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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에이즈 바이러스 퇴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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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에이즈 바이러스 퇴치할 수 있을까

2019.08.13 17:28
2007년 방영된 ‘고맙습니다’는 미혼모와 HIV 보균자인 딸이 역경을 헤쳐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 ‘따뜻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HIV 보균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대는 여전하다. mbc 제공
2007년 방영된 ‘고맙습니다’는 미혼모와 HIV 보균자인 딸이 역경을 헤쳐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 ‘따뜻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HIV 보균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대는 여전하다. mbc 제공

지난 2007년 방영된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특이한 소재를 다뤄 당시 화제가 됐다. 미혼모 영신(공효진)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병국(신구), 딸 봄(서신애)과 함께 푸른도(신안 화도)에 살고 있다. 봄은 수년 전 수술을 받다 의료진의 실수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흔히 에이즈(AIDS)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보균자의 피를 수혈받아 HIV에 감염됐다. 영신과 섬의 보건소 의료진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드라마 중반 우연히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섬이 발칵 뒤집힌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영신의 집에 몰려가 섬을 떠나라고 종용하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HIV는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의료진이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가 죽자 영신은 모든 걸 정리하고 봄과 함께 섬을 떠나려고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동네 사람들이 만류해 섬에 남는 걸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HIV 보균자 냉대 여전

드라마가 끝난 지 12년이 지난 오늘날 사람들의 HIV 또는 에이즈에 대한 인식도 드라마 속 푸른도 주민들처럼 바뀌었을까. 지난주 뉴스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7월 초 서울구치소에 HIV 보균자 세 명이 들어왔다. 법적으로 이 사실을 공개할 의무가 없고 다른 수감자와 같은 공간에 배정해도 되지만 구치소 측은 세 명을 일반수용동 독방에 배정했다. 나름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청소 당번인 수감자들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들 각자에게 손톱깎이가 배급된 데다 나온 쓰레기를 따로 수거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에이즈 환자라는 소문이 돌면서 다른 수감자들이 거칠게 항의했고 결국 세 사람은 의료수용동으로 옮겨졌다는 얘기다.

같은 방을 쓴다면 모를까 별도의 공간에 있을 뿐임에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나치다. HIV가 독감 바이러스처럼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억지가 통하는 게 HIV 보균자에 대한 오늘날 우리사회의 인식 수준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다. 1980년대 초 에이즈가 등장할 때 워낙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병의 원인도 모르고 치료제도 없는 상태에서 면역력 결핍으로 온몸에 곰팡이가 핀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지구촌은 경악했다. 오죽하면 에이즈를 ‘20세기의 흑사병’이라고 불렀을까.

그 뒤 바이러스(HIV)가 원인이고 치료제도 개발돼 지금은 칵테일요법(보통 세 가지 약물을 쓴다)으로 당뇨병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됐다지만 첫인상이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 아닐까.

어떤 이유로 HIV에 감염된 사람은 언제 에이즈로 진전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정기적으로 면역수치를 검사해 기준 이하일 때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여기에 위로받기는커녕 행여 감염 사실이 알려질까 노심초사하는 차가운 현실이 삶을 더 힘들게 한다.

이들의 간절한 소망은 몸속 HIV를 완전히 없애거나 최소한 매일 약물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치료제 개발이다. HIV가 발견된 지 36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런 약물은 없다. 그러나 최근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감염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HIV 백신 개발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번 구치소 사태를 계기로 HIV와의 전투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감염된 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면역요법

HIV는 몇몇 면역세포의 표면에 있는 CD4라는 당단백질 분자를 인식해 침투한다. 그리고 세포핵의 게놈에 박혀 있다가 가끔 증식을 하며 서서히 인체의 면역계를 무너뜨린다. 혈액 1마이크로리터에 CD4+ T세포의 수가 200개 밑으로 떨어진 상태를(정상 범위는 500~1500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면역력이 뚝 떨어지면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만 일어나는 '기회감염'으로 쉽게 질병에 걸리고 암에 걸릴 위험성도 크게 높아진다.

HIV 감염에서 에이즈로 이행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인 잠복기는 대략 8~10년인데 사람에 따라 편차가 커서 짧게는 1년이 안 되고 길게는 20년이 넘는다. 요즘은 약이 좋아 이 기간이 더 길어졌고 증상 없이 잠복기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HIV가 게놈에 끼어 들어간 상태로 잠자고 있는 감염된 면역세포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약을 끊으면 2~4주 뒤에 HIV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 8월 7일자에는 입양면역요법으로 HIV에 감염된 세포를 97%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는 동물실험결과를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입양면역요법(adoptive immunotherapy)이란 특정 항원을 인식하는 면역세포를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개체에 넣어 면역력을 갖게 하는 치료법이다.

1990년대 연구자들은 HIV를 없애기 위해 입양면역요법을 시도했다. HIV에 감염된 세포 표면에 있는 바이러스 단백질 gp120(항원)을 인식하는 항원수용체의 유전자를 넣은 T세포를 만들어 넣어줬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변이가 워낙 빠르다 보니 약효가 얼마 가지 못했다. 그 뒤 이 기술은 암세포를 표적으로 적용됐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미국의 바이오벤처 렌티젠(Lentigen)과 알버트아인슈타인의대 등 공동연구자들은 이런 결과들을 참고해 HIV를 대상으로 한 입양면역요법을 업그레이드했다. HIV의 gp120 단백질에서 변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부분들을 골라 이를 인식할 수 있는 키메라(chimeric) 항원수용체 두 개를 만드는 T세포를 설계했다.

키메라라는 이름이 붙은 건 T세포에 넣어주는 DNA 조각이 서로 다른 기원에서 비롯한 몇 가지 유전자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유전자가 필요한 건 DNA 조각의 발현 산물이 여러 기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쪽 끝은 세포막 바깥쪽에 놓여 항원을 인식해 달라붙는 역할을 한다. 중간 부분은 세포막을 관통해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한쪽 끝은 세포막 안쪽에 놓여 바깥쪽 수용체가 항원에 달라붙었다는 신호를 세포 내로 전달해 적절한 반응을 유도해야 한다. 그 결과 항원(HIV의 gp120)을 표면에 내놓은 감염된 세포가 소멸된다.

연구자들은 gp120의 서로 다른 부분을 인식하는 수용체 두 가지를 각각 별도의 DNA 조각에 넣었다. DNA 조각 두 개를 넣어주기 때문에 듀오다. 이 경우 각 수용체가 항원을 인식했을 때 그 신호가 따로 전달된다.

연구자들은 듀오카트세포(duoCAR-T cell)로 불리는 이 세포를 HIV에 감염된 면역세포와 함께 생쥐의 비장에 넣어줬다. 비장은 HIV가 증식할 때 선호하는 장기다. 1주일 뒤 조사한 결과 HIV에 감염돼 세포 표면에 gp120 단백질이 있는 면역세포의 수가 97.5%나 감소했다.

반면 항원수용체가 하나뿐인 카트세포를 함께 넣어준 경우는 42% 감소하는 데 그쳤다. 수용체 두 가지의 유전자를 DNA 조각 하나에 넣은 카트세포를 함께 넣어준 경우 역시 61% 감소하는 데 머물렀다. 수용체 두 가지를 써서 항원에 대한 인식률을 높이는 것 이상으로 신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발견은 한 달이 지나도 듀오카트세포의 수가 유지됐고 HIV에 감염된 세포의 수도 크게 줄어든 뒤 다시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한 번의 주사로 HIV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약물을 끊을 수 있다. 물론 아직 동물실험 결과라 사람에서도 결과가 재현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최근 카트세포 암치료제의 성공이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는 희망적이다.

 

최근 HIV에 감염된 면역세포(HIV infected T cell)를 듀오카트세포(duoCAR-T cell)로 불리는 면역세포를 투입해 97% 이상 소멸시켰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두 가지 항원수용체(CAR-1과 CAR-2)가 감염된 세포 표면에 나와 있는 바이러스의 gp120 단백질을 인식해 달라붙으면 신호가 전달돼 감염된 세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질(perforin과 granzyme B)이 분비된다.  ‘C. Bickel/사이언스’  제공
최근 HIV에 감염된 면역세포(HIV infected T cell)를 듀오카트세포(duoCAR-T cell)로 불리는 면역세포를 투입해 97% 이상 소멸시켰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왔다. 두 가지 항원수용체(CAR-1과 CAR-2)가 감염된 세포 표면에 나와 있는 바이러스의 gp120 단백질을 인식해 달라붙으면 신호가 전달돼 감염된 세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물질(perforin과 granzyme B)이 분비된다. ‘C. Bickel/사이언스’ 제공


임상 3상 앞둔 모자이크 백신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 다 그렇듯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백신 개발이다. HIV 역시 실체가 드러난 뒤 곧바로 백신 개발이 진행됐지만 30년이 넘게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변이가 워낙 빨라 백신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기바이러스 백신이 없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100가지가 넘는 백신 가운데 딱 하나가 그나마 약간의 효과를 보였다. 두 가지 백신을 순차적으로 받는 방식으로 2000년대 중반 태국에서 진행된 임상 결과 진짜 백신접종을 한 그룹이 가짜 백신(위약) 접종을 한 그룹에 비해 HIV에 감염될 위험성이 31% 줄었다.

임상이 진행된 뒤 3년 반 사이 HIV에 감염된 사람은 위약 그룹(7325명)이 74명인데 비해 접종 그룹(7347명)은 51명이었다.  20여 명이 백신 덕을 본 셈이다. 그러나 백신의 효과가 5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제품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7월 25일 미국립보건원(NIH)은 ‘모자이코 연구(Mosaico study)’라고 명명한 HIV 백신 임상 3상 시험을 9월에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HIV의 유전자 세 개를 합성해 약화시킨 감기 바이러스에 넣은 생백신이다. 제약회사 얀센의 연구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HIV의 유전자를 분석한 뒤 다양하게 짜깁기해 강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조합을 찾았다. 이렇게 짜깁기를 했기 때문에 모자이크 백신(mosaic vaccine)이라고 부른다.

 

 

HIV 감염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백신 개발이다. 제약회사 얀센은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도 인식할 수 있는 항체를 만들 수 있게 유도하는 ‘모자이크 백신’을 개발해 미국립보건원과 함께 9월부터 대규모 임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식세포에 침투한 HIV가 증식한 뒤 세포 표면으로 나온 장면이다(녹색 점이 바이러스 입자다). 위키피디아 제공
HIV 감염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은 백신 개발이다. 제약회사 얀센은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도 인식할 수 있는 항체를 만들 수 있게 유도하는 ‘모자이크 백신’을 개발해 미국립보건원과 함께 9월부터 대규모 임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대식세포에 침투한 HIV가 증식한 뒤 세포 표면으로 나온 장면이다(녹색 점이 바이러스 입자다). 위키피디아 제공

NIH와 얀센은 미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멕시코, 폴란드 등 8개국의 고위험군(남성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380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소규모 임상에서 꽤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3상 시험에서도 최소한 65%의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2023년에 최종 결과가 나올 예정인데, 결과에 따라 최초의 HIV 백신 출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국의 신규 HIV 보균자 수는 꾸준히 늘어 수년 전부터는 매년 1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가운데 90%는 남자로 주로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다. 그러나 실제 감염되는 사람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 초기 몸살감기 같은 증상을 겪은 뒤 오랜 잠복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이유로 혈액검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하지 않는 한 에이즈로 넘어갈 때까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이 위험군이라고 느껴지거나 의심되는 행동을 하고 얼마 안 돼 몸살 증세가 나타나면 HIV 감염 여부를 알아봐야 한다. 설사 양성으로 나오더라도 의사의 지시만 잘 따르면 기대수명이 비 보균자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

HIV와의 전쟁에서 과학이 절반의 승리를 거뒀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감염이 되면 평생 마음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HIV를 퇴치하는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해 과학이 완승하기를 응원한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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