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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일 대신 선택한 AI 개발, 정확해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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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일 대신 선택한 AI 개발, 정확해서 뿌듯했다"

2019.06.04 14:55
지난해 북미영상의학(RSNA)에서 루닛 인사이트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서범석 루닛 대표. 루닛 제공
지난해 북미영상의학(RSNA)에서 루닛 인사이트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서범석 루닛 대표. 루닛 제공

국내 인공지능(AI) 기업인 루닛은 이달 2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개발한 AI로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과를 정확히 예측한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사실 의료 AI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미국의 IBM가 2011년 개발한 왓슨이다. 왓슨은 의학교과서와 전문서적, 논문에 대한 빅데이터,  왓슨을 설치한 전세계 병원의 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치료 요법을 의사에게 추천한다. 일종의 스마트한 의학 백과사전인 셈이다. 

 

왓슨의 등장과 구글의 바둑AI인 알파고의 활약이 알려진 이후 국내외에서는 AI 붐을 타고 수많은 의료용 AI가 탄생했다. 의무기록이나 유전체 염기서열처럼 단어 데이터나 엑스선 촬영 이미지처럼 영상을 데이터로 한 AI가 대부분이다. 그동안 누적된 진료 기록이나 환자가 갖고 있는 유전자를 검색하거나, 영상을 판독해 종양을 찾아내는 원리다.

 

반면 루닛과 삼성서울병원이 최근 연구결과를 내놓은 AI인 '루닛 스코프'는 좀 다르다. 기존 면역관문억제제는 사람마다 반응성(약에 대한 치료효과)이 다르다는 한계가 있는데, 환자의 조직 영상을 보고 반응성이 얼마나 되는지 예측하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루닛 사무실에서 미국 출장을 앞둔 서범석 대표를 만났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였던 그가 어떤 꿈을 갖고 의료용 AI를 개발하게 됐는지 들어봤다.


-스펙이 조금 특이하다. 전문의인데 임상 대신 AI 개발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KAIST에서 생명과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본과에 학사 편입을 했다. 생명과학을 전공할 때부터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임상에서 환자에게 치료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성과나 기술에 대해 꿈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의대로 진학하게 됐다.

 

졸업 후 전공의를 한 이유는 실제로 환자를 봐야 의사로서 전문성과, 임상에서 어떤 것이 필요할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과를 두루 다룰 수 있는 가정의학과를 전공했다. 상급종합병원뿐 아니라 1차병원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수련했다.

 

군의관으로 제대한 뒤에도 연구 개발에 대한 꿈을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학부 때부터 친했던 친구인 백승욱 전 루닛대표(현 이사회의장)가 창업한 이 회사에 의학 전문가로 들어왔다. 


-원래 의료용 AI 회사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의료용으로 특화한 이유가 무엇인가 
 
백 전 대표가 루닛을 설립할 때만 해도 의료용 AI만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초기에는 의상을 매칭해주는 패션 AI를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패션 분야에서 AI를 개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람과 옷에 대한 매칭 능력이 80%나 90%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료용 AI 개발에 착수했다. 의학 분야는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잘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의학에서는 생존율 며칠, 몇 개월도 큰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때 나도 루닛에 같이 합류했다. 현재 루닛에는 총 70명 직원이 있으며, 전문의는 나를 포함해 6명이 있고 AI 개발자도 40명 정도 있다.


지금까지 루닛에서는 어떤 의료용 AI를 개발해왔나. 실제 병원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있나

루닛이 면역관문억제제에 대한 치료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개발한 조직 슬라이드 분석 AI 루닛 스코프. 루닛 제공
루닛이 면역관문억제제에 대한 치료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개발한 조직 슬라이드 분석 AI '루닛 스코프'. 루닛 제공

루닛에서 개발하고 있는 AI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흉부 엑스선 이미지를 판독하는 AI '루닛 인사이트'다. 이 AI는 독자적인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폐암 결절로 의심되는 이상부위를 최대 97% 정확도로 찾아낸다. 심지어 심장이나 갈비뼈 등 다른 장기에 가려 놓치기 쉬운 결절도 정확히 찾아낸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를 받고 올해부터 서울대병원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루닛 스코프처럼 치료 후 반응성을 예측하는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는 AI다. 이번에 시카고에서 초록을 발표하는 연구결과 내용이다.

 

면역관문억제제는 환자의 면역계를 활성화시켜 부작용이 거의 없이 암을 치료하는 신약인데, 사람마다 반응성이 다르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기존 사용했던 바이오마커(PD-L1)로 분석했을 때 이 약에 대해 반응성이 떨어진다고 결과가 나왔던 환자 중 52%가 루닛 스코프로 분석했을 때는 반응성이 높을 것이라고 나왔다. 이 환자들에게 면역관문억제제를 사용했더니 실제로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또 루닛 스코프가 반응성이 낮다고 예측한 환자에 비해 생존율이 3배나 길었다.


반대로 PD-L1이 반응성이 클 것이라고 예측한 환자 가운데 63%는 루닛 스코프로 분석해보니 반응성이 낮게 나타났다. 이들은 실제로 치료효과가 다른 환자에 비해 떨어졌다.

 

루닛 스코프의 정확도가 기존 바이오마커에 훨씬 높은 덕분에 치료를 받지 않을 뻔한 환자들도 살릴 수 있었다. 또 면역관문억제제에 대한 AI 연구 결과는 데이터를 모으기도 어렵고 의학적 전문성도 필요해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개발해온 AI가 주로 흉부 엑스선 이미지를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다. 흉부에 특화한 이유가 있나

서 대표가 루닛인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루닛 제공
서 대표가 루닛인사이트를 소개하고 있다. 루닛 제공

현재 루닛 인사이트와 루닛 스코프 외에도 흉부 엑스선을 보고 유방암을 진단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올 여름 쯤 식약처에서 인허가가 나올 예정이다.

 

이렇듯 우리는 주로 폐와 유방 쪽 질환을 진단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의료기기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정확도가 높아야 한다. 

 

임상의들에게 신뢰를 높이고 의학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임상연구를 통해 유용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를 만드는 것보다는 폐암과 유방암 같은 특정 질환에 초점을 둬서 개발하고 있다. 

 

지금은 영상 데이터 기반으로 AI를 개발하고 있는데, 유전체 데이터와 의무기록 데이터 등을 활용해 포괄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고 싶다.


-의료용 AI가 꽤 정확한 것 같다. 아직까지 한계점이라거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의료용 AI는 알파고 등 다른 AI와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새로운 데이터를 만났을 때 이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 아직은 개발 초기이므로 학습한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있다. 그래서 학습한 데이터와 차이가 큰 데이터를 만나면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국내 빅데이터로 학습한 AI로 미국 환자 데이터를 판독하려니 정확도가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현재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AI가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다.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지만, 막대한 데이터를 익힐 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앞으로 어떤 의료용 AI를 만들고 싶은가

 

먼저 판독할 수 있는 병변의 종류를 다양하게 늘리고 싶다. 지금은 엑스선 영상에서 폐암 결절 등 10종류를 판독하는 수준인데, 미래에는 좀 더 다양하고 정확하게 판독하는 AI가 탄생할 전망이다. 

 

의사가 적은 개발도상국에서 의사대신 환자를 진단하는 AI도 가능할 것 같다. 개발도상국의 작은 마을은 결핵 등 전염병에 대한 유병률이 높지만, 의료진 인프라가 적다. 전염병 증상이 나타난 환자를 위주로 객담을 검사해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AI를 만든다면 무척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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