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사이언스N사피엔스] 야구공은 왜 날아갈까

통합검색

[사이언스N사피엔스] 야구공은 왜 날아갈까

2019.08.08 15:00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의 사례 중 재미있는 것은 투사체의 운동이다. 류현진 투수가 던진 야구공이나 대포가 쏜 포탄이 이에 해당한다. AP/연합뉴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의 사례 중 재미있는 것은 투사체의 운동이다. 류현진 투수가 던진 야구공이나 대포가 쏜 포탄이 이에 해당한다. AP/연합뉴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무려 2천 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체계가 상당히 그럴 듯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운동론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너무나 잘 맞아서 지금 들어봐도 아주 그럴 듯하다. 플라톤의 제자답게 아리스토텔레스도 기본적으로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유지했다. 옛날 사람들이 천상과 지상을 구분해서 생각했던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달을 기준으로 천상계와 지상계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천상계는 완벽한 세상이다. 완전무결한 구형의 천체가 가장 완벽한 원운동을 스스로 하고 있다. 천체는 스스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런 힘이 필요 없다. 반면 지상계는 불완전한 세상이다. 지상계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나 바위를 보라. 어디 하나 완전한 구형을 갖춘 게 있는가. 


지상계의 운동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본성적 운동이다. 무거운 돌멩이를 손에서 놓으면 땅으로 떨어진다. 가벼운 깃털은 하늘로 올라간다. 왜냐하면 무거운 물체는 무겁다는 본성 때문에 그 본성의 근원인 지구를 향하게 되고 가벼운 물체는 가볍다는 본성 때문에 그 본성의 근원인 천상을 향하기 때문이다. 이런 운동이 본성적 운동이다. 자기 본성의 근원을 찾아가는 운동. 이런 설명은 물체의 운동이 어떤 목적(자기 본성의 근원을 찾아간다는)을 달성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후대의 뉴턴의 운동론과 비교하면 확실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은 목적론적이다. 


반면 본성적 운동을 거스르는 운동도 있다. 이를 강제적 운동이라고 한다. 길 위의 수레는 가만히 두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수레를 움직이려면 말이나 소를 수레에 묶어 끌어야만 한다. 강제적 운동이 일어나려면 물체에 계속해서 힘이 작용해야 한다. 더구나 그 힘은 물체에 계속 접촉해서 작용해야 한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에서 강제적 운동이 일어나는 원인요소를 접촉기동자라고 한다. 소나 말이 있어도 수레와 밀착되지 않으면 수레를 끌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설명은 우리의 일상 경험과 너무나 잘 맞는다.


접촉기동자를 고집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어 있는 공간으로서의 진공이라는 개념을 싫어했다. 반면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의 고대 원자론에서는 충만한 것으로서의 원자와 원자가 차지하지 않은 빈 공간의 존재 또한 인정했다. 원자와 빈 공간이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운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상계도 뭔가로 가득 차 있다. 천상계를 가득 채운 물질을 에테르, 또는 아이테르라 한다. 지상계는 흙, 물, 불, 공기의 4원소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에테르를 후대에 제5원소라 불렀다. 몇 년 전 한 일간지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칼럼 제목을 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제목을 제시했다. 하나는 퀸테센스고 다른 하나는 제5원소였다. 퀸테센스(quintessence)를 말 그대로 옮기면 다섯 번째 원소(quinta essentia)이다. 신문사에서는 퀸테센스라는 말이 너무 어렵다며 제5원소를 선택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이종필의 제5원소’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인 뤽 베송의 영화 중에 '제5원소'라는 작품이 있다. 1997년작인 이 영화는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한 초기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도 네 개의 원소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이고 마지막 원소는 사랑이라는 설정이다. 

에테르와 퀸테센스는 이후 물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부활하기도 했다. 19세기에 전자기학이 완성되면서 과학자들은 빛의 실체가 전자기 파동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파동은 매질이 있으니까 과학자들은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전자기 파동의 매개물을 상정했는데 그 물질의 이름이 에테르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테르 용법과 꽤나 비슷하다. 불행히도 에테르를 검출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고 결국 1905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 에테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퀸테센스는 아직도 쓰이는 용어이다. 1998년 초신성 연구를 통해 우리 우주의 팽창이 가속됨을 알게 되었고 그 원인요소를 암흑에너지라 불렀다. 암흑에너지의 후보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퀸테센스이다. 물론 주류 이론에서는 우주 자체의 진공에너지라 할 수 있는 우주상수가 암흑에너지의 후보로 가장 유력하지만 퀸테센스 이론도 여전히 연구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서 온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 위키미디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서 온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 위키미디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에서 재미있는 사례가 바로 투사체의 운동이다. 류현진 투수가 던진 야구공이나 대포가 쏜 포탄이 이에 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 투수의 손을 떠난 야구공은 어떻게 허공을 날아갈 수 있을까? 이는 과학사 수업을 하면서 내가 시험 문제로 가끔 출제하는 문제이다. 힌트는 공기에 있다. 야구공이 손을 떠나면 공 앞쪽의 공기가 압축돼 공 뒤쪽을 메운다. 그렇게 공 뒤를 메운 공기가 야구공을 밀어 야구공이 허공을 날아간다. 얼마나 놀랍고도 아름다운 설명인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지금 우리가 아는 올바른 운동의 기술이 아니다. 어떤 학생은 이런 문제를 보고 답을 쓰는 대신 왜 옛날의 틀린 이론을 시험 문제로 내느냐는 불평을 답지에 채워 넣기도 한다. 그런 불평을 볼 때마다 내가 수업 때 과학을 잘 가르치지 못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씁쓸하다. 내 나름대로는 과학이란 최종적인 정답보다 답을 찾는 과정이 우선임을 가르친다고 했는데 그게 잘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손을 떠난 공이 공기를 접촉기동자 삼아 날아가다가 강제적인 운동이 끝나면 공은 이제 본성적 운동을 시작한다. 즉, 무거움의 중심인 지구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한다. 야구공뿐만 아니라 포탄도 마찬가지이다. 포신을 떠난 포탄은 사선으로 강제적인 운동을 하고 그 뒤 땅으로 떨어지는 본성적인 운동을 한다. 이 모든 궤적을 그림으로 그리면 포탄은 전체적으로 직각삼각형의 모양을 따라 운동한다. 


 이는 우리의 경험과 잘 맞지 않는다. 포탄의 궤적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전쟁을 치를 때 아주 중요하다. 실제 포탄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중세까지 유럽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완전히 극복하려면 17세기의 갈릴레오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기억해야 할 고대의 ‘과학자’로 히포크라테스가 있다. 다들 잘 알듯이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탈레스가 왜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받았는지 그 이유가 중요했듯이 히포크라테스 또한 왜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지 그 이유가 중요하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세기~5세기 플라톤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역시 신화와 전설이 난무하던 시절이다. 이런 시절에 사람이 병에 걸리면 뭐라고 생각했을까? 십중팔구 악귀나 악령 때문이라고 했을 것이다. 병의 원인이 악령 때문이면 그걸 치료하기 위해서는 주술사나 퇴마사가 필요하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자식이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대신 종교 의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의학’이 생겼다는 것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 주술과 미신 따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하신 분이 히포크라테스이다.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의 원인을 인체의 네 가지 체액의 불균형에서 찾았다. 이를 4체액설이라고 한다. 네 가지 체액이란 피, 점액, 황담즙, 흑담즙(지라에서 분비된다는 체액)이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무슨 돌팔이 의사 같은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4체액설의 비교대상은 현대의학이 아니라 미신과 주술이다. 4체액설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과 대응된다. 즉, 흑담즙-흙, 황담즙-불, 피-공기, 점액-물과 연결된다. 따라서 흑담즙은 차고 건조하며, 황담즙은 따뜻하고 건조하며, 피는 따뜻하고 습하며, 점액은 습하며 차갑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정리돼 있다. 총 87편에 달하는 이 전집은 히포크라테스 혼자서 다 쓴 것이 아니고 후대의 제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집단 창작한 결과물이라는 게 정설이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겼다는 명언인 “Vita brevis, Ars longa.”는 대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된다. 라틴어 ars를 예술(art)로 옮긴 결과이다. 그러나 ars는 예술이라는 뜻보다 기술이나 기예, 기법에 가깝다고 한다. 원래 art에도 기술이나 기예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ars는 짐작대로 의술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의술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짧은 인생 동안 방대한 의술을 다 익힐 수 없음을 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질병이 4체액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 처방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 증세에 따라 4체액의 균형을 맞춰 주면 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자연이 치유력을 갖고 있어 4체액의 균형을 찾아준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자연요법인 셈이다. 그렇다고 의사가 전혀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도와주기 위해 식이요법으로 모자라는 체액을 보충해 주고 방혈이나 사혈 등의 방법으로 넘치는 체액을 빼는 방법도 있다. 피를 뽑아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명맥을 유지했다고 하니 히포크라테스 의학이 드리운 그림자가 어디까지인지 짐작할 수 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을 후대에 크게 번성시킨 인물이 있었으니, 제정로마 시대의 의학자 갈레노스였다. 2세기~3세기 초에 살았던 갈레노스는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 네 명의 황제의 시의를 지냈다.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 의학(주로 4체액설)을 계승 발전시켜 그리스 의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덕분에 4체액설은 중세까지 1,500여 년 동안 위세를 떨쳤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129~미상)와 벨기에 의사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 위키미디어
고대 그리스 의학자 클라우디오스 갈레노스(129~미상)와 벨기에 의사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 위키미디어

그러나 갈레노스가 히포크라테스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갈레노스가 의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생체해부를 통해 자신의 의학 체계를 확립했다는 점이다. 갈레노스를 ‘해부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가 살던 시절에는 인체 해부가 금지돼 있어 주로 원숭이나 돼지 등의 동물만 해부할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의사가 되어 고향인 페르가몬에 돌아왔을 때 검투사를 치료하기도 했으며 홍수가 났을 때 강물에 떠내려 온 시체나 강도 등에 살해당한 시체를 아주 드물게 살펴볼 수 있을 뿐이었다. 


갈레노스는 인체를 크게 소화계, 호흡계, 신경계로 구분했고 각각엔 자연의 정령, 생명의 정령, 영혼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갈레노스의 해부학이 갑자기 땅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찰과 경험을 중시해 동물을 직접 해부하며 방대한 지식을 정리해 두었고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헤로필로스와 그의 제자 에라시스트라토스가 신경계와 순환계, 소화계 등의 해부학적 지식을 넓혀 놓았다. 갈레노스는 이 모든 것을 모아 하나의 종합적인 체계로 발전시켰다. 갈레노스는 수백 권의 저술을 남기기도 했는데 갈레노스의 의학체계는 거의 1500년 동안 정통의학으로서의 권위를 누렸다. 


그러나 갈레노스 의학은 동물을 해부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에 많은 오류를 피할 수 없었다. 예컨대 갈레노스는 인간의 간이 개처럼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하거나, 심장의 좌심실과 우심실 사이의 격벽에 구멍이 있어 그 사이로 혈액이 흐른다고 잘못된 주장을 펼쳤다. 


갈레노스의 오류를 극복한 것은 16세기의 의사 베살리우스였다.  

 

베살리우스가 쓴 '인체 구조에 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i septem)' 근육 해부도
베살리우스가 쓴 '인체 구조에 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 libri septem)' 근육 해부도

 

참고자료
김영식, 박성래, 송상용, 《과학사》, 전파과학사.
김성근, 《교양으로 읽는 서양과학사》, 안티쿠스.

엄재국, 이광, 홍영석, 《서양 중심의 세계과학사》, 자유아카데미.
이재담, '4체액설', 네이버캐스트 생물산책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551&cid=58943&categoryId=58966
쑨이린, 《생물학의 역사》, 더숲.
임경순, 정원, 《과학사의 이해》, 다산출판사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0 + 6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