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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전문연구요원제도 존치? 오죽하면 경제논리도 안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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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전문연구요원제도 존치? 오죽하면 경제논리도 안먹히나

2019.08.26 16:42
 

국방부가 미래 병역 감축에 따라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현재 연간 2500명을 선발하는 이공계 전문연구요원을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감축해 2024년까지 50%이상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가 30년 넘게 유지해온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힌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군대에 갈 사람이 줄어들어 미래 병역 수요를 충족하려면 대학과 기업에서 대체복무를 하던 석박사급 인력을 군대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는 비(非)이공계라는 이유로 또는 과학기술특성화대나 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현역 복무를 해야하는 20대 젊은이들이 제기한 형평성 문제도 작용하고 있다. 

 

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방부는 1990년도 후반 처음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 또는 축소안을 꺼냈다. 그 근거로 병력자원 부족과 형평성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등 각계의 강력한 반발에 못 이겨 폐지안을 결국 폐기했다. 2016년에도 폐지안을 내놨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국방부가 줄기차게 제도 축소나 폐지를 주장하는 구체적인 논거는 이렇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 병역 가용자원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축소나 폐지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공계 석사 이상의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현역 복무 대신 대학, 방위산업연구기관, 산업체 등에서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은 특혜로 비쳐진다는 점도 폐지론을 뒷받침한다.  국방부가 폐지안을 들고나올 때마다 과학기술계는 우수 과학기술인재의 해외 유출 우려를 근거로 , 산업계는 중소기업과 연구기관의 첨단기술인력 부족을 근거로 맞서고 있다. 결국 제도가 축소되거나 폐지되면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과학기술계 핵심 논리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전과 달리 국방부의 의지가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계, 교육계, 산업계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거세게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국방부는 ‘축소나 폐지’ 일변도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국방부가 이런 강경 일변도 태도를 보이는 속내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전문연구요원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지지가 어느 때보다 떨어져 보인다. 이런 상황 변화는 온라인상에서 이미 수년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소프트가 블로그와 트위터, 뉴스 등의 빅데이터상에서 '병역특례'에 대한 반응분석에 따르면 2016년에는 긍정이 25%, 부정 75%로 나타났지만 2017년에는 긍정은 23% 부정 77%, 2018년 긍정 22% 부정 78%로 분석됐다. 온라인에서는 적어도 민심이 병역특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제도 폐지와 존치를 주장하는 양측이 극단적인 논리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폐지론을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경제학을 전공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것은,  또 행정학을 전공해 국가 행정상의 비용과 비효율성을 감소시킨 것은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냐고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만에 하나 전문연구요원이 축소돼 국가경쟁력 약화에 영향을 준다면 경제학이나 행정학을 전공한 사람까지 전문연구요원으로 쓰지 않는 현재도 이미 경쟁력이 약화한 것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진영에서도 사리분별이 흐려진 발언이 이어진다.  헌법재판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전문연구요원들까지 군대에 가야 한다면 여성도 군에 가야 한다는 억지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일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보면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과학기술계 책임이 큰 것 같다. 과학계는 제도 축소 움직임이 있을 때만 반짝 반대 운동을 펼쳤다가 이슈가 사그라지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왔다. 남과 북이 대치하고 국제적인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병역자원은 줄고 있고 국민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 제도를 지속 가능한 제도로 만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민하지 않고 등한시한 면이 크다. 일부 언론을 통해 교수 논문 대신 써주는 박사 전문연구요원제도가 폭로되고 제도를 악용해 일부 기업들에서 비리 문제가 계속해서 터지는데도 자정 기능을 발휘하지 않은 채 즉자적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좋은 취지의 제도를 국민의 지지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공계 전문연구요원만이 가지는 장점으로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면 국민을 이해시킬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당장 전문연구요원의 유지 및 확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같은 자료만 들고나오는 것은 전문연구요원의 순기능에 대해 근거로 쓸만한 자료가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매번 토론회와 보고서 등에서 제시하는 근거는 전문연구요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밝힌 자료 하나뿐이다. 반면 국방부의 주장은 꾸준하고 명확한 근거가 있다. 병역 가용자원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인구 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또 일부 사람들만이 선택권 하나를 더 가진다는 면에서 형평성이 깨지는 것도 명확하다. 형평성 문제를 제시한 이들의 눈에는 한국 과학기술계가 그들의 삶과 사회를 개선하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과학계 원로들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과학은 국민의, 납세자의 지지를 받고 성장하는 나무와도 같다. 초강대국 미국도,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와 관련된 논의에서 과학계는 대중 설득에 실패했다. 무엇보다 대중이 이해할 만한 근거를 준비하지 않았으며 국가 경쟁력 강화를 가져오는 인재 확보를 위한 자구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고단한 삶을 잠시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돌'도 현역군대를 가는 시대에, 오죽하면 국민이 지지하고 관심을 가질만한 경제 논리마저 먹히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 과학계는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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