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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혁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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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혁명의 시작

2019.10.03 13:03
미국의 폭스 TV가 지난 2014년에 리메이크한 유명 과학다큐 '코스모스'.imdb 제공
미국의 폭스 TV가 지난 2014년에 리메이크한 유명 과학다큐 '코스모스'.imdb 제공

톨레마이오스가 《천문학대전》을 쓴 것이 서기 약 150년이고 이 책이 이슬람 세계에서 《알마게스트》로 번역된 것이 820년대 무렵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에 태어나 1543년에 사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계산하면 지구중심설이 대략 2천년을 구가한 셈이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의사이면서 교회 행정직을 수행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학창시절부터 밤하늘 보기를 좋아했다. 교회 일을 보면서도 틈틈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계절에 따른 태양의 고도와 춘분점을 관측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교회에서 문제가 많았던 율리우스력을 수정하려는 작업에도 기여했다. 지금 용어로 말하자면 코페르니쿠스는 당대 수준급의 ‘천문덕후’였다.


그런 까닭에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도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프톨레마이오스를 최고의 천문학자로 존경했다. ‘패러다임’으로 유명한 토머스 쿤은 코페르니쿠스를 최후의 프톨레마이오스주의자라 불렀다. 복잡하게 주전원을 그려가면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일을 가장 잘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코페르니쿠스였다. 프톨레마이오스주의자로서 코페르니쿠스가 한 일은 아주 간단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서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정리해 1510년 무렵 '소논평'이라는 약 6쪽 분량의 짧은 원고를 썼다. 이 원고는 지인 등에게 뿌려졌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태양중심설에서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할 뿐만 아니라 지구 자신도 스스로 돌고 있었다. 지구의 자전에는 개념적으로 편리한 면이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체계에서는 우주의 모든 별이 하루에 한 바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일주운동을 해야 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우주의 모든 것이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돈다고 생각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지구가 자전하면서 공전한다는 개념은 일상 경험과 결합했을 때 큰 저항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구가 그렇게 돌고 있다면 그 위의 모든 물체와 인간이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을까? 우리는 어떻게 지구 표면에 안정적으로 붙들려 있을 수 있을까? 이때는 중력이라는 개념이 나오기 한참 전이다. 당시 사람들이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순전히 경험적이고 역학적인 관점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한 데에는 그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눈으로 관측한 태양과 달과 별은 아무래도 가만히 있는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이 직관경험을 거스르기도 쉽지 않다. 코페르니쿠스 자신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논평'을 낸 뒤에는 그 내용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에 들어갔다.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그 결과가 나온 것은 무려 25년이 지난 1535년이었다. 이 원고가 출판될 때까지는 다시 8년이 더 걸렸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것이 《천구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이다. 언뜻 '소논평'에서 《천구회전에 관하여》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때에는 대부분 태양중심설과 성경 사이의 관계를 그리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교황청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을 소개하는 강연도 있었고 추기경이 깊은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가 걱정했던 것은 요즘 말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악플’이었다. 즉,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주변으로부터 비웃음을 살까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결국 《천구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된 것도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 때문이었다기보다 독일의 젊은 천문학자였던 레티쿠스가 끈질기게 출판을 설득한 결과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미 병약해진 상태였다. 코페르니쿠스를 신봉했던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가 그냥 원고를 무덤까지 들고 들어가는 상황이 최악이었을 것이다.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로부터 겨우 원고를 건네받고 이를 오시안더 목사에게 넘겼다. 오시안더 목사는 원 저자인 코페르니쿠스의 동의 없이 태양중심설이 단지 계산의 편의를 위한 수학적 가설이라는 내용의 서문을 추가해 책을 출판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구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된 지 얼마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이 나온 1543년은 기억할 만한 해이다. 서구의 근대과학이 형성된 일련의 과정인 과학혁명의 시작을 보통 이 해로 잡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해에 이탈리아에서는 파도바 대학의 의대교수였던 베살리우스가 《인체해부에 대하여》를 출판했다. 이 책은 최초의 인체해부학 서적으로 평가받을 만큼 중요한 서적이다. 봄이 오면 어느 순간 곳곳에서 온갖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천구회전에 관하여》의 ‘회전’에 해당하는 영어단어는 ‘revolution’이다. 중고등학생에게 이 단어를 제시하고 뜻을 적으라면 아마 대부분 ‘혁명’이라고 쓸 것 같다. 물론 급진적인 사회변혁이라는 의미의 혁명이라는 뜻도 이 단어에 담겨 있다. 이공계에서 ‘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주로 ‘회전’, ‘순환’의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rpm’이라는 단어는 ‘revolution per minute’의 약자로 분당 회전수를 나타내는 단위이다. 천구의 ‘revolution’이 천문학 ‘revolution’을 주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부 문헌에서는 revolution에 사회변혁의 의미가 담긴 것은 《천구회전에 관하여》 이후라는 주장도 있으나 그 이전부터 부분적으로 revolution을 사회혁명의 뜻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매트릭스'의 3편 부재가 ‘revolution’이다. 나는 이 부제를 보고서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을 주인공 네오가 혁명적으로 뒤집어엎는 스토리를 기대했었다. 실제 영화 내용은 혁명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이었다.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정쩡한 타협과 순환이라니, 나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코페르니쿠스는 정말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지구와 태양의 위치만 바꾸었기 때문에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원운동을 한다. 필요하다면 주전원을 도입하기도 했다. 다만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비해 필요한 주전원의 수가 획기적으로 줄기는 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에서도 주전원이 필요했던 이유는 행성이 실제로는 완벽하게 원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보다 관측 자료를 월등하게 더 잘 설명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관측 자료가 아주 정밀하지는 않았고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로도 그럭저럭 관측 자료를 잘 설명할 수 있었다. 태양중심설의 이점은 그야말로 개념적인 이점이었다. 예컨대 화성의 겉보기 역행운동을 지구중심설에서도 주전원을 도입해 설명할 수는 있으나 태양중심설에서는 지구 바깥에 화성의 공전궤도를 위치시키면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수성과 금성이 태양으로부터 일정한 각도 이상 벗어나지 않는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중심설에서는 지구와 태양을 잇는 직선 위에 수성과 금성의 주전원의 중심이 놓여 있어야 한다고 가정해야 하지만 태양중심설에서는 수성과 금성이 지구의 안쪽 궤도를 돌기만 하면 이 현상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태양중심설을 지지할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과학혁명의 선봉이 천문학 혁명이었고 그 주역이 코페르니쿠스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 시절까지는 태양중심설이 종교와 큰 갈등을 빚을 일이 없었으나 그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직후인 1548년에 태어난 이탈리아의 조르다노 브루노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사였다. 브루노는 태양중심설과 무한우주설을 주장했다. 이 우주를 만든 조물주가 무한한 존재이므로 그 피조물인 우주 또한 무한한 것이 당연하다는 게 그의 기본 논리였다. 브루노의 주장은 교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1593년부터 종교재판을 받았다. 종교재판은 대체로 유무죄를 공정하게 가리는 재판이라기보다 종교재판 회부 자체가 유죄를 전제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브루노는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1600년 2월 로마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이때 브루노는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목소리가 선고를 받는 자신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거라고 말했다.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 브루노 동상이 보인다. 위키피디아 제공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 브루노 동상이 보인다. 위키피디아 제공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가면 브루노의 동상이 서 있다. 이 광장은 나보나 광장 남쪽에 있는 조그만 광장이다. 동상을 떠받치고 있는 사각기둥의 네 면에는 브루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그 한 면에는 화형에 불타는 브루노의 최후의 모습도 있다. 


미국의 폭스 TV가 지난 2014년에 리메이크한 유명 과학다큐 '코스모스' 1편에도 브루노가 등장한다. 원작 '코스모스'는 동명의 저서를 쓴 그 유명한 칼 세이건이 진행한 명작으로 1980년에 제작되었다. 리메이크작은 예고편에 당시 미 대통령이던 오바마도 인사말을 할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리메이크작의 진행자는 닐 타이슨이다. 그 1편 43분 중 무려 11분에 걸쳐 브루노가 등장한다.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재연배우를 써서 브루노의 삶을 보여줬을 텐데 '코스모스'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리메이크작은 한국에서도 미국과 큰 시차 없이 방송돼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재미있게도 1편이 방송된 뒤에 영국의 가디언 지에서 '코스모스'가 다룬 브루노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레베카 히기트가 쓴 이 기사의 제목은 “코스모스와 조르다노 브루노: 과학 영웅의 문제”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코스모스'가 브루노를 지나치게 과학영웅으로 묘사해 영웅주의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특히 브루노는 결코 과학자가 아니었으며 과학적인 주장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이 나오려면 19세기 중반까지 가야 한다. 


천문학 혁명을 수업할 때마다 브루노의 일화와 가디언의 이 기사를 소개한다. 무엇보다 과학 콘텐츠로 명작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소스가 되어 사회적인 토론이 진행되는 모습이 부러웠다. 과학적 영웅주의는 분명 과학만능주의와 함께 우리가 경계해야할 편견임에 분명하다. 그 논쟁이 지루한 교과서가 아니라 TV 다큐멘터리와 유력 일간지에서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서구의 이처럼 과학이 하나의 자연스런 일상 문화가 된 점이 무척 부럽다. 아울러 학생들이 그저 수업시간에 교과서나 강의 슬라이드만 보고 공부할 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진행되는 의견의 충돌을 찾아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하고 바란다. 진짜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가서 가디언 지의 기사를 뽑아 들고 브루노 동상 옆 카페에 둘러앉아 토론을 하는 것이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대학 교양수업이 그런 식으로도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데이바 소벨,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 웅진지식하우스

-이문규 외, 《과학사 산책》, 소리내

-사이먼 싱, 《우주의 기원 빅뱅》, 영림카디널

-Rebekah Higgitt, Cosmos and Giordano Bruno: the problem with scientific heroes, the Guardian, 14 Mar 2014, http://www.theguardian.com/science/the-h-word/2014/mar/14/cosmos-history-science-giordano-bruno-danger-heroes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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