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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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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이유

2013.11.18 18:00

최근 보건소에서 독감 백신이 동이 나 사람들이 황당해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제약사로서는 백신을 충분히 만들었다가 재고가 잔뜩 남으면 곤란하므로 적정 개수를 생산한 것일 텐데 아무래도 요즘 백신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나보다. 필자만 해도 수년 전까지는 독감 백신을 맞는다는 건 생각도 안 했는데 2009년 신종플루유행 이후 이제는 백신을 안 맞으면 불안해 못 견딘다. 물론 올해도 지난달 초 일찌감치 접종을 했다. 아무튼 이제는 독감백신을 수익을 재지 않는 정부에서 주관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찌 독감뿐이랴. 감기 백신도 있다면 벌써 맞았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올해 들어 네 번이나 감기에 걸렸는데(겨울에 두 번,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지금 감기에 대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또 감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


독감처럼 죽다 살아났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감기도 걸려서 낫는 데까지 한 사이클(보통 2~3주) 동안 꽤 힘든 일상을 보내야 한다. 사실상 감기에 걸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흔한 질병으로, 어른은 일 년에 평균 2~3회, 아이들은 5~6회나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독감처럼 독한 질병도 백신을 만들고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도 나왔는데 왜 감기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걸까. 물론 감기로 병원에 가면 약을 지어주지만, 이는 증상을 완화하는 것일뿐 감기바이러스에 직접 작용하는 건 아니다.


●바이러스 종류만 200여 가지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감기가 그렇게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는 게 한 이유다. 목숨을 위협하는 병도 많은 데 이삼 주 불편함을 참으면 저절로 낫는 병을 연구하는데 우선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사 감기 연구가 활발했다하더라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먼저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는 한 두 개가 아니다. 감기의 대부분은 리노바이러스가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밖에도 코로나바이러스(10~15%), 인플루엔자바이러스(10~15%, 독감도 넓은 의미에서 감기에 포함된다), 아데노바이러스(5%) 등 여러 바이러스가 관여하는데 유형으로 치면 200가지가 넘는다.


현재는 이 가운데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연구를 했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어느 정도 대처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일반 감기에 대해서는 원인 바이러스가 너무 다양하므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 백신을 개발해야 할지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감기바이러스인 리노바이러스 캡시드 구조. 단백질 3종(각각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표시) 각각 60개씩 총 180개가 참여해 껍질을 만든다. 나머지 단백질 한 종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캡시드 안에는 크기가 8000염기에 불과한 양성 RNA 단일가닥 게놈이 들어있다. 양성은 그 자체가 숙주세포 안에서 메신저RNA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 사이언스 제공
대표적인 감기바이러스인 리노바이러스 캡시드 구조. 단백질 3종(각각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으로 표시) 각각 60개씩 총 180개가 참여해 껍질을 만든다. 나머지 단백질 한 종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캡시드 안에는 크기가 8000염기에 불과한 양성 RNA 단일가닥 게놈이 들어있다. 양성은 그 자체가 숙주세포 안에서 메신저RNA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 사이언스 제공

2009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대표적인 감기 바이러스인 리노바이러스의 99가지 혈청형(serotype, 형성된 항체를 통해 바이러스를 분류하는 방법)의 게놈을 분석해 그 계보를 구성한 논문이 실렸다. 당시 표지논문으로 바이러스 캡시드의 분자모형이 표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논문은 리노바이러스의 다양성을 극적으로 보여줬을 뿐 아니라 당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리노바이러스 C형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로 리노바이러스가 검출된 건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최근까지도 A형과 B형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2006년 이 둘에 포함되지 않는 제3의 리노바이러스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처음 보고됐고 그 뒤 이런 예들이 추가되면서 이 논문에 처음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해 7월 열린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ICTV)는 리노바이러스 C형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감기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연구조차 최근에야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리노바이러스 C형의 존재가 이처럼 늦게 밝혀진 건 이 바이러스의 경우 배양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료에서 직접 게놈을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리노바이러스 C형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감기는 바이러스 유형이나 사람에 따라 증상의 경중이 천차만별인데, 증세가 심각했던 감기 환자들의 체액을 분석한 결과 리노바이러스 C형이 확인됐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감기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게 평소에는 평범한 감기 증상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경우도 어느 날 갑자기 무시무시한 변종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전 세계를 긴장시켰던, 치사율 10%에 이르는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원인 바이러스가 바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다.


●손 씻고 마스크 쓰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


학술지 ‘바이러스학’ 최신호에는 리노바이러스 C형의 표면구조와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반응을 다룬 논문 두 편이 실렸다.


 

2009년 리노바이러스 99가지 혈청형의 게놈을 분석해 만든 계통도. 왼쪽에 리노바이러스 C형(HRV-C)으로 분류된 7가지가 보인다. C형은 2006년에야 존재가 드러났는데, 증상이 심한 감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2009년 리노바이러스 99가지 혈청형의 게놈을 분석해 만든 계통도. 왼쪽에 리노바이러스 C형(HRV-C)으로 분류된 7가지가 보인다. C형은 2006년에야 존재가 드러났는데, 증상이 심한 감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둘 다 미국 위스콘신대 안 팔멘버그 교수팀의 연구결과로 한 마디로 C형은 기존의 A형이나 B형과는 표면 구조가 많이 다르고 따라서 지금까지 개발된 리노바이러스 치료제 후보물질 가운데 어느 하나도 증식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것. 참고로 감기바이러스 치료제에 대한 연구는 나름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여러 유형에 다 작용하는 범용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범위에서 효과가 있는 약물도 임상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문제가 있어 아직 상업화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증상이 심한 감기의 주원인인 리노바이러스 C형의 경우 갈 길이 더 멀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 바이러스학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백신도 없고 약도 없는 감기바이러스에 우리는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현실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감기바이러스의 생리를 알면 약간의 대응을 할 수는 있다.


 무엇보다도 감기바이러스는 추위를 좋아한다. 리노바이러스의 경우 지름 30나노미터 크기(머리카락 두께의 3000분의 1)의 나노공으로 네 가지 단백질 각각 60개, 총 240개가 껍질(캡시드)을 이루고 있는 ‘입자’다. 따라서 온도가 낮을수록 입자는 온전한 형태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실제 감염자가 기침을 하거나 말을 할 때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것보다는 손잡이나 책상 등 물체 표면에 묻어 있는 바이러스 입자가 손을 통해 입이나 눈으로 들어가 감염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외출하고 들어와서는 꼭 손을 닦아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쓸데없이 얼굴에 손을 갖다 대는 버릇은 고치는 게 낫다.  


한편 리노바이러스의 최적 증식 온도는 32도 부근인데 우리 몸에서는 외부 공기와 직접 접하는 비강이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곳이다. 특히 겨울철 찬 공기가 들어오면 바이러스로서는 최적인 온도조건이 갖춰진다. 따라서 겨울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게 바이러스감염을 막을 뿐 아니라 비강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증식을 하기에는 좀 덥다고 느껴지게 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행동 예방 조치와 함께 잠을 푹 자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비결이라고 한다. 면역계가 교란되면 감기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필자가 감기기운을 느끼는 것도 지난 밤 자정을 넘겨가며 감기바이러스 논문을 읽느라 무리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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