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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비만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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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질병] 비만의 진화

2019.10.19 09:21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 나우루 공화국은 전세계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위키피디아 제공.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 나우루 공화국은 전세계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위키피디아 제공.

진화의학자 폴 이왈드는 치매와 죽상경화증에 관한 기존의 임상적 견해를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가설을 제안했다. 치매의 위험성을 높이는 아포지질단백질 E4 대립유전자는 감염에 많은 환경에서 염증 반응을 중개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강화된 염증 반응에도 굴하지 않는 일부 감염균과의 군비경쟁으로 인해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죽상경화증과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염증 작용이 있는 약물이 효과적인 이유, 마늘의 예방 효과나 간접 흡연의 위험성도 감염 가설로 잘 설명될 수 있다. 물론 아직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관련기사 보기 : 콜레스테롤과 감염, 그리고 치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1698 )

 

만약 감염 가설이 옳다면, APOE 4 대립유전자는 단지 감염에 의한 염증 반응을 악화시키고 죽상경화증과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행하게 만든 중간 요인일 뿐이다. 감염이 득실거리는 세상이라면 노년기를 보낼 가능성이 없으니, 일단 예민한 염증 반응을 보이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심각한 감염병에 걸리면 며칠 만에도 죽을 테니, 치매 없는 노년을 기약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류는 약 150만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육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운이 좋아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고, 불도 사용하면서 사냥 성공률이 높아졌다. 고기는 양질의 에너지원이다. 한번 큰 동물을 잡으면 한동안 부족 전체가 놀아도 된다. 여유 시간에 도구를 만들고 더 좋은 사냥 기술을 익혔다. 굶지 않고 잘 먹으니 수명도 길어졌다. 그러면서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리는 나이까지 사는 사람도 많아졌고, 지방이 많은 고기를 먹으니 죽상경화증의 위험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구석기 시대부터 엡실론 4 대립유전자의 빈도가 빠른 속도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육식 가설이라고 한다. 


신석기 이후 농업 혁명이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축은 오메가-6 지방산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엡실론 4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식단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농사를 지은 동아시아인이나 유럽인은 엡실론 4 유전자 빈도나 낮고,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아직 빈도가 높다는 것이다. 혹은 온대 지방에 사는 동아시아인이나 유럽인은 감염의 위험성이 낮아서 엡실론 4 유전자의 이득이 적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엡실론 4 유전자는 점점 사라질지도 모른다. 감염은 항생제로 치료할 수 있는 세상이니, 득은 적고 실은 많다. 육식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그런데 육식의 시작은 또 다른 나비효과를 낳았다. 바로 비만이다. 


건강과 질병의 발달적 기원


1993년 데이비드 바커 등은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제시했다. 출생 당시에 낮은 체중을 보인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죽상경화증이나 여러 염증성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이른바 ‘절약 표현형 가설(thrift phenotype hypothesis)’이라고 한다. 


진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대번에 ‘절약 유전형 가설(thrift genotype hypothesis)’를 떠올렸을 것이다. 1962년 제임스 닐이 제안한 주장이다. 사실 다분히 기존의 유명 가설의 이름을 따온 것이긴 하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제임스 닐은 인간이 구석기 시대의 열악한 식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기름지고 단 것을 좋아하도록 진화했고, 이러한 유전형이 현대 사회의 풍족한 환경에 잘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너무 연비가 좋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절약 유전형 가설은 중대한 문제가 있다. 왜 어떤 사람은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느냐는 것이다. 얄밉게도 말이다. 


데이비드 바커가 주장한 절약 표현형 가설은 이와 조금 다르다. 유년기 혹은 재태 중의 다양한 신호에 따라서 절약을 할지 말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비만이나 당뇨병 등 대사성 장애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을 잘 설명해준다. 어린 시절 열악한 환경에 맞춰진 몸이 갑자기 풍족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일부 개발도상국의 치솟는 대사성 장애 유병률은 점차 낮아질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른바 건강과 질병의 발달적 기원(Developmental Origins of Health and Disease, DOHaD) 개념으로 발전했다. 즉 건강과 질병은 어린 시절의 발달적 단계에 어떤 적응을 하기로 했는지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특히 재태 환경 및 영유아기에 주목한다. 아주 어린 시기에 결정되므로 임신 그리고 초기 양육 단계에 태아 혹은 아기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연구로 이어진다. 임신과 출산, 양육 과정 중에 풍족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은 아기의 평생 건강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첫 1000일 그리고 15년

 

 

건강한 발달을 위한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은 강력한 근거를 계속 확보해 나갔다. 장기간에 걸친 추적 조사, 그리고 대규모 후향적 연구에 따르면 재태 기간 및 생후 첫 2년은 평생의 건강에 아주 중요했다. 이른바 ‘첫 1000일(the first 1000 days)’ 접근이라고 한다. 임신 중 무리한 다이어트를 의사들이 극구 말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만 두 살이 지나면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첫 1000일만큼은 아니지만, 발달 과정 전체가 중요하다는 연구가 이미 있었다. 1927년부터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성인 사망률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사망률은 모성 건강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첫 15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15년이라면 너무 긴 기간일까? 사실 15세가 되면 상당수의 소녀는 임신이 가능한 시기에 접어든다. 첫 15년 동안 모성 건강이 좋지 않았다면 바로 이어지는 딸의 임신과 양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키우던 환경이 외손녀에게 이어지고, 다시 외증손녀에게 이어질 것이다. 이를 이른바 ‘세대 간 효과 가설(intergenerational effect hypothesis)’라고 한다. 직접적인 유전적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초기 영유아기의 건강한 양육이 대를 이은 건강을 약속해준다는 것이다. 


재태 기간의 특별한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도 진행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재태 중 발달 기간이 이후의 건강에 가장 핵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임신 중에는 무서운 것을 보지 말고, 험담을 듣지 말고, 좋은 것만 골라 먹으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모차르트를 듣는 것도 좋겠지만 임신 중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양질의 식사를 충분히 하는 것이다. 이를 이른바 ‘태아 기원 가설(fetal origin hypothesis)’이라고 한다. 

 

마야인의 비극

인류는 수백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비만은 그렇지 않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번성했던 마야 문명. 그러나 이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것은 고작 1만5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마야력에 의하면 그들의 역사는 기원전 3114년에 시작되지만, 실제로 번성한 때는 250년경이다. 이때부터 약 650년간 이른바 고전 시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가장 번성한 티칼이라는 도시에는 높은 수준의 기술과 복잡한 사회구조, 상당한 수준의 종교 의례를 가진 고대 문명이 건설되었다. 초기 고전 시기에 매장된 무덤을 조사해보면 마야인의 신장은 약 170 cm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높은 계급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하류 계층은 이보다 작았다. 하류층은 자신의 집 바닥에 시신을 묻었는데, 이들의 신장은 약 163 cm 정도였다. 계급에 따라 차별적인 영양 공급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 계급에 따른 건강 수준의 차이는 많은 의료인류학자의 공통적인 관심사지만, 일단 그 문제는 접어두자. 문제는 마야인의 키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후기 고전 시기에 이르면 전체적으로 신장이 약 5~6 cm 정도 줄어들었다. 불과 수백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약 8세기경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흉년이 일어났고, 자원이 부족해진 마야인은 서로 전쟁을 벌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병사가 많아야 한다. 낫을 버리고 칼을 쥐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마야인의 주식, 옥수수의 수확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도시 간의 교역이 감소했다. 교역의 감소는 무역 효과를 줄이고, 이는 다시 주기적인 기아로 이어졌다. 새로운 건축물의 건설은 없어지고, 기존의 도시도 황폐해졌다. 마야 문명은 쇠퇴했다. 


이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6세기 스페인의 침략은 마지막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마야 문명에 결정타를 날렸다. 1520년 약 200만 명에 달하던 마야의 인구는 불과 백 년 만에 1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수백만 명이 전쟁과 기아, 감염병으로 사망했다. 


피그미족

 

피그미(pygmy)란 키가 작은 민족을 일컫는다. 특정한 부족이 아니라 키가 작은 민족을 통칭하는 말이다. 원래 피그미란 손목에서 손가락의 첫 번째 근위 관절까지의 길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주먹크기라는 것이다. 피그미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만, 마땅한 대체어가 없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는 어탁선(autochthon)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정확하게 같은 뜻은 아니다. 


아무튼, 피그미족은 주로 아프리카나 호주, 멜라네시아, 동남아시아 등에 사는 토착 민족에 흔히 관찰된다. 왜 이들은 키가 작을까? 일부 가설에 의하면 열대 우림 지역의 낮은 자외선이 주용의자다. 비타민 D의 합성이 불량하고, 식이로 섭취하는 칼슘이 적기 때문에 골격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타민 D는 지용성 비타민의 한 종류다. 간에서 칼시페디올(calcifediol)이라는 물질로 바뀐 후에 신장에서 다시 칼시트리올(calcitriol)로 변환된다. 이들은 혈중 칼슘 농도를 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칼슘 보충제는 비타민 D와 같이 섞여서 제조된다. 비타민 D가 없으면 우리 몸은 칼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고위도 지방에 사는 사람의 피부가 점점 옅어진 것도 바로 비타민 D 때문이다. 음식으로 섭취할 수 없으면 피부에서 합성해야 하는데, 짙은 피부는 자외선을 잘 투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비타민 D를 많이 합성하지 못한다. 햇빛이 약한 곳에서는 창백한 피부가 유리한 것이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거친 환경에서는 성장보다는 번식에 주력하는 편이 유리하다. 오래 살 가망이 낫다면 성장에 할당된 자원을 가급적 번식으로 돌리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점점 몸은 작고 빨리 자식을 낳는 형질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아마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작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피그미족은 주로 평균 신장이 150cm이 안되는 경우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 기준을 조금 완화하기도 한다. 155cm로 기준을 삼으면 훨씬 많은 부족이 피그미족에 포함된다. 단지 신장으로 분류하는 것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체질인류학적으로는 제법 유용한 기준이다. 조금 완화된 기준에 의하면 마야족도 피그미족에 속한다. 

수백 년의 변화

 

 

인구 집단의 평균 신장이 작아지는 정도의 변화라면 최소 수만 년은 걸렸을 것 같다. 하지만 마야인의 역사를 보면 불과 수백 년 만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현재 마야 여성의 평균 신장은 150cm에서 한참 모자란다. 과테말라에 사는 마야 여성의 키는 145cm에 불과하다. 남성의 평균 신장도 160cm 정도다. 마야의 전성기에 그들의 선조에 비하면 무려 10 cm이나 줄어든 것이다. 


아마 마야인은 수백 년간의 내전과 빈곤, 기아, 침략, 전염병을 거치면서 점점 키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도 마야인의 에너지 섭취량은 권장 수준의 70~80%에 불과했다. 비타민 A나 엽산, 철, 아연, 칼슘 등의 미량원소도 늘 부족했다. 키가 쑥쑥 자라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야인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량 생산되는 토틸라가 보급되면서 칼로리 섭취량은 개선되었지만, 미량원소는 더욱 부족해졌다. 직접 만드는 토틸라보다 더 ‘깨끗’했기 때문에, 칼슘이나 미네랄은 더 부족했다. 또한, 탄산음료가 널리 보급되면서 저질의 칼로리가 대량 공급되었다. 어떤 영양소는 부족하고, 어떤 영양소는 과다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흔히 ‘영양학적 이중 부담(nutritional dual-burden)’이라고 한다. 


1962년부터 2000년까지 유카탄 반도에 거주하원주민에 관한 영양학적 연구에 의하면 마야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다. 전반적인 영양 수준은 좋아졌지만 신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금세 바뀔 리 없다. 하지만 당뇨병이나 비만은 크게 늘었다. 1962년에는 비만 환자다 단 한 명도 없었지만, 2000년에는 해당 지역 마야인의 35%가 비만이었다. 당뇨병도 2.3%에서 10.6%로 증가했다. 
 


콜라 식민지

 

 

19세기 탐험가 쥘 뒤몽 뒤르빌은 태평양에 산재한 도서 주민을 언어와 인종으로 나뉘어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라는 이름으로 붙이고 나누었다. 멜라네시아는 인도네시아의 일부 지역, 파푸아뉴기니, 피지,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 솔로몬 제도 등을 말하며, 미크로네시아는 멜라네시아의 동북쪽에 있는 괌, 나우루, 마셜 제도, 팔라우, 키리바시, 북 마리아나 등이고, 폴리네시아는 남태평양의 한가운데에 있는 뉴질랜드, 사모아, 하와이, 통가, 이스터섬, 투발루 등을 일컫는다.

 

이는 그리 정확한 분류는 아니었다. 인류학적으로는 약 8만 년에서 4만 년 전 사이에 파푸아 지역에 처음으로 현생 인류가 도착했고, 3500년 전에 그 외의 오스트로네시아 지역으로 이동했으며, 이후 이들의 후손이 먼 태평양, 즉 폴리네시아까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오스트로네시아라는 용어가 더 정확하다.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서 대만, 태국, 베트남 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으므로 너무 다양한 생태학적 환경과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대양주는 호주 대륙을 중심으로 파푸아섬과 뉴질랜드, 그리고 태평양의 다양한 섬을 포함하는 지역을 말한다. 결국, 쓰임에 따라서 이리저리 혼용하여 쓰는 수밖에 없다. 


아무튼, 미크로네시아의 작은 섬 나우루 공화국으로 가보자. 인구는 약 만 명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크기도 작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작은 나라다. 식민지 개척 시절 독일과 호주의 지배를 받다가,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일본에 잠시 점령되기도 했었다. 섬 전체가 인광석으로 덮여 있다. 유기물이 퇴적되어 생기는 독특한 광물인데, 비료의 좋은 원료다. 섬 전체가 인광석으로 되어 있으니 채굴이 너무 쉬웠다. 나우루인은 약 3000년 전 섬에 정착한 이후, 주로 양식을 하며 살았다. 이비자(ibija)라는 물고기를 잡아 담수에서 키우는 것이다. 코코넛이나 구근류, 과일도 물론 먹었지만. 


그저 그런 태평양의 빈국이었던 나우루는 인광석의 도움을 받아 돈방석에 올랐다. 1968년 독립 이후 인광석을 떼어 팔면서 큰 부자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일약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인광석을 내다 판 돈은 모두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어차피 인구도 1만 명 수준이었으니, 전부 나누어도 큰돈이었다.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았고, 돈은 흘러넘쳤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넘쳐날 것 같았던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냈다. 1990년대에 접어들자 위기의 조짐이 시작되었지만, 나우루인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3만 불을 넘나들던 1인당 GDP는 2500불까지 추락했다. 축제는 짧았고 고통은 길었다. 


콜라식민지화(coca-colonization)은 미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지만, 나우루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일어났다. 나우루인은 전통 식단을 버리고 모든 음식을 수입해서 먹었는데, 이들의 입맛을 당긴 것은 콜라나 초콜릿, 튀긴 음식 등 몸에 좋지 않은 정크푸드였다. 오랜 세월 동안 나우루의 척박한 식단에 적응해온 몸에 이상이 오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현재 나우루인의 90%가 비만이다(기준에 따라 다소 차이). 전 세계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97%의 남성과 93%의 여성이 비만이다. 평균 체중이 100kg이다. 성인 인구의 40%가 제2형 당뇨병을 앓고 있다. 정부에서는 나우루 공항 주변을 산책하라며 부랴부랴 국민에게 운동을 권유했는데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다음 편 미리 보기┃인류의 식단 편

 

플리커 제공
플리커 제공

국민의 건강을 위한 나우루 정부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별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공항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즐겁지 않은 일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몸에 있다. 비만은 신체적 활동량보다는 칼로리 섭취량과 더 큰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트레드밀에서 한참 뛰면 계기판에 몇 칼로리가 소모되었다고 나온다. 기분은 잠시 좋아지겠지만,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 2012년에 시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하드자족과 서구인의 총에너지 소비량(Total Energy Expenditure, TEE)은 큰 차이가 없었다. 분명 하드자족의 신체적 활동량(Physical Activity Level, PAL)은 아주 높은데 말이다. 상식에 반하는 결과지만, 사실이다. 현대인이 뚱뚱해지는 이유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식당에 너무 자주 가기 때문이다. 


허리에 붙은 살이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라고 해도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살을 빼고 싶은 소망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냐!’라고 항변할 것이다. 비만을 둘러싼 투쟁의 첫 번째 핵심 요인, 즉 인류의 식단에 대해서 살펴보자.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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