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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사람마다 '약발' 다른 이유는 장내미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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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사람마다 '약발' 다른 이유는 장내미생물

2019.06.25 13:00
인삼에 들어있는 사포닌인 진세노사이드는 장내미생물의 효소에 의해 화합물K로 전환돼야 장벽을 통해 흡수된다. 한국 사람 3분의 1의 장에는 이 효소가 없거나 부족해 홍삼차를 마셔도 인삼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강석기 제공
인삼에 들어있는 사포닌인 진세노사이드는 장내미생물의 효소에 의해 화합물K로 전환돼야 장벽을 통해 흡수된다. 한국 사람 3분의 1의 장에는 이 효소가 없거나 부족해 홍삼차를 마셔도 인삼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강석기 제공

지난 2011년 처음 위염을 앓은 뒤 거의 매년 이런저런 계기로 위염이 재발해 위산과다로 한동안 고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작년 연말에도 위염으로 한 달 넘게 시달렸는데 얼마 안 지나 지난달 초 또 재발했다. 마즙과 양배추즙은 기본이고 찰밥과 밤꿀까지 위에 좋다는 걸 이것저것 챙겨 먹고 아침 식후에도 커피 대신 역시 위에 좋다는 홍삼차를 마셨다. 그래서인지 한 달 만에 간신히 증상이 사라졌다.

위가 정상을 회복했음에도 이번에는 모닝커피로 돌아간 대신 계속 홍삼차를 마시고 있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수면의 질이 꽤 떨어져 하루 커피 두 잔을 한 잔으로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240g 한 병에 20만 원이나 하는 홍삼농축액을 물에 탄 차를 마시며 종종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내 장벽이 이 비싼 홍삼의 유효성분을 제대로 흡수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인삼의 사포닌인 진세노사이드는 화합물K로 바뀌어야 장벽을 통해 흡수되는데, 우리나라 사람 세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이렇게 바꿔주는 효소가 없거나 부족하다고 한다.

이는 우리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이 효소를 지닌 장내미생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결과다. 만일 필자의 장에 이 장내미생물이 살지 않거나 힘을 못 쓰는 상태라면(3분의 1의 확률이다) 홍삼차를 마시는 건 가성비가 낮은 일 아닐까.

 


간과 장내미생물의 불협화음

이처럼 천연물 성분이나 약 성분의 효과나 부작용은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이는 흡수와 대사의 차이 때문이다. 장벽에서 성분이 얼마나 흡수되는가와 간이 혈액에 있는 약물인 생체이물(xenobiotics)을 얼마나 빨리 대사해 없애느냐에 달려있다.

과거에는 약물이 흡수되는 건 물리적 현상으로 사람에 따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간의 대사 능력 차이에 주목했다. 실제 인간게놈연구가 진행되면서 간에서 특정 약물을 분해하는 효소가 속속 규명되고 유전형에 따라 분해 효율이 꽤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유전형에 따른 대사 효율의 차이가 적정 복용량을 정하는 데 반영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항 응고작용으로 혈전이 생기지 않게 하는 약물 ‘와파린’은 CYP2C9라는 효소가 분해하는데, 3형 유전자는 1형(정상) 유전자에 비해 약물 분해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부모 양쪽에서 3형 유전자를 받은 사람은 적정 복용량을 먹어도 혈중 약물 농도가 너무 높아(분해 속도가 느리므로) 혈뇨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요즘은 CYP2C9를 비롯해 대사 관련 유전자의 유전형을 분석한 뒤 개인별 적정 복용량을 정하고 있다.

한편 2000년대 들어 장내미생물 연구가 붐을 이루면서 천연물이나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장내미생물 역시 큰 역할을 하는 예들이 밝혀지고 있다. 홍삼의 경우가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물론 장내미생물이 약의 흡수에 긍정적인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약을 대사해 약효를 떨어드리거나 독성 물질로 바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장내미생물 에거텔라 렌타(Eggerthella lenta)는 심부전 치료제인 ‘디곡신’을 대사해 비활성형인 디하이드로디곡신으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장에 엑텔라 렌타가 많이 살 경우 디곡신이 대부분 분해돼 장벽을 통해 흡수되는 양은 훨씬 적어 약효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실제 20명의 분변을 채취해 얻은 장내미생물을 배양한 뒤 디곡신을 넣어 분해되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 디곡신 분해력이 약한 6명의 평균은 13%인 반면(따라서 87%는 온전하다) 분해력이 강한 14명의 평균은 96%에 이르렀다(불과 4%만 남았다). 다만 디곡신 분해에는 섭취한 음식의 단백질 함량 등 다른 요소도 관여하기 때문에 실제 개인차는 이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항암제 ‘이리노테칸’은 간과 장내미생물의 불협화음을 잘 보여주는 예다. 정맥에 주사하는 이리노테칸 자체는 효과가 없는 비활성형으로 간에서 효소의 작용으로 활성형인 SN-38로 바뀌어 암세포를 죽인다. 그리고 간에서 다른 효소의 작용으로 SN-38이 SN-38G로 바뀌어 쓸개즙에 섞여 장으로 배출된다.

그런데 몇몇 장내미생물에 SN-38G를 다시 SN-38로 바꾸는 효소가 있다. SN-38은 장벽의 상피세포를 공격해 심각한 설사를 일으킨다. 이를 막기 위해 항암제를 주사할 때 항생제 처방을 같이 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장내미생물 균형이 무너져 장내유해균에 취약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장내미생물의 SN-38G 대사 효소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물을 찾았고 동물실험으로 항암제의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처럼 여러 사례가 보고됐지만 장내미생물이 천연물이나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조망할 수 있는 연구는 아직 없었다.

 


95가지 약물 대사하는 미생물도 있어

학술지 ‘네이처’ 6월 19일 온라인판에는 이런 갈증을 해소하는 빅데이터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예일대 의대 연구자들은 분류학의 관점에서 인체 장내미생물을 대표하는 76가지 박테리아 균주를 선별하고 분자구조의 관점에서 경구용(먹는) 약을 대표하는 271가지 분자를 골라 모든 경우의 수(76×271)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배지에 박테리아 한 균주와 약물 한 가지를 넣어 배양한 뒤 약물의 농도변화(대사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적어도 한 가지 박테리아에 의해 대사돼 농도가 20% 이상 줄어드는 약물이 271가지 가운데 3분의 2인 176가지나 됐다. 한편 박테리아 76가지 균주 모두 약물 대사 능력이 있었는데, 적게는 11가지 약물에서 많게는 95가지에 이르렀다. 이들이 176가지 약물을 대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분자의 종류는 871가지나 됐다.

사람에 따라 장내미생물 조성이 꽤 다르고 이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걸 생각할 때(식단이 영향을 미치기는 한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개인차가 꽤 있는 현상의 배후에는 장내미생물이 간에 버금가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76가지 균주 가운데 몇 가지를 골라 약물 대사 메커니즘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예를 들어 271가지 가운데 46가지 약물을 대사할 수 있는 박테로이데스 테타이오타오미크론(Bacteriodes thetaiotaomicron)의 게놈을 잘게 쪼개 각각(무려 5만1000개!)을 대장균에 넣어준다.

이 가운데 특정 약물을 대사할 수 있는 대장균이 있다면, 그 안에 넣어준 박테로이데스 테타이오타오미크론의 게놈 조각에 들어있는 유전자가 바로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를 지정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혈압약인 딜티아젬(diltiazem)을 대사하는 효소 유전자가 규명됐는데(bt4096로 명명), 딜티아젬 분자에서 아세틸기를 없애는 반응을 촉매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연구자들은 모두 17개의 대사 관련 효소 유전자를 찾았다.

 

인체 장내미생물 76가지 균주와 경구용 약 271가지를 대상으로 대사 여부를 조사한 결과 176가지 약물이 적어도 한 가지 균주에 의해 대사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b) 46가지 약물을 대사할 수 있는 박테로이데스 테타이오타오미크론의 게놈에서 특정 약물을 대사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찾는 방법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게놈을 5만1000개 조각으로 쪼개 각각을 대장균(E. coli)에 넣어준 뒤 약물(여기서는 딜티아젬)의 농도변화를 본다. 만일 농도가 줄었다면 그 대장균에 넣은 게놈 조각에 대사 효소 유전자가 들어있는 것이다(아래). 네이처 제공
인체 장내미생물 76가지 균주와 경구용 약 271가지를 대상으로 대사 여부를 조사한 결과 176가지 약물이 적어도 한 가지 균주에 의해 대사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b) 46가지 약물을 대사할 수 있는 박테로이데스 테타이오타오미크론의 게놈에서 특정 약물을 대사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찾는 방법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게놈을 5만1000개 조각으로 쪼개 각각을 대장균(E. coli)에 넣어준 뒤 약물(여기서는 딜티아젬)의 농도변화를 본다. 만일 농도가 줄었다면 그 대장균에 넣은 게놈 조각에 대사 효소 유전자가 들어있는 것이다(아래). 네이처 제공


유전자 300만 개의 위력

한편 이번 연구는 장내미생물의 약물 대사와 관련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약물의 대사는 특정 박테리아의 존재나 밀도보다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의 양에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8명의 분변 시료에서 얻은 장내미생물 배양액에 딜티아젬을 넣어 대사되는 정도를 분석한 결과 박테로이데스 테타이오타오미크론의 점유율보다 bt4096 계열 효소의 양에 더 관련돼 있었다. 장내미생물의 조성보다 대사 관련 효소의 유무와 양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한 사람의 장에 있는 수백 종에 이르는) 장내미생물 전체의 유전자 수는 인간 게놈 유전자 수의 150배(약 300만 개)에 이른다”며 “이런 유전적 다양성이 약물을 대사할 잠재력이 있는 풍부한 효소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어디가 아파 병원에 2, 3주 다녀도 안 나아 다른 데로 옮긴 뒤 2, 3일 만에 치료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앞 병원의 의사는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의사가 선호해 처방하는 약물과 환자의 장내미생물 사이의 궁합이 맞지 않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장내미생물과 약물 대사처럼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통찰까지 얻게 됐다. 그럼에도 이런 성과가 실제 치료에 적용돼 약효는 높이고 부작용은 주는 혜택을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는 운이 꽤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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