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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산소 감지하는 세포 '분자스위치' 암 치료 새 장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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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산소 감지하는 세포 '분자스위치' 암 치료 새 장 열다

2019.10.08 10:46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 교수, 윌리엄 케일린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됐다는데, 11월에 한국에 올 수 있을까?”

 

7일 오후 울산의 동료 과학자에게서 받은 한 통의 e메일을 여는 순간 '아, 또 맞췄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몇해 전부터 개인적으로 그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가늠해보고 있는데 빌 케일린(친근한 표현으로 빌이라고 부른다) 미국 하버드대 데이나파버연구소 교수가 올해 노벨상을 받게 되면서 4년째 수상자를 예측하는 기록 아닌 기록을 수립했다. 노벨상을 어떤 분야에서, 누가 받을지 예측하는데 꽤 민감해진 것 같다.

 

노벨상을 예측하는 건 상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노벨상의 수상 분야를 예측하는 일은 그만큼 과학에서 중요한 업적이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가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공교롭게 올초 나는 케일린 교수에게 이런 e메일을 보냈다. 

 

“올해 당신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될지 모르지만, 저는 당신이 노벨상을 꼭 받길 희망하지만, 오는 11월 6-8일 시간을 내주실 수 있다면 꼭 한 번 한국의 학회와 서울대를 방문해 주십시오.”

 

그는 바로 초청을 수락했고 나는 한국 학계에 도움이 되길 희망하며 여기 저기에 강연을 주선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도 그 중 하나였다. “곧 노벨상을 받을 겁니다. 어쩌면 올해 받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빨리 모셔야해요”. 강연을 주선하면서 여러 번 했던 말은 '씨'가 됐다.

 

●족집게 같은 예측의 비밀은 3년 전 받은 '래스커상'

 

사실 내가 족집게처럼 노벨상을 잘 맞출 수 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케일린 교수는 노벨 생리의학상 만큼이나 영예로운, 혹은 노벨상의 전초전격인 래스커상을 2016년에 이미 받았다. 그해 래스커상은 산소량의 감지하는 세포 메커니즘을 알아낸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케일린 교수와 이번에 함께 노벨상을 받게 된 그레그 서멘자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피터 랫클리프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다. 이 세 명은 또 함께 고스란히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됐다.  


이들에게 래스커상과 노벨 생리의학상의 영예를 안긴 세포의 산소량 감지 메커니즘은 생명체에 필수적인 기능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산소가 꼭 필요하다. 우리 몸안에 들어와 음식물을 에너지원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이 일을 담당하는 세포 내 공장은 미토콘드리아다. 1931년 오토 워버그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ATP 에너지 생산 과정을 밝혀 노벨상을 받았다.

 

유기체가 산소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인 세명의 과학자들이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됐다. 노벨위원회 제공
유기체가 산소의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인 세명의 과학자들이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됐다. 노벨위원회 제공

산소는 우리 주변에 흔하지만 저장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바깥에서 몸에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몸이 혈액 안에 산소가 적당히 존재하는지 또는 모자란지 늘 감지해야 한다. 1938년 노벨상을 받은 코르네유 장프랑수아 하이먼은 목 양 끝 혈관에 '캐로티드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혈액내 산소량을 감지해 호흡량을 조절하고 뇌와도 소통한다는 것을 밝혔다. 

 

산소는 적혈구에 의해 운반돼 혈액을 따라 온 몸에 공급된다. 따라서 적혈구 세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신장에서 내보내는 신호인 EPO에 의해 이뤄진다. EPO는 '적혈구를 만드는 신호 단백질'이라는 뜻으로, EPO의 발견은 세포의 산소 감지 시스템을 규명하는 단초가  됐다. EPO는 산소가 적은 저산소 상태(hypoxia)일 때 많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체인 산소를 감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서멘자 교수와 랫클리프 교수는 이 비밀을 푼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들은 저산소에 반응하면 EPO의 유전자 발현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서멘자 교수는 EPO 유전자에서 전령RNA(mRNA) 생산 위치를 알려주는 부위인 프로모터에서 저산소 반응 인자(Hypoxia-Responsible Element; HRE)를 찾아냈다. 이후 그는 HRE에 결합하는 HIF(Hypoxia-inducible factor) 단백질을 규명했다. 저산소 상태에서 HIF에 의해 발현이 유도되는 유전자군은 300여개에 이르며 EPO는 그 중 하나다.

 

여기까지 밝혀내자 과학자들은 HIF가 어떻게 산소량을 감지하는지에 주목하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할 단서는 전혀 다른 연구를 하던 빌 케일린 교수가 제시했다. 암 생물학자인 케일린 교수는 본히펠린다우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질병의 원인 유전자로 VHL을 밝혀냈다. VHL의 돌연변이가 신장암 등의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연구 주제에서 '산소 분자 스위치' 단서를 찾다

 

2019 노벨 생리학수상자 중 한 명인 윌리엄 케일린. 하버드대 데이나파버 연구소 제공
2019 노벨 생리학수상자 중 한 명인 윌리엄 케일린. 하버드대 데이나파버 연구소 제공

케일린 교수는 이 과정에서 VHL이 HIF에 '유비퀴틴 체인'을 달아 단백질 분해를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비퀴틴은 76개의 아미노산 사슬로 이뤄진 단백질인데, 다른 단백질에 붙어 분해를 촉진한다. 그 결과 정상 세포에서 VHL을 만난 HIF는 수 분안에 바로 분해되고 만다. 반면 저산소 상태에서 HIF는 안정화되고 핵 안으로 들어가 HRE에 결합해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해 저산소 상황을 극복한다. 

 

이후 케일린 교수는 랫클리프와 함께 HIF가 어떻게 산소량에 반응하는지 규명하는 데 몰두했다. 그들은 적정량의 산소가 있을 경우 HIF 단백질이 수산화돼(분자에 OH기가 붙는다는 뜻) 산소 원자를 품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VHL은 수산화된 HIF를 인식해 분해시킨다. 그러나 저산소일때 HIF는 수산화되지 않고, VHL이 인식하지도 분해하지 않아 핵 안으로 들어가 전사 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이때 발현되는 유전자 가운데는 암덩어리 속까지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새 혈관을 만들도록 신호를 보내는 유전자인 VGEF도 포함돼 있다. VHL은 산소를 감지하는 일종의 '분자 스위치'인 셈이다.

 

이런 산소 감지 메커니즘은 빈혈과 암, 대사성 질환, 심장 마비, 뇌졸중 등 관련되지 않는 질병을 찾기 힘들 정도다. 노벨위원회는 특히 HIF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빈혈과 암 치료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혈의 경우 HIF를 올리는 일련의 실험들이 긍정적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HIF를 억제하는 저해제는 암에서 혈관 생성을 억제해 항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장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HIF는 너무 많아도, 적어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산소 센서를 조절하는 일은 매우 민감한 일이고, 이를 응용하려는 연구도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인연' 소중히 여기는 연구자들 "교류 통해 새로운 사실 밝히는 게 과학"

 

빌 케일린은 미국과학재단(NSF)이 후원한 고등학생 과학 캠프에서 처음으로 과학에 진지하게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수학을 잘 하는 고등학생 스무 명을 뽑은 캠프로, 케일린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훗날 그는 "똑똑한 친구들에게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큰 소득이었다"고 회고했다. 대학 때는 실험을 못해서 연구자가 되기는 글렀다는 소리까지 들었다었다. 하지만 데이나파버 암병원에서 만난 멘토 리빙스턴이 그를 최고의 연구자의 길로 이끌었다.

 

내가 만난 케일린 교수는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다.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끝까지 캐묻고 혹독하리만치 질문에 매달린다. 10여 년 전 데이나파버의 그의 연구실에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연구를 학생 때부터 존경해 왔고 그는 나의 연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을 공유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연구년을 맞아 미국 보스턴에 와 인사차 들렀다는 내게 그는 내가 관심을 가질만한 보스턴의 과학자들과 모두 소개해 줬다. 그 덕분에 여러 연구자를 만나러 다니느라 매우 바쁘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좋은 친구들을 더 많이 알게 됐음은 물론이다.

 

왜 그렇게까지 내게 잘 해 줬는지 그 때 나는 다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만난 모든 위대한 과학자들의 공통점을 그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과학이다. 케일린 교수는 랫클리프, 서멘자 교수와 함께 교류하며 세포의 산소 센서의 비밀을 풀게 됐다. 그는 과학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스웨덴 이름의 희귀 유전질환 폰히펠린다우의 유전자가 HIF의 조절자란 것을. 혼자 골방에서 연구했다면, 또 결과를 정해놓고 연구했다면 도저히 밝혀내지 못했을 일이다. 

 

서멘자 교수의 연구실 앞에는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붙어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연구(research)라 할 수 없다.”  미지의 세계로 질문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 노벨상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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