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이질적인 소재의 경계에서 제조혁명 씨앗 찾는다

통합검색

이질적인 소재의 경계에서 제조혁명 씨앗 찾는다

2019.06.25 19:11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 연구단은 글로벌 프론티어 연구단 10곳 중 유일한 소재기술 전문 연구단이다. 현진 제공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 연구단은 글로벌 프론티어 연구단 10곳 중 유일한 소재기술 전문 연구단이다. 현진 제공

모든 기술의 기본은 ‘소재’에서 시작한다. 소재 하나가 가진 기능에서부터 새로운 기술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저장하는 소재가 나와야만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가 개발된다. 전기를 담는 소재를 개발해야 조금 더 오래 가는 배터리도 가능해진다.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로켓에 들어간 각종 첨단기술도 가장 맨 앞 부분의 소재가 지구를 탈출하며 받는 엄청난 열을 견디지 못하면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산업의 씨앗인 원천기술과 경쟁력은 대부분 첨단 소재기술에서 나온다. 제조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독일, 일본은 한결같이 소재기술에서도 앞서 있다. 반면 한국의 제조업은 제품 위주로 구성된다. 소재 기술이 강하지 않다 보니 가장 기초가 되는 부품 기술 또한 강하지 않다. 해외의 첨단 부품 기술을 확보한 기업이 대부분 강소기업임을 볼 때 한국의 중소기업 생태계가 약한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제품이 품질에서 세계경쟁력을 갖추고, 제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소재기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독일과 일본이 고기능 소재를 우선 개발하고 이후 부품으로, 제품으로 기술을 이어가는 것처럼 한국도 산업기술 구조의 전략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소재 원천기술이다.

 

세계가 미래 혁신 소재를 찾아 연구에 나서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첨단 소재기술로 인정받으며 산업 혁신을 위해 힘쓰는 연구단이 있다. 김광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연구단 단장(부산대 재료공학부 교수)은 “독일에는 소재 강소기업만 400개가 넘고, 일본은 200개가 넘지만 한국은 20개도 되지 않는다”며 “문제는 바로 소재에 있다”고 말했다.

 

 

첨단 소재연구의 한계,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로 돌파


지금까지 소재기술은 단일소재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치우쳐 있었다. 단일물질을 분자 단위에 가까운 나노미터(㎚, 10억분의 1m)까지 쪼개가며 연구하면서 여러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소재 연구가 분자에 다가갈수록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물리적인 한계 또한 뚜렷했다.

 

연구자들이 최근 돌파구로 삼는 것이 물질과 물질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소재에 관한 연구다. 하이브리드 소재는 서로 다른 물질이 연결돼 새로운 성능을 내는 소재를 뜻한다. 단순하게 붙이는 것이 아니라 원자나 분자 단위로 혼합하기 때문에 분자 간의 상호작용에서 새 기능을 만들어낸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낼 수 있어 미래 소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하이브리드 소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페이스’다.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는 경계면을 뜻한다. 계면이라고도 한다. 특히 원자나 분자 단위까지 연구하는 소재 연구에서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질의 크기에선 두 물질을 붙이는 인터페이스 영역은 표면적의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 단위에서는 전체 면적의 최대 6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인터페이스에서 두 물질 간의 연결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소재 성능의 60%가 달린 셈이다. 실제로 이 영역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물리 화학적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2008년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는 영하 223도의 극저온에서 절연체와 금속성 물질의 인터페이스에서 새로운 특성인 초전도성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인터페이스에 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페이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다.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연구단은 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해 소재기술을 선도하고자 하는 목표로 2013년 11월 출범했다. 연구단은 단일물질, 나노소재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이종물질 하이브리드 소재를 연구하는 데 있어 핵심은 인터페이스라고 보고 이 분야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있다. 단장인 김광호 교수를 중심으로 16개 대학과 3개 정부출연연구소의 40명이 넘는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연구하고 있다.

 

연구단은 글로벌 프론티어 연구단 10곳 중 유일하게 소재를 개발하는 소재기술 전문 연구단이다. 연간 80억 이상의 지원을 받으며 출범 후 5년 반 동안 SCI 논문 692건, 국내외 특허출원 177건, 기술이전 37건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2017년에는 연구단의 기술을 토대로 5개 기업을 창업했다.

 

소재부터 기능, 크기·· 차이에서 새로운 기능 만들어

 

하이브리드는 단순하게 다른 두 재료만의 결합을 뜻하지 않는다. 두 소재의 기능이나 두 소재의 크기 차이 등 차이가 존재한다면 모두 하이브리드화하는 게 가능하다. 얼핏 달라보이는 두 개의 기능을 어떻게 하나로 융합할 것이냐 큰 물질에 작은 물질을 붙여 어떻게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낼 것이냐는 모두 인터페이스에 달려 있다.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결합을 통해 자왜소재와 압전소재를 합한 무선센서용 자율전원 소재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자왜소재'는 자기장의 변화가 물질의 변형으로 이어지는 물질,  압전소재는 자기장 대신 전압으로 물질이 변형되는 소재다. 둘을 이어주면 자기장의 변화를 전압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두 소재의 인터페이스를 따라 변형이 전달되기 때문에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성능이 바뀐다.

 

연구단은 압전소재와 자왜금속소재의 결정이 인터페이스에서 어떤 방향으로 배치돼 있느냐에 따라 변형을 전달하는 특성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활용해 연구단은 산업용 네오디뮴 자석의 수백분의 1 수준인 7가우스(G)의 미세한 자기장에서도 사물인터넷(IoT) 무선센서를 배터리 없이도 구동하기에 충분한 3.8밀리와트(mW) 직류 전력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을 통해 연구단은 전류가 흐르며 자기장이 발생하는 고압선을 움직이며 감시하는 무선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김 단장은 “모든 전선엔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발생하는데, 송전선의 버려지는 자기장만으로 전기를 충전해 전선을 오가면서 안전성을 반영구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스마트 건물이나 수송기기에도 활용될 수 있어 향후  사물인터넷(IoT)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현장에 최적화된 '소재에서 기능 찾아내는 '보텀업', 기능 갖는 소재 찾는 '톱다운' 모두 가능해

 

연구단이 개발한 하이브리드 소재는 연구를 통해 상용화까지 나아간다. 기술 이전된 막대 형태의 2차전지 양극 소재는 테슬라에 들어가는 전기 배터리보다 성능이 30% 높다. 현진 제공
연구단이 개발한 하이브리드 소재는 연구를 통해 상용화까지 나아간다. 기술 이전된 막대 형태의 2차전지 양극 소재는 테슬라에 들어가는 전기 배터리보다 성능이 30% 높다. 현진 제공

하이브리드 소재에서 나오는 뜻밖의 기능은 곧바로 새로운 연구로 이어진다. 연구단은 지르코늄계의 양이온과 방향족 카르복시산 음이온을 결합해 3차원 골격 구조를 이루는 구멍이 많은 새로운 ‘금속 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해 지난해 10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했다. 이 물질의 특성은 물을 잘 흡수하고 잘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단은 여기서 물을 활용한 자연 냉매라는 응용법을 찾았다.

 

기존의 냉매는 프레온가스처럼 환경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 재료는 천연 냉매인 물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물은 흡수되면서 주변의 열을 가져가 냉방이 되고 수분이 응축되면 열을 방출해 난방할 수 있다. 분석결과 상업용 흡착제보다 냉방효율이 24% 높은 데다 기존 냉매와 달리 63도의 저온에서도 동작했다. 김 단장은 “이론적으로는 냉방 분야에서 기존 전력의 80%를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라며 “상용화되면 여름 누진세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 연구를 통해 기능이 만들어지면 제품은 하나만 나오지 않는다. 연구단은 이 재료의 수분흡착 능력을 활용해 과일이나 채소를 신선하게 저장하는 제습제로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였다. 과일과 이 재료를 함께 비닐 포장해 2주간 상온에 놔뒀더니 2주가 지나도 과일이 신선하게 유지됐다.

 

무턱대고 기능이 나오길 기다리며 소재만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연구 접근법을 활용해 소재의 효율을 극대화하면서 원하는 기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연구단이 개발한 막대 형태의 2차전지 양극 소재는 테슬라에 들어가는 전기 배터리보다 성능이 30% 높다. 연구단은 20억 원의 기술이전료를 받고 LG화학에 기술을 넘겼다. 이 기술은 현재 한국에서 제작되는 전기차를 만드는 데 바로 쓰이고 있다.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의 가장 직접적인 활용처인 두 면을 붙이는 물체인 접착제도 다수 연구했다. 연구단이 개발한 고성능 구조용 접착제는 중소기업에 이전돼 지난해부터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동력모터코어를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김 단장은 “차세대 운송수단에는 탄소 소재 등 각종 첨단소재가 들어갈 텐데 이때 필요한 것은 용접이 아니라 접착제”라며 “지금도 현대차 제네시스 한 대를 만드는 데 접착제만 100ℓ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연구는 소재를 개발하고 기능이 나오면 응용으로 이어 연구하는 '바텀 업' 방식과 기업과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능을 소재 개발 연구를 통해 찾아내는 '탑 다운' 방식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소재를 찾아 무궁무진한 용처를 찾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연구와 기업이 제품에 필요한 기능만 원포인트로 소재 최적화 연구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재·측정·전산 기술의 '인터페이스'에서 해답 찾아

 

연구단은 소재 제작 뿐만 아니라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조와 성능을 검증하는 연구자들과도 함께 해 주목받았다. 현진 제공
연구단은 소재 제작 뿐만 아니라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조와 성능을 검증하는 연구자들과도 함께 해 주목받았다. 현진 제공

연구단은 인터페이스를 연구하기 위해 직접 보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조를 예측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했다. 지금까지 소재 연구가 새로운 소재 제작에만 집중해 기능을 찾아보려 했다면 연구단은 인터페이스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관찰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해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소재 연구의 기간을 5년 이내로 단축해냈다. 소재기술과 측정기술, 전산기술의 인터페이스에서 효율적인 소재 연구의 길을 찾은 것이다.

 

연구단에는 고성능 전자현미경을 연구하는 집단과 전산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자의 성능과 형태를 검증하는 집단도 함께한다. 김 단장은 “인터페이스를 연구하기 위해 연구단을 처음 출범할 때부터 이런 접근법을 생각해 연구단을 구성했다”이라며 “관찰과 시뮬레이션을 모두 결합해 연구의 효율과 질을 높인 새로운 패러다임은 지금까지 소재 연구에서 없었다”고 말했다.

 

연구단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소재연구와 별개로 독자적으로도 인정받았다. 투과전자현미경(TEM)을 통해 촬영한 원자구조의 이미지를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초고해상도 이미지와 데이터로 변경하는 해석기법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 네이처 자매지에 6차례 소개될 정도로 학계에서 인정받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부상했다.

 

● "한국 최고 소재 연구자들을 연결해 신소재 찾는다"

 

김광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 연구단 단장
김광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 연구단 단장

부산대에 있는 김광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기반 미래소재연구단장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80인치 스마트 TV가 놓여있다.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연구자들과의 화상회의를 위해 설치했다. 19개 연구단체의 40명이 넘는 연구자를 관리해야 하는 고충이 느껴졌다. 김 단장은 “융복합적으로 소재를 연구하는 한국 최고 소재 연구집단이라는 프라이드로 일한다”며 “소재를 연결해 새로운 기능을 찾듯 연구자들을 연결해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고 있다”며 웃었다.

 

김 단장은 기초과학 연구와 비슷한 소재 연구야말로 장기간 연구할 수 있는 연구단이 필수라며 7년차에 돌입한 연구단이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김 단장은 “소재 연구는 과학기술처럼 원천기술을 찾는 연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 도중에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연구해야 예상치 않은 결과가 나온다”며 “지금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아도 연구자들을 믿고 버팀목 역할을 했더니 기다려준 연구자들에게 성과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라는 새로운 소재 연구 분야를 만들었다는 것이 김 단장의 자부심이다. 김 단장은 "해외 학회에서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라는 용어가 영감을 준다는 해외 연구자들의 말을 전해들었다"며 “앞으로 소재 연구가 가야 할 새로운 축 방향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시각을 찾지 못하던 연구자들에게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란 개념을 소개하니까 강도와 연성이 세계 최고 수준인 동합금 같은 새로운 소재를 뚝딱 만들어내더라”며 “앞으로 소재 연구는 새로운 연구개발(R&D) 시스템인 하이브리드 인터페이스 시스템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단장은 3년 뒤까지 지금까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보유한 원천기술을 산업으로도 전파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 단장은 “우리의 원천핵심 기술이 산업기술로 전파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며 “기술이 전파되는 시간과 투자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 기술력이 최대화되도록 흐트러짐 없이 남은 3년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6 + 10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

    관련 태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