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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달걀 감별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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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달걀 감별하는 시대

2019.08.21 06:00
매년 산란계 병아리 140억 마리가 감별을 통해 절반(암컷)은 양계장으로 가고 나머지 절반(수컷)은 바로 죽임을 당한다. 최근 달걀감별 기술이 개발되면서 머지않아 병아리감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eggXYt 유튜브 캡쳐
매년 산란계 병아리 140억 마리가 감별을 통해 절반(암컷)은 양계장으로 가고 나머지 절반(수컷)은 바로 죽임을 당한다. 최근 달걀감별 기술이 개발되면서 머지않아 병아리감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모른다.eggXYt 유튜브 캡쳐

"우리가 동물에 대한 기계론적 견해를 갖고 있는 동안은 윤리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는데, 슬프게도 이것은 기계론적 견해의 매력 중 일부였을지 모른다. 반면에 동물이 감각성이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동물의 상황과 고통을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 프란스 드 발

 

최근 미국의 저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신간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을 재미있게 읽었다. 드 발은 이 책에서 우리와 가까운 유인원은 물론이고 영장류와 포유류, 심지어 어류까지 포함한 척추동물 전반에서 관찰한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감정적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드 발은 “생물들의 생존 이해는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남기란 어렵다”며 특히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동물은 자기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손상시키거나 죽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우리 먹이인 생물, 특히 감정을 지닌 동물에게 불가피하지 않은 고통은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드 발은 감정을 지닌 동물(가축)에게는 생지옥인 ‘공장형 축산’을 비판하고 있다. 드 발은 “(오늘날) 동물을 다루고 키우고 운송하고 도살하는 방법에는 잘못된 것이 많다”며 “이에 대한 저항으로 선진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식사를 실험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매년 수평아리 70억 마리 희생

 

닭은 쓸모에 따라 육계(왼쪽)와 산란계(오른쪽)로 품종개량됐다. 둘의 지향점이 너무 달라 장점만을 살린 ‘겸용종’ 개발은 실패했다. eggXYt 유튜브 캡쳐
닭은 쓸모에 따라 육계(왼쪽)와 산란계(오른쪽)로 품종개량됐다. 둘의 지향점이 너무 달라 장점만을 살린 ‘겸용종’ 개발은 실패했다. eggXYt 유튜브 캡쳐

그럼에도 잡식동물로 진화한 사람이 완전 채식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생선이나 달걀, 유제품으로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달걀은 먹기도 쉽고 값도 싸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운 음식이다. 

 

사실 달걀도 윤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산란계 대부분은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알을 생산하는 ‘살아있는 기계’로 평생을 보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알을 더 낳게 하려고 밤에도 불을 끄지 않는 양계장도 있다.

 

수년 전 ‘살충제 달걀’ 파동을 겪으며 양계장의 이런 처참한 현실이 부각됐고 그래서인지 요즘 마트에 가보면 소비자(사람)를 위한 무항생제 달걀뿐 아니라 생산자(닭)를 위한 동물복지 달걀도 있다. 동물윤리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물론 달걀값은 두세 배나 비싸지만.

그런데 이런 동물복지 달걀에도 여전히 윤리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산란용 닭을 키우려면 먼저 갓 부화한 병아리에서 암수를 감별해야 하는데, 필요 없는 수컷은 가스(이산화탄소)로 질식시키거나 믹서기로 갈아 죽인다. 수평아리는 육계로 키우면 될 것 같지만 산란용 품종은 사료가 고기로 전환되는 효율이 낮아 상업성이 없다.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본 지 하루 이틀 만에 생을 마감하는 수평아리가 1년에 70억 마리로 추정된다. 세계 인구와 맞먹는 수다. 참고로 세계에서 1년에 생산되는 달걀은 1조 개에 이른다. 

그런데 학술지 ‘사이언스’ 8월 16일자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놀랍게도 이미 독일에서는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달걀이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한다. 부화 중인 달걀을 감별해 암평아리가 될 달걀만 골라 계속 부화를 진행시키고 이렇게 키운 암탉이 낳은 달걀이라는 것이다. 수평아리를 죽이는 비윤리적인 일을 하지 않고 얻은 달걀로, 이름도 ‘존경받는 달걀’을 뜻하는 ‘레스페그트(respEGGt)’다.

 

기사는 이미 상업화에 성공한 레스페그트뿐 아니라 다른 달걀감별 방법들의 연구 현황도 소개하고 있다(레스페그트는 미흡한 면이 있다). 이런 분야가 있는 줄로 몰랐던 필자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검색하다 지난해 학술지 ‘가금 과학(Poultry Science)’에 실린 리뷰논문을 발견했다. 기사와 리뷰논문을 바탕으로 달걀감별 연구의 현황을 들여다보자.

 

여성호르몬 감지해 선별

달걀의 배아발생 과정을 5일 단위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신경계가 어느 정도 갖춰진 7일차 배아부터는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이전에 달걀감별을 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A. L. Romanoff, Cornell Rural School Leaflet 제공
달걀의 배아발생 과정을 5일 단위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신경계가 어느 정도 갖춰진 7일차 배아부터는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이전에 달걀감별을 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A. L. Romanoff, Cornell Rural School Leaflet 제공

닭은 쓸모에 따라 육계와 산란계로 나뉜다. 육계는 암수 모두 키우는 반면 산란계는 씨수탉용 몇 마리 말고는 수컷이 필요가 없다. 이는 육우와 젖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젖소 수송아지는 육우로 키우는 반면 산란계 수평아리는 죽이는 게 낫다. 사료의 고기 전환율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육계는 19일만에 몸무게가 650g가 되는 반면 산란계는 47~49일이나 걸린다. 

산란계 수평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겸용종’을 개발했으나 결과는 시원찮았다. 육계와 산란계의 지향점이 워낙 다르다 보니 ‘죽도 밥도 아닌’ 잡종이 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예를 들어 로만 듀얼(Lohmann Dual)이라는 겸용종 암컷은 기존 산란계에 비해 알을 낳는 빈도가 낮아지고 달걀 크기는 작아져 불합격이었고 수컷은 기존 육계에 비해 살이 찌는 속도가 느렸고(70일에 3kg 대 2kg) 근육의 분포도 최적에서 벗어났다(사람들이 선호하는 가슴살의 비율이 줄었다).

 

결국 육종으로는 답이 없다고 보고 200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본격적으로 달걀감별 연구에 뛰어들었다. 연구는 크게 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생화학적 방법으로 달걀이 발생하는 과정에서(부화까지 대략 21일이 걸린다) 나타나는 생체분자의 변화에서 암수의 차이를 밝혀 이를 이용해 감별하는 방법이다. 

 

생화학적 방법으로 달걀감별에 성공해 시장에 나온 게 바로 레스페그트다. 독일 라이프찌히대 연구자들은 달걀의 발생과정에서 성호르몬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8, 9일차부터 암수에서 에스트론설페이트(estrone sulfate)라는 여성호르몬의 농도차가 뚜렷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 분자에 결합해 색이 변하는 시약을 개발했다.

 

검사 방법은 이렇다. 9일차 된 달걀에 레이저로 바늘구멍보다 작은 지름 0.2㎜의 구멍을 뚫어 요막액 한 방울을 뽑아낸다. 요막액은 배아를 둘러싼 요막강을 채우는 액체로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다. 채취한 요막액을 시약과 섞으면 암컷일 경우 색이 변한다.

 

셀레그트(Seleggt)라는 독일 회사는 이 방법을 자동화해 한 시간에 달걀 3000개를 감별하는 시스템을 갖췄고 이렇게 선별한 암평아리를 키워 얻은 달걀을 레스페그트라는 브랜드로 지난해 11월 출시했다. 최근까지는 독일 베를린에서만 살 수 있었지만 올해 안에 독일 전역으로 보급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레스페그트 달걀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일차 달걀감별로 수평아리가 나올 달걀을 선별해 처리하는 게(분말로 가공돼 동물사료로 쓰인다) 수평아리를 죽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여전히 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다.

 

닭의 배아발생 과정을 연구한 결과 4일차에 신경세포(뉴런)가 나타나고 7일차에 시냅스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7일차 달걀 안에 있는 배아는 이미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 감별을 해야 수평아리 달걀을 고통 없이 보낼 수 있다.

 

메추라기 알은 냄새분자로 감별 성공

3.5일차 달걀의 껍질에 동전만한 구멍을 내 안을 들여다보면 배아(embryo) 주변 노른자에 혈관이 형성돼 있다. 여기에 근적외선을 쪼여 얻은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성별을 알 수 있다. 암수의 혈구 조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플로스원 제공
3.5일차 달걀의 껍질에 동전만한 구멍을 내 안을 들여다보면 배아(embryo) 주변 노른자에 혈관이 형성돼 있다. 여기에 근적외선을 쪼여 얻은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성별을 알 수 있다. 암수의 혈구 조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플로스원 제공

지난해 학술지 ‘플로스 원’에는 분광학적 방법으로 부화 4일차 달걀의 성별을 90%가 넘는 정확도로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독일 드레스덴의대 등 공동연구자들은 배아의 밖에서 형성되는 혈관에 근적외선을 쪼여 분자의 조성을 분석해 성별을 추측했다. 닭 배아의 발생은 수컷이 좀 더 빨리 진행돼 혈구를 이루는 분자의 조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의 문제는 근적외선이 달걀 껍질을 뚫지 못하기 때문에 껍질에 지름 12㎜의 구멍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감별한 암컷 달걀은 구멍을 의료용 테이프로 막은 뒤 다시 부화기에 넣는다. 이러다 보니 부화율이 10%나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각막은 남겨두고 겉의 껍질만 없애는 방법을 개발했다. 난각막은 두께가 6㎛(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적외선이 투과하면서도 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연구자들은 AAT라는 회사와 손을 잡고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에 있다고 한다.

 

달걀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감별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미국의 오바브라이트(Ovabrite)라는 회사는 질량분석기로 달걀에서 나오는 휘발성 분자를 분석해 암수를 감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방법의 아이디어는 메추라기 연구에서 나왔다. 영국 링컨대의 연구자들은 조류에서도 후각이 의사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알에서 나오는 휘발성 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1일차 알에서 나오는 휘발성 분자의 조성만으로도 성별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메추라기와 닭 모두 꿩과(科) 조류이기 때문에 달걀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직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분자를 찾지는 못한 상태다.

 

유전자편집 거부감이 문제

 

필자가 가장 끌린 방법은 유전자편집(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한 달걀감별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닭의 성염색체 구성이 사람과 다르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사람은 여성이 XX, 남성이 XY이지만 닭은 암컷이 ZW, 수컷이 ZZ다. 유전자편집은 게놈의 원하는 위치에 유전자를 넣을 수 있는 기술이다. 

 

호주와 이스라엘의 공동연구자들은 유전자편집으로 Z염색체에 노란색형광단백질 유전자를 넣은 닭을 만들었다. 일반 수탉(ZZ)과 유전자편집된 암탉(Z*W)이 짝짓기를 하면 어떤 병아리가 나올까. 암평아리는 ZW이고 수평아리는 ZZ*다. 수평아리만 어미에서 받은 Z염색체에 노란색형광단백질 유전자가 들어있다. 따라서 달걀에 빛을 비추면 수컷 달걀만 노란색을 띤다. 

이 방법이 매력적인 건 유전자편집된 암탉이 낳은 달걀에서 나온 암평아리가 일반 암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변형생물체(GMO)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물론 과정까지 문제를 삼는다면 어렵겠지만. 현재 이스라엘의 엑시트(eggXYt)라는 회사가 상업화에 가까운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이렇게 한가한 연구를 다 하나?’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예전에 유럽에서 화장품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움직임을 보였을 때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도 따르고 있다. 

 

병아리감별 역시 이미 독일에서는 법정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비록 지난 6월 13일 연방 행정법원은 “대안을 찾을 때까지 잠정적으로 수평아리 살해는 합법”이라고 농부들의 편을 들어줬지만 ‘이 정도면 대안’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병아리감별로 수평아리를 죽이는 관행이 불법이 될 수 있다. 최근 달걀감별 기술의 발전속도에 비춰볼 때 머지않아 이런 날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전자편집(크리스퍼) 기술로 Z염색체에 노란색형광단백질 유전자를 넣어준 암탉(Z*W)과 일반 수탉(ZZ) 사이에서 얻은 달걀에 빛을 쪼여주면 오직 수컷 달걀(ZZ*)만 노란색 형광을 내기 때문에 쉽게 감별할 수 있다.  eggXYt 유튜브 캡처
유전자편집(크리스퍼) 기술로 Z염색체에 노란색형광단백질 유전자를 넣어준 암탉(Z*W)과 일반 수탉(ZZ) 사이에서 얻은 달걀에 빛을 쪼여주면 오직 수컷 달걀(ZZ*)만 노란색 형광을 내기 때문에 쉽게 감별할 수 있다. eggXYt 유튜브 캡처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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