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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입증한 CERN, 업그레이드 현장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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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입증한 CERN, 업그레이드 현장에 가다

2019.07.04 12:41
2021년 재가동을 앞두고 업그레이드 중인 거대 강입자가속기(LHC). 한국CMS팀
2021년 재가동을 앞두고 업그레이드 중인 거대 강입자가속기(LHC). 한국CMS팀

‘띠링’ 


눈 덮인 알프스가 보이는 들판을 얼마나 달렸을까. 휴대전화에 ‘로밍 요금 안내’ 메시지가 떴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7월 3일 오전 9시, 스위스 메헝 지역에 위치한 CERN을 찾았다. 지하 100m 아래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속기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보기 위해서다. LHC는 둘레 27km, 지름 3.5m인 고리 모양 터널에 설치됐다. 직접 와보니 이것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정문을 지나서도 한참을 달려 LHC의 네 검출기 중 하나인 CMS(뮤온 압축 솔레노이드) 건물에 도착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있는 CMS건물. 스위스 메헝=이영혜 기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있는 CMS건물. 스위스 메헝=이영혜 기자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CMS 빌딩입니다. 아직은 별 게 없어 보이죠?”


기자를 맞이한 막심 고브제비타 CERN 수석연구원은 곧바로 100m 지하로 이끌었다. ‘제2롯데월드’ 엘리베이터 대비 절반 속도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2초나 끊임없이 내려갔다. 그러자 지름이 15m, 길이가 28.7m의 거대한 구조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고브제비타 수석연구원은 구조물의 모양을 ‘파인애플’에 비유했다. 센서와 자석, 전선 등이 복잡하게 연결된 검출기가 일렬로 늘어선 것이 정말 파인애플을 가로로 눕혀 자른 모습 같았다. 그는 “LHC의 내부를 실제로 본 사람은 많지 않다”며 “가동 중에는 강한 자기장 때문에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CMS팀, 뮤온 검출기 업그레이드 주도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 대형강입자충돌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 대형강입자충돌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LHC는 2018년 12월까지 제2차 가동(Run2)을 마치고 설비 업그레이드와 데이터 분석을 하는 중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사다리에 올라 심각한 표정으로 검출기 부품을 들여다보는 엔지니어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CMS 업그레이드에는 한국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행한 한국 CMS팀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입자(양성자)간 충돌이 일어나는 관을 둘러싼 검출기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2021년 재가동을 할 때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기체전자증폭기(GEM·Gas Electron Multiplier) 검출기를 설치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GEM 검출기는 기체를 이용해 입자가 매체를 지나갈 때 발생하는 신호를 증폭시키는 장비다. 가령 가속기 내에서 힉스 입자가 붕괴해 뮤온 입자가 만들어졌다고 할 때, 뮤온 입자의 신호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GEM 검출기 개발은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GEM 검출기를 일부 조립하고 보관하는 904번 건물로 기자를 안내했다. 겉에선 허름한 창고처럼 보였는데 내부에는 첨단 클린룸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옷과 신발을 바꿔 착용하고 클린룸에 들어가 GEM 검출기의 핵심 부품인 GEM 호일을 관찰했다. 뒤 배경이 살짝 비치는 반투명 호일이었다. 

 

GEM 검출기의 핵심 부품인 반투명 호일을 들고 설명하는 정용호 성관균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스위스 메헝=이영혜 기자
GEM 검출기의 핵심 부품인 반투명 호일을 들고 설명하는 정용호 성관균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 스위스 메헝=이영혜 기자

GEM 검출기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정용호 성관균대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50~70μm 크기의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구멍을 균일하게 뚫는 우수한 반도체 식각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멍은 검출기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호일에 수백 볼트의 전압을 걸면 구멍 내부에 강한 전기장이 생성돼 1개의 전자가 들어오면 수백, 수천 개의 전자를 만들어낸다. 입자의 존재나 성격을 알려주는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셈이다. 
CERN은 2026년 가동 예정인 고광도 LHC(High-Luminosity LHC)의 GEM 검출기 생산을 한국CMS팀과 공동 연구한 한국 중소기업 메카로에 맡겼다. 일본의 KEK(국립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에서도 한국CMS팀이 개발한 GEM 검출기를 구매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은 구축 중인 한국형중이온가속기 ‘라온(RAON)’에 국내 개발한 GEM 검출기를 적용할 계획이다. 

 

●한국 과학자가 ‘인싸’가 되길 꿈꾸며  


2012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한 CERN은 다음 목표로 암흑물질이나 초대칭입자를 찾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21년 LHC를 재가동한 이후의 업그레이드까지 계획하고 있다. 2026년 가동 예정인 고광도 LHC가 대표적인 예다. 


고광도 LHC는 기존 LHC보다 광도를 10배가량 높일 예정이다. 광도를 높인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 내에 이뤄지는 입자들의 충돌 횟수를 높인다는 뜻이다. 이는 물리학자들이 힉스 보손과 같은 알려진 메커니즘을 더 자세히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입자들이 새로운 현상을 일으켰을 때에도 연구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고광도 LHC 업그레이드에도 한국 연구팀이 기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23년부터 시작되는 고광도 LHC 업그레이드에서 CMS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검출기 앞쪽 부분을 한국 CMS팀이 생산하고 설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에 들어간 RPC 검출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스위스 메헝= 이영혜 기자
뮤온 압축 솔레노이드(CMS)에 들어간 RPC 검출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김태정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스위스 메헝= 이영혜 기자

여기에는 RPC(저항판) 검출기가 들어간다. RPC 검출기는 ‘트리거’ 역할을 하는 장비다. 가속기 내에서 일어나는 입자들의 상호작용 현상은 1초에 10억 번가량이다. 때문에 이들의 복잡한 입자 충돌 궤적을 모두 기록으로 남길 수 없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찾고자 하는 현상만 선별해 데이터로 저장해야 한다. 이처럼 데이터 분석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게 트리거가 하는 일이다. 


한국은 2009년 LHC가 가동되기 전부터 RPC 검출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국 CMS팀이 개발한 RPC 검출기는 제1차 가동 기간(2009~2013년), 제2차 가동(2016~2018년) 기간 동안 CMS에서 이상 없이 작동해 힉스 입자 발견에 기여했다. 김 교수는 현재 16개 나라 28개 대학의 RPC 검출기 제작 기관이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회의에서 의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CERN 내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연구하는 한국 과학자 수가 크게 늘었다”며 “젊은 연구자들이 CERN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연구의 중심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CMS′(뮤온 압축 솔레노이드) 모습. CMS는 대형강입자가속기의 검출기 중 하나다. 연합뉴스 제공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CMS'(뮤온 압축 솔레노이드) 모습. CMS는 대형강입자가속기의 검출기 중 하나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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