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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의 닥터스] "가습기살균제 끝까지 추적해야 피해자 줄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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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의 닥터스] "가습기살균제 끝까지 추적해야 피해자 줄일 수 있어"

2019.09.23 06:00
이정아 기자
20일 가천대 길병원에서 만난 정성환 가천 미세먼지 질환연구소장. 정 소장은 석면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한 호흡기 질병에 대해 의학적으로 자문하고 또 피해자 구제를 위해 힘써왔다. 현재는 미세먼지 건강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세상에서 가장 값싸면서도 무한대로 많은 것 중 하나가 공기다. 누구나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런데 요즘은 인간 활동으로 공기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실내 건축재료로 흔히 쓰던 석면(섬유상 규산염)이, 또 청결 유지를 위해 썼던 가습기 살균제가, 그리고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미세먼지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공기 오염을 공기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온 작은 오염입자들은 호흡기뿐 아니라, 혈액을 타고 몸 곳곳을 돌아다니며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이유를 콕 짚어 공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과거에 들이마신 더러운 공기가 수~수십 년 뒤 어떤 병으로 나타날지 지금도 예측하기 어렵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공기오염과 그 피해자들을 장기간 추적하는 이유다.


정성환 가천대 길병원 가천 미세먼지 질환연구소장(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도 그런 추적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외래에서 주로 천식과 폐렴, 폐암, 폐섬유화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폐질환을 진료한다. 십수년 전부터 증가하고 있는 새로운 양상의 폐질환이나 천식 등이 석면이나 가습기 살균제, 미세먼지 등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환경이 미치는 건강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들 환경적 요인이 체내에서 어떤 과정으로 병을 일으키는지 연구하는 한편, 의학적 자문으로 피해자를 구제해왔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8월 정부업무 평가 유공자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달 20일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가천대 길병원에서 정 소장을 만났다.

 

- 석면과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일은 주로 어떤 것인가

 

가천대 길병원 제공
정성환 소장은 석면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한 호흡기 질병에 대해 의학적으로 자문하고 또 피해자 구제를 위해 힘쓴 공로로 2018년도 정부업무평가 유공자로 선정돼, 지난 8월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피해자 구제는 폐질환을 앓는 환자가 정말로 석면 또는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본 것인지 심사하고, 병의 경중을 따져 증상을 최소화하도록 치료를 돕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폐암이나 폐섬유화증(폐가 단단하고 뻣뻣하게 변하는 병) 같은 중증 폐질환은 완벽한 치료제가 없다. 병원에서도 증상을 완화시키고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향으로 치료할 뿐이다. 그래서 석면이나 가습기 살균제처럼 무작위, 대규모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국가가 피해자 구제에 나선다. 

 

석면피해구제심사위원회의 위원으로서나 가습기 피해 폐질환 심사위원회 위원으로서, 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천식 판정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폐질환자들이 병의 원인을 밝히고 최대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석면 피해를 입은 환자들을 어떻게 돕고 있나

 

석면은 1960~70년대만 해도 건축 단열재나 방화벽 재료 등으로 흔히 쓰였다. 하지만 수 년간 동안 석면이 목숨을 서서히 앗아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러다가 폐암과 중피종(흉막에 생기는 암), 폐섬유화증 등 폐질환 환자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전수조사를 했고 원인이 석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선정했다. 

 

국내에서는 2009년 호흡기알레르기내과와 예방의학가 전문의들이 모여 석면 피해에 대한 기준을 처음 만들었다. 환자들이 앓고 있는 폐질환이 정말 석면으로 인한 것인지, 증상의 정도는 얼마나 심각한지 등을 판단하는 척도로 사용된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2011년 이 기준에 따라 피해자를 구제하는 석면피해구제심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석면 피해에 대한 기준을 만든 호흡기내과, 예방의학과 전문의와 환경학자 등 전문가 15명이 참여한다. 피해 환자들이 이곳에 조사 판정을 신청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위원회가 심사해 구제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위원회에 44회 참석해서 피해자들을 도왔다. 이 공로로 지난 봄에는 환경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제대로 도움을 받고 있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2011년 4월 처음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1400명이 넘는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사망하는 원인은 대부분 중증 폐섬유화증이다. 그런데 전수조사를 해보니 천식을 앓는 환자도 많았다. 

 

석면 피해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구제가 필요했다. 폐질환 등이 발생한 원인이 정말 가습기 살균제 때문인지 따지고 증상의 심각도가 얼마나 되는지 진단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환경부에서는 2016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 폐질환 심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소아청소년과, 직업환경의학과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폐질환 판정 기준을 세우고, 피해자를 살리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듬해 11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천식 판정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을 맡았다. 결핵및호흡기학회, 직업환경의학회, 소아청소년학회, 알레르기학회 등 4개 학회들이 연합해, 12개 대학병원 소속 교수 30여 명이 함께 판정단을 꾸렸다. 지난해 말부터 올 7월까지 심사판정을 신청한 환자는 6000명이 넘는다. 판정단은 정밀 분석을 시행해 지금까지 340여 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천식이 발생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했다. 
 
- 심사판정 외에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천식은 일반 천식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천식은 진행이 좀 빠른 편이고, 증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호전되지만 천식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가 미치는 영향이 천식에서만 그칠지, 다른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천식 판정위원회에서는 천식에 대한 판정 기준을 호흡기학회에서 정한 그대로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가벼운 천식을 앓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가벼운 천식 증상처럼 보이더라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게 의학적인 증거를 찾고 있다. 

 

폐섬유화증도 마찬가지다. 폐섬유화증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원인도 불명확하다.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섬유화증이 그간 발견됐던 것 외에 다른 양상을 띠는 경우가 있는지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 현재 환경부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과 강북삼성병원, 충남대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 26개 대학병원에서 지역별 환자들을 장기 추적 조사 중이다. 이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추후 다른 질환이 발생하지 않는지 조사 연구할 수 있다. 

 

환경부 산업기술원과 함께 이 역학조사에서 얻은 결과물들을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있다. 이 자료들이 오래 쌓이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건강에 장기적으로 어떤 해로운 영향이 미치고 어떤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지 등 알 수 있을 것이다.

 

- 석면이나 가습기 살균제 외에도 따로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다면

 

2014년부터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국책 과제로 '미세먼지 건강 영향'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있다. 당시 미세먼지가 건강에 끼치는 피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미세먼지 농도가 짙을 때 이를 알리는 '미세먼지 알림이' 앱도 개발했다.

 

미세먼지도 석면이나 가습기 살균제와 마찬가지로 당장 치료제가 없다. 그래서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만성질환자들이 건강에 어떤 피해를 받을 수 있는지, 이 증상을 어떻게 최소로 줄이는지 연구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여러 연구를 통해 미세먼지가 호흡기뿐 아니라 소화기관이나 생식기관, 심지어 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속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가천 미세먼지 질환연구소에서도 호흡기알레르기내과와 신경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예방의학과 등 다학계 전문가 10여 명이 미세먼지 건강 영향에 대해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미세먼지가 고혈압과 당뇨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내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세먼지가 호흡기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즉각 알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 다른 장기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과정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세먼지 입자 크기가 매우 작아 혈류를 타고 온몸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난 6월에는 가천대 의과대학 8층에 '가천 미세먼지 질환연구소'가 생겼다. 설립 목적은 폐질환과 심장질환, 대사성질환, 뇌인지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대개 미세먼지에 취약한데, 어떻게 하면 이들의 피해를 줄일 것인지 치료 방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소장을 맡아 다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미세먼지가 각 부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미세먼지에 대한 피해를 100% 막기는 어려워도, 어떤 과정을 거쳐 피해가 생기는지 알면 효율적인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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