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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철학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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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철학의 아버지’라는 위대한 호칭

2019.07.12 09:04
밀레토스의 그리스식 극장. 위키피디아 제공
밀레토스의 그리스식 극장. 위키피디아 제공

칼 세이건의 역작 《코스모스》나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 같은 교양과학책을 보면 과학 이야기는 항상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리 역사를 얘기할 때 단군신화부터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구 사람들에게 단군신화가 낯설 듯이 우리에게도 고대 그리스는 (연대가 꽤 차이나긴 하지만) 낯설다. 누차 말했듯이 과학은 우리 것이 아니고 그 출발부터 낯설다. 게다가 그 출발점에서 과학은 과학이라는 이름조차 갖지도 못했다. 그 출발점은 철학이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밀레토스, 에게 해의 동쪽 연안으로 지금의 터키 서부지역이다. 이 동네에서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주자가 탈레스이다. 기원전 600년대의 사람이다. 새롭지 않은 ‘예전 이야기’는 한 마디로 신화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유명한 그리스 신화 말이다. 다들 제우스가 어떻고 헤라가 어떻고 그러던 시절에 탈레스는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다녔다.

“만물의 근원(arche) 물이다.”

아르케(arche)는 처음, 시초, 원질 등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 한마디로 탈레스는 무려 ‘철학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버트란드 러셀의 역작 《서양철학사》를 보면 이런 표현도 나온다.

“학생들을 위해 쓴 철학사마다 첫 부분에서 철학은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 탈레스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언급한다.”

탈레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왜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으로 물을 지목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에 따르면 모든 영양분이나 종자에 습기가 있고 그 덕분에 생명체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21세기의 시점에서 보더라도 물은 대단히 중요한 물질임에 틀림없다. 우리 인체에서 가장 많은 성분이 물이고 지구표면의 70%도 물이며 최초의 생명체 또한 물 없이는 출현하지 못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학자 탈레스(BC 624년, 터키 밀레토스)
수학자 탈레스(BC 624년, 터키 밀레토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정답 찾기에 익숙한 우리의 눈에는 ‘물’이라는 답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탈레스가 위대했던 진짜 이유는 그 질문에 있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말 이면에는 탈레스가 신화의 시대에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 탈레스의 위대함은 ‘물’이라는 답에 있는 게 아니라 ‘아르케’라는 질문 자체에 있다. 왜 그럴까?

나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탈레스는 이 질문으로 철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아낙시만드로스나 아낙시메네스는 물론이고 후대의 철학자들도 모두 만물의 아르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 마디씩을 보탰다.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는 원자론을 들고 나왔고 엠페도클레스는 흙, 물, 불, 공기의 4원소를, 피타고라스는 숫자를 아르케로 지목했다. 그러니까 탈레스는 후대의 철학자들이 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시대의 화두를 던진 셈이다. 위대한 석학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시대의 화두를 던지는 것. 바꿔서 말하자면 위대한 석학이란 모름지기 시대의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화두는 그 자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히고 많은 인력과 자원을 끌어들여 가장 의미가 크고 가치가 많은 일에 인류의 역량을 집중시킨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원들을 이끌어주는 나침반과도 같고 낯선 초행길을 안내해 주는 GPS와도 같다. 질문의 가치가 여기 있다.

 

우리도 오래 전부터 수업이나 강연이나 세미나 때 질문을 많이 하라는 말들을 많이 해 왔다. 돌이켜보면 왜 질문이 중요한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질문을 많이 하라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게 쌍방향 수업이니까, 외국 나가봤더니 질문들을 많이 하니까, 질문을 해야 모르는 걸 알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등의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라고 교과서적으로 다그치긴 했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우리의 현실은 질문과 거리가 멀다. 나의 초중고 시절, 대학시절, 대학원 시절을 아무리 돌아봐도 질의응답이 자연스러웠던 기억은 거의 없다. 대학원 수업에서도 행여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담당 교수님이 한숨부터 짓던 기억만 선명할 뿐이다.

 

질의응답이 오가는 강연장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질의응답이 오가는 강연장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질의응답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 속에서 나도 모든 고등교육을 마쳤기 때문에, 지금 학생을 가르치는 처지가 되어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라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익숙하지가 않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학력고사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던 나의 세대 이후로 숱하게 입시제도가 바뀌었지만 질의응답 없는 공교육의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을 많이 하라고 말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혹시나 내가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나오면 어쩌나, 그런 공포심을 갖고 있다. 이 사실을 직접 학생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정말 궁금한 게 있는 학생은 잠깐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난 뒤에 따로 찾아와서 질문을 한다. 수업 중간에 손들고 질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교 외부에서 대중강연을 할 때면 학교 수업 때보다 훨씬 많은 질문이 들어온다. 간혹 어떤 질문은 뭔가를 물어본다는 본연의 역할보다 질문자의 지식을 뽐내는 기회로 악용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한번은 고등학생들이 많이 자리를 채운 적이 있었다. 질문하는 고등학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한 부류는 질문을 하기 전에 꼭 자신이 어느 고등학교 누구인지를 밝혔다. 다른 부류는 그런 신상공개를 하지 않고 곧바로 질문했다. 짐작했겠지만 전자는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소위 명문고 출신들이었다. 후자는 대체로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벌써 자신의 신분을 아는구나 싶어서 좀 씁쓸했었다.

질문이 없는 건 물론 학생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그런 풍토와 문화를 만든 탓이다. 그렇게 자란 학생들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대개 질문하는 데에 서툴다. 가장 극적인 사례를 꼽으라면 지난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 풍경이다. 그때 오바마 미 대통령이 폐막 연설을 마친 뒤 애써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의 기회를 줬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기자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오바마에게 질문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흔히 기자라는 직업을 설명할 때 “질문하는 사람”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한국에서는 질문이 직업인 사람조차 질문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내가 질문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때는 대학원 박사과정 때였다. 그때까지 내가 한국에서 들었던 대부분의 물리학 수업과 전공 세미나 등에서는 언제나 내가 연구하는 물리학의 체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강력한지,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설교했었다. 그러다가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공부했던 교과서나 논문의 저자 등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과학자들의 기조강연을 들으면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분들은 대체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체계가 자연을 이해하는 데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부터 설명했다.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지금의 체계가 무엇을 잘하는지부터 시작했는데 밖에 나오니까 지금의 체계가 무엇을 잘 못하는지부터 시작하더라는 점이 큰 차이로 느껴졌다. (20여 년 전의 개인적인 인상일 뿐이라는 점도 기억해 주기 바란다.)

한국식 접근법에서는 체계 안의 문제풀이에만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해 왔던 것도 이 대목이다. 남들이 만든 체계 속에서 남들이 만든 규칙에 따라 충실히 문제를 푸는 건 아마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른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이다. 다만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선진국의 접근법에서는 체계 밖에 있는 요소들에 더 관심이 많다.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체계를 넓혀 새로운 체계와 규칙을 만드는 것, 즉 체계의 전복이 목표이다. 이 목표에 이르는 출발점은 체계 밖의 요소들이 야기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식화하는 작업이다. 즉, 올바른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이는 보통 질문의 형태로 제시된다. 대개는 “왜 우리 우주는 이 모양 이 꼴이냐?”라는 식으로 정식화된다. 앞서 말했듯이 세계적인 석학들의 존재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독일의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꼭 해결해야할 수학난제 23개를 제시했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20세기의 수학은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한다. 최근에 나온 기사를 보니까, 힐베르트의 17번 문제가 자율주행 자동차와도 관계가 있다고 한다.

 

독일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인류 문명을 발전시킬 23개의 수학문제를 제시했다.
독일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 인류 문명을 발전시킬 23개의 수학문제를 제시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노벨상 시즌이면 심심찮게 소환되는 인물인 이휘소(벤자민 리) 박사는 1970년대에 전 세계 학계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화두는 지금의 입자물리학 표준모형이 구축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올바른 화두가 제시되면 그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좋은 의미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황당하고 어이없는 아이디어라도 그 화두를 해결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일단 그 자체로 평가받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장점만 남고 단점은 폐기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규칙이 등장한다. 파괴와 재창조는 축복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노벨 과학상은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규칙을 발견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노벨상 받겠다고 과학연구를 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지만, 왜 아직 우리는 노벨 과학상이 없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돌아볼 가치는 있다.

탈레스가 위대한 둘째 이유는 그가 아르케를 통해 보편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다들 제우스가 헤라의 눈을 피해 납치, 강간을 일삼는 이야기에 빠져 있던 시절 탈레스는 만물의 아르케를 고민했다. 만물의 아르케, 즉 만물의 본질은 말 그대로 모든 삼라만상에 깃들어 있는 요소이다. 탈레스에게는 그게 물이었다. 사람에게도 짐승에게도 식물에게도 땅에도 바다에도 어디에나 물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 시절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즉, 탈레스는 우주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보편적인 요소로서의 아르케를 추구했다. 보편성의 추구, 이것이야말로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 최초의 과학자로 소개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과학의 목표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자연의 보편법칙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교과서적인 대답이다. 무슨 무슨 법칙이라는 말 자체가 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뉴턴이 성공적으로 근대과학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도 천상과 지상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중력의 법칙(Law of ‘universal’ gravitation) 때문이었다.

보편성이라는 말 자체가 다소 추상적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보편성을 추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염전. 위키미디어 제공
염전. 위키미디어 제공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최근에 천일염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천연재료, 천연소재를 인공의 결과물보다 더 좋아한다. 자연산이 인체에 더 좋다는 믿음도 널리 퍼져 있다. 물론 플라스틱 같은 인공물은 인체에도 환경에도 해롭다. 그러나 모든 인공물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금은 그게 천일염이든 공장염이든 모두 염화나트륨(NaCl)이다. 염소와 나트륨이 1:1로 결합되면 그게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어졌든 바다나 호수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든 모두 다 소금이다. 왜냐하면 염소나 나트륨이 이 우주를 구성하는 아르케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염소나 나트륨 같은 원소는 우리 우주의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들로서, 탈레스가 주창했던 아르케라 할 만하다. 아르케는 보편적이기 때문에 공장의 나트륨이나 바다의 나트륨이나 안드로메다의 나트륨이나 전혀 차이가 없다. 달리 말하자면 그런 보편성을 가진 기본단위를 과학자들이 찾아낸 것이다. 정확히 150년 전 과학자들은 수십 개의 아르케들 사이에 규칙성이 있음을 알아내고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지금은 주기율표에 100개도 훨씬 넘는 원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수많은 원소들을 통칭해서 원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만물의 아르케는 원자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의 위대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인류가 멸망했을 때 최소단어로 최대정보를 후대에 남긴다면 세상이 원자로 만들어졌다라는 명제가 그 답이라고 했다. 아르케로서의 원자나 원소라는 개념이 없으면 천일염은 뭔가 특별하고 공장염은 뭔가 특별히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며 과학적이지도 않다.근대과학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로 대단히 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해 왔다는 점이다. 만물의 아르케를 추구하는 작업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탈레스는 철학책을 쓴 러셀이 불만스럽게 “철학자보다는 오히려 과학자로서 존경해야 할 것이다.”라고 쓴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참고자료

-버트란드 러셀,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p.61.

-고인석, 《과학의 지형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최영준, 수학자 힐베르트 17번 문제, 자율주행차 안전 문제를 해결하다, 수학동아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9725

-R. P. Feynman, R.B. Leighton, M. Sands,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vol I.

-천일염에 각종 미네랄이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양이 미미하고 주성분이 염화나트륨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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