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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하루 주기 변덕은 생체시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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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카페] 하루 주기 변덕은 생체시계 때문?

2019.10.08 14:00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나트륨등으로 거리나 건축물을 비춘 야경이 인상적이다. 사진은 로마의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다리의 전경이다. 지난 2017년 이탈리아 로마시는 전기료 절감 명분으로 나트륨등을 LED등으로 바꾸는 정책을 시행해 시민들로부터 “끔찍하다”는 강한 항의를 받았다. 위키피디아 제공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나트륨등으로 거리나 건축물을 비춘 야경이 인상적이다. 사진은 로마의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다리의 전경이다. 지난 2017년 이탈리아 로마시는 전기료 절감 명분으로 나트륨등을 LED등으로 바꾸는 정책을 시행해 시민들로부터 “끔찍하다”는 강한 항의를 받았다. 위키피디아 제공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저공(狙公)은 원숭이를 키웠는데 숫자가 늘자 먹이를 대는 게 부담스러워 하루는 원숭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만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는 어때?”


이번에는 원숭이들이 수긍하며 받아들였다. 실제로는 바뀐 게 없는데도 말에 현혹돼 잘 속는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다.

 

조삼모사 원숭이, 어리석지 않을 수도

 

통계청 자료
통계청 자료

그런데 설사 원숭이가 3+4=4+3을 알고 있더라도 저공의 제안은 말장난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녁에 비해 아침에 허기를 더 느끼거나 식욕이 더 당긴다면 도토리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먹는 게 낫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를 들어 회사에서 카페의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며 편의상 ‘아침에 아메리카노, 점심에 카푸치노’와 ‘아침에 카푸치노, 점심에 아메리카노’ 가운데 하나로 정하는 설문지를 돌린다면 ‘우리가 원숭이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진지하게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필자라면 모닝커피로 카푸치노를 마시기는 좀 밋밋해 전자를 택할 것이다. 

 

실내조명도 하루 가운데 언제냐에 따라 선호하는 불빛의 색이 다를 수 있다. 필자 책상 위의 스탠드는 두 가지 색의 빛을 선택할 수 있는 제품으로 처음 스위치를 켜면 백색광이, 스위치를 껐다가 다시 켜면 노란빛이 나온다. 보통 오전에는 흰빛, 저녁에는 노란빛으로 켜 놓는다. 

 

노란빛은 백색광에서 수면을 방해하는 파란빛을 줄인 것이므로 제품의 권장 사용법을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이런 지식을 알기 전에도 저녁 조명으로는 노란빛을 선호해 가로등도 수은등보다는 나트륨등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반면 오전에 노란빛은 아닌 것 같다. 

 

이런 하루 주기의 선호도 변화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국제학술지 ‘네이처’ 10월 3일자에는 이 의문에 답하는 흥미로운 동물실험을 소개한 논문이 실렸다. 

 

초파리가 녹색빛을 선호하는 이유

 

미국 마이애미대의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은 하루 동안 초파리의 조명 색 선호도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알아봤다. 연구자들은 초파리가 사는 공간을 세 부분으로 나눈 뒤 각각 파란색, 녹색, 빨간색 조명을 설치했다(같은 세기의 백색광원에 서로 다른 필터를 붙이는 방식으로). 

 

한편 하루 24시간 주기를 재현하기 위해 12시간은 조명을 켜고 12시간은 껐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나 추분 전후의 조건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는 예상대로 세 공간을 임의로 선택한 결과 점유율이 모두 3분의 1 내외였다. 

 

그러나 낮에는 녹색빛 방을 선호했고 그다음이 빨간빛 방이었고 파란빛 방은 한산했다. 참고로 초파리는 파란빛과 녹색빛에는 민감하지만 빨간빛은 제대로 못 봐 빨간빛 방은 어두컴컴하다고 느낀다. 초파리는 녹색빛을 선호하고 파란빛을 피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낮의 조명 색 선호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특이한 패턴이 드러났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는 녹색빛 방에 머무르는 초파리 수가 빨간빛 방의 두 배였지만 정오 무렵에는 반반이 됐다. 10일 넘게 관찰해도 이런 패턴이 지속됐다. 그렇다면 초파리는 왜 하루 주기로 선호도 변화를 보일까.

 

‘네이처’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샬롯테 헬프리히-푈스터 교수는 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먼저 녹색빛 선호는 자연 상태에서 초파리가 나무와 관목 사이를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것과 관련이 있다. 흥미롭게도 초파리가 녹색빛을 선호하는 시간대가 바로 먹이 활동이 활발한 때다. 

 

한편 정오 무렵 빨간빛 선호도가 녹색빛 수준까지 올라가는 건 쉬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낮잠을 잘 때는 너무 밝은 데보다 약간 어두운 곳이 더 편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파란빛은 왜 일관성 있게 피할까.

 

파란빛은 파장이 짧아 녹색빛이나 빨간빛보다 빛알갱이(photon광자)의 에너지가 크다. 또 파장이 더 짧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가 더 큰 자외선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가 큰 빛은 DNA를 손상시키므로 몸에 해롭다. 초파리가 파란빛을 피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초파리의 생태 적응으로 해석되는 하루 24시간 주기의 선호도 차이에 생체시계가 정말 관여할까.

 

하루 동안 초파리의 조명 색 선호도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a. 조명이 꺼진 상태(dark)에서는 세 방에 있는 개체수가 비슷하지만 불이 켜지면(light) 녹색빛 방을 가장 선호하고 파란빛 방은 기피한다. 특이하게도 한낮에는 녹색빛 방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빨간색 방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서로 비슷해진다. b. 생체시계 유전자 per가 완전히 고장난 돌연변이 초파리의 경우 낮에 색 선호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c. 녹색빛에 민감한 빛수용체 로롭신1의 발현을 낮춘 돌연변이체는 상대적으로 더 밝게 느껴지는 빨간색 방을 선호한다. d. 파란빛을 감지해 통증 신호를 유발하는 로롭신7의 발현을 낮춘 돌연변이체는 파란빛 방을 피하지 않는다.  사이언스 제공
하루 동안 초파리의 조명 색 선호도 변화를 보여주는 그래프다. a. 조명이 꺼진 상태(dark)에서는 세 방에 있는 개체수가 비슷하지만 불이 켜지면(light) 녹색빛 방을 가장 선호하고 파란빛 방은 기피한다. 특이하게도 한낮에는 녹색빛 방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빨간색 방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서로 비슷해진다. b. 생체시계 유전자 per가 완전히 고장난 돌연변이 초파리의 경우 낮에 색 선호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c. 녹색빛에 민감한 빛수용체 로롭신1의 발현을 낮춘 돌연변이체는 상대적으로 더 밝게 느껴지는 빨간색 방을 선호한다. d. 파란빛을 감지해 통증 신호를 유발하는 로롭신7의 발현을 낮춘 돌연변이체는 파란빛 방을 피하지 않는다. 사이언스 제공

파란빛이 고통스러운 초파리

 

연구자들은 24시간 생체리듬을 관장하는 핵심 유전자인 ‘피리어드(per)’가 완전히 고장난 돌연변이 초파리(per0)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녹색빛 방을 일관되게 선호할 뿐 대낮에 빨간빛 방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패턴은 나타나지 않았다. 빛의 색에 대한 선호도 변화에 생체시계가 관여한다는 말이다. 반면 파란빛에 대한 기피는 여전했다.

 

조명 색 선호도 변화에 생체시계가 연관돼 있음을 좀 더 확실히 입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하루가 19시간으로 줄어든 피리어드 돌연변이(pers)와 29.5시간으로 늘어난 돌연변이(perl)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이 녀석들은 하루 24시간 조건에서는 생활이 엉망이 되지만 변이에 맞게 하루 길이가 조정된 환경에서는 편안한 삶을 산다. pers는 자전주기가 19시간인 행성에서, perl은 29.5시간인 행성에서 ‘정상’ 초파리가 된다. 

 

연구자들은 낮 9.5시간, 밤 9.5시간인 하루 19시간 주기로 조명을 조절한 공간에 pers 초파리를 두고 조명 색 선호도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하루 24시간 조건에서 정상 초파리로 실험했을 때와 같은 패턴이 나왔다. perl 초파리를 대상으로 한 낮 14.75시간, 밤 14.75시간인 하루 29.5시간 주기 실험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  

 

한편 초파리의 눈에서 녹색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빛수용체인 로돕신1(rhodopsin 1)의 발현을 낮춘 돌연변이 초파리에서는 녹색빛 방과 빨간빛 방의 선호도가 바뀌었다. 눈에 로돕신1이 얼마 없다 보니 어둠침침한 빨간빛 방이 녹색빛 방보다 상대적으로 더 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 파란빛에 대한 기피는 여전했다. 

 

놀랍게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돌연변이 초파리조차 파란색 방을 피했다(이 경우 녹색빛 방과 빨간빛 방이 반반). 눈으로 파란빛을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수년 전 초파리의 몸에 분포한 통증 뉴런에서 발현하는 빛수용체 ‘로돕신7(rhodopsin 7)’이 발견됐다. 

파란빛으로 로돕신7이 활성화되면 초파리가 통증을 느낀다는 말이다. 초파리가 일관되게 파란빛 방을 피하는 게 로돕신7 때문일지 모른다. 연구자들은 로돕신7 유전자의 발현을 낮춘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들었고 예상대로 파란빛 방을 피하는 행동이 사라졌다.

 

사람도 조명 색 선호도 바뀌나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사람에서도 초파리처럼 하루 시간대에 따라 조명 색 선호도가 바뀌는지 알아보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 생각엔 그럴 것 같고 앞서 소개한 필자의 변덕이 왠지 일반적인 패턴일 것 같다. 그리고 저녁에 백색광보다 노란색 계열의 빛을 선호하는 이유는 백색광에 포함된 파란빛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초파리의 로돕신7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없지만(있다면 우리도 파란빛에 고통을 느껴 피할 것이다) 대신 망막에 있는 멜라놉신(melanopsin)이라는 수용체가 파란빛의 정보를 뇌의 일주리듬조절영역인 시각교차상핵(SCN)으로 전달한다. 파란빛이 들어와 멜라놉신이 활성화되면 SCN은 여전히 낮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벌써 해가 떨어져 멜라놉신이 잠잠해져야 할 때임에도 백색광 인공조명으로 계속 신호가 오면 SCN은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뭔가 이상함을 느껴 혼란스러워할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반면 파란빛의 비율이 낮은 노란 불빛은 SCN을 덜 자극해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아늑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관찰되는 사소한 변덕까지 수십 억 년 지구 자전의 역사에 맞춰 진화한 생체시계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면 우리 삶에서 자유의지가 하는 일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필자소개

강석기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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