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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주변국가 과학자가 직면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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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주변국가 과학자가 직면하는 삶

2019.09.12 06:00
노벨상 시상식. 노벨위원회 제공
노벨상 시상식. 노벨위원회 제공

“마태효과가 작동한다면 제도적 결과에 대항하는 어떤 개인적인 노력도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도록 되어 있다” -조혜선 《마태 효과: 한국 과학자 사회의 누적이익》 중에서

 

“과학자 사회에서의 불평등 구조는 기관의 명망 차원 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수준에서도 작동한다. ”-전승봉 《마태효과, 그리고 글로벌 지식생산체계에서의 누적 이익》 중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취임사 중에서

 

마태효과의 확장, 과학의 금수저는 어디서 오는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학벌을 중심으로 한 계급구조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고착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명문대 입학생 상당수는 부모가 부유층이다. 학벌에 묶인 한국 사회의 계급구조에서 부모의 재산과 소득은 운이 아닌 실력이 된다.

 

과학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학자가 과학자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 과학자의 ‘연구’여야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는 다른 과학자의 연구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공분야가 조금만 달라도 논문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는데다, 과학자도 인간인지라 상대방이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휴리스틱(heuristics)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휴리스틱 혹은 발견법이란 정보나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때, 인간이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어림짐작을 말한다.

 

과학자의 휴리스틱 중 가장 널리 또 자주 사용되는 종류는 “어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는가”다. 국내 신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최상위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는 말의 뜻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의 인용지수를, 학술지에 실린 논문의 숫자로 나눈 임팩트 팩터가 매우 높다는 의미다. 같은 논문이라도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처럼 임팩트 팩터가 높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라면 논문의 내용과 상관 없이 해당 과학자의 평판을 좋게 만들 수 있다.

 

또 한가지 방법은 과학자의 박사학위 수여기관 및 훈련받은 연구소 및 대학의 이름을 묻는 방식이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학벌의 위계구조처럼, 과학계에도 학위 및 연구기관에는 암묵적인 순위가 정해져 있고, 그 기관에 소속된 과학자는 기관의 후광을 받거나, 혹은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과학자 개개인의 부익부 빈익빈을 다룬 마태효과는, 제도적 차원으로 확장되기도 하는데 이를 후광효과라고 부른다. 후광효과란 명망 있는 학과, 학교, 기관 등에 소속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5. 이런 현상이 일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교수 선발 과정에서 연구생산성이라는 지표보다 출신 학교와 추천 교수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통해 증명됐다

 

과학자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어쩌면 태생부터 실력에 의한 평가보다 과학자의 출신과 소속을 더 중요한 검증 기준으로 여기며 성장해 온 것인지 모른다.

 

 

과학계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 과학자는 논문만으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출신 대학과 소속, 지도 교수의 이름 등으로 평가 받는 경우가 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과학계에도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 과학자는 논문만으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출신 대학과 소속, 지도 교수의 이름 등으로 평가 받는 경우가 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과학계에 존재하는 국가적 차별

 

다른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하게, 한국 과학계를 주도하는 이들은 대부분 미국 유학파 출신이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한국 과학자만 읽는 논문을 출판하는 학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쩌면 지역중심적인, 그래서 한국어로만 논문을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문학과는 다르게 과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보편적 문제를 다루며, 따라서 동아시아 반도 끝에서 출판한 논문이 다루는 진리값은 미국 최고의 명문대에 위치한 실험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학은 보편적이며 따라서 과학의 내용은 국가, 인종, 나이, 성별 등에 의해 차별받을 수 없다. 그게 머튼이 말한 과학자사회 규범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의 과학자라면 누구나 과학계에 중심부와 주변부가 존재한다는걸 잘 안다. 당장 노벨상이 수여된 국가의 분포만 봐도,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 혹은 일본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이 미국으로 건너간 사실과 무관하지 않고,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과학에 꾸준히 투자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지 과학계 내부의 사실들만으로 설명하려는 사람은 나이브하다. 유럽과 미국, 일본은 모두 과학이 발전하던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이었으며, 식민지를 만들고 착취하던 역사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학을 둘러싼 헤게모니는, 바로 그런 정치사회적 맥락에 독립적이지 않다. 

 

글로벌 지식생산 체계에서 중심부와 주변부가 구분된다는 사실은 과학지식은 물론 인문학 및 사회과학을 비롯한 지식생산 체계 대부분에서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체제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일 수록, 지식생산 체계에서도 핵심적 위치를 차지할 확률이 높고, 이들 중심부 국가에서 생산된 과학지식은 주변부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과학지식을 둘러싼 중심부 효과는 중심부에서 생산된 지식이 더욱 보편적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인식의 강화가 지속되면, 과학지식을 둘러싼 국가간 위계가 생겨나고, 그 위계가 휴리스틱에 익숙한 인간 과학자를 만나면 차별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주변부 국가에서 태어난 과학자가, 중심부에서 인정받는건 흙수저로 태어난 청년이 금수저가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주변의 과학자에게 한국에서 네이처지에 논문을 내는 것과, 미국에서 네이처지에 논문을 내는 것중 어떤 작업이 더 어려운지 물어보라. 과학자라면 누구나 네이처지가 과학자가 소속된 국가에 따라 일정한 정도로 차별적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다. 진정한 실력만으로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세상은 없다. 실력에는 논문을 출판하는 과학자의 출신배경, 소속, 성별, 인종 등의 모든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 보고서 (2008년~2017년 자료)
한국연구재단 보고서 (2008년~2017년 자료)

영어라는 헤게모니, 그리고 과학의 주변국가

 

과학자가 모국어로 논문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그런 논문은 과학계에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학자가 된다는 의미 중 하나는, 과학자사회가 인정하는 논문을 출판했다는 뜻이고 그 논문은 모두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실용적 언어, 즉 영어로 기술되어야 한다. 과학자로 성장한 대부분의 사람은 영어로 된 논문을 읽고 쓸 줄 안다. 또 과학자가 논문을 제출하는 대부분의 권위 있는 학술지는, 영어로만 논문을 출판한다. 과학지식은 영어라는 언어에 속박되어 있다.

 

필자 주변에도 영어 때문에 유학을 포기한 과학자가 여럿 있다. 모국어 외에 또 다른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자 능력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국어만 사용하며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영어는 단지 과학을 위한 보조적인 도구가 아니라 필수도구에 가깝다. 물론 일본 과학자들이 영어에 서툴기는 하지만, 그들이 서툰 영역은 말하기와 듣기이지, 읽고 쓰기가 아니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세계의 다른 과학자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논문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과학계를 둘러싼 이와 같은 영어 헤게모니가, 과연 한 국가의 과학발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나만 해도, 대만에서 건너온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박사후 연수를 했고, 처음 제출한 논문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에게 영어에 대한 지적을 들었다. 미국에 건너온지 40년이 넘은 지도교수는 그 심사위원의 지적에 너털웃음을 지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 지도교수의 영어 문장은 미국사람보다 탁월하다고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과학지식생산을 지배하는 영어의 헤게모니는, 주변부 국가에서 태어난 뛰어난 과학자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받을 기회를 축소할 수 있다. 특히 영어능력이 출신계급에 따라 결정되는 한국사회에 이 문제를 대입해보면, 과학자로 성장하는 길은 결코 공정하지 않은, 특권층에 유리한 길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글로벌 지식생산 체계에서 영어의 헤게모니와 미국 유학파들의 독점현상, 그리고 여기에서 이어지는 학문의 종속성 문제는 이미 사회학계에서는 공론화된지 오래다. 특히 미국 유학파 엘리트가 장악한 한국 학계의 문제는, 대학의 글로벌 위계와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학벌 체제가 맞물리면서 미국 유학파가 한국 학계를 독점하고, 실력주의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퇴행하는 현상을 낳았다⁠10. 과학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선도적 연구그룹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 과학계의 현실은, 학벌 체제와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한 대책 없이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것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 개개인에게 노력만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과 언론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한국 과학계가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게임규칙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게임규칙을 바꿔야 한다. 당장 고급학술지의 편집자가 공정하다고 신뢰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들의 게임의 규칙에 종속되어 가는건,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주변부 국가에서 나름 훌륭하게 성장한 과학자사회를 지닌 한국은, 과학계의 여러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지닌 나라다. 한국 과학계와 정부가, 단지 과학자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것을 넘어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한국 과학이 발전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참고자료

-조혜선. (2007). 마태 효과: 한국 과학자 사회의 누적이익. 한국사회학, 41(6), 112-141 재인용

-전승봉. (2016). 마태효과, 그리고 글로벌 지식생산체계에서의 누적 이익: 한국 사회과학 저발전에 대한 함의. 사회과학연구, 24(2), 74-11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92661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마태 효과와 기생충: 과학자사회의 불평 등, 동아사이언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0543

-Crane, D. (1965). Scientists at major and minor universities: A study of productivity and recognition.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699-714.

-Long, J. S., Allison, P. D., & McGinnis, R. (1979). Entrance into the academic career.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816-830.

-전승봉. (2016). 마태효과, 그리고 글로벌 지식생산체계에서의 누적 이익: 한국 사회과학 저발전에 대한 함의. 사회과학연구, 24(2), 74-118.

-Descarries, Francine. 2003. “The Hegemony of the English Language in the Academy: The Damaging Impact of the Sociocultural and Linguistic Barriers on the Development of Feminist Sociological Knowledge, Theories and Strategies.” Current Sociology 51, No. 6, 625-636.

-김종영 김종영. (2010). 미국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의 일상적 체화: 미국 대학원에서의 한국 학생들의 유학경험. 경제와사회, 237-264.

-강정인. (2004). 서구 중심 주의 를 넘어서 (Vol. 564). 아카넷.

-조희연. (2006). 우리 안의 보편성: 지적 학문적 주체화로 가는 창. 신정완 등 (편).[우리 안의 보편성: 학문주체화의 새로운 모색](25~82 쪽), 서울: 한울아카데미.

-미국 유학파 교수들, 독창적 논문 생산 어렵다, 교수신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0942

 

※필진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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