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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알코올의존증, 침(針)으로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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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알코올의존증, 침(針)으로 고친다

2019.09.10 15:59
영화 ′행복′ 스틸컷. 영화 '행복' 스틸컷. 네이버영화 제공. 간경변으로 요양원을 찾은 영수(오른쪽)는 좋은 여자를 만나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나고 새 삶을 살지만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결국 환락의 세계로 돌아간다. 네이버 영화 제공
영화 '행복' 스틸컷.  간경변으로 요양원을 찾은 영수(오른쪽)는 좋은 여자를 만나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나고 새 삶을 살지만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결국 환락의 세계로 돌아간다. 네이버영화 제공

“아저씨, 저요 술 담배 진짜 어렵게 끊었는데...”
“몸엔 좋은데 재미가 없지.”
- 영화 ‘행복’에서
 
필자가 깊은 인상을 받은 영화 가운데 하나가 ‘행복’(2007)이다. 클럽을 운영하는 영수(황정민)는 무절제한 생활로 간경변이 생겨 시골 요양원 ‘희망의 집’에 들어간다. 이곳에는 폐질환으로 8년째 살면서 사실상 직원으로 생활하는 은희(임수정)가 있다. 

 

고아인 은희는 요양원에 들어와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영수를 보살펴준다. 결국 둘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리고 영수는 금주와 금연을 실천하며 건강을 회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애인(공효진)과 친구가 방문한 뒤 영수는 다시 ‘바람’이 든다. 

 

며칠 뒤 동네 사람이 일을 도와준 영수에게 맥주잔을 내민다. 금주의 실천이 깨지는 순간 영수는 자신이 곧 환락의 세계로 복귀할 것임을 예감한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는 이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평했다.

 

필자가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것은 영수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으로 건강을 해친 뒤 정신을 차렸다가 몸이 회복되고 얼마 못 가 슬그머니 다시 시작하는 일을 반복할 때마다 이 영화가 생각나며 쓴웃음을 짓는다. 

 

서울에서 친구들이 다녀간 뒤의 영수처럼 마음의 평정을 잃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우리는 끊었던 악습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굴복하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렵지 예전 생활로 돌아가는 건 금방이다. 

 

사실 중독 같은 강박적인 습관은 본인의 의지만으로 재발은 고사하고 끊기도 어렵다. 따라서 약물치료나 심리치료, 행동치료 등 뇌의 회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수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보상회로에 영향 줘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알코올의존증에 대한 침의 효과를 밝힌 국내연구진의 논문을 9월의 표지논문으로 선정했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알코올의존증에 대한 침의 효과를 밝힌 국내연구진의 논문을 9월의 표지논문으로 선정했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9월 4일자에는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는데 침(針)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국내 연구자들의 동물실험결과가 실렸다. 현대 주류 의학이 침술의 효과를 여전히 ‘위약 효과(placebo effect)’라고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는 걸 생각할 때 저명한 학술지인 ‘사이언스’의 자매지에 이런 논문이 실린 건(그것도 9월의 표지논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논문을 읽어보니 침술로 약물 중독을 치료하는 시도 자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침이 코카인이나 알코올(술) 중독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얻은 실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리고 대략적인 작동 메커니즘도 제안됐다. 침이 뇌의 보상회로에 영향을 미쳐 금단현상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연구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알코올을 끊었을 때 떨림이나 불안 같은 금단현상이 생기는 이유를 알아보자. 뇌에는 ‘중뇌피질변연계(mesocorticolimbic dopamine system)’이라고 불리는 보상회로가 있다. 보상이란 특정한 행동에 따르는 쾌감으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한다. 

술(알코올)이 도파민 뉴런을 활성화하는 메커니즘이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뇌 시상하부의 궁상핵(arcuate nucleus)에 있는 베타(β)-엔도르핀 뉴런을 활성화하는 게 주된 경로로 보인다. 이 뉴런은 중뇌의 중격의지핵(nucleus accumbens)으로 팔(축삭)을 뻗어 β-엔도르핀을 분비한다. 

 

이곳에 있는 GABA(가바) 뉴런은 β-엔도르핀 신호를 받으면 활성이 억제된다. GABA 뉴런은 중뇌의 복측덮개부위(ventral tegmental area)로 팔을 뻗어 도파민 뉴런의 활성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음주로 엔돌핀 수치가 높아져 GABA 뉴런의 활성이 억제되면 도파민 뉴런의 활성이 높아져 보상회로에 불이 켜져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알코올에 노출되면 항상성 반응이 일어나 보상회로가 하향조정된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β-엔도르핀 뉴런의 활성이 너무 낮아져 GABA 뉴런이 지나치게 활발해지고 이에 따라 도파민 뉴런의 활성이 뚝 떨어진다. 그 결과 중뇌피질변연계의 도파민 수치가 낮아 술을 갈망하는 동시에 떨림이나 불안 같은 심신의 반응이 동반되는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술을 마시면 β-엔도르핀이 분비되고 그 결과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며 금단증상이 사라진다. 바로 알코올의존증이다.  

 

술(알코올)을 마시면 궁상핵의 베타-엔도르핀 뉴런(위)이 활성화돼 궁극적으로 도파민 분비(아래)가 늘면서 우리는 쾌감을 느낀다. 중간 단계를 생략해 단순화한 그림이다.  리드칼리지 제공
술(알코올)을 마시면 궁상핵의 베타-엔도르핀 뉴런(위)이 활성화돼 궁극적으로 도파민 분비(아래)가 늘면서 우리는 쾌감을 느낀다. 중간 단계를 생략해 단순화한 그림이다. 리드칼리지 제공

특정 혈자리에 놔야 효과

 

대구한의대 양재하 교수팀과 김희영 교수팀을 비롯한 공동연구자들은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침이 궁상핵의 β-엔도르핀 뉴런을 활성화시켜 알코올 의존성을 낮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알코올의존증 쥐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7일에 걸쳐 액체 먹이의 에탄올 함량을 첫날 1%로 시작해 매일 1%씩 늘린다. 그 뒤 9일 동안 에탄올이 7.2%인 액체 먹이를 먹이면 어느새 알코올에 의존하는 상태가 된다. 참고로 처음부터 에탄올 7.2%인 먹이를 주면 써서 안 먹는다. 한편 대조군 쥐는 알코올 대신 맥아당이 들어있는 먹이를 준다. 실험군이 막걸리는 먹었다면 대조군는 식혜를 먹은 셈이다.

 

실험군 쥐의 먹이통에 막걸리 대신 식혜를 두고 두 시간쯤 지나면 떨림 같은 본격적인 금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쥐의 앞 발목 안쪽에 침을 놓는다. 이 위치는 사람에서 손목 안쪽에 있는 혈자리인 신문혈(神門穴)에 해당한다. 20초 동안 침을 놓은 뒤 15분 동안 떨림을 측정한 결과 거의 대조군 수준으로 떨어졌다. 알코올의존증의 대표적인 금단현상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이 실험에서 필자의 주목을 끈 부분은 정작 다른 데 있다. 혈자리의 중요성을 알아보기 위해 쥐의 앞 발목 바깥쪽에 침을 놓고 효과를 본 것이다. 이 위치는 사람에서 손목 바깥쪽에 있는 혈자리인 양계혈((陽谿穴)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양계혈에 침을 놨을 때는 떨림을 줄이는 효과가 미미했다. 침을 놓을 때 혈자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침을 찌를 때 자극이 작용할 뿐 혈자리는 엉터리 개념이라는 서양 의학의 관점을 반박하는 결과다.

 

연구자들은 쥐의 신문혈에 침을 놓을 때 정말 궁상핵의 β-엔도르핀 뉴런이 활성화되는지 알아봤다. 먼저 대조군 쥐와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쥐의 뉴런 발화빈도는 각각 초당 1.5회와 0.7회였다. 예상대로 알코올의존성 쥐의 β-엔도르핀 뉴런 활성이 낮았다. 그런데 침을 놓자 뉴런 발화빈도가 대조군은 4.9회로 3배 늘어난 반면 금단현상 쥐는 10.9회로 무려 15배나 늘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궁상핵의 β-엔도르핀 뉴런은 중격의지핵으로 팔을 뻗친다. 따라서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쥐의 중격의지핵에 직접 β-엔도르핀을 주사해도 침을 놨을 때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것이다. 실험 결과 정말 그런 것으로 나왔다. 

 

이처럼 보상회로가 정상을 회복하면 술에 대한 갈망이 줄어들 것이다. 레버를 누르면 막걸리 먹이 몇 방울을 먹을 수 있게 학습한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금단현상을 보이는 쥐는 30분 동안 60회나 눌렀지만 침을 맞자 14회로 뚝 떨어졌다. 침 대신 β-엔도르핀 주사를 맞아도 거의 같은 효과를 봤다.    

 

척골신경 타고 올라가

 

연구자들은 규격화를 위해 손으로 침을 놓는 대신 기계로 놓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생쥐 앞발에서 HT7이 사람의 신문혈에, LI5가 양계혈에 해당한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연구자들은 규격화를 위해 손으로 침을 놓는 대신 기계로 놓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생쥐 앞발에서 HT7이 사람의 신문혈에, LI5가 양계혈에 해당한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그런데 쥐의 앞 발목, 그것도 바깥쪽(양계혈)이 아니라 안쪽(신문혈)에 놓는 침이 어떻게 뇌 시상하부의 궁상핵에 있는 β-엔도르핀 뉴런을 활성화시킬까. 연구자들은 지난 2013년 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한 침과  코카인 관련 논문에서 이 경로를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신문혈에 침을 놓으면 주변 기계수용체가 반응한다. 진피에 있는 마이스너소체와 피하조직에 있는 파치니소체다. 이 자극은 가까이 지나가는 척골신경에서 뻗은 축삭(A-섬유)을 통해 전달돼 척추를 거쳐 뇌의 시상하부 궁상핵 β-엔도르핀 뉴런까지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양계혈에 침을 놓아야 소용이 없는 건 이곳의 기계수용체와 척골신경의 축삭이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논문 말미에서 연구자들은 알코올의존증인 사람을 대상으로 침의 효과를 본 기존 연구들에 대해 언급했다. 과거 실험들은 효과가 있다는 결과와 없다는 결과가 혼재돼 있는데 이는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침의 종류, 침을 놓는 자리, 침을 놓는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일관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동물실험의 방법을 사람에 적용할 경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득 집 근처 한의원의 한의사들 가운데 안면이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가까이에 알고 지내는 한의사가 있다면 금단현상이 올 때 찾아가 이번 연구결과를 들려주며 신문혈 자리에 침을 좀 놓아달라고 부탁할 텐데 말이다.

 

신문혈(HT7)에 침을 놓으면 근처에 분포한 마이스너소체와 파치니소체가 자극되면서 축삭(A섬유)을 통해 척골신경(ulnar nerve)을 타고 척추를 거쳐 뇌의 보상회로인 중뇌피질변연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알코올의존증을 치료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플로스 원′ 제공
신문혈(HT7)에 침을 놓으면 근처에 분포한 마이스너소체와 파치니소체가 자극되면서 축삭(A섬유)을 통해 척골신경(ulnar nerve)을 타고 척추를 거쳐 뇌의 보상회로인 중뇌피질변연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알코올의존증을 치료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플로스 원'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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