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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실험실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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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실험실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

2019.07.19 11:48
1941년 MIT의 한 실험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테크니션의 모습이다.  MIT Radiation Lab 제공
1941년 MIT의 한 실험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테크니션의 모습이다. MIT Radiation Lab 제공

“테크니션은 실험실을 운영하는 일상적인 작업 뿐 아니라, 혁신적인 연구성과가 등장하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테크니션들이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을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혁신적인 연구성과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 실용적인 기술들, 태도와 접근법 등을 모두 전승하는 사람들이며, 실제로 실험실의 문화를 살아 있게 만드는 중심적 존재들이다.”  《살아 숨쉬는 문화를 지키는 사람들》중에서

 

 

기록될 수 없는 역사, 테크니션의 과학적 활동

 

실험실이 과학의 역사에 등장하고 난 후,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은 곧 실험실의 필수적인 직위가 되었다. 17세기 이후 실험실의 전통을 따라, 실험실 테크니션은 대부분 과학자의 개인조수 자격으로 고용되었다. 이런 전통은 20세기 초반까지 그대로 이어지며, 영국에서는 테크니션을 ’실험실 아이들 lab boys’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테크니션이라는 단어의 직업이 전문화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였다.

 

실험실 테크니션은 역사학적 연구가 어려운 집단이다. 대부분의 경우 테크니션은, 역사학자가 연구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과학자의 연구를 보조하거나, 실험실이 운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일을 하지만, 과학계의 역사로 남는 작업들이란 결국 논문이나 교과서 혹은 연구실노트 등의 기록된 역사들이기 때문이다. 과학계가 연구결과에 대해 주는 상들도 대부분 논문에 주어지기 때문에, 테크니션은 과학사에 기록될 수 있는 증거를 거의 남기지 못한다. 설사 그들의 이름이 논문의 어디엔가 기록되었다 해도, 논문에 기록된 연구를 주도하고, 연구비를 수주하고, 논문을 쓰고, 연구에 대한 기여를 결정하는 건 실험실의 주인인 과학자가 된다. 과학의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은 과학자였고, 따라서 역사의 주인도 마치 그들인 것처럼 기록되어 온 셈이다.

 

이는 조선의 역사가 왕조사로 기록되어 있는 양상과 비슷하다. 조선시대 뿐 아니라, 왕조가 등장한 이후의 기록된 역사는, 대부분 왕조가 이룩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조선시대에 왕족과 귀족계급만 살았던 건 아니다. 조선이라는 국가체제를 이루는 대다수의 사람은 평범한 민중이었고, 왕족과 귀족은 이들을 다스리는 특권층에 불과했다. 역사는 가진 자의 입장, 지배층 중심으로 기록되어 왔고, 영웅과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현대의 역사학자가 참고하는 기록이라는 것이, 대부분 문자기록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지배층은 문자를 독점했고, 그 문자로 남긴 기록 대부분은 당연히 지배층의 것이었다. 역사가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다. 

 

물론 지배층의 입장에서 바라본 피지배층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역사책은 조선시대 일어난 수 많은 민중 봉기를 난동, 소요, 반란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민중이 단지 지배층이 통치하는 대상이 아니라 분명히 역사 속에 살아 있었던 주체로 그려지는 유일한 예외는, 그들이 지배층에 항거하여 집단으로 봉기했을 때 뿐이다. 우리 역사 뿐 아니라 전세계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이 피지배층의 역동적인 역사는, 바로 그 집단적 항거 이외에는 역사적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 시대를 상상할 때, 화려한 왕궁에 속한 지배층의 역사 뿐 아니라, 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역사를 움직여 나갔던 민중의 존재를 그려야만 한다. 실험실의 테크니션은 과학사에서 민중과 비슷한 위치에 놓여 있다. 

 

 

암묵지, 실험실의 비밀

 

실험실 생활을 경험해 본 연구자는,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들이 얼마나 힘들게 얻어진 결과물인지를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또한 반대로 실험실 현장의 연구자는, 교과서적 지식이 얼마나 쓸모 없는지도 경험하게 된다. 실험실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축적된 과학적 발견을 시험하고, 새로운 발견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이미 누군가 잘 정리해놓은 실험결과를 되풀이하는 초중고등학교 실험실은, 그런 의미에서 실험실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아무도 도전해 보지 않은 문제풀이를 시도하는 연구자들이 모인 공간에서, 교과서적 지식은 참고용 지식일 뿐, 실천적 지식이 될 수 없다. 실험실은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이 시험되고 사장되며 태어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공유되는 지식이 항상 기록으로 남는 건 아니다. 기록매체가 크게 발달한 현대에는 영상이나 소셜네트워크에 실험실의 일상이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실험에 필요한 경험적 지식 모두가 기록되는 건 아니다. 실험실에서 공유되고 전승되는 지식의 형태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명시지라 불리며, 논문이나 매뉴얼 혹은 연구계획서처럼 문자화된 지식들의 체계다. 현대적인 실험실에선, 과학자던 테크니션이던 이러한 명시지의 전승과 생산에 모두 관여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현대실험실은 17세기 보일의 실험실처럼 기록을 남기는 과학자와 실험을 수행하는 테크니션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21세기의 실험실에선 모두가 기록을 남긴다. 따라서 22세기 실험실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학사가들은 새로운 과학사관을 추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실험실을 구성하는 또 다른 형태의 지식체계를 암묵지라 부른다. 그 실험실에만 있는 기계를 다루는 방법, 해당 실험실이 주로 수행하는 실험방법의 자세한 경험칙 등은 기록에 남긴 하지만, 실제로 수행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지식체계다. 암묵지는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에 의해 정교화된 개념으로, 실제로 과학현장에서 폴라니가 경험한 사례들로부터 구성되었다. 폴라니에 의하면, 암묵지란 ‘개인적 관심사나 상황중심적인 지식으로, 공식화하거나 전달하기 곤란한 지식’을 의미한다. 폴라니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몸에 밴 습관 혹은 사회에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상식 등을 암묵지의 예로 들었다. 더 쉬운 예는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 우리 모두가 경험한다. 자전거를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전거 타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과정은, 직접 자전거를 운전하며 몸이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 방식을 경험하게 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우리 몸에 습득된 자전거 타기 습관이 바로 암묵지의 대표적인 사례다. 바로 이 암묵지의 반대편에 있는 지식을, 폴라니는 명시지라 불렀고 ‘구체적이거나 성문화된 것으로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언어로 전달 가능한 지식’으로 정의했다.

 

 

좋은 실험실의 조건, 과학자와 테크니션의 조화

 

김우재 제공
김우재 제공

실험실에서 암묵지는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대답은, 과학자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수행해보면 알 수 있다. 테크니션 없이 혹은 테크니션들이 수행하는 역할 없이 실험실을 운영할 수 있는가? 과학자는 분명 테크니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 혼자 테크니션의 작업과 과학자의 작업 모두를 수행한다면, 과학지식을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과학자가 실험실을 운영하면서 테크니션과 분업을 시작하는 이유는, 논문을 쓰고, 실험을 디자인하고, 연구계획서를 통해 연구비를 수주하고, 연구를 외부에 발표하는 따위의 형식지에 관련된 일들이 그 자체로 과중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는 훈련의 초기에 다른 과학자에 소속된 테크니션으로 연구를 시작한다. 따라서 과학자가 실험실을 운영하게 되면, 자신의 암묵지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또다른 테크니션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렇게 형식지와 암묵지 모두를 전승받은 테크니션 중 일부는 과학자가 되고, 일부는 테크니션으로 남게 되는 구조, 그게 현대적 실험실의 운영방식이다.

 

오래된 기업의 경우, 특히 이런 암묵지의 전승과 교환이 조직의 발전에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좋은 기업일 수록 조직구성원들 중 오랫동안 업무를 경험하면서 암묵지를 축적한 숙련자들이 많고, 이들이 보유한 암묵지가 명시지로 전환되는 과정은 조직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는 중심이 된다. 이들 숙련자들은 작업장비나 작업도구로 일을 하는 동안 암묵지의 형태로 일에 관여하고, 이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이처럼 몸에 체화된 암묵지는 오랜 전승기간을 통해서만 경험의 형태로 이어질 수 있고, 때로는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 

 

기업의 숙련자들과 실험실의 테크니션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직업군이다. 이들이 지닌 암묵지가 어떻게 운용되느냐에 따라, 기업과 실험실의 운명도 달라진다. 이는 암묵지가 지닌 독특한 특성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암묵지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제연습을 통해 축적된다. 따라서 실험실이 성공적으로 과학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런 숙련에 대한 존중이 필수적이다. 둘째, 암묵지는 반드시 숙련자와의 접촉을 통해서만 전수되고 학습될 수 있다. 즉, 훌륭한 테크니션의 존재가 없으면 실험실의 중요한 기예들은 과학자에게 아예 전수될 수조차 없다. 셋째, 암묵지는 강의나 독서 등의 학습방법만으로는 제대로 전달될 수 없고, 전존재적 또는 전신체적, 즉 온몸으로 배워야만 한다. 요리를 배우는 방식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훌륭한 요리책만 읽는다고,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암묵지는 숙련자와의 일대일 학습만이 아니라, 숙련자와 다양한 경험자들 간의 상호학습을 통해 강화되는 공동체적 성격을 지닌다. 즉, 암묵지의 성공적인 전승과 운용에는 기업 혹은 실험실의 공동체적 문화가 필수적이다

 

실험실의 문화에서 테크니션의 암묵지와 그 전승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역사가 민중사로만 이루어질 수 없듯이, 실험실도 테크니션만으로는 과학지식을 생산할 수 없다. 과학자와 테크니션의 조화로운 관계야말로, 현대 실험실의 성공조건이다. 역사학자 최완기는 민중사와 왕조사의 균형적인 전개를 강조한 적이 있다. 과학사도 그런 균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러나 그들이 민중의 삶, 민중의 투쟁만을 강조한다면 그 역사는 민족사 전체에서 볼 때 또 다른 반쪽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지배 질서와 피지배 질서의 상호 관계를 인정하는 속에서 민중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지난날 우리 겨례의 삶, 그리고 오늘의 우리의 삶은 민중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국왕/귀족/장군/학자/예술가 등 숱한 위인들이 존재하였고, 그들의 사상이나 역할이 역사 전개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참고자료

-Tansey, E. M. (2008). Keeping the culture alive: The laboratory technician in mid-twentieth-century British medical research. Notes and Records of the Royal Society62(1), 77-95.

-김동주. (2018). 찰스 S. 퍼스와 마이클 폴라니의 회의론과 믿음 (belief) 에 대한 비교 연구. 기호학 연구, 54, 7-36.

-신범석. (2018). 암묵지 (暗默知) 의 학습적 가치. 휴먼웨어 연구, 1(1), 25-54.”-

-최완기. (2004). 역사  갈림길 에서 고뇌 하는 조선 사람들.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필자소개

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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