나는 ‘4차’가 아니라 ‘산업혁명’에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을 선도하거나 그 바람을 잘 타면 선진강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또는 믿음. 그러니까 과학기술은 산업화나 산업혁명의 원동력이고 그게 곧 국가발전으로 연결된다. 산업화가 한참이던 박정희 시절 형성된 우리의 과학기술관이 바로 이것이다. 체화하지 못한 어떤 가공할 무언가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결과에 대한 조급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탕주의이다. 뭔가 한방으로 인생을 역전할 수 있고 나라의 운명조차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 


둘째, 우리의 학교교육과도 관계가 있다.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에서는 문제 유형별 솔루션을 찾기만 하면 순식간에 문제가 풀린다. 그 길에서 한 발이라도 어긋나면 주어진 시간 내에 절대로 풀 수 없다. 일종의 마스터키인 셈이다. 유형별 마스터키만 찾으면 어떤 문제라도 쉽게 풀린다. 마스터키를 찾는 방법을 잘 익히려면 좋은 학원에 가야 한다. 이 규칙에 길들여지면 세상 모든 문제마다 순식간에 해결해줄 마스터키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고등과학원 연구원에게 순식간에 수식을 기대했던 영화 스태프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직 과학자들은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어떤 마스터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세상에는 과학자들조차 잘 모르는 현실이 너무나 많다. 

 

마스터키를 너무 신봉하면 무리한 요구도 남발한다. 어떤 과학이슈가 터질 때마다 나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라는 말을 신물 나게 듣는다. 단언컨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현대과학은 거의 없다. 과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신에게 마스터키만 주어지면 아무리 어려운 현대과학도 단숨에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또한 변형된 한탕주의이다. 지적 한탕주의. 현대과학의 근간을 이루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0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고 효율적으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했고 교과서를 써 왔다. 만약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지난 100년 동안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비법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우리 한국 사람들만 모르는 비법이 지구 어딘가에 있는 것일까? 차분히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현대과학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편이 차라리 속편하다. 이 세상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없더라도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 초등학생들에게는 투표권이 없지만 민주주의는 대단히 중요하다. 엄청난 지적 고통을 감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다. 현대과학도 그 중의 하나이다.

 

지적 고통을 감내할만한 가치 있는 것들, 그 중 하나가 현대과학이라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적 고통을 감내할만한 가치 있는 것들, 그 중 하나가 현대과학이라 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말 속에 포함된 일종의 권력관계를 목격한다. 어려운 법률용어나 의료용어가 신문기사에 등장할 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된 경우를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미필적 고의’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곤 한다. 초등학생이 이 말을 이해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언론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현대의 교양인으로 살아가려면 이 정도 수준의 말은 알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그런 합의가 없다. 몇 년 전 나는 유력 일간지 기고문에 ‘쿼크(quark)’라는 단어를 썼다가 데스크에서 ‘데스킹’ 당한 적이 있었다. 쿼크는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 중 하나로, 이 말이 나온 지가 반세기도 넘었다. 과학용어는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어줘야 하지만 법률용어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나는 이게 늘 불만이다. 

 

나의 소박한 저항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이유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나요?”라고 반문하는 정도였다. 때로는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하는데, 이때 나의 준비된 반문은 “조선왕조실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나요?”였다. 언젠가 지방 도서관에 강연하러 가서 이 주제로 얘기를 하던 중에 비슷한 예를 들려고 하다가 사도세자의 사례는 너무 심하다 싶어서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유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나요?”로 에피소드를 바꾸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장 앞줄에 앉은 한 초등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이른바 ‘4불가론’을 줄줄줄 읊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는 경악한 표정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주변 어른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역시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대단하긴 하다. 그 뒤로 나는 다시는 위화도 회군의 사례를 꺼내지 않았다. 

 

참고자료

1. 숫자를 쓸 때 국제적인 공식 표기법은 세 자리마다 띄어쓰기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Decimal_separator)
2.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비용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자연사박물관건립 실행계획 수립 연구 (http://www.prism.go.kr/homepage/entire/retrieveEntireDetail.do;jsessionid=D2020BF0A830279AC3914FE03936C8FE.node02?cond_research_name=&cond_research_start_date=&cond_research_end_date=&research_id=1371000-201600132&pageIndex=44&leftMenuLevel=160)

3.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왜 어려운지는 해당 분야를 소개할 때에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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