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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투명인간'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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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투명인간'의 슬픔

2019.09.14 09:00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따돌림 못지 않게 원인이 불확실하고 무시나 비웃음 등 ′은근히′ 이루어지는 괴롭힘도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접적이고 눈에 보이는 따돌림 못지 않게 원인이 불확실하고 무시나 비웃음 등 '은근히' 이루어지는 괴롭힘도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게티이미지뱅크

무관심보다는 미움 받는 게 낫다고 했던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사람을 상처 입힐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무시’이다. 어제까지 잘 얘기하던 사람이 오늘부터 갑자기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대화하러 다가가면 은근슬쩍 자리를 뜨고,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귀찮다는 듯 아니라고만 잘라 얘기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런 상황이 며칠 지속된다면 차라리 대놓고 화를 내주길 뭐가 문제인지 대놓고 얘기해주길 바라게 된다. 


소외 또는 따돌림이라고 하면 주로 노골적인 괴롭힘이 떠오르지만, 여기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우선 적극적인 괴롭힘이 따르는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이 있다면,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대화를 피하는 식의 비교적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이 있다. 또한 얼마 전 크게 다퉜다든가 소외의 이유가 확실한 경우가 있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등의 갑작스럽고 원인이 불확실한 경우가 있다. 


미국 퍼듀대 키플링 윌리엄스 교수에 따르면 ‘은근히’ 이루어지는, 간접적이고 원인이 불확실한 소외가 노골적인 괴롭힘 못지 않게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무시나 비웃음 같은 태도로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알려 주지 않는 경우 소외를 당하는 사람은 답답함을 견디기 어렵다. 원인을 찾아 골몰하게 되고, 그 자연스럽게 자신을 검열하고 비난하게 된다. 이렇게 은근한 소외는 사람들로부터 알 수 없는 적과 싸워야 한다는 불확실성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런 반면 소외를 주도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관계적 권력을 거머쥐게 만든다. 


노골적인 괴롭힘과 폭력은 비교적 눈에 잘 띄고 피해 상황도 확연히 드러나서 다수의 반발을 불러오기 쉽다. 그런 반면 특정인을 향한 은근한 방식의 소외는 비가시적이고 이게 확실한 가해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고 따라서 벗어나기도 어려운 형태의 괴롭힘이다.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소외가 꽤 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조사에 의하면 약 70%의 사람들이 그 정도 차이는 있어도 연인, 친구, 가족관계서 상대방을 벌하기 위해 일부러 무시하기를 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비슷하게 약 70%가 이런 방식의 벌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무시의 특성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윌리엄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겪었던 간접적인 방식의 소외, 급작스런 차가운 태도나 무시에 대해 떠올려보고 그 당시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그 때 자신의 기분은 어땠는지에 대해 상세히 적어보도록 했다. 또한 자신이 타인에게 했던 무시에 대해서도 떠올려보고 그 당시의 행동과 기분에 대해서도 적어보도록 했다. 


그 결과 우선 대표적인 무시 행동들은 시선을 회피하는 것, 대화 기피, 이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거나 유령처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인 양 취급함, 질문에 응답하지 않음 등이 있었다. 


그 영향으로 혼자가 됨, 멀리 떨어짐, 분리됨, 외로움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소속감 하락이 나타나고 스스로 바보가 된 것 같다거나, 죄책감이 느껴진다는 자존감 하락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무기력,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음, 좌절감 같은 통제감 상실과 함께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기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된 기분 같은 존재론적 회의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는 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무시를 받은 사람은 소속감, 자존감, 통제감, 삶의 의미감을 잃지만 무시를 ‘하는’ 사람은 반대로 자존감과 통제감, 삶의 의미감을 얻는 편이라는 점이다. 무시를 당했던 경험이 아니라 반대로 누군가를 무시했던 경험들에 대해 분석했을 때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이 향상되었다든가 상대방을 내 손 안에 쥐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는 보고들이 다수 확인됐다. 


권력은 타인에게 내 의지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크기로 정의된다.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것이 지상과제인 사회적 동물에게 있어, 어떤 사람을 우리 집단 또는 관계의 구성원으로 포함시킬지 말지를 정할 수 있는 영향력은 생사여탈권과 비슷한 큰 권력이다. 누군가를 벌하기 위해 일부러 무시하는 행위 역시 이러한 권력을 행사하고 확인하는 한 가지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언어적 비언어적 폭력과 괴롭힘이 동반되지 않아도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존감과 통제감, 나아가 삶의 의미감까지 잃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작은 무시, 작은 관심의 존재 여부가 인간에게 있어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흉악한 범죄자들도 가장 무서워하는 벌 중 하나가 ‘독방’행이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이들도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혼자 몇 날 며칠을 혼자 보내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 두려움은 “나의 존재가 서서히 지워져 가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없는 사람 취급 받는 사람이 있다면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Williams, K. D., Shore, W. J., & Grahe, J. E. (1998). The silent treatment: Perceptions of its behaviors and associated feelings. Group Processes & Intergroup Relations, 1, 117-14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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