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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당신이 일을 상습적으로 미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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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당신이 일을 상습적으로 미루는 이유

2019.10.12 08:00
왜 우리는 미루고 또 미루는 걸까?게티이미지뱅크
왜 우리는 미루고 또 미루는 걸까? 게티이미지뱅크

분명 일찍부터 준비하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시험이나 마감 직전이 되어서야 발을 동동 구른다.  누구나 한번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뤘다가 낭패를 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특별한 이유 없이 지금의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내일의 나에게 '토스'하는 현상을 미루기(procrastination)라고 한다. 뻔히 나중에 가서 더 크게 고생할 걸 알면서도 왜 우리는 미루고 또 미루는 걸까?

 

미루기를 하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성격적으로 게으르거나 주의 집중력이 낮고 다른 유혹(예, 친구들과 놀러가기)에 약하거나 또는 번아웃 상태여서 더 이상 일을 할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일을 잘 미루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캐나다 비숍스대의 심리학자 푸시아 시루아 교수에 따르면 ‘기분이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 즉 일종의 정서 조절 전략으로 미루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평소 기분이 울적한 편이거나 마음에 여유가 없고 죄책감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의외로 더 잘 미루는 편이라고 한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슬픈 영상을 보여줘서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한 후 과제를 주면 부정적 정서를 느끼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과제를 미리 준비하는 행동을 ‘덜’ 보이는 등 더 많이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는 발견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기분이 나쁘다'→'기분이 좋아지고 싶다'→'재미없는 과제보다 재미있는 다른 걸 하고 싶다' → '미루기' 의 행동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기분이 좋을 때는 미루는 행동이 덜 나타나기도 했다. 어떤 이유로 기분을 좋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되면 때로는 눈 앞의 일보다도 내 기분을 우선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때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까 나는 지금 실컷 즐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등 미루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정서’를 높게 평가할수록 더 마음껏 미루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한편 미루면 엄청 고생할거라고 미루기의 나쁜 영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미루는 현상과 별 관련이 없었다. 즉 미루기가 얼마나 나쁜지 아는 것은 미루는 행동과 상관 없지만 일단 일을 미루면 엄청 “마음 편하고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미루는 행위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즉 미루는 행위 자체가 삶의 큰 즐거움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습적 미루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 역시 부정적 정서와 관련이 있다. 바로 자기 반성과 죄책감이 지나친 경우다. 흥미롭게도 ‘일을 미루는 것은 정말 나쁘다’, ‘사람들은 일을 미루는 사람을 싫어한다’는 믿음을 강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일을 더 잘 미루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많이 불안해하고 일을 완수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본다.  그리고 더 일찍 준비했어야 했다며, 이미 늦었다며 후회를 한다  이어 '내가 그럼 그렇지 뭐' 등 자기 비난을 하며 일을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떨어지며 마지막으로 어차피 기간 안에 해낼 수 없어서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로 이어지는 행동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곤 한다. 시험이 일주일 남았는데 이제 와서 공부해도 늦었다며 책을 한 장도 보지 않고 시험을 보는 것이 한 예다. 


이런 자기비판적 미루기의 경우 기분을 좋게 하려는 시도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연구자들에 의하면 이 또한 자존감을 방어하고 기분을 더 나빠지지 않게 하려는 행위다. 어차피 안 될 거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짜 실패”를 막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공부 하나도 안 한 것 치고 이 정도 점수면 괜찮지 뭐”라는 자기 위로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 역시 마감 네다섯 시간 전인데 아직 원고를 안 썼다면 어차피 늦었으니 다음에 하자며 마감을 며칠 더 미루곤 한다. 사실 다섯시간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일단 미루고 보는 것은 불안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점점 어떡하냐며 패닉하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최대한 해보자고 담담한 마음으로 하면 될 텐데 패닉하는데 일단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미루는 것에 대한 죄책감 또한 매우 크다. 그만큼 마음만 무거워져서 일하는데 써야 할 에너지를 감정 소모에 다 태우고 만다. 못하겠다고 며칠만 더 달라고 일을 미루고 나면 당장은  마음이 편해진다. 불안이 큰 만큼 일단 폭탄을 내일로 돌리고 나면 큰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찰나의 안도감 때문에 계속해서 일을 미루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일을 미루고 나면 당장은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미뤘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과 그로인한 자기 반성이 이내 즐거움을 다 깎아 먹는다. 미루는 즐거움은 아주 잠깐이다. 조금 늦더라도 최대한 해보자는 담담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 

 

참고자료

Sirois, F., & Pychyl, T. (2013). Procrastination and the priority of short‐term mood regulation: Consequences for future self.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Compass, 7, 115-12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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