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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신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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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신성하다

2019.09.05 14: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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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라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근본주의자들의 과격한 테러나 왕조국가들의 차별받는 여성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이는 어쩌면 이슬람의 극히 일부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과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슬람 문명은 한때 대단히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융합적이었다.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때는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 계시를 받은 610년이다. 622년에는 그때까지 살던 고향 메카에서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옮겨갔다(헤지라).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한 이후부터 4대 칼리파인 알리까지를 정통 칼리파 시대라고 한다. 칼리파는 최고지도자를 뜻한다. 이 시대의 칼리파들은 세습이 아니었고 말하자면 협의로 선출되었다. 4대 정통칼리파인 알리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지는 기원이기도 하다. 시아파는 무함마드 혈족만이 칼리파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무함마드의 사촌이면서 사위였던 알리만이 칼리파로서 인정된다. 시아파라는 말 자체가 알리를 따르는 무리라는 뜻의 ‘시아트 알리’에서 유래했다. 수니파는 그와 반대로 무슬림 공동체의 합의로 칼리파를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아파가 칼리파에게 일종의 신성을 부여한 반면 수니파 입장에서는 칼리파란 그저 인간 세계의 지도자일 뿐이다. 이들의 대립은 잘 알다시피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체 이슬람 세계에서는 수니파가 압도적으로 많다. 수니파의 대표적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대립관계에 있는 이란은 시아파의 나라이다. 이란과 붙어 있는 이라크의 다수파는 시아파이지만 그 유명한 사담 후세인은 수니파였다. 


정통 칼리파 시대는 661년 알리가 살해당하면서 끝났다. 알리에게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무아위야를 제압하고 처리하는 과정에 불만을 품은 그의 부하들이 알리를 시해했다. 이후 무아위야가 새로운 세습 칼리파 왕조를 열었으니 이가 우마이야 왕조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뒤를 이어 들어선 왕조가 아바스 왕조이다. 우마이야 왕조가 채 100년을 가지 못했으나 아바스 왕조는 500여 년을 지속했다(750~1258). 이 시기가 이슬람 과학의 황금시대에 해당한다, 아바스 왕조는 우리와도 아주 약간 관계가 있다. 동서 문명이 만난 최초의 전투로 알려진 탈라스 전투는 아바스 왕조가 세워진 직후인 751년에 있었다. 탈라스 강은 지금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강이다. 이 전투에서 아바스 왕조와 마주한 나라는 당나라였다. 이때 동북아는 발해와 통일신라로 나뉘어 있었다. 탈라스 전투는 당나라의 패배로 끝났다. 이 전투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당나라가 패배한 결과 당나라의 많은 병사들이 포로가 되었는데 그 중에는 종이를 만드는 제지술을 가진 병사들도 있었다. 그 결과 제지술이 이슬람 세계에 전파되었다. 이 전투에서 당나라 군을 이끌었던 장수가 바로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 장군이었다. 고선지 장군은 당나라의 서쪽 경계를 넓히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장수였다. 탈라스 전투에서 대패한 뒤 소수의 병력과 함께 살아남아 장안으로 돌아갔다. 


우리로 치자면 조선조 4대 임금 세종에 해당하는 인물이 아바스 왕조의 7대 칼리파 알 마문(786~833)이다. 알 마문은 바그다드에 지혜의 전당(바이트 알 히크마)과 천문대를 세웠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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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전당은 그리스 문헌의 번역작업을 총괄했던 본거지였다. 아바스 왕가에서 그리스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애초에 의료나 천문 등 실용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최고지도층의 건강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국가안보 사항이다. 또한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 번 의무적으로 시각에 맞춰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를 드리는 방향(끼블라)은 메카의 '카아바'라는 신전이다. 무슬림에게는 시간과 방향에 대한 정보가 무척 중요하다. 한국의 가전회사가 중동에 출시한 휴대전화 중에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일명 ‘메카폰’이라는 제품도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 문화는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향할 수밖에 없다. 아바스 왕조의 번역 또한 그러했다. 번역을 책임진 사람은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라는 의사였다. 번역은 그리스어에서 시리아어를 거쳐 아랍어로 진행되었다. 이 작업에는 아들과 조카 등 일가족이 많이 참여했다. 일화에 따르면 알 마문이 꿈에 아리스토텔레스와 대화를 나눈 뒤 그리스 문헌의 수집과 번역을 후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스 문헌의 번역이 우마이야 왕조 때부터 간헐적으로 진행된 것은 사실이나 본격적으로 ‘지식의 아랍화’가 시작된 것은 아바스 왕조 때였고 그 정점이 지혜의 전당이었다. 아바스 왕조의 번역작업은 무려 2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이를 포함해 역사상 대규모 번역 사업은 세 번 있었다. 두 번째 대규모 번역은 십자군 전쟁 전후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의 점령지를 회복하면서 획득한 아랍어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한 작업이다. 이 시기를 ‘12세기 르네상스’라 부르기도 한다. 세 번째는 르네상스 시기의 번역이다. 12세기 르네상스 때의 번역은 그리스어를 아랍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라틴어로 옮긴 터라 오역도 많았고 누락된 문헌도 많았다. 그래서 르네상스 때에는 곧바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문헌을 발굴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어느 사회든 번역은 지적 부흥의 중요한 추동력으로 작동한다. 일본이 그처럼 빨리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원동력도 대규모 번역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문명과 관련된 많은 용어들은 일본의 오랜 시간에 걸친 번역작업의 결과이다. 제대로 된 번역은 단순히 일대일로 단어를 옮기는 게 아니라 개념을 체화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 또한 지금까지 6권정도 번역을 했는데 번역에 대한 평가나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음을 피부로 느꼈다. 번역을 중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해 주지도 않고 학술적으로 중요하나 상업적으로 흥행할 가능성이 없는 문헌에 대한 후원 등도 부실하다. 번역의 중요성을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가 《승정원일기》이다. 《승정원일기》는 조선 임금의 비서실 역할을 했던 승정원에서 작성한 일기로 그 분량이 《조선왕조실록》보다 훨씬 더 많아 아직도 번역이 진행 중이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완역까지 약 100년이 걸릴 거라는 추정이 있을 정도이다. 일부에서는 아예 정부에 번역청을 신설하자고도 주장한다. 나는 찬성이다. 정부가 나서서 번역을 장려하고 후원한다면 사회 전반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이슬람의 과학은 다방면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었고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먼저 수학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스의 수학은 에우클레이데스의 《스토이케이아》가 말해주듯 기하학이 중심이다. 한편 이슬람 세계의 동쪽에 있는 인도의 수학은 숫자 중심이다. 숫자 영(0)의 발견은 수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이다. 이슬람의 수학은 이 둘을 융합한 수학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수학자로 8~9세기의 알 콰리즈미가 있다. 알 콰리즈미는 십진법의 아라비아 숫자체계를 정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체계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말 그대로 아랍의 수이다. I, V, X 등을 사용하는 로마식 숫자표기로 산수계산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할까! 알 콰리즈미는 9세기 초반 《더하기와 빼기의 방법》 책을 썼다. 이 책은 대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이차방정식의 풀이법 등이 이 책에 소개돼 있다. 이 책의 제목 중 ‘al-jabr’는 항을 옮긴다는 뜻의 단어인데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알지브라(algebra)이다. 알 콰리즈미의 이름 자체에서 파생된 유명한 단어도 있다. 바로 알고리즘(algorithm)이다. 


이슬람의 연금술도 후대 중세 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연금술이란 좁게는 구리나 납 같은 흔한 금속으로 금, 은, 백금 같은 귀금속을 만든다는 유사과학 또는 사이비 과학이다. 장생불로나 만병통치약 등도 넓게는 연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 더 넓게 보자면 각종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제반의 활동을 연금술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화학과 연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금술의 이론적 연원은 앞서 소개했듯이 각 원소의 성질이 바뀌면 해당 원소가 다른 원소로 바뀔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었다. 기술적인 연원으로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야금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 위키피디아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 위키피디아

이슬람 시대의 위대한 연금술사로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이 있다. 자비르는 황과 수은의 비율을 조절함으로써 모든 금속을 만들 수 있다는 ‘황-수은설’을 주창했다. 이 이론은 중세 유럽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얼마나 영향력이 컸으면 그의 이름을 딴 게버(Geber)가 13세기 유럽에서 연금술사로 크게 활동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자비르의 황-수은설은 유럽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었는데 예를 들면 16세기의 대표적인 연금술사였던 파라켈수스는 황의 원리, 수은의 원리, 염의 원리라는 3원리설을 주창하기도 했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화학용어에도 이슬람 연금술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알칼리, 알코올 등은 모두 어원이 아랍어이다. 알(al)은 영어의 더(the)와 비슷한 아랍어 정관사이다. 연금술을 뜻하는 알케미(alchemy)도 아랍어 연원이며, 여기서 알(al)을 떼고 만들어진 단어가 케미스트리(chemistry)이다. 


이슬람의 의학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슬람 자체의 독자적인 의술도 있었으나 히포크라테스·갈레노스의 그리스 의학과 인도 및 페르시아의 의학도 받아들여 여러 문화권의 의학을 자신만의 의학으로 융합시켰다. 중세 최고의 임상의학자로 불리는 알 라지(854~925년)는 백과사전식 《총서》를 출판했다. 그보다 한 세대 뒤의 이븐 시나는 ‘아랍의 아리스토텔레스’라 불릴 만큼 모든 분야를 두루 섭렵한 ‘학문의 왕’이었다. 특히 그가 편찬한 《의학정전》은 당시까지 알려진 거의 모든 의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17세기까지 유럽의학의 기본서로 쓰였다. 


13세기의 이븐 알 나피스는 혈액소순환(폐순환)을 처음 발견했다. 그는 카이로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의학의 기본 뼈대였던 갈레노스에 따르면 심장의 심실과 심실 사이 격벽에 구멍이 있어 혈액이 통과한다고 했으나 이븐 알 나피스는 격벽에 구멍이 없고 단단하다고 기술했다. 이는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내용이다. 폐순환을 다시 언급한 사람은 250여 년 뒤인 16세기 유럽의 세르베투스였다. 온전한 혈액순환론이 나오려면 17세기 영국의 하비까지 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억할만한 이슬람의 과학자는 이븐 알 하이삼(965~1040년)이다. 알 하이삼은 과학, 철학, 종교 등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인데 특히 광학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남겨 ‘광학의 아버지’, ‘현대 광학의 선구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11세기 초반에 쓴 《광학의 서》에는 빛의 직진과 굴절 등 현대광학의 기본적인 내용이 잘 정리돼 있다. 또한 우리가 사물을 어떻게 보고 인식하는지를 올바르게 기술하였다. 그때까지는 눈에서 광선 같은 것이 나와 사물을 인식한다는 에우클레이데스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이 팽배했으나 알 하이삼은 물체에서 나온 빛이 눈을 자극해 사물을 인식한다는 올바른 설명을 내놓았다. 또한 가설검증을 위한 실험통제 방법을 개발해 현대적인 과학적 방법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뉴턴이 《광학》이라는 책을 낸 것이 1704년이니까 알 하이삼의 업적이 얼마나 시대를 앞섰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이슬람의 과학이 쇠퇴하게 된 원인 중에는 종교적 극단주의가 득세한 탓도 있다. 어느 종교나 사상이든 편협한 극단주의는 과학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 한편 이슬람의 과학을 평가할 때 흔히 “그리스 과학의 냉장고”라고 많이 표현한다. 그리스 과학을 잘 보존해서 후대에 잘 물려주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표현 또한 유럽 중심의 시각이 아닐까 싶다. 이슬람의 과학은 단지 그리스 과학을 잘 보존한 정도가 아니라 페르시아와 인도 등 인접 문화권의 성과를 적극 받아들여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융합적인 문화를 이루었다.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신성하다.”  종교를 막론하고 극단으로 치달으려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선지자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참고자료

-이문규 외, 《과학사 산책》, 소리내
-한국이슬람교평의회, https://m.blog.naver.com/pakdongsin/110100613812
-한국산 제품 해외시장 뚫는 노하우,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429211

-아메드 제바르, 《아랍과학의 황금시대》, 알마.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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