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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손가락 비율은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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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6월 11일 16:28 프린트하기

손가락을 보고 상대방의 성적 취향 같은 특성이나 질병의 유무 등을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서로 인과관계가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손가락을 보고 상대방의 성적 취향 같은 특성을 파악하는 경우가 있다. 서로 인과관계가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대뇌피질 호문쿨루스(cortical homunculus)라는 게 있다. 뇌의 감각 피질과 운동 피질이 맡고 있는 면적에 비례해 인체를 묘사한 것이다. 감각 피질 호문쿨루스와 운동 피질 호문쿨루스 둘 다 입술과 손은 엄청나게 큰 반면 등이나 팔다리는 너무 왜소한 기형적인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는 엄밀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한 표현이다. 입술이나 손 같은 신체 부위를 맡고 있는 대뇌피질은 많은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정교한 움직임 정보를 내보내야 하므로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반면 등이나 허벅지, 팔뚝 같은 곳은 부분 부분에 그렇게 주목할 일이 없기 때문에 담당하는 대뇌피질의 면적도 얼마 되지 않는다.

 

몸을 우리나라 지도라고 보면 대뇌피질은 국회에 해당한다. 서울의 면적은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정보량에 해당)의 19%가 살기 때문에 국회의원수는 49명으로 전체 지역구 의원수 253명의 19%에 이른다.

 

반면 ‘발바닥이 인체의 축소판’이라며 경혈 자리를 묘사한 그림은 꽤 그럴듯하게 보임에도 왠지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서 있거나 걷거나 뛸 때 중요한 기능을 하는 발이 다른 신체 장기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세분돼 각각 서로 연결돼 있다는 말인데 뭔가 필연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서로 떨어진 장기나 조직이 연관돼 있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간염이 생기면 눈의 흰자위가 노래지는 황달이 나타난다. 따라서 발바닥도 다른 장기와 연결될 수 있겠지만, 발바닥 안에 모든 장기가 자리를 잡은 ‘발바닥 호문쿨루스’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다시 지도에 비유하자면 제주도가 우리나라의 축소판으로 제주 시내는 서울, 서귀포 시내는 부산 이런 식이니 말이다.  

 

‘이 양반, 서구 과학에 꽤나 치우쳐 있구만’하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서구 과학 가운데서도 ‘발바닥 호문쿨루스’처럼 미심쩍은 것들이 없지 않은데, 필자에겐 ‘손가락 비율(digit ratio)’이 대표적인 예다.

 

감각 피질 호문쿨루스(왼쪽)와 운동 피질 호문쿨루스(오른쪽)는 둘 다 입술과 손은 엄청나게 큰 반면 몸통과 팔다리는 왜소한 기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뇌가 처리하는 정보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엄밀한 뇌과학 연구의 결과다. 런던자연사박물관 제공
감각 피질 호문쿨루스(왼쪽)와 운동 피질 호문쿨루스(오른쪽)는 둘 다 입술과 손은 엄청나게 큰 반면 몸통과 팔다리는 왜소한 기형적인 모습이다. 이는 뇌가 처리하는 정보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엄밀한 뇌과학 연구의 결과다. 런던자연사박물관 제공

20여 년 동안 논문 1400편 넘게 나와

 

검지(두 번째 손가락) 길이(2D)와 약지(네 번째 손가락) 길이(4D)의 비율(2D/4D)이 많은 것을 얘기한다는 게 손가락 비율의 과학이다.  태아 시절 성호르몬에 노출된 정도에 따라 이 비율이 영향을 받는데,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될수록 그 값이 작아진다. 상대적으로 검지가 짧고 약지가 길다.

 

그렇다면 남녀의 손가락 비율은 어떨까. 당연히 남자 태아가 남성호르몬에 더 많이 노출됐을 것이므로 남성이 여성보다 손가락 비율 값이 작을 것이다. 실제 측정해보면 그렇다. 같은 성일 경우 태아 시절 남성호르몬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손가락 비율에 차이를 보일 것이다. 

 

남성호르몬은 뼈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대체로 골격이 큰 이유다. 따라서 약지가 검지보다 성장 촉진 효과가 더 크다는 건 약지의 뼈가 남성호르몬에 더 민감한 결과일지 모른다. 아마도 남성호르몬 수용체의 밀도가 더 높지 않을까. 그럼에도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런데 손가락 비율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손가락 비율은 검지와 약지의 길이를 재면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정량화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특성을 대신하는 지표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동성애 성향을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레즈비언의 손가락 비율을 조사해보니 여성 평균보다 값이 작았다. 여기서 검지에 비해 약지가 상대적으로 긴 여성은 레즈비언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태아일 때 상대적으로 높은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된 결과라는 해석이 덧붙으며 설득력을 더했다. 

 

손가락 비율 자체가 성별의 적합도나 성적 취향에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검지가 상대적으로 긴 게 여성으로 사는 데 어떤 도움을 준다는 증거는 없고 레즈비언은 검지가 긴 남성보다는 검지가 짧은 여성에게 여전히 성적 관심이 더 많을 것이다. 손가락 비율과 성적 취향 같은 특성은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연구가 폭넓게 진행되고 있는 건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관관계란 두 사건 사이의 관계로 데이터 값이 100% 비례할 때는 상관관계가 1이고 제멋대로일 때는 상관관계가 0이다. 키와 몸무게를 비롯해 많은 경우 둘의 상관관계 값이 0과 1 사이의 어디쯤이다. 

 

상관관계가 1에 가까울수록 측정하기 쉬운 하나를 알면 측정하기 어려운 다른 하나의 특성을 더 큰 확신을 갖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측정하기 쉬운 손가락 비율이 지표로 쓰인 논문이 1400여 편이라는 건 상관관계가 큰 특성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일 텐데 어떤 필연성을 떠올릴 수 없는 필자로서는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런 논문이 나오면 대중적으로 꽤 인기가 있어 언론매체에서 즐겨 소개함에도 필자는 다루지 않은 이유다. 

 

남녀 차이 고작 2%

 

손가락 비율은 검지 길이(2D)를 약지 길이(4D)로 나눈 값이다. 1998년 영국 리버풀대의 진화생물학자 존 매닝과 동료들이 오른손을 측정한 값으로 여성 평균은 1이고 남성 평균은 0.98이로 차이가 작다. 반면 같은 성별에서 분포 범위가 좁지 않아 그 값이 여성 평균인 1보다 큰 남성도 꽤 된다.  ′V. Altounian/사이언스′ 제공
손가락 비율은 검지 길이(2D)를 약지 길이(4D)로 나눈 값이다. 1998년 영국 리버풀대의 진화생물학자 존 매닝과 동료들이 오른손을 측정한 값으로 여성 평균은 1이고 남성 평균은 0.98이로 차이가 작다. 반면 같은 성별에서 분포 범위가 좁지 않아 그 값이 여성 평균인 1보다 큰 남성도 꽤 된다. 'V. Altounian/사이언스' 제공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이달 7일 손가락 비율의 과학에 회의적인 입장을 담은 심층기사가 실렸다. 읽어보니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과학자들이 꽤 많은 것 같아 반가웠다. 사실 손가락 비율의 과학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 실상을 알고 지금까지 글감으로 다루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먼저 손가락 비율의 남녀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작아 놀랐다. 여성은 평균 1이고 남성은 평균 0.98로 불과 2% 차이다. 키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 5%는 차이가 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예를 들어 여성 평균이 1일 때 남성 평균은 0.95) 필자는 오히려 기사가 의심스러웠다. 혹시 많은 데이터 가운데 기사에 유리한, 차이가 가장 적은 걸 고른 게 아닐까.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digit ratio’ 항목을 보니 이와는 다른 두 데이터가 나오는데 남녀차이는 비슷했다.  2005년 캐나다 앨버타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여성이 0.965, 남성이 0.947이고 지난해 영국 워릭대 학생들의 데이터는 여성이 0.968이고 남성이 0.951이다.

 

반면 여성 사이, 남성 사이에는 편차가 작지 않아 손가락 비율 값이 여성 평균보다 큰 남성이 꽤 된다. 따라서 남녀의 그래프를 합치면 쌍봉낙타형의 그래프가 나오는 게 아니라 단봉낙타형이 나온다. 반면 키의 경우 남녀의 평균 차이가 꽤 되기 때문에 데이터를 합치면 쌍봉낙타형 그래프가 된다. 

 

한 손가락 비율의 남녀 차이가 크기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남성의 평균 손 크기가 여성 평균보다 큰데 손이 커질 때 상대적으로 약지가 더 길어지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생긴 것일 뿐 태아 시절 남성호르몬 노출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손가락 비율은 태아 시절 남성호르몬 농도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손의 크기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손이 클수록 검지에 비해 약지가 상대적으로 더 길기 때문이다. 왼쪽 위는 남성 오른손, 왼쪽 아래는 남성 왼손, 오른쪽 위는 여성 오른손, 오른쪽 아래는 여성 왼손의 데이터로 모두 약지가 클수록(가로축) 손가락 비율 값이 작다(세로축). 남성의 손가락 비율 값이 작은 건 여성보다 손이 크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영국왕립학회보 B’ 제공
손가락 비율은 태아 시절 남성호르몬 농도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손의 크기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손이 클수록 검지에 비해 약지가 상대적으로 더 길기 때문이다. 왼쪽 위는 남성 오른손, 왼쪽 아래는 남성 왼손, 오른쪽 위는 여성 오른손, 오른쪽 아래는 여성 왼손의 데이터로 모두 약지가 클수록(가로축) 손가락 비율 값이 작다(세로축). 남성의 손가락 비율 값이 작은 건 여성보다 손이 크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영국왕립학회보 B’ 제공

물론 손가락 비율 연구 대부분은 남녀 평균의 차이가 아니라 같은 성별에서 상대적인 차이가 성적 취향 같은 다른 특성의 경향을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 쓰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상관관계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한다.

 

다음으로 손가락 비율이 대신하는 특성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좀 당황스럽다. 성적 취향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손가락 비율이 작을 때는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성이, 클 때는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 또 손가락 비율이 클 때는 남성이 심장병에 걸릴 위험성과  남성이 비만이나 대사질환에 대한 위험성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손가락 비율이 작을 때는 자폐스펙트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남성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클 때는 남성이 우울증에 걸릴 위험성과 조현병 위험성이 올라가는 등 정신질환과도 상관관계가 있다. 손가락 비율이 작을 때는 또 그 사람의 공격성이 높고 반면 클 때는 성격이 개방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심지어 손가락 비율이 크면 미신을 믿는 성향이 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술가들은 손가락 비율 값이 보통 사람들 평균보다 작고 손가락 비율 값이 큰 아이들이 숫자에 비해 문자에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마디로 손가락 비율은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사이언스’는 손가락 비율의 과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라서 그런지 등장하는 과학자 다수가 그런 입장이다. 특히 미국 에머리대의 행동신경내분비학자인 킴 왈렌 교수는 7년 전 학술지 ‘호르몬과 행동’의 편집장이 되면서 손가락 비율 논문은 받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의 심리학자 마틴 보라섹 교수는 “손가락 비교 연구는 알지 못하고 불확실한 토대에 지어진 집과 같다”며 “이런 연구가 과학을 ‘재현성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으로 또 어떤 손가락 비율 연구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이를 긍정적으로 다룰 일은 없을 것 같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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