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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소재 공격 맞서 中企에 기술이전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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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소재 공격 맞서 中企에 기술이전 할 것"

2019.08.19 07:40
이철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팀이 차세대 X선 튜브를 개발한 연구실엔 1998년 국내 최초로 탄소나노튜브를 수직배향(수직으로 합성)시킨 시료부터 당시 사용한 장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철진 교수 제공
이철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팀이 차세대 X선 튜브를 개발한 연구실엔 1998년 국내 최초로 탄소나노튜브를 수직배향(수직으로 합성)시킨 시료부터 당시 사용한 장비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철진 교수 제공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이공계 캠퍼스. 전기전자공학부 연구실이 모여 있는 공학관 건물을 나와 1분 정도 걷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야트막한 가건물이 나타났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허술한 건물이지만 이곳에선 X선 의료 장비 역사를 새로 쓸 새로운 개념의 X선 부품 개발이 한창이다. 이철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의 ‘나노전자공학 연구실’이다. 이 교수는 최근 X선 장비의 핵심 부품인 ‘X선 튜브’의 성능을 대폭 개선한 ‘차세대 X선 튜브’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X선 튜브 시장을 뒤집을 수 있는 혁신이 이뤄지고 있었다. 

 

“1998년 국내 처음으로 수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한 탄소나노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와, 당시 합성에 사용한 장비가 아직까지 ‘현역’으로 이곳에 있습니다.”

 

이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들어선 연구실에는 어른 몸통만 한 크기부터 책상만 한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합성장비가 10여 대 놓여 있었다. 21년 동안 하나씩 직접 제작해 추가해 온 장비다. 한 우물을 판 연구실답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한쪽 벽면에는 그동안 만든 나노재료 시료와 ‘원료’인 화학약품을 담은 보관함이 빼곡했다.

 

이 교수는 20년 넘게 외길을 판 집념의 연구로 미국과 일본이 세계시장을 장악한 ‘X선 튜브’를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X선 튜브는 X선을 발생시키는 부품으로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와 보안, 비파괴 검사 등에 널리 쓰이는 X선 장비에 필수다.

 

이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차세대 X선 튜브는 전 세계가 고수해 온 기존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소재부터 시제품까지 전 과정을 혁신한 결과물이다. 효율을 100배 높였고, X선 선량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성능도 개량했다.

 

이 교수가 1998년 국내 최초로 수직 합성하는 데 성공한 탄소나노튜브 보관 시료를 들고 있다. 윤신영 기자
이 교수가 1998년 국내 최초로 수직 합성하는 데 성공한 탄소나노튜브 보관 시료를 들고 있다. 윤신영 기자

X선 튜브는 현재 비싼 제품의 경우 가격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 중가형 범용 부품 시장의 95% 이상은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값비싼 고급 부품 시장은 미국 기업이 주도한다. 이 교수 연구팀의 성과는 X선 부품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한국이 진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교수는 “미국 일본 등과 기술 격차가 커 한국은 X선 튜브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기 어려웠다”며 “이 때문에 소재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꾼 차세대 X선 튜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비교적 국내 기술 경쟁력이 있는 나노소재인 그래핀과 탄소나노튜브를 활용한 X선 튜브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이 교수가 차세대 X선 튜브 개발에 매달린 것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교체될 부품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X선 장비는 123년 전 처음 원리가 발견된 이후 ‘열음극선’이라는 핵심 기술에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없었다. 소재에 전기를 가하면 가열되는 과정에서 열과 함께 부수적으로 빛이나 전자가 발생하는데, 이 중 전자를 뽑아내 금속에 부딪치면 X선을 발생시킬 수 있다. 저가 제품을 비롯해 의료용 최고급 제품까지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그러나 열음극선 기술은 커다란 단점이 있다. 약 95%의 에너지가 열로 허비돼 효율이 낮다. 열 때문에 부품의 내구성도 떨어진다. 열음극선 기술과 원리가 동일하지만 다른 분야에 응용된 기술들은 더 좋은 기술로 대체됐다. 필라멘트가 가열되면서 열과 함께 나오는 빛을 직접 쓰던 백열전구는 최근 발광다이오드(LED)로 대체됐다. 흔히 ‘브라운관’으로 불리는 음극선관(CRT) 모니터는 탄산칼슘이 가열되면서 발생하는 전자를 형광물질에 부딪쳐 빛을 내는데, 역시 액정표시장치(LCD)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대체되고 있다. 이 교수는 “X선 튜브가 다음 차례”라고 말했다.

 

기존 열음극 X선 튜브와 이 교수가 개발한 그래핀-탄소나노튜브 기반 냉음극 X선 튜브의 원리 비교. 전자 발생원을 열 필라멘트 대신 필름 가공 방법을 쓴 독특한 고밀도 탄소나노튜브를 쓰고, 그래핀을 전극으로 활용해 전자 방출 밀도를 100배 높였다. 위키미디어, 이철진 제공
기존 열음극 X선 튜브와 이 교수가 개발한 그래핀-탄소나노튜브 기반 냉음극 X선 튜브의 원리 비교. 전자 발생원을 열 필라멘트 대신 필름 가공 방법을 쓴 독특한 고밀도 탄소나노튜브를 쓰고, 그래핀을 전극으로 활용해 전자 방출 밀도를 100배 높였다. 위키미디어, 이철진 제공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가 내부에서 전자를 전달하는 성능과 외부로 방출하는 성능이 뛰어나다는 특성을 활용해 전압만 걸면 전자를 방출하는 일종의 ‘전자총’을 개발했다. 문제는 제작 과정이었다. 탄소나노튜브는 지름이 1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에 길이가 1만 nm인 가늘고 긴 나노 소재다. 


이 교수는 시행착오 끝에 탄소나노튜브를 얇은 막으로 만든 뒤 잘라 그 단면을 이용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 미세한 튜브를 좁은 지역에 마치 아파트단지처럼 고밀도로 세우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그래핀을 이용해 전극을 붙이고, 이들을 모아 진공 튜브로 제작해 효율이 높고 전자의 발생 시간과 양을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X선 튜브를 완성했다. 탄소나노튜브를 사용하는 냉음극 X선 튜브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국내기업 ‘브이에스아이’가 앞서 개발, 상용화한 사례가 있지만, 탄소나노튜브를 박막 형태로 가공해 세우고 그래핀을 전극으로 쓴 방식은 이 교수가 유일하다.


국내 기업들과 여러 형태로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시판 중인 X선 장비로 촬영한 영상에 견줄 만한 영상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그동안 기술을 완성하는 게 먼저라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재부터 시제품까지 모든 과정의 원천기술을 완성했고 국내외 특허를 취득 또는 등록해 비로소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차세대 X선 튜브 기술을 국내 의료기기 중소기업에 이전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열음극 원리를 쓰는 백열전구, CRT, X선 튜브의 특성과 역사, 원리를 비교, 정리했다.
비슷한 열음극 원리를 쓰는 백열전구, CRT, X선 튜브의 특성과 역사, 원리를 비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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