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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크레이지 캣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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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크레이지 캣 레이디

2019.09.28 06:00
톡소포자충이 쥐의 뇌조직에 만든 낭. USDA 제공
톡소포자충이 쥐의 뇌조직에 만든 낭. USDA 제공

약 10년 전에 발표된 한 가설에 의하면 Rh +/- 이형접합체는 톡소포자충 감염에 내성을 가진다. 이는 아주 흥미로운 진화적 현상이다. 이형접합체가 동형접합체보다 유리하기 때문에 두 가지 다형성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Rh +/- 유전형을 가진 사람의 혈액형은 Rh 양성이다. 그런데 이들은 Rh-/- 유전형을 가지고 있는 Rh 음성 혈액 혹은 Rh+/+ 유전형을 가진 Rh 양성 혈액을 가진 사람에 비해서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도 증상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정확히 말하면 반응 속도 저하가 적다)는 것이다. 


톡소포자충은 유럽인에게 흔한 기생충이다. 일반적으로 30% 정도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프랑스인의 경우 70~80% 이상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감염된 것이다. 면역기능이 정상인 사람은 감염이 되어도 별 증상이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니 임상의학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약간의 운동 혹은 감각 능력 저하가 있을 수 있고, 우울감 등 행동이나 정서의 변화도 있을 수 있다. 아주 약간의 차이도 긴 세월이 지나면 큰 진화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유럽인, 특히 바스크인의 높은 Rh 음성 혈액형 비율은 톡소포자충 때문일까? 바스크인의 선조는 고양이를 좋아했던 것일까?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바스크인의 몸에 흐르는 피는 그들의 선조가 살았던 자연환경에 관한 오랜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밝혀야 할 것이 많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 대변에 섞여 나온다. 이걸 쥐나 토끼, 돼지 등 동물이 먹으면 그 동물의 몸에서 부화한다. 그리고 그 동물을 다시 고양이가 먹으면 고양이 몸에서 성충으로 자란다. 그리고 다시 대변으로 나온다. 따라서 토끼나 돼지를 날로 먹으면 인간에게 감염되기도 한다. 인간이 고양이 대변을 먹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통하지 않으면 생애사가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고양이를 잘 키우지 않는 문화에서는 감염률이 낮다. 원래 한국인의 감염률은 5% 수준인데, 최근 급상승하고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25%까지 증가했다. 네 명 중 한 명이 감염된 것이다. 고양이를 점점 많이 키우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캣 레이디

 

크레이지 캣 레이디로 잘 알려져 있는 심슨의 극중 캐릭터. simpsonswiki.com 제공
크레이지 캣 레이디로 잘 알려져 있는 심슨의 극중 캐릭터. simpsonswiki.com 제공

폭스 TV의 심슨 가족을 좋아하는 분은 종종 등장하는 크레이지 캣 레이디(crazy cat lady) 혹은 매드 캣 레이디(mad cat lady)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공원에 노숙하면서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할머니다. 그런데 혹시 고양이로부터 톡소포자충증이 전염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정신장애에 걸린 것일까?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 같다. 하지만 진지하게 이런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으로서는 가슴이 철렁하겠지만. 


고양이는 개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애완동물, 아니 반려동물이다. 지구 상의 고양이만 5억 마리다. 흔히 남성보다 여성이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 남자도 많다. 2007년 미국에서 시행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고양이를 키우는 남성과 여성의 수는 거의 같았다. 물론 할머니가 더 많이 키우는 것도 아니다.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신성한 동물로 추앙되었는데, 기원전 2498년부터 2345년 사이에 지어진 이집트 제5왕조 시대의 무덤에는 고양이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집트인은 어떤 연유로 고양이와 인연, 아니 묘연을 맺게 되었을까. 아마도 비옥한 나일강 유역에서 농경을 시작하면서 고양이와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잉여 곡물을 저장하는 창고를 만들었는데, 쥐와 새를 쫓으려면 고양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고양이는 곡식을 좋아하지 않으니 안성맞춤이었다. 실제로 기원전 1390년경에 제작된 한 무덤 벽화에는 쥐와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가 등장한다. 


고양이는 농경 민족에게 큰 이득을 가져오는 좋은 동물이었다. 개가 사냥을 도우면서 인간과 가까워졌지만, 고양이는 농경을 도왔다. 현대 사회의 개가 이제는 사냥을 돕지 않는 것처럼 오늘날의 고양이도 쥐와 새를 잡는 임무에서 해방되었다. 가끔 쥐나 새를 입에 물고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주인에게 다가와서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은 있지만. 


고양이가 잘 걸리는 감염증, 톡소포자충증은 기생충에 감염된 동물을 고양이가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감염된 고양이는 매일 수백만 개가 넘는 알을 배설한다. 알(난포낭)은 흙이나 물속에 잠복해 있다가 인간으로 옮겨온다. 물론 인간은 최종 숙주는 아니다. 톡소포자충증에 걸린 사람이 난포낭을 배설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오염된 채소나 덜 익힌 고기를 먹고, 감염된 고양이 배설물에 노출되면 인간도 톡소포자충증에 걸릴 수 있다. 


 
톡소포자충증의 증상

 

출처 서울대아산병원 질환백과(자료 CDC)
출처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자료 CDC)

인간 톡소포자충증은 대개 무증상이다. 감염 직후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상을 겪지만, 잘 모르고 지나간다. 일부 환자는 폐렴을 앓기도 하고, 뇌나 눈으로 증상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감염된 사실도 모르고 지낸다. 미국의 감염률은 약 10%, 유럽은 국가별로 30~80%, 아시아는 5-40% 수준이다. 한국은 약 5% 미만으로 추정되는데,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증상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 증상이 생기면 골치가 아파진다. 정상적인 면역기능을 가진 사람은 별문제가 없지만, 일부에서는 근염, 심근염, 폐렴 등이 생긴다. 신경을 침범해 안면 마비나 혼수, 전신 마비가 오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또한, 청소년기에는 눈에 침범하여 시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물론 아주 드물다. 


그런데 임신 중 감염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어머니가 톡소포자충증에 감염되어 있다면 태아에게 선천성 톡소포자충증을 일으킬 수 있다. 사실 태아의 경우에도 증상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지만, 종종 뇌수종이 발생하고 경련과 시력 저하, 실명을 일으킨다. 간과 비장이 커지기도 한다. 태어난 아기는 이후 뇌전증이나 지적장애, 발육부전 등을 앓기도 한다. 유산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에이즈에 걸린 환자나 항암 치료 중인 암 환자도 면역 기능이 떨어져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직 한국에는 드문 질병이지만 점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서 마냥 뒷짐 지고 있을 형편은 아니다. 


 
마음을 조종하는 기생충?

 

'크레이지 캣 레이디 증후군(crazy cat-lady syndrome)’은 정식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흔히 사용하는 속된 표현이다. 서양 문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다니는 노처녀 할머니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이다. 


사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설치류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현상은 잘 알려져 있다. 감염된 쥐는 갑자기 부산해지고 겁이 없어진다. 새로운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심지어 고양이에게도 막 달려들었다. 그런데 인간이 걸리는 조현병도 톡소포자충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심지어 조현병 환자의 1/3은 톡소포자충증과 연관된다는 과감한 주장도 발표되었다. 


임신 중에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약 60%의 태아가 수직 감염된다. 일부 태아는 유산되거나 중증의 선천성 톡소포자충증 증상을 앓지만, 상당수는 증상이 없이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일부 무증상 감염자 중에서 정신 증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현병의 발병에는 유전적 원인이 크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란성 쌍둥이에서 일치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 이왈드 등의 진화의학자는 조금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일치율은 일란성 쌍둥이, 이란성 쌍둥이, 형제자매 순으로 높다. 유전적 원인을 시사하는 증거다. 그런데 일란성 쌍둥이 중에서 같은 융모막을 공유할 때는 일치율이 60%에 이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치율이 11%로 떨어진다. 일란성 쌍둥이는 게놈이 일치하기 때문에 단지 융모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치율이 이렇게 차이 나는 것은 있기 어려운 일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수정된 난자와 정자가 발생 도중에 두 개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정 후 72시간 이내에 분리가 일어나면, 각각의 태아는 각자의 융모막과 양막을 가지게 된다. 같은 엄마의 자궁에 있지만, 각방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4일이 넘어서 분리가 일어나면 융모막을 공유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같은 태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일주일이 넘어가면 아예 한방에서 자란다. 자칫하면 탯줄이 엉키기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가 상당히 긴장하는 경우다. 


그런데 같은 융모막을 공유하는 경우에만 유독 높은 일치율을 보인다면, 이는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감염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플루엔자나 헤르페스 감염도 범인으로 지적되지만, 톡소포자충도 자주 의심받는 용의자다. 게다가 조현병이 겨울에 태어난 아기에게 많은 것도 의심을 키웠다. 겨울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이라면 감기 혹은 실내에서 키우는 동물에게 옮긴 것일 테니 말이다. 난로가 옆의 고양이가 다시 용의선상에 올랐다. 


또한 조현병은 부모의 연령이 높으면 더 잘 생기는 경향을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연령이 많은 부모의 유전적 손상이나 고령으로 인해 적절한 양육을 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감염 가설을 주장하는 의사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고령의 부모라고 해도 초산일 경우에는 발병률이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위 형제가 있어야만 연령에 따른 발병률 증가가 관찰되었다. 손윗 형제를 돌보느라 동생에게 신경을 덜 써서 조현병이 생긴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손위 형제가 밖에서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후 다시 어머니에게 감염시켜서 동생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살 많은 손위 형제가 있는 경우에만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나이가 많은 손위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부모 나이도 따라서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에게 조현병 위험률이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 폴 이왈드 등은 이런 이상한 현상에 대해서 손위형제가 어머니와 찰싹 붙어 지내는 나이가 지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Rh 혈액형과 톡소포자충증

 

2008년 체코 프라하의 찰스 대학교 기생충 연구팀은 기발한 연구를 시행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Rh 양성 혈액형을 가진 사람 중 일부는 Rh +/- 대립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전형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동 반응 속도를 비교했는데, 대상자는 톡소포자충증 감염자였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운동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 그런데 이형접합체를 이루는 사람은 이러한 운동 반응 속도 저하가 적게 나타났다. 쉽게 말해서 톡소포자충증에 의한 신경 증상을 경하게 앓는다는 것이다. 


Rh 혈액형이 어떻게 진화한 것인지는 진화적 미스터리 중 하나다. Rh 음성 여성은 Rh 양성 남성과 만나 아기를 낳을 때 자칫하면 신생아 용혈성 질환으로 인해 자식을 잃기 쉽다. 오랜 옛날 세상에 Rh 음성만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돌연변이로 Rh 양성 남성이 태어났다고 하자. 이 남성은 Rh 음성 여성과 결혼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Rh 음성인 사람만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거에는 Rh 양성만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돌연변이로 Rh 음성 여성이 태어났다고 하자. 이 여성은 Rh 양성 남성과 결혼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Rh 양성인 사람만 있기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결과는 비극적이다. 


이러한 미스터리를 이형접합체 유리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Rh 음성이면 Rh 양성보다 운동 반응 속도가 빠르다. Rh 음성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경우에는 이형접합체를 가진 Rh 양성인이 유리하다. 톡소포자충증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염원이 많은 곳에서는 Rh 양성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유럽인, 그리고 유럽인에게 유독 높은 Rh 음성 혈액형이 어떤 관련이 있을까?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연구 결과는 일부 현상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아시아인은 고양이를 많이 키우지 않는데, 그렇다면 Rh 음성이 제법 많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주 드물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좀비 기생충?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어떻게, 그리고 왜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것일까? 과거에는 톡소포자충이 뇌를 침범하여 행동 이상이나 신경 이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왜 일정한 양상으로 행동문제가 나타나는지 의문이었다. 예를 들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운전 사고를 잘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다.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행동이 크고 과도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톡소포자충의 중간 숙주다. 톡소포자충으로서는 중간 숙주를 고양이가 먹지 않으면 곤란하다. 생애사가 중간에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간 숙주가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부주의하게 행동하면 유리하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가 겁도 없이 고양이에게 덤비는 것처럼 말이다. 인간도 그런지 모른다. 실제로 톡소포자충의 게놈에서 도파민을 합성하는 속도를 빠르게 하는 효소와 관련된 부분이 발견되었다. 


톡소포자충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은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톡소포자충이 조현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수많은 요인 중 작은 하나의 요인 정도로 생각된다. Rh 혈액형과 톡소포자충증과의 관련성은 초기 가설 수준이다. 앞으로 진화의학 연구가 더 발전하면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고양이를 너무 겁낼 것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대부분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지 않은 깨끗한 고양이다. 과거에는 미국 등에서 임산부에게 고양이를 피하도록 권유했지만, 지금은 그런 권고가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음 편 미리 보기 ┃ 엡실론 4 유전자

 

건강한 사람의 뇌(왼쪽)과 중증 치매 환자의 뇌(오른쪽). 중증 치매 환자는 정상인과 비교해 그 크기가 눈에 띄게 작으며, 내측 측두엽의 위축이 두드러진다. 경희대병원
건강한 사람의 뇌(왼쪽)과 중증 치매 환자의 뇌(오른쪽). 중증 치매 환자는 정상인과 비교해 그 크기가 눈에 띄게 작으며, 내측 측두엽의 위축이 두드러진다. 경희대병원

크레이지 캣 레이디가 조현병에 걸린 것인지 톡소포자충에 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혹 알츠하이머씨 병은 아닐까? 사실 많은 노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치매, 그중에서도 알츠하이머씨 병이다. 서구화된 사회에서 가장 큰 공공보건적 위협은 물론 심혈관계 질환이지만, 알츠하이머씨 병도 만만치 않다. 사망률은 심혈관계 질환의 1/7에 불과하지만, 알츠하이머씨 병을 앓는 동안 겪는 삶의 질 하락은 비견할 병이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치매는 인류 역사와 같이해온 역사가 깊은 병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화에 따른 정신적 퇴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며, 정신은 점점 열등해지므로 노인은 책임지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중 최소 일곱 명이 치매를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등장하는 리어왕도 치매를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조선의 왕, 영조도 치매를 앓았다는 주장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가진 치매. 늙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숙명일까? 단지 노화에 의한 결과라면 왜 어떤 사람은 일찍 치매를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백 살이 넘어도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일까? 운동 여부나 학력 수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식생활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전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치매를 앓고, 노벨상 수상자도 치매를 앓는다. 좋다는 음식만 골라 먹은 로마의 황제와 조선의 왕도 치매에 걸렸다. 치매는 도대체 왜 걸리는 것일까? 


1993년 이런 미스터리의 실마리를 찾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아포지단백 엡실론 4 유전자의 네 가지 대립 유전자가 발견된 것이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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