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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테크니션이 아니라 '과학연구관'이라고 부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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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테크니션이 아니라 '과학연구관'이라고 부르라

2019.06.20 16:34

“이런 이유로, 나는 테크니션의 모든 경력 구조와 더불어, 강의를 하지 않는 연구 노동자들이 과학연구관(scientific officer)이라는 새로운 집단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재구성이 말도 안되는 박봉과 처우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마이클 후퍼, '테크니션도 과학자입니다' 중에서

 

역사에서 사라진 테크니션

 

테크니션도 과학자다라는 제목으로 1983년 New Scientist지에 실린 글의 일부
"테크니션도 과학자다"라는 제목으로 1983년 New Scientist지에 실린 글의 일부

로버트 보일의 실험실엔 수 많은 테크니션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역사에 이름이

남게 됐지만, 테크니션들의 역할은 역사에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보일이 살던 17세기 영국은, 왕정국가였으며 왕-귀족-평민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위계가 존재하던 사회였다. 테크니션의 역할이 보일이라는 과학자 한 명의 영광을 위해 희생되는 원리는, 당시 영국사회를 지배하던 권위주의에 기대고 있다. 실험실이라는 독립된 공간이 사회의 변화와 상관 없이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망상이다. 한 사회의 민주화가 진행될 수록 실험실도 민주적인 구조로 변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영국엔 여전히 노예제가 존재하고 있었고, 보일과 테크니션의 관계는 영국에 널리 퍼진 주종관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조선시대에 실험실이 생겼더라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보일의 실험실이 영국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에도, 서구사회에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지식 생산에 대한 선입견을 무시할 수 없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구사회의 지식생산 모델은, 예술, 인문학, 과학을 가리지 않고 한 고독한 지식인 개인이 영감을 통해 혹은 현실과 마주하며 만드는 이미지다. 이런 전통을 가진 서구사회에 과학과 과학자라는 직업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회를 지탱하고 사회구성원에 영향을 미치던 문화적 영향력이, 과학과 과학자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갈릴레오, 뉴턴, 케플러, 보일로 이어지는 과학자의 계보가 모두 과학자 개인의 영웅적 행보를 그리는 이유에는 서구사회의 지적 전통이 녹아 있다.

 

17세기 영국사회에서 과학이라는 학문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신사들의 지식활동은 자연철학에 매몰되어 있었다. 자연철학이라는 지식추구활동은 책을 읽고 서신을 교환하고 책을 쓰는 책상 위에서 벌어지는 작업이었다. 결국 학문을 추구하는 영국신사 대부분은 책과 펜 이외의 물건은 손에 대지 않는 학자군이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직접 화학물질을 만지고 기계를 조립해야 하는 과학자의 지식추구 활동은 낯선 무엇이었다. 보일이 직접 실험을 수행하면서도,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은 마치 테크니션들이 모두 한 것인냥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에 기름을 묻히는 활동은 신사의 일이 아니었다. 신사이면서 과학자이기 위해서 내놓을 수 있는 절충안은, 보일 자신은 두뇌가 되고 손이 될 테크니션들을 고용하는 방법 뿐이었던 것이다⁠. 

 

테크니션과 선거권

 

 

 제공 테크니션의 존재는 연구에 필수불가결하다. NASA 에서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테스트하고 있는 테크니션의 모습이다. NASA
제공 테크니션의 존재는 연구에 필수불가결하다. NASA 에서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를 테스트하고 있는 테크니션의 모습이다. NASA

인류 역사에서 지금처럼 평등한 참정권이 보장된 시기는, 인류가 씨족사회를 유지하던 원시시대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인류는 평등한 참정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해왔다. 처음엔 왕 한 명에게 모든 정치적 권리가 집중되었고, 그 다음은 귀족들의 연합체와 왕이 타협하는 방식으로, 그 다음엔 상인계급의 대두로 인한 참정권 확대가 생겨났다. 근대적 선거가 생겨났다고 해서 모두가 선거권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처음엔 성인 남성 인구 중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소유한 이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졌고, 이후 범위는 조금씩 확대되어 모든 남성의 선거권이 생긴 건 1900년 전후에 불과하다. 이를 이끈 건 차티스트 운동으로, 이후 명목상 재산에 상관 없이 선거권은 모든 남성에게 주어졌다.

 

불과 150년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참정권이라는 말은 입에도 담기 힘든 급진적인 발상이었다. 여성참정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건 1920년대, 너무나도 당연한 이 권리가 쟁취되기 위해서는 수십년의 싸움과 시간이 필요했다. 1944년 영국에서, 1948년 프랑스에서 겨우 여성참정권이 인정된다. 미국은 흑인에게 주는 선거권을 두고 1960년대 큰 갈등을 겪었다.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마틴 루터 킹의 연설과 행진으로 흑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게 불과 60여년 전의 일이다. 빈민에서 여성으로 그리고 소수인종으로,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의 상식이 현대사회에 자리잡은지 겨우 반세기가 지났다. 심지어 여전히 이런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도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현재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제도와, 그 제도를 구성하고 있는 시민의 상식은 당연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만약 150년 전으로 돌아가 그 시대를 살아내야 한다면, 가장 보수적인 한국의 극우세력조차 가장 진보적인 개인으로 탈바꿈할 정도로, 제도와 상식은 끊임 없이 진보하고 있다. 그 진보의 끝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청소년 참정권이 논의되고, 청소년의 선거연령이 한참 더 내려가야 한다는 논의가 오가는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과거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과거의 잣대로 민주주의를 마음대로 단정짓는 일에 능숙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완벽하거나 영원한 제도가 아니라, 끊임 없이 변화하는 제도일 뿐이다. 어제의 민주주의가 오늘의 민주주의가 아니듯, 내가 만족하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내일의 민주주의일 가능성도 없다.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민주주의는, 과거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따라서 미래의 민주주의도 아닐 것이다.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는 과정은 험난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민주주의는, 과거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따라서 미래의 민주주의도 아닐 것이다.

이제 실험실을 돌아보자. 17세기 보일이 만든 근대적 형태의 실험실에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실험실의 구조적 기틀이 마련됐다. 근대과학의 첫 실험실은 아직도 노예제가 존속하고 있던 왕정국가 영국에서 시작됐고,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귀족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근대적 실험실이라는 제도를 떠받치는 문화에도, 그런 당시의 관습이 스며들 수 밖에 없었다. 실험실의 주인은 단 한명의 과학자여야 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지식인상이 고독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남성 학자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실험실의 주인이 단 한 명의 과학자인 세상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제도와 문화가 바뀌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자 한 명이 제자를 길러 또 다른 과학자를 교육하는 제도는, 대학과 대학원으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과학자가 배출되는 과정에도 여전히 17세기의 도제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교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교수는 실험실이라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권력으로 자리잡는다. 뉴스를 자주 장식하는 교수의 갑질과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문제는 이런 구조적인 실험실 문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과학자 한 명이 실험실 전체의 우두머리가 되는 제도와, 과학자가 대학에서 교수라는 권력을 획득하게 된 배경, 그리고 이런 제도가 과연 과학의 발전에 합리적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토론해 본적이 없다. 과학자들의 실험실은 여전히 17세기에 머물러 있다. 

 

테크니션이 아니라 과학연구관

 

과학 분야에서 테크니션들은 제대로된 과학자로 교육받은 이들로 구성된다. sciencecouncil.org 제공
과학 분야에서 테크니션들은 제대로된 과학자로 교육받은 이들로 구성된다. sciencecouncil.org 제공

과학 분야마다 다르지만, 테크니션의 존재는 연구에 필수불가결하다. 과거에는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테크니션이 많았지만, 이제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테크니션들은 제대로된 과학자로 교육받은 이들로 구성된다. 지난 수십년간 대학이 학위공장을 운영하며 박사학위자를 지나치게 많이 배출한 탓에, 실험실의 우두머리인 교수가 되는 일은 박사학위자의 5%도 안되는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박사학위자들은 분야를 바꾸어 산업체에 취직하거나, 대학에 남기 위해서는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적 선택을 해야만 한다. 즉, 이제 테크니션도 상당수는 박사학위자인 경우가 많다.

 

박사학위란 기본적으로 어떤 학생을 과학자로 교육하는 커리큘럼의 총체다. 즉, 만약 누군가가 박사학위를 받았다면, 최소한 이 사람을 과학자로 부르는데 있어 주저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제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적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 아주 당연한 듯이 과학자 사회를 지배해왔던 과학자-테크니션의 이분법이 깨지고 있다는 뜻이다. 테크니션의 대다수가 과학자로 훈련받았고, 과학자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시대가 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보일의 실험실처럼 과학자는 실험실에 단 한 명 뿐이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참정권을 얻기 위한 계급은 모두 사회의 상식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던 이들은 그 상식을 보호하려 했다. 테크니션이라는 직책은 17세기의 산물이다. 가장 진보적인 지식추구활동인 과학계에서, 여전히 그런 전근대적인 제도를 신봉한다는게 아이러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스스로 과학을 지탱하는 제도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과학은 국가가 통제해 왔기 때문이다. 테크니션, 보이지 않는 기술자들의 문제에서 권력관계로 얼룩진 대학원생 문제까지···과학계가 맞닥뜨려야 하는 모순들 대부분은 바로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들이다. 만약 나는 과학자라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겐 과학자라는 지위를 주어서는 안된다. 여전히 여성의 참정권을 부정하는 자를 시민이라 부르면 안되는 것처럼.

 

1963년 요크 대학의 생물학 관련 테크니션이었던 마이클 후퍼는 “테크니션도 과학자다”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을 뉴사이언티스트지에 실으며, ‘과학연구관(scientific officer)’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제안했다. 때로는 명칭이 우리의 관념을 지배한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을 '경찰관(police officer)'라고 부르듯, 이제 기술자·테크니션·연구원 따위의 권력관계가 내포된 단어들을 대체할 때가 됐다. 실험실 테크니션의 문제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큰 난제이기도 하다.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푸대접은 실험실의 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테크니션이 아니라 과학연구관으로 부른다면, 아마 그들에 대한 존중이 한국 과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과학계에 미래는 없다

 

참고자료

- Hooper, B. 1983. Technicians are scientists, too. New Scientist, 18 July, p. 54.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일부 테크니션도 있다. 훗날 아이작 뉴턴과 심하게 대힙하는 로버트 후크 Robert Hooke도 보일의 조수 혹은 제자였다.

-보일의 실험실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다음 논문을 참고할 것. Shapin, S. (1989). The invisible technician. American scientist, 77(6), 554-563.

-'테크니션 몰락' 한국 과학계…"기술공황 올것" https://www.hellodd.com/?md=news&mt=view&pid=53220  (헬로디디, 길경애 기자)

 

※필자소개

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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